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타엑스-Broken Heart
프로파일러
[ profiler ]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연쇄살인사건 수사 등에 투입되어
용의자의 성격, 행동유형 등을 분석하고, 도주 경로나 은신처 등을 추정하는 역할을 한다.
귀신이 보이는 무당? NoNo 프로파일러 : 믿을 수 있는 사람
민석이가 이상행동을 보이던 그 날로부터 정확히 두 달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나는 돈도 엄청 벌었고, 빚도 꽤 갚았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검은 손을 거친 돈들은 원금보다 이자가 더 많은 법. 줄어들 생각조차 안하는 빚 때문에 어쩐지 의욕이 떨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얼마나 남았는데?"
"십억 구천 칠백. 아 이자 또 치면.. 몰라. 계산하기도 벅차. 0.1%하면 얼마냐 경수야?"
"어.. 10억 9809만 7천...?"
"시발 그렇게 갚았는데도 왜.. 내가 얼마나 갚아야지 이 망할 빚에서 벗어나는거야.."
"2개월 동안 3백만원이면 많이 갚은 거지."
"그래, 많이 갚았는데.. 그거에 몇백배는 더 남았잖아."
"또 부정적이지."
종인이의 말에 인상이 팍 구겨졌다. 여기서 어떻게 긍정적이게 웃어. 어느 누가 이딴 상황에서 쳐 웃고 있겠냐고. 가만히 소파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아, 그냥 이번 생 때려치고 싶다. 이따위로 살기 싫어. 나도 이 나이대의 여자들 처럼 나만의 직업도 갖고, 남자도 만나고, 친구와 다투기도 하고, 친구들 결혼식장도 가고, 직장에서 회식같은 것도 하고 싶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단 말이야.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왜? 지치고 힘들다..
"이상한 생각 하지마. 화낼거야."
역시 종인이 앞에서는 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겠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해야하나.. 아무 생각도 하면 안 되나.
"정 뭣도 하기 싫으면 그냥 일 생각이나 해. 오늘 일 없어?"
"응. 없어. 그러니까 자꾸 딴 생각이 들지."
"야, 나 나갔다 온다. 저녁쯤에야 들어올 것 같아."
갑자기 딴 소리를 하며 일어선 민석이었다. 아까부터 복잡해 보이던 표정은 일어나서 나가면서도 계속 되었다. 한동안 괜찮다가 또 왜 저래. 김민석이 나간 문을 보다가 다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아아, 뭘 해야지 딴 생각이 안들까..
"왜 그렇게 딴 생각을 하려해? 그냥 아무 생각 없어도 되잖아."
"백현이 너가 몰라서 그래. 생각 없는게 가장 무서운 거야."
"...왜?"
"생각 없이 하는 말들은 생각없이 휘두르는 칼과 같거든. 결국 누군가는 다치게 되니까."
백현이는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이 커졌다. 곧 백현이가 눈치를 보며 슬쩍 말했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생각 없는 말을 자주 하나..?"
"아무래도 그렇겠지. 생각이 많으신 경수가 언제 생각 없이 말하는 거 봤어?"
"아.. 그럼, 나는?"
"너? 너는 생각 없이 말하는 것보단 눈치가 없어. 그래도 애 자체가 밝으니까 용서가 되지."
"그.. 그래..?"
"근데 너 같은 애들은 한번 싫어지면 끝일거야. 계속 눈치가 없을 테니까.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어차피 난 니 호감이니까 말해주는 거야."
"아, 알아. 고마워. 역시 누나 뿐이네!"
맑은 웃음을 지은 백현이는 후에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전에 멤버들한테 생각 없는 말을 눈치 없이 자주 했나 보지? 그것 때문에 너의 멤버들이 너에게 박찬열같은 마음을 가진거고. 저렇게 쉽다니.. 백현이를 바라보던 눈을 돌렸다. 괜히 나른해지는 몸에 소파에 더 푹 기댔다. 잠에 들랑말랑하는 이 느낌에 취해 몽롱해져가고 있는데 현관쪽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다. 그게 내 몽롱한 정신을 깨웠고 종인이는 그런 나를 보더니 현관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 눈에는 약간의 다급함이 있었다.
"야, 니 키다리인데???"
"뭐?!"
벌떡 일어나 빠르게 달려가서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정말로 아저씨가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뭐.. 뭐야..? 아저씨는 곧 정신이 든 듯 팔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다가가려 했지만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그만 다가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아, 아저씨 갑자기 왜.. 이래요..? 어디 아파요..?"
"아, 아냐.."
"아니라뇨, 식은땀 봐요.. 왜 이러는 건데요..!"
한 발 다가가면 괴롭게 한발자국 물러나는 아저씨. 그것 때문에 더는 다가갈 수 없었다. 더 아파할까봐.. 훅훅 내 뱉는 숨 조차도 괴로움이 묻어나왔다. 어디가 아픈거지..? 재빨리 아저씨를 살펴보았다. 팔뚝이.. 축축해보였다. 워낙 검은 옷을 자주 입는 아저씨여서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 식은땀인지, 아님 피.. 인지. 아저씨에게 혼날 각오를 하고 빠르게 다가섰다. 역시나 아저씨는 그렇게 멀리 피하지 못하셨다. 당장에 팔뚝부터 조심스럽게 만진 나는 내 손에 묻은 이 액체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피다. 아주 붉은.
.
"병원은요..?"
"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니긴요..! 피가 이렇게, 이렇게나 많이 나잖아요. 일단, 들어가요."
아저씨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럼 왜 여기 온 건데..?! 어쨌든 내가 필요하니까 병원보다 이쪽으로 온 거잖아..!! 이젠 화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꼭 눌러 담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고집이 쎈거야.. 아프잖아요, 아저씨.. 많이 다쳤잖아요. 제발.. "
"....윽,"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이 분명했다. 어지럼증 때문에 나에게 쏟아져 내린 것을 보면. 그럼에도 아저씨는 허리에 힘을 주며 일어나려 애썼다. 난 그런 아저씨를 꽉 안으며 말했다.
"아저씨 없으면 나 안돼요.. 제발.. 내 말 좀 들어.. 제발.."
아저씨는 그제야 포기한 듯 온 몸에 힘을 풀었다. 난 그런 아저씨를 부축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
멍청하게도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 연락하지 말란 말만 하곤 의식을 잃어버린 아저씨 덕에 무엇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 대신에 종인이가 나섰다.
"옷 잘라야 돼. 상처 확인해야 되니까 부엌가서 가위가져와."
종인이의 말에 난 빠르게 달려 부엌으로 가 가위를 찾아 왔다. 덜덜 떨리는 손과 흐릿해진 눈에 가위질을 못하겠다. 어떡해.. 어떡해 진짜.. 눈물을 훔치고 다시 가위를 고쳐잡지만 두려움에 미친듯이 떨려오는 손으로는 도무지 옷을 자를 수 없었다. 종인이는 그런 내 손 위로 자기 손을 겹쳤다.
"너, 이따위로 약해지면 이 사람 죽어. 피 엄청 흘린 거 보이지?"
냉정하고 차갑게 하는 그 말에 정신이 조금 돌아온 느낌이었다. 난 재빨리 손에 힘을 주었고 종인이가 잡아준 덕에 가위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가위를 내려놓자마자 바로 아저씨의 옷을 잡아 당겼다. 주위에 있던 피가 굳은 건지 잘 떼어지지 않는 통에 다시 정신이 나가고 있었다.
"살살, 살살 잡아 당겨봐."
종인이가 없었다면, 나 혼자 못했을 거였다. 그나마 종인이가 옆에서 가르쳐주는 덕에 난 나름대로 차분히 아저씨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었다.
"칼에 베인 것 같은데, 우선 피부터 멈추게 해야 하니까 깨끗한 거즈나 수건 같은 것 좀 가지고 와."
내 방 옷장 한켠에 있는 헝겊들을 잔뜩 가지고 왔다. 종인이가 시키는 대로 침착하게 해야만 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아저씨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나의 앞날도 그렇게 투명하지 못 할 거였다.
"저번처럼. 내가 너 해주던 거 기억나지?"
"응."
짧게 대답을 하곤 아저씨 상처에 헝겊을 꼭 대었다. 꾹 누르니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인상을 찡그리는 아저씨에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게 왜 다쳐가지고..! 라며 화가 나다가도 아파하는 아저씨를 보면 마음이 또 약해진다. 가만히 그렇게 지혈을 하니 김종인이 이제 떼보란다. 조심히 떼어보니 어느정도 피가 멎어있었다.
"이..이제 뭐 해야해..?"
"붕대 없으니까 헝겊으로 감아야지. 이럴거면 병원이나 가지, 니 키다리도 참."
"키다리..? 이 아저씨 그 일수 아니에요..?
아.. 경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은 김종인도 마찬가지였다.
"일수가 키다리라고?"
"너가 생각하는 그 일수 말고 다른 사람, 경수가 보던 사람은 이 아저씨야."
"너, 쫒아다닌 일수가 한 둘이 아니야?"
"...같은 조직이긴 해. 근데 주로 아저씨가 날 담당했지."
"...근데 이 자식은 왜 일수면서 니 키다리 아저씨처럼 행동해?"
"..키다리 아저씨가 맞으니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종인이는 나를 힐끔 아저씨를 힐끔 보더니 뭐 어때. 라고 말하며 다시 아저씨를 살폈다.
"헝겊 하나 더 꺼내서 상처 잘 감아."
종인이 말대로 헝겊을 길게 늘여서 아저씨 상처에 잘 감았다. 일어나면 물어볼 것이 너무 많은데, 그걸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언제나 아저씨는 자신을 감춰왔으니까.. 아저씨는 내 과거며 현재며 다 알고 있지만 난 아저씨의 무엇도 알지 못했다.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만 알 뿐. 그래서 더 못 믿었던 것 같다. 아저씨는 계속 감췄고 난 계속 알기를 원했으니까.
"지금, 넌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거냐?"
"...아니. 못되는 거야."
"...그 정도로 넌 이사람을 의지하는 거라고..?"
"응. 그런 것 같아. 오늘 확실해졌어. 아저씨가 없어진다는 상상을 하니까 눈앞이 캄캄하고 두려워지더라."
"...."
"아저씨는, 그런 나에게 선을 긋지만, 난..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아."
"그럼 이 사람을 좋아해요..?"
"아니. 그런 감정이 아니야.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이 아니라.. 이건.. 믿음같아."
내가 부정하며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 중 하나. 믿음. 난 오늘 이것에 대하여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언제나 내 옆에서 날 지켜줄 것이라 믿으며, 아저씨는 언제나 내 옆에 있어줄 것이라 믿는다. 멈췄던 나의 시간을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 준 아저씨를 믿는다.
***
아저씨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나가버렸다. 여전히 아저씨는 나에게 선을 그었고, 난 아저씨를 믿으므로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면 언제가 말해주겠지. 라는 마음이 컸다. 가만히 앉아서 멍때리고 있으니 어느새 온 민석이가 앞에서 알짱 거렸다.
"뭐야, 비켜."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오늘 뭔 일 있었어?"
"응. 큰 일 있었어."
"...어디 다쳤어?"
됐다며 손을 쳐버리고 일어섰다. 따라 일어선 민석이는 곧 내 손을 잡고서는 성큼성큼 걸어가 열려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문 좀 닫아줘. 부탁하는 어투에 의아하면서도 문을 닫았다. 곧 민석이는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집 밖을 잘 안 나가잖아?"
"그렇지."
"오늘 밖을 돌아다니며 느낀건데. 니가 나한테 안 설레는 이유를 알겠어."
"뭔데?"
"요즘 남자들은 옷이 이렇지가 않더만."
"...넌 조선시대 옷이잖아."
"그러니까. 그게 문제였던 거야. 내가 이런 옷만 입고 다니니까 니가 맨날 영감 취급을 하지."
사뭇 진지하게 꺼내는 말이기에 같이 진지해진 내가 한심했다. 괘씸해서 놀려줄 생각으로 다가가니 멀뚱히 눈을 뜨며 다가오는 나를 바라보는 민석이었다. 그런 민석이의 옷고름을 잡아 당겨 살짝 풀면서 말했다.
"한복도 한복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잖아."
"너도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가 또 반응하면 혼자 풀라며 갈거지?"
"그럼. 잘 아네."
"이렇게 하면?"
자신의 옷고름을 잡고 있는 내손을 한손으로 잡더니 다른 손으론 허리를 감싸는 민석이었다. 하필 잡은 손이 다쳤던 손이냐.. 다 아물었지만 이렇게 가다간 내가 말릴 것 같았다.
"아, 아픈 손..!"
"와씨, 미안. 괜찮아?"
"물론이지. 그럼 난 이만."
또 당했다며 웃어 넘기는 민석이를 가만히 보았다. 요즘엔 미친듯이 안 들이대네. 왜지?
"왜 더 안 해?"
"내가 한을 풀면. 난 승천해야 하잖아. 그것보단 그냥 너랑 지지고 볶는게 더 좋아서."
"별소릴 다하네. 귀신이 승천할 생각이나 해야지. 확 너랑 해버릴까?"
"안 돼. 이젠 내가 안 할거야."
"이래도?"
민석이에게 바짝 붙어 두 팔로 허리를 끌어안고 올려다 보았다. 그런 나를 내려다 보지도 못하는 채 말하는 민석이가 불쌍할 따름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제발.. 하지마."
"왜? 왜 하지 말아야 해?"
곧 민석이는 고개를 숙여 나를 보더니 지 양손으로 내 볼을 감싸며 고개를 더 숙여 다가왔다. 진짜 이럴 줄은 몰라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멈춘 민석이가 감았었던 눈을 뜨며 말했다.
"이런 걸로도 놀라면서 왜 이렇게 까불어."
"와, 너 진짜 확확 변한다.."
"한번만 더 까불면 진짜 가만 안 둬. 잠이나 자."
"자긴 싫어. 오늘 에너지 소모를 너무 했더니 악몽 꿀 것 같단 말이야."
나를 내려다보며 웃는 민석이에 민망해져 허리를 놓았다. 그러자 자신이 내 등을 감싸며 안더니 가만히 토닥였다.
"악몽을 왜 꿔? 안 꿔. 괜찮아."
"다정한 척 하지마시지 능글맞은 영감."
"다정하게 느껴졌나봐? 난 그냥 내 성격이었는데."
"어디서 또 능글을 배워온 거야. 아주 뱀 같아졌어."
"왜? 한결 매력있어졌어? 어뜩하냐, 우리 00가 나한테 미친듯이 매달리게 생겼네."
"꺼져. 자게."
능글맞은 말을 하는 민석이의 발을 밟아 버렸다. 아파하는 민석이를 두고 침대로 올라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아파하던 민석이가 그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잘자. 좋은 꿈 꾸고."
민석이는 그렇게 내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악몽 꾸겠다 라는 말 때문이었나.
***
민석이 덕에 악몽을 꾸지 않은 건가? 나름 푹 잔 것 같다. 귀신주제에 따뜻하고 다정하게 감싸오는 손 덕분에 기분까지 좋았으니까. 기지개를 켠 뒤 거실로 나왔다. 웬일로 경수밖에 없었다. 두리번 거리며 찾았지만 여전히 경수밖에 보이지 않아 경수에게 물었다.
"나머지들은?"
"아.. 일.. 일 있다고.. 그, 그런데요.."
"응? 왜?"
"옷, 흘러내렸어요.."
고개를 돌렸지만 새빨개진 귀는 감출 수 없었던 경수였다. 그 귀여운 모습에 웃다가 흘러내린 옷을 올리며 물었다.
"언제 나갔는데?"
"일어나시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래? 곧 오겠지 뭐. 요즘 다들 바쁘네."
"섭섭하세요?"
"섭섭보단, 아. 섭섭한건가."
"누나 많이, 솔직해지셨네요.."
"그런가? 몰라. 더이상 감출 필요 없다고 느끼거든."
다시한번 나른해져 오는 몸을 쭉 피며 기지개를 켰다. 베란다의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답답해져 활짝 열었다. 그와 동시에 눈을 감았다. 악령..? 왜 이딴 놈이 여기에? 다시 눈을 떠 확인해 보았다. 윗층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우리집 거실을 그 붉은 눈으로 살피는 악령이었다. 경수가 일어나 내 앞을 막았다. 그런 경수의 뒷 모습에서 혐오가 뿜어져 나왔다. 난 그런 경수의 어깨를 잡았다. 위험해. 경수는 곧 혐오를 지웠다.
"저게 왜 누나한테 와요?"
"모르겠네. 정 뭐하면 퇴치나 할까."
"아, 갔네요."
퇴치라는 말을 용케도 알아 들었는지 위층으로 빠르게 올라가버린 악령이었다. 이상하다, 내 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쎄서 악령들은 들러붙지를 않는데.
"그나저나 진짜 무섭게 생겼다."
"다리 후들거려요.."
주저 앉는 경수를 보며 웃었다. 사내가 말이야, 그런걸로 다리 후들거리고 그러면 어떡해. 라고 말하며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곧 나는 아침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잘도 쫒아온 경수는 식탁 의자에 몸을 기댔다.
"수능 얼마 안 남았네 경수야?"
"...그러게요."
"이번에도 안 볼거야?"
"네."
"언제 보시려고 이렇게 미루나."
"나중에요.."
"그럼 언제까지 나한테 숨길건가.. 너한테도 좀 섭섭해 지려고해."
"아.. 아시잖아요, 누나."
"뭘?"
"몰라요?"
정말 모르냐는 듯 나에게 되묻는 경수에 의해 당황스러워졌다. 뭘.. 내가 뭘 모르는데? 경수는 곧 내가 처음 듣는 사실을 하나 알려줬다.
"귀신은 산사람에게 관여를 못해요. 이게, 쉽게 말하자면 내가 죽은 이유를 말할 수가 없어요. 만약 내가 누나의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누나는 귀신을 보잖아요. 그럼 제가 어떤 차가 날 치고 지나갔어. 그 번호가 몇번이었고, 인상착의는 이렇게 생겼어. 라고 말해봐요. 누나는 소중한 사람인 나를 죽인 그 남자가 밉겠죠?"
"그, 그렇겠지."
"그럼 이 세상은 악령이 판이 치는 세상이 될 거예요. 누나 우리들 어떻게 죽었는지 다 모르죠?"
"..아, 그러네.."
"내가 누나한테 말을 해준다 해도 누나는 듣지 못해요. 벙긋거리는 내 입만 보이지. 그 마저도 일그러져서."
아.. 이건 정말 새롭게 안 사실이었다. 어쩐지, 그렇게 거짓말을 하더라니. 그럼 난 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평생 모르겠네? 그건 또 싫은데.. 이유 없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종대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완벽하게 받아들인 이들이니 어떻게 죽었는지 정도는 알아야지 한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한을 정확히 알아야만, 이들이 강제로 승천하는 것을 막고.. 이기적이지만 나와 조금 더 이승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이유였다.
"너네들 죽은 이유, 그럼 난 평생 모르는 채 살아야 하는 거야?"
"글쎄요, 귀신들이 말하지 못하는 거지 누나가 산 사람들로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다 찾더라도 저는 찾지 말았으면 해요."
저렇게 말하니까 더 찾고 싶어 졌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 17살, 그 어린나이에 너는 왜 죽은 걸까..
금방 생각하기를 그만 두었다. 지금 이렇게 고민해봐야 나는 알 수가 없으니. 다만 경수는 생각할 게 많아보였다. 눈까지 감고 아주 깊은 상상에 빠진 듯 했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죽었던 그 순간이 기억 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경수는 곧 인상을 한번 찌푸리더니 눈을 뜨며 나를 보았다. 그런 경수에게 내가 줄곧 해왔던 생각을 말해주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어."
"뭔데요?"
"넌 자살이 아니라는거야. 매사에 진중하고, 성격도 나쁘지 않고, 공부도 잘했던 너가 그렇게 갑자기 자살을 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봐주시니 기분 좋네요. 그렇지만 전 말해드릴 수 없어요. 그리고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제 죽음은 파헤치지 말아주세요. 괜히 귀찮게, 아무나 도와주지 마시구요."
"누구?"
"...뭐, 종대 형이나, 찬열이 형.. 김준면형사님도 그렇고, 프로파일링 굳이 그 팀에서 안 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요즘 누나 그, 오형사님도 도와준다며요. 평소엔 안 그러던 분이 왜 갑자기,"
경수는 뭘 감추려고 하는 걸까. 뭐 때문에 말을 많이 하지 않던 경수가 이렇게나 다다다 내뱉는 걸까. 남에게 관심이 아예 없던 내가 타의가 아닌 내 자의로 너희들의 죽음에 대하여 파헤치려 한다. 내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말이다.
***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이 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오늘은 내 인생의 두번째 시발점이 될 역사적인 날이다. 첫번째는 아저씨가 날 구원해준 날. 그리고 오늘은 내가 내 자신을 구원할 것이니. 저장되어 있지만 단 한번도 문자나 전화를 한 적이 없었던 아저씨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은 얼마 가지 않아 끊겼고 그 안에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여보세요?
"아저씨. 저예요. ㅇ00."
-응. 무슨 일 있어?
오늘도 여전히 아저씨는 다정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는 어떻게 조직에 들어갔는지, 이렇게 다정하고 또 매우 멋있는 사람인데.
"네."
-무슨 일? 큰 일이야? 지금 어딘데?
"아뇨. 좋은 일이에요. 저, 이제 아저씨를 벗어나보려해요. 말은 이래도 언제나 아저씨 품에 있을 거지만. 그래도 변해보려구요."
-행운은 빌어. 곁에서 응원할게.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섭섭하네요. 조금이라도 잡아주길 바랬는데."
-.....
"벌써 많이 변했죠? 떼를 다 쓰고."
이렇게라도 말하면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날 칭찬해 주거나, 정말 미세하게라도 나에게 섭섭함을 느낄 줄 알았다. 그러나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숨소리만이 핸드폰을 타고 흘렀다. 짜증나게도 내가 섭섭하네.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저씨. 아, 마지막 인사같네. 그냥, 내 포부 밝히려고 전화한건데.."
-알아. 곁에 있을 거야.
"그래요. 우린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지내요. 그런 관계로."
-응.. 언제나 그렇듯 지켜줄게..
"솔직히 짜증나네요. 한가지만 해줘요. 잘해줄거면 잘해주고, 밀어낼거면 밀어내고."
-밀어만 내기엔.. 아니야. 아저씨 일 있어서 가봐야겠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네.."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왠지 아쉬움이 남는 이 통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아저씨..? 왜 날 구원해 준 건가요..? 왜 나에게 정을 준 건가요..?
왜 나에게 믿음이란 감정을 알려 준 건가요..?
▶ Bonus
악령은 눈 색으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피를 부어버린 듯 눈이 아주 붉은 것은 악령입니다.
또한 선령들보다 짐승에 가까운 능력을 보입니다.
가령 어딘가에 오래 매달리던지, 매우 빠르게 달린다든지.
악령.. |
제가 만들어낸 이미지지만.. 상상하니까 되게 무섭네요.. 역시 평범한 것 이상으로 빠른 것은 무서워요.. 괜히 상상하고 오싹해졌네..
1. 이거 약간 스포일지도 모르는데 BGM은 이씽이 시점입니닿ㅎㅎ 우리 아조씨ㅠㅠㅠㅠㅠ멋쟁이지만 답답한 아조씨ㅠㅠㅠㅠㅠㅠ 2. 프롤로그 끝!!!!! 이제 본편으로 가 봅시다!
아니.. 댓글들이.. 뭐 이리 예뻐요..? 흛ㅎ르브릏르브ㅡ흐르르흐릉 댓글보며 하루하루를 나는 저란 녀자는 아주 울면서 봅니다ㅠㅠㅠㅠㅠㅠ 카와이한 독자님들.. 다 내꺼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또..또그랬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레기ㅠㅠㅠㅠㅠㅠ필명도 못누르는 나레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호닉입니다!!!♥♥(언제나 받고 있으니까 가장 최근편에 [ 제로콜라 ]요런식으로 다가와 주세요!) 체리/까만원두/뭉이/오호랏/똥잠/구름/쉬림프/레모네이드/범블비/악마 괴물/궁디퍽퍽/선크림/바람둥이/안녕/매매/진블리/무당인듯무당아닌/도경수부인/별다방커피 코끼리/(코)라코/요맘때/정동이/콜덕/피큐PD/달수정/마틸다/비비빅/양양 뿅아리/네티큥/여리/아틸다/개구락지/립밥/바람개비/손가락/우리니니/빵 GG/바닐라라떼/하트./까꿍이/청바지/진블리/젤라/순수합니다/메리미/포뇨 윤혜/선물/가글/익인/야메/징차/요정별/거인/사랑둥이/잇힝 구금/두두/JENNIFER/쫑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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