프로파일러
[ profiler ]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연쇄살인사건 수사 등에 투입되어
용의자의 성격, 행동유형 등을 분석하고, 도주 경로나 은신처 등을 추정하는 역할을 한다.
귀신이 보이는 무당? NoNo 프로파일러 : 야매무당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날이 재연되면서 그 개같은 느낌도 다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식은땀이 온몬을 적실 정도로 흘러 오한이 들 정도였다. 창문 밖을 보았다. 어스름한 하늘은 새벽임을 알리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와 감은 눈에 아까의 악몽이 다시 재연되었다. 눈을 부릅 뜬 나는 주위를 살피곤 두려움에, 아니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여전히 난 혼자였다.
"악몽 꾼.. 거예요..?"
쭈뼛쭈뼛 문을 통과해 들어온 경수가 문 앞에서 다가오지도 못한 채 그곳에 서 있었다. 이리와봐. 잔뜩 갈라진 나의 목소리에 경수가 빠르게 다가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살피는 경수는 꽤나 진지해보였다. 안아줘. 어느 때보다 능숙하게 나를 안아오는 경수는 가만히 내 등을 토닥였다. 악몽을 꾼 직후에는 항상 그때 당시의 나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두렵다고 엄마에게 칭얼대고, 무섭다고 아빠에게 매달리던 그때의 어린 나로. 경수는 그런 나를 잘 아나보다. 항상 악몽을 꾼 날이면 이렇게 슬며시 들어와 가만히 안아주는 것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였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걸 아는 듯. 그렇게 내 옆을 지켜줬다.
나에겐 총 두 번의 잔인한 시련이 있었다. 나를 이런 성격으로 굳히게 만든 그 두 번의 시련 모두 나의 부모님에게서 나왔다. 그게 내 악몽의 전부였다.
첫번째 시련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그 당시에 난 엄마의 죽음을 생생히 목격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의도적인 차 사고였던 것 같다. 엄마만 노린 듯 그 차는 맹목적으로 조수석에게 향했다. 다행히 엄마는 그 자리에서 죽지 않으셨다. 끔찍했던 그 사고 후에도 약 세 달간 살아계셨다. 아니, 의료기기에만 의존한 채 죽지 못하고 계셨다. 어찌보면 미련한 아빠라는 사람의 일말의 기대 때문에 엄마는 그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세 달을 보내셨다. 그것 때문에 나와 그 사람에겐 어마어마한 양의 빚이 생겼다.
두번째 시련은 자존심 상하게도 그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거였다. 돈을 구하러 간다고 해놓곤 지금까지 연락 한 통 없다.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그 사람은 나에게 그 빚을 그대로 물려준 채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악몽은 끝이난다. 눈을 뜨면 식은땀이 주는 오한과 함께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온다. 지금 내 곁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오로지 귀신만이 내 옆에 있을 뿐이다. 엄마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그 귀신들만이.
***
"괜찮아?"
민석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이 되면 쪽팔려질 정도로 괜찮아 지거든. 역시 새벽은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마성의 시간인가보다. 새벽의 감수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언놈이 함부로 내 어깨에 턱을 기대?
"찬열이 보러 가자."
건방진 백현이가 괘씸해 어깨를 위로 세게 으쓱하는 벌을 주니 화들짝 놀라며 혀 씹었다고 난리였다. 그 모습이 우스워 비웃어 준 뒤 쇼파에 앉았다.
"악령."
"더 지껄여봐. 진심을 다해 이곳에서 내 쫒을테니. 박찬열이고 뭐고 내 알바 아니지."
입을 꾹 다물었지만 이번엔 댓 발 나왔다. 저 주둥이를 후려칠수도 없고. 거슬리기는 엄청 거슬리고. 가만히 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빠르게 백현이 얼굴 앞으로 내 얼굴을 들이밀었다. 놀라 뒤로 자빠지며 입을 두 손으로 막는 백현이를 보며 친절하게 말해줬다.
"그렇게 입 막고 있어. 또 내밀면 신사적으로 해결 안 해."
여자 입에서 신사가 웬 말이냐는 종인이의 말은 간단히 무시했다. 하도 같이 다니면서 수사하다 보니까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네. 꽤나 좋은 능력에 흡족해 하는데 방에 있던 폰이 세차게 울렸다. 귀찮아서 받기 싫은데, 그래도 돈 되는 일이니 전화가 울리겠지. 집이 좁아서 천천히 가더라도 금방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이 현실이 어째 슬프지만 그래도 전화는 받았으니 위안을 받았다.
"여보세요?"
-아, 혹시 무녀님이신가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싸. 야매무당으로서의 일이라면 페이 겁나 쎄겠다.
"아, 네네. 접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혹시.. 출장도 가능하세요..?
"아, 죄송하지만, 그건 안될 것 같은데요. 제가 멀미가 심해서."
출장이라, 그럼 차를 타겠지? 차에 대한 공포는 나의 트라우마였다. 그 교통사고 후 내 인생이 이렇게 꼬였으니까.
-아, 그러시구나.. 그럼 직접 방문하겠습니다.. 정확한 주소를, 보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목소리에 매가리가 없네. 많이 시달렸나.. 이제 의미없는 폰을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뭘 봐."
"참, 꼬였어. 너 아니라 벽 본 거거든."
"나도 종인이 너한테 말한 거 아닌데."
서로 삐진 척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 끝에는 밥통이 걸려있었다. 아.. 쌀. 다 먹었을텐데.. 당장 쌀통으로 달려갔다. 빠르게 열어본 그곳에는 한컵도 안되는 분량의 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분명, 한 사람이 먹는 분량인데 왜이렇게 빠르게 사라지지.. 한숨을 내쉬며 쌀통을 닫았다.
"왜? 쌀 없냐?"
"응. 없네."
"너는, 쌀도 안 사놓고 뭐하냐."
"니가 사줄 수도 없으면서 잔소리 하지 마라."
우선 당장 먹을 식량이 없었다.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었다. 대게 무당일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게 만약 몇시간짜리가 된다면 난 계속 쫄쫄 굶은 채 귀신들과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거였다.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배는 고파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라는 나의 물음에 뜬금없이 택배입니다. 라고 말하는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택배기사 아저씨가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내려놓으며 내 이름을 확인했다.
"ㅇ00씨 맞으시죠?"
"네? 아, 네.. 맞는데, 이건 뭐예요? 시킨적 없는데."
"쌀.. 같은데."
"쌀..? 아, 네. 감사합니다."
네. 짧은 대답과 함께 택배기사가 가고 나는 쌀을 들고 들어왔다. 왜 이렇게 무거워.. 부엌까지 끌고 와 상자를 열었다. 5kg짜리 쌀이 2포대나 들어있었다. 5kg이면 한달은 충분한데.. 아저씨도 참.. 이따금 아저씨는 나보다 더 집에 대해 잘 알았다. 쌀이나 퐁퐁, 샴푸, 린스 등과 같은 생필품이 떨어지면 이렇게 택배로 보내오곤 했다. 일 있다고 해서 잊어먹은 줄 알았는데.. 역시. 아저씨를 보면 믿음이란게 뭔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또 키다리 아저씨냐?"
"응.."
"넌 저 사람도 있으면서 왜 이렇게 삐뚤게 큰 거야."
"아저씨랑 난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니까. 그리고 어릴 땐 이런것도 싫었어. 내 몸만 보고 달려든 그 그지새끼들과 같은 아저씨인 줄 알았지."
"...."
"이젠 알 것 같아. 달라. 확실히."
"니가 웬일이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그러게. 아 몰라 말시키지마. 밥 할거야."
쌀통에 한포대를 뜯어 넣었다. 나머지는 보관해두고 다음에 먹어야지. 그러고보니 아저씨.. 2달간 못 보는 건가. 예전엔 아무 생각없이 받던 것들에 이제는 의미가 부여된다. 그만큼 난 많이 자랐고, 그만큼 난 달라졌다.
***
배부르게 밥을 먹고 얼마 안 남은 약속시간을 체크했다. 곧 오겠네. 정확히 그 사람이 약속한 시간이 되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약속에 있어서 철저한 사람인가?
"누구세요?"
"저, 아까 전화드렸던 사람입니다.."
"아, 잠시만요..!"
달려가 문을 열어주니 퀭해보이는 여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여자 뒤로 부모뻘로 보이는 남녀 두명의 귀신들이 들어왔다. 문이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여자는 나를 살펴보았다. 보나마나 무녀라는 사람이 왜 이런 평상복을 입고 있나 하겠지. 야매 아닌가 하며 의심하고 있을거야. 그러나 당신은 엄청 쾡해 보여. 내가 야매든 뭐든 신경쓰지 않겠지. 아니나 다를까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신발을 벗으며 들어오는 여자였다.
"가위를 일주일째 눌리나요?"
"네? 네.."
"자꾸 헛것이 보이구요."
"네.. 와, 대단하시네요.."
"글쎄요,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혹시, 부모님은..?"
"사고로 얼마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후부터 계속 그러시나 보네요. 외동딸이죠?"
"네..! 정확하세요.."
일반적인 사례였다. 대게 외동딸을 둔 부모님들은 사고사로 돌아가셨을 경우 딸의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약간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외동딸이 여기에 속한다. 부모님이란 온실 안에서만 자라던 외동딸은 차가운 사회를 경험하며 점차 시들어간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상하면 귀신을 보게 되기도 한다. 분명 현실인데도 헛것(귀신)이 보이니 몸과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져가고, 마지막으로 찾는 것은 나같은 무당이었다. 물론 난 야매고.
그녀의 부모님을 보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만 보다가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보았다. 정말 자기가 보이냐며 내 눈앞에 손을 왔다갔다 하는 그 손을 쳐버렸다. 순간적으로 눈에 증오를 보인 그녀의 엄마는 곧 나를 보며 물었다.
"내 목소리도 들리는 거니?"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의 엄마가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의 한을 풀어달라며.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겠어요? 부적하나 써 올게요."
"아, 네..!"
그녀의 엄마에게 눈짓을 주곤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있던 민석이가 나를 따라 들어오는 둘을 차례로 보았다. 종인이나 백현이, 경수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 정신 사나우면 감정 읽는데 방해가 되서 이렇게 집에서 무당일 할 때에는 민석이 빼곤 거의 밖에서 기다린다.
"보통이 아니네 아가씨?"
"하도 많이 들어 질리네요. 지금부터 계약서를 쓸 건데요, 잘 생각하셔야 해요. 민석아 그거 말해드려."
"계약 조건은 한을 풀어주는 대신 다신 저 여자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조건을 지켜주신다면 한을 풀어드리죠."
"아.. 안돼..! 그런 조건이라면 절대 안돼..!"
부모와 자식사이에 얼마나 끈끈한 정이 있기에?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죽었으면 끝이지, 왜 거기에 미련을 가지고 산사람만 힘들게 곁에서 맴돌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과 생각이 얼굴을 통해서 다 드러났나보다. 그녀의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너는 엄마나 아빠가 없구나? 그러니까 모르지. 수현이도 우릴 그리워하고 있을거야.. 에휴.. 내딸.. 불쌍한 우리 딸.."
"지금 당신딸도 엄마아빠 없어."
"뭐...?!! 그,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할 말 없을껄? 이게 펙트인 걸 당신도 잘 아니까."
"후, 당신 딸 불쌍해서라도 잘해주려 했는데 당신이 막은 거야. 왜 얘한테 막말해? 얘도 남의 집 귀한 딸이었어."
"불.. 불쌍하다니..?? 왜..?"
"사과부터 해."
"...아가씨 미안해요.. 그래서, 왜..?"
"곧 쓰러질 테니까."
민석이는 오래 살아온 만큼 경험한 게 많아서 앞날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본다기 보단 경험했던 데이터를 모아서 이런 일이 있으면 이렇게 되었던 적이 많았다. 지금 이 사람도 이런 일이 있으니 이렇게 될 것이다. 라는 거지만. 그것은 거의 확실했다. 약간 조상의 지혜?
그나저나, 엄마와 아빠가 없어서 개념도 없다라는 말도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것도 누군가의 엄마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분명 사실인데, 그게 사실이라서 더 슬펐다. 안 그래도 아침에 악몽꿨는데..
"...쓰러져..? 죽는다는 거야..?"
"아니. 죽진 않아. 지금은 의학이 많이 발달되었으니. 아마 예전이었으면 죽었을거야."
조선시대 이야기 하고 있네. 민석이를 두고 일어났다. 이번엔 그녀의 아빠가 나섰다.
"저.. 죄송합니다.. 저희 집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래서요?"
"...그, 조건 받아드리겠습니다. 저희의 한은 더이상 수현이가 힘들어하지 않는 겁니다.."
어째서, 그 한이.. 남을 위한 거지..? 아 물론 남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저 나이대 귀신들의 한은 어린 남자나 여자를 만난다던가, 자식 신경 안 쓰고 놀아보고 싶다던가.. 이런게 대부분인데.. 근데, 어째서..? 저 여자가 태어나고서 저 여자만 바라보고 살았을텐데, 죽어서도 저 여자가 힘들지 않길 바란다는 거야..?
"알았어요. 그럼, 가세요."
그녀의 부모님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여전히 그곳에 앉아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 곁에 귀신들이 붙어 있으면 저절로 기가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기가 약한 사람은 악령이 붙기 쉽고. 그럼 점점더 기가 약해지고 점점더 쇠약해져간다. 지금의 그녀처럼.
"부적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네요. 해결했어요."
"네...?"
"믿기 힘드시면 3일 후에 계좌로 보내주세요."
"..제, 제가 거짓말 치면요..?"
"다 확인할 수 있어요. 수현씨."
"아.. 네.. 네..?!! 제, 이름은..?!"
"거봐요. 다 알아요. 그니까 뻥까면 알아서해요. 그리고 지금 바로 병원가서 검강검진 받아요."
"위나 장쪽으로 받으라고 전해줘."
"위나 장쪽으로. 알았죠?"
"네. 정말 감사합니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에 이제야 신뢰이 생겼다. 아, 가기 전에 꿀밤이나 먹이고 싶다. 당신 엄마가 나한테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알아..? 후.. 진짜 내가 귀신 때릴 수 있었으면 그 아줌마랑 한 판 뜨는건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금이라며 건넨 봉투를 받았다. 그녀는 곧 나에게 허리를 숙이며 내 집에서 나갔다. 나는 문이 잠기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봉투부터 열었다.
"얼마냐?"
"헐.."
"얼만데..?"
"미친 백이야.."
"백만..?"
"어.. 저 여자 부자였나봐.. 아씨.. 그럼 부적이든 뭐든 하면서 더 뜯는 건데.. 아깝다..."
나를 보며 고개를 저은 민석이가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아, 진짜 아깝다.. 더 뜯는 건데..
***
아쉬움에 몸부림 치다가 문득 든 생각에 나는 아쉬울 것이 다 사라졌다. 왜냐. 저게 선금이었거든. 선금만으로도 달마다 아저씨에게 100만원씩 주는 거니까 약 두 달은 놀고 먹어도 되겠네. 그 남은 돈은 조금 모아뒀다가.. 할 게 없네. 하긴, 내가 무슨 놀고 먹어. 미친듯이 벌어서 미친듯이 갚아나가야지.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진짜 끝내주게 좋았다. 어디라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아주아주 좋았다. 마침 또 울리는 폰에 그 생각은 그만뒀다. 내가 무슨 시간이 남아 돌아. 돈벌기에도 빠듯하지.
방으로 가 전화를 받으려 하는데 끊겼다. 뭐야, 확인해 보니 오형사였다. 따라 들어왔던 김종인이 수사할 거 생겼나? 라고 말했고 난 아니라고 말했다. 그 비지니스일로 만날 건가 보다. 수사할거였으면 김형사님이 전화했을 거거든.
오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형사는 핸드폰을 붙들고 있던 듯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00님?
"예. 무슨 일이세요?"
-어.. 지, 지금 시간 되세요..?
"네. 왜요?"
-그.. 일로, 만나려구요..
오형사는 아무래도 그 비지니스라는 말이 싫었나보다. 하긴, 지 입으로 좋다고 말할 정도로 날 좋아하는데 비지니스로 만난다는게 싫었던 거겠지.
"그래요, 그럼. 어디서 만날래요?"
-집, 앞으로 나오시면 될 것 같아요.
집 앞? 침대위로 뛰어올라가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초조해보이는 저 정수리가 오형사라고 티를 내고 있었다. 네. 지금 나갈게요. 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아까 수현이라는 분 오시기 전에 차려입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나갈 준비하느라 오형사가 엄청 기다릴 뻔했네. 바로 겉옷만 걸치곤 신발을 신으니 귀신들이 나를 보기에 친절히 말해주었다.
"일하고 올게. 언제 올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 오형사 만나는 거야?"
응. 짧은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종인이었다. 경수는 곧 종인이에게 그게 누구냐고 물었고 종인이가 말없이 베란다를 가리키니 베란다로 얼굴을 쭉 빼고 밑에 있을 오형사를 확인했다. 난 그런 경수를 보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날씨 좋은데 잘됐다. 오랜만에 햇빛이나 받으며 즐겨야지.
***
오형사와 함께 도착한 곳은 한 카페의 테라스였다. 햇빛을 즐겁게 내리쬐던 나를 알기라도 하는 듯 오형사는 그늘이 살짝 진 테라스로 자리를 잡으며 괜찮냐고 물었다. 난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했고 오형사는 나의 그 말에 수줍게 웃었다. 곧 오형사는 표정을 지우며 물었다.
"주문하고 올게요. 아메리카노..?"
"네."
"그럼 여기 계세요."
오형사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바로 주문을 하러 갔다. 은근 세심하단 말이야.
"쟤 의도적으로 접근한 애야? 같이 수사하는 애야?"
"같이 수사해서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영감..? 왜 여깄어?"
"동네 마실 중인데 딱 보여서 와 봤지. 쟤는 뭐 너한테 관심있데?"
"뭔.."
테라스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나를 내려다보며 영감스러운 말을 하는 민석이에 어이가 사라졌다. 곧 민석이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난 변한게 없네.."
"뭐, 뭐야.. 갑자기 그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너 이상하게 보겠다. 가볼게."
민석이가 가자마자 오형사가 진동벨을 가지고 와선 앉으며 말했다.
"뭐, 보고 계셨어요?"
평소와는 다른 민석이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딱 든 생각에 오형사를 바로 보았다. 그 눈은 진짜 꾸밈없이 물었던 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거면 진짜로 귀신을 못 보잖아..? 근데 왜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한거지? 그 말은 분명 진심이었는데. 어째서 오형사는 방금까지 내 앞에 있던 민석이를 아예 못봤다는 듯이 말하는 걸까. 역시 궁금한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왜 거짓말 하셨어요? 귀신 본다고."
"진짜라니까요.. 제가 왜 00님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방금까지 귀신보고 있었는데 못보셨잖아요."
"아, 그건.. 설명해 드리려고 했어요.. 오늘.."
손가락을 꿈지럭 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퍽이나 소심해보였다. 이건, 오랜 습관같았다. 수사할 때 보여주던 오형사는 바로바로 시정하겠다고 말하며 진짜 시정할 만큼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지만 대립되는 2가지의 성격이 짧은 시간안에 나타났었다. 그건 숨겨진 성격이 있던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소심한 성격이었나. 근데 이 소심한 성격이란게 그렇게 가면을 쓰듯 쉽게 사라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왔어야 하는건데, 오형사는 그런게 별로 없었다. 그것은..
"어릴 때 좀 소심했었나봐요."
"네? 와.. 진짜.. 그걸 어떻게.."
"그냥, 보여서요."
그랬겠지. 어릴 때 소심했지만 언제부턴가 대범해지고, 소심했던 성격은 속 깊은 곳에 작게 자리잡아 있던 거겠지. 그러고 보니 무의식 중에 소심한 성격이 나왔었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소심해 보인다고도 생각했었구나. 오형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보였다. 놀랐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표정때문이었다. 오형사는 곧 입을 다물었고 난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뭐가 오형사님을 대범하게 만든 걸까요."
"아.. 그게 오늘 말씀드릴 일에 다 들어가 있어요.. 커피 나오면 말씀드릴까요, 아님 지금..?"
"곧 울릴 것 같은데 커피 나오면 말해줄래요? 오형사님 잡을 거 있어야 편하게 말할 테니까."
수사할때 소심하다고 못 느낀 이유. 그건 아무래도 손에 잡을 게 없으면 저렇게 불안하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때문일 것이었다. 수사할 때면 메모를 안하더라도 항상 수첩과 볼펜을 들고 있던 오형사였으니 이렇게 불안하게 흔들릴리가 없었겠지.
때마침 진동벨이 울렸다. 오형사는 그것을 가지고 일어나 커피를 가지러 갔다. 난 그동안 오형사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초조해하는 걸까.. 커피를 가지고 오는 동안에도 오형사는 초조해보였다. 자리에 앉은 오형사는 곧 커피를 두손으로 쥐며 말했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리실지는 모르겠는데.. 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갑작스럽게 눈에 맺힌 눈물에 당황스러워졌다.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고개를 끄덕이니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오형사는 간절해보였다. 곧 오형사는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어릴때 소심해 보인다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저 초등학생때 엄청 소심했어요. 이빨이 고르게 안나서 교정을 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애들이 엄청 놀려서 맨날 주눅들어 다녔거든요.."
".....아."
"그러던 저를 받아준 친구가 딱 하나 있었어요. 그 친구가 저랑 초중고를 함께해 온 친구거든요.. 근데 갑자기, 고1때. 죽은거에요.. 이게 정말 말도 안되게, 그 후부터 죽은 그 친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친구만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전, 너무 무서웠어요.. 분명 내 친구가 맞는데, 흐릿하게 보이는 그 모습은 분명 내가 알던 그 애가 맞는데.."
"...."
"그 애가, 너무 무서웠어요..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들리지 않고.. 매일 밤 가위를 눌리고.. 그러다 어느날 부터인가 그 애가 안 보이기 시작하고, 그제야 현실이 보이면서 그 애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났는데, 절대 그렇게 죽을리가 없는 아이라는 걸 아니까.. 막 나에게 보인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아, 얘가 자의로 죽은 건 아니구나.. 누가 죽였겠구나.."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자의로.. 그러니까 자살이거나 타살로 죽을 경우엔 귀신으로 남지 못해요."
"..그.. 근데, 타살의 흔적이 너무 많아요.. 그렇게 높은 곳에 목을 매달았는데 의자 하나 없고, 타박상이 있고.. 또.."
"아, 그래서 내가 필요했어요? 난 귀신도 보고 프로파일링도 하는 사람이니까."
"네.."
"만약에 타살이라면, 공소시효도 얼마 안남았겠죠. 이렇게 초조해 하니까."
"아니요.. 공소시효는 5년이나 남았어요.."
"근데 왜요?"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안돼요.. 그 애가 타살이라는 게 확실해 보이는데 해결이 안나요.."
오형사는 내 눈을 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해결이 안난다고. 어느 순간 계속 막힌다고. 그러니까 도와달라고. 도와줘야하나.. 그러다가 진짜 자살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러면 오형사만 상처받을텐데.. 아무래도 오형사는 정신을 차린 그 후부터 이 사건만을 바라보며 꿈을 정한 것 같았다. 그 꿈을 이루면 뭐든지 찾겠구나, 해서 꿈을 이뤘지만 진전이 없으니 답답했겠지. 그러다 형사까지 되고 나를 만난거야. 지금으로 봐선 오형사의 모든 희망은 나 뿐이었다. 그런 현실에 답답해진 속에서 차오른 숨을 뱉어내니 오형사의 눈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후, 하는 수 없나.
"자료가 너무 부족해요. 그리고 오형사님 친구 찾는 것은 힘들 거예요."
"그 말이면.."
"내 귀신보는 능력 따위는 필요없어요. 오로지 우리 둘 만의 힘으로 알아내야 하는 거죠."
오형사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다행..이라서? 그래서 흘리는 눈물은 소리가 없었다. 그저 차오르는 눈물을 흘릴 뿐 숨이 차올라 끅끅대지도,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지도 않았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돈 준다니까 하는 거지 절대로 오형사가 불쌍해서 그러는 건 아니야.
***
내 집 앞에서 오형사와 헤어졌다. 오형사가 가는 것을 확인하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으려니 민석이가 아래에서 나를 불렀다. 2칸씩 3칸씩 성큼성큼 올라온 민석이는 곧 내 앞에 설 수 있었다. 가만히 그런 민석이를 보았다. 내 양 어깨를 잡은 민석이가 이상하게도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밖에, 1층에 저 남자 누구야..?"
"오형사?"
"...그건 모르겠어."
계단에 나있던 창으로 밖을 내다 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죄다 처음보는 사람들이었다.
"몰라. 왜?"
"아.. 아니야. 아닐거야."
"뭐야, 너 왜그래..?"
아닐거라며 고개를 젓는 민석이는 평소와 달라보였다. 능글거리는 영감보단,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냥 민석이 나이대의 남자같았다. 왜 두려워? 무엇이 한번도 이런적이 없던 너를 불안하게 하는거야? 다시 밖을 내다보았지만 여전했다. 전부 모르는 사람들 뿐이었다. 민석이는 곧 내 손을 잡아 끌어 당겼다. 앞으로 쏠리는 나를 받아 안는 민석이었다. 허리에 팔을 두르고 다른 팔로는 내 등을 감싸더니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더 꽉 끌어안았다. 얘.. 진짜 왜이래..?
"너, 진짜 오늘 왜이래..? 아까 카페에서도 그렇고.."
민석이는 대답이 없었다.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뭐든 대답은 꼬박꼬박 했었는데.. 그렇게 민석이는 한참이나 나를 안고 있었다. 아무말없이.
▶ Bonus
아빠가 당신을 버린 그 후부터 시간은 멈춰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말인 즉 술집에서 일했을 때의 당신은 상처조차 받지 않는 인형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2번의 잔인한 시련 끝에 자신을 놓아버린 당신은 아저씨에게 구원을 받은 그 후부터
시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꼬여버린 채로.
독자님들... |
우선.. 늦게 와서 죄송해요..ㅠㅠㅠ 이게 몇일 만에 인티인가.. 정말 바쁜 나날들이었네요.. 왜 저는 개강과 동시에 이렇게 바쁜 걸까요..ㅠㅠㅠㅠ 왜 맨날 집오면 11시냐..!!!!ㅜㅜㅜ
여러분 이번편은 작은 거 하나도 놓치면 안돼요.. 세심한 것도 캐치하셔야 합니다..ㅎㅎ 만약 엄청난 것을 알았다면..! 댓글로 티 안나게 말하셔야해요.. 아예 비밀로 혼자만 알고 계시던가..!ㅎㅎㅎ 약속해요 우리!!ㅎㅎ
암호닉입니다!!!♥♥(언제나 받고 있으니까 가장 최근편에 [ 제로콜라 ]요런식으로 다가와 주세요!) 체리/까만원두/뭉이/오호랏/똥잠/구름/쉬림프/레모네이드/범블비/악마 괴물/궁디퍽퍽/선크림/바람둥이/안녕/매매/진블리/무당인듯무당아닌/도경수부인/별다방커피 코끼리/(코)라코/요맘때/정동이/콜덕/피큐PD/달수정/마틸다/비비빅/양양 뿅아리/네티큥/여리/아틸다/개구락지/립밥/바람개비/손가락/우리니니/빵 GG/바닐라라떼/하트./까꿍이/청바지/진블리/젤라/순수합니다/메리미/포뇨 윤혜/선물/가글/익인/야메/징차/요정별/거인/사랑둥이/잇힝 구금/두두/JENNIFER/쫑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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