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2
28 (추억 속 너와 나)
오늘은 벌써 토요일. 개강까지도 어느새 이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략 일주일 전부터 꿀꿀하던 기분은, 개강이 스멀스멀 다가오자 더욱 바닥을 뚫을 기세로 다운이 되었다. 집 컴퓨터만 믿고 수강신청을 하려다 결국 서버가 다운돼 버리는 바람에 만족스러운 시간표를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필 다른 학교보다 개강도 일주일씩이나 빠른 탓에 남들과는 달리 일찍부터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해 기분이 한없이 별로였기도…. 어쨌든 마음이 울적했다. 앞으론 또 바빠져 데이트를 할 시간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과제에 치여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남은 이틀을 정말 알차게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구 아부지~ 일어나세요~]
일찍 눈이 뜨인 이상 다시 잠이 오진 않을 것 같아, 묵묵히 침대에 누워 김종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자고 있을 녀석이지만, 오늘은 왠지 특별한 데이트를 하고 싶어 일찌감치 연락을 한 것이다.
"……."
역시 김종인에게선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아직 꿈나라를 여행 중인 게 분명했다. 살짝 뻐근한 몸을 일으켜 쭈욱 기지개를 켜곤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옷장 문을 열었다. 그리곤 가장 왼쪽에 걸린 중학교 교복과 고등학교 교복을 꺼내 침대 위로 살포시 내려놓았다. 몇 년 전에나 입던 교복들을 보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 불편해서 입기 싫다며 학교에선 매일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던 내 모습이 이젠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사실 요즘들어 교복 입은 학생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치마 길이와 바지통의 폭은 제각각이었지만, 동일한 교복을 갖춰 입고 영어 단어장을 훑으며 등교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불과 몇 년 전의 내 모습과도 같이 느껴져 그런 것일진 모르겠지만-. 졸업을 함과 동시에 더이상 입을 일이 없어진 교복을 떠올리면 왠지 모를 그리움이 차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행복하고 기쁜 날들의 연속이지만, 학창시절 땐 지금과는 다른 기쁨이 날 맞곤 했으니 말이다. 그 시절의 김종인도 지금의 김종인 못지 않게 귀엽고 멋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고딩 김종인… 아니, 교복 입은 김종인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싶었다. 나나 김종인이나 이젠 교복이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교복 데이트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녀석의 반응이 긍정적일 거란 보장도 없지만….
옷걸이에 말끔히 걸린 교복을 들어 몸에 이리저리 대보았다. 마냥 어색하긴 했지만, 예전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분이 묘하면서도 싱숭생숭했다. 요즘 살이 좀 쪘을까. 교복이 안 맞으면 어쩌지. 대학생 티가 너무 많이 나려나.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교복을 입는다는 게 조금은 주책맞아 보이려나-. 이런저런 걱정을 떠올리면서도 내 손은 교복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채워가고 있었다. 뒤늦게 후회를 할지라도, 일단은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듯했다. 요즘 일교차도 크니 하복보단 춘추복을….
*
좀 작아졌거나 꽉 끼게 맞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교복은 적당히 딱 맞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 위를 간지럽게 스치는 치맛자락이 영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마음만은 고등학생과도 같았다. 마치 이른 시각 등교를 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뜬금없이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김종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도 궁금했다. 예쁘다는 말은 안 바라니, 이상하다며 벗으라는 말만 하지 않았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특히 버스 안에선 더더욱 그랬다. 교복 차림인 학생이 어째서 책가방도 없이 등교를 하는 걸까, 혹시 나쁜 마음을 먹고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려는 건 아닐까- 하며 날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으니 말이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애써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지 않고자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리곤 애꿎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며 김종인의 집 방향으로 걸음을 뗐다. 오늘따라 왜이리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지,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집의 형태가 나타났다. 집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아까와는 달리 제법 떨림이 느껴졌다. 작게 심호흡을 하곤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아직 자고 있을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벌써 일어나 있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한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띡띡띡띡 띠리릭- 요란한 알림음과 함께 현관 문이 쉽게 열렸다.
"… 종인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린 문 틈새로 녀석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다행히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조용한 집안에 식상한 인사말을 내뱉곤 조심스레 컨버스화의 끈을 풀었다. 들어서자마자 김종인의 아우라가 풍겨오는 것만 같은 거실은 꽤나 깔끔히 정돈이 되어 있었다.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문이 반쯤 열린 녀석의 방 쪽으로 향했다. 아기처럼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걸 보니, 역시 녀석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죄를 지으려는 것도 아닌데 왜이리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떨리는 건지…, 자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을 것만 같았다.
"……."
방문의 손잡이를 잡고 얼굴만 빼꼼 내민 채, 김종인의 자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뒤척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아야 했지만, 다행히 녀석은 아직 꿈나라를 여행 중인 듯했다. 삐죽삐죽 솟은 머리칼은 까치집을 연상시켰고, 살짝 말려 올라간 티셔츠 탓에 까무잡잡한 피부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여름엔 옷을 홀딱 벗고 잔다는 녀석의 말에 감기 걸린다며 잔소리를 했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녀석은 위아래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채 새근새근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면까지 괜스레 좋게만 느껴져 샐쭉 웃음이 나왔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김종인은 자는 모습이 정말 귀엽…
"… 아!"
마음속으로 김종인의 귀여움에 대한 찬양을 내지르고 있을 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다시금 녀석 쪽으로 시선을 옮겨 놓자마자, 몸을 뒤척이다 손을 탁자에 부딪힌 건지 제 손가락을 부여잡은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콕 박혀왔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얼얼한 손가락을 살살 어루만지던 녀석의 시선이 내게 꽂혀왔다. 나를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은 표정을 지어보이던 녀석이 이내 제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저 딱딱한 돌처럼 굳어 한참 동안 아무 말을 않는 녀석과 시선을 마주하곤 어색히 웃음을 지어보이자, 녀석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나를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오기 시작한다. 그리곤 무슨 신기한 물체라도 만져보듯 손을 뻗어 내 어깨 위로 조심스레 제 손을 얹어온다. 그런 녀석의 행동이 의아하면서도 이상해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녀석은 살짝 인상을 찡그린 채 입술을 떼기 시작한다.
"… 뭐지."
"……."
"지금 몇 년도…."
"응?"
웅얼거리듯 이상한 말을 내뱉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꽤나 심각해 보이는 얼굴이 내심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저 잔뜩 뻗친 뒷머리가 웃기고 귀여워 괜히 웃음이 터졌다. 그런 날 보며 느리게 눈을 꿈뻑이기만 하던 녀석이 손으로 제 눈을 비볐다.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는 건지, 녀석의 얼굴엔 어색함이 잔뜩 걸려 있었다.
"… 아, 뭐야."
"… 왜? 뭐가…."
어딘가 이상한 듯, 무언가 잘못된 듯, 김종인은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기만 했다. 그런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만 의아함을 잔뜩 표출해내고 있을 때, 다시금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대학생이지."
"… 응?"
"대학생 맞지. 맞다고 해, 얼른."
역시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김종인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 뜬금없이 교복을 갖춰 입은 채 나타난 내 모습 때문일 것이었다.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인 채 혼란스러워 하는 녀석을 보자 괜한 장난기가 샘솟기 시작해, 우리가 대학생인 게 맞냐는 녀석의 물음에 살짝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런 내 모습에 녀석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혀졌다.
"아, 얼른 학교 가야지. 오늘 왜 이리 늦잠을 자? 직접 네 집까지 찾아오게 만들고…."
"……."
"얼른 씻고 교복 입어. 참, 오늘 급식 짱 맛있는 거 나와!"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황극을 해보이며 김종인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말론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내적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잠시, 제 침대에 털썩 앉아 나라 잃은 표정을 내짓고 있는 녀석에게 시선을 옮겨 놓았다.
"얼른 준비하라니까 왜 또 앉아있ㄴ…"
"뭐야, 커플링 그대로 있잖아."
제 머리를 감싸쥔 채 깊은 생각을 하는 듯싶던 김종인이, 내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링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녀석과 눈을 마주하며 시치미를 뚝 떼보려다 포기하곤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자, 그제서야 조금은 안심이 된 건지 깊은 숨을 내쉬며 내 허리를 끌어안는 녀석이다. 잔뜩 뻗친 녀석의 뒷머리를 지그시 눌러 쓰다듬으며 넓은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런 내 손길에 더욱 힘을 줘 나를 끌어안던 녀석이 웅얼거리듯 말을 건네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잖아. 고등학교 졸업, 대학 입학, 군입대, 너랑 있었던 일들이 다 꿈이었던 건줄 알았어."
"꿈 맞아."
"… 하지 말라니까."
"놀랐어?"
"응, 식겁했잖아."
투덜대는 듯한 목소리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김종인의 팔을 풀어 커다란 두 손을 마주잡았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시선을 위아래로 옮겨가며 내 옷차림을 훑던 녀석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교복이야. 색다른 방법으로 날 홀리려고 이렇게 입고 왔어?"
"… 교복 데이트 하고 싶어서."
"교복 데이트?"
"응, 교복 데이트. 너 교복 있지? 설마 버린 건…"
"없는데."
"… 없다고?"
무심하게만 들려오는 목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도 같아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자, 이내 김종인은 장난이라며 손가락을 세워 내 볼을 톡톡 건드려온다. 그 모습이 조금은 괘씸하면서도 얄미워 심통 아닌 심통을 부리고자 녀석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귀여워서 자꾸 장난을 걸게 돼. 왠지 더욱 얄밉게만 느껴지는 뒷 말을 애써 무시한 채 말이다.
"꼭 나가야 돼? 안 나가면 안 되나."
"왜 안 나가…. 명색이 교복 데이튼데…."
"너 교복 입은 모습 집에서 나만 보게."
"… 아니야, 나가야 돼. 오랜만에 학교도 가 보고, 교복 입고 영화도 보고, 또…."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오늘 할 일에 대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날 빤히 바라보며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띄우던 김종인이, 씻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속옷을 챙겨든 채 어슬렁어슬렁 방을 나섰다. 잔뜩 뻗친 뒷머리가 여간 귀엽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
"… 꼭 나가야 돼? 나가지 말자. 민망해, 너무."
"아니야…! 예쁜데 왜? 김종인 진짜 고딩 같아, 고딩."
"그게 아니라…, 아."
춘추복을 반듯하게 갖춰 입은 김종인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며 어설프게 녀석을 달랬다. 그런 내 행동에 고개를 숙인 채 연신 한숨을 내뱉던 녀석이 이내 곤란하다는 듯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뱉어지는 한숨 속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는 것도 같았다. 왜 나가지 마?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묻는 다급한 내 목소리에 녀석은 애꿎은 제 교복 바지만을 훑을 뿐이었다. 살짝 작아진 바지가 내심 신경이 쓰였던 걸까, 발목 위로 살짝 올라온 바짓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녀석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몇 년이 지난 탓일까, 제법 통이 널널하던 교복 바지가 조금은 스키니핏이 된 것도 같았다. 보기엔 아무 이상이 없는데 도대체 뭐가 그리 문제고 민망하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보면 바지 줄인 줄 알겠어."
"에이, 그 정도는 아닌데?"
"지금 네 얼굴 거짓말할 때 얼굴인데."
"… 아니거든요?"
"미안."
"근데 진짜 예뻐. 그렇게 작아 보이진 않아. 키가 커서 길이가 좀 짧아졌을 뿐이지…. 음…, 엉덩이도 좀 봐 볼까?"
"… 하지 마. 창피하다니까."
괜히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현관으로 걸음을 옮겨 운동화를 꺼내는 김종인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내 신발이 컨버스화라는 걸 확인한 건지, 녀석의 손엔 나와 동일한 색상의 컨버스화 한 켤레가 들려 있었다. 하여간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알게 모르게 하나하나 챙겨주는 데에 뭐 있는 놈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
예상대로, 현재 이 시간대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섞여 마치 같은 학생이라도 된 양 나란히 걸음을 떼고 있는 나와 김종인의 모습이 영 어색하긴 했지만, 아무렴 상관은 없었다. 아, 이럴 줄 알았다면 백팩이라도 메고 나왔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긴 했다. 가방은 커녕 그 흔한 교과서 하나조차 들고 있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 꽤나 이상하다는 듯한 눈총을 보내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후배들과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학교로 향하는 기분이 조금은 묘하면서도 설렜다. 그래도 데이튼데 단 둘이 시간을 보내야지 학교에 가서 도대체 뭘 하겠느냐며 투덜거리던 김종인도, 막상 학교 건물이 가까워져오자 감회가 새로운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내가 이 나이에 교복을…."
"솔직히 교복이 아니라 수트 같아, 수트. 완전 멋있어."
중얼거리는 김종인의 목소리가 꽤나 나직했다. 푸스스 웃으며 잡고 있던 손을 놓은 뒤 녀석의 팔에 팔짱을 끼자, 마지못해 웃음을 터뜨려 보이는 녀석의 입꼬리가 예쁜 호선을 그렸다.
역시 교문 앞엔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선도부 학생들이 서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 이런 문화는 변하지 않는 건가 싶었다. 하얀 A4용지 몇 장과 까만 볼펜 하나를 손에 쥔 채 여러 학생들의 옷차림을 스캔하는 몇 명의 선도부들, 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푸욱 숙인 채 최대한 걸음을 빠르게 옮기는 학생들, 넥타이가 없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 당당하게 교문을 나서려다 선도부에게 딱 걸린 어리버리한 학생까지-. 굳이 고르자면 고딩 김종인은 그 부류들 중 가장 후자에 속했다. 안 그러게 생겨가지고 녀석은 꽤나 어리버리했다. 넥타이도 집에 자주 두고 나왔을 뿐만 아니라, 체육복이나 교과서도 까먹고 안 가져오던 때가 다반사였으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 생각 아니면 혼나."
"어? 아,"
"잘생긴 후배라도 봤나 봐. 넋을 놓고 있는 걸 보니."
넋을 놓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제 얼굴을 불쑥 내민 채 틱틱대듯 말을 내뱉는 김종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바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했지만,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운동장 구석에 위치한 벤치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업 종 울리면 옥상이나 갈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배싯 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
수업이 시작됨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대략 20분쯤 지나자, 시끌시끌하던 주변은 몰라보게 조용해졌다. 요즘 체육수업은 운동장이 아닌 체육관에서 하는 건지, 1교시 수업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엔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조금은 편안하게만 느껴졌다. 마음 놓고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합도 할 수가 있었고, 초록색 칠이 다 벗겨진 철봉에서 턱걸이를 하는 김종인의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제 3자가 본다면 녀석과 내가 수업은 안 듣고 농땡이나 치는 철 없는 학생일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아무렴 상관은 없었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온 도둑이라도 된 양 이토록 살금살금 걸음을 떼보기는 지금이 처음인 듯했다. 김종인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 학교 안으로 발을 디뎠고, 제법 오랜만인 학교 내부를 훑으며 계단을 하나하나 밟았다. 그저 옛 추억을 되새기고자 학교로 향해온 것이지, 이렇게 안으로까지 발을 들이며 본격 학교 건물을 탐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종이야,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계단 한 칸씩 올라가기 할래?"
"그거 너랑 초딩 때나 하던 놀이 같은데."
"오랜만에 동심으로 좀 돌아가서…. 응? 하자, 하자."
"이긴 사람은 한 칸 올라가고, 진 사람은 이긴 사람한테 뽀뽀해주고."
"… 교복도 입었는데 좀 순수하게 놀 순 없어?"
"순화해서 말한 건데."
"……."
"……."
"없던 일로 해야겠다."
괜히 빨개지기 시작하는 얼굴을 어루만지며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수업이 한창인 교실들은 앞뒷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나름 안심이었다. 왜 먼저 가, 가위바위보 하자 해놓고-. 뒷통수를 쿡쿡 찔러오는 멘트들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뒤를 돌아보자, 작게 인상을 찡그린 김종인의 모습이 시야에 박혀왔다. 투정 아닌 투정과도 같은 목소리에 옅은 웃음을 머금곤 녀석의 손을 깍지껴 잡았다. 평소 개방을 잘 하지 않던 옥상이었기에 문이 열려 있을지 닫혀 있을지도 미지수였지만, 일단은 발이 닿는 대로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랐다.
굳게 잠겨 있을 거라던 내 예상과는 달리, 동그란 손잡이를 잡아 돌리자마자 옥상 문은 제법 손쉽게 열렸다. 별로 와본 기억이 없어 옥상에 발을 디디는 게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탁 트이는 공기가 제법 시원하게만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옥상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난간 쪽으로 천천히 가 조심스레 아래를 내려다 보던 김종인이 제 가슴께를 쓸었다.
"… 높다."
작게 읊조리듯 말을 뱉으며 다시금 내 쪽으로 걸음을 옮겨오는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뜨리자, 괜히 헛기침을 해보이는 녀석이다.
"학교 다닐 때 옥상 자주 와 봤어?"
"아니, 와 본 기억이 없는데."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 손을 꼬옥 잡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나도 그렇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안쪽으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몰랐는데, 옥상의 안쪽엔 쓰지 않는 책상들과 의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 중 가장 깨끗해 보이는 책상 하나를 골라 먼지를 털어낸 뒤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피식 웃음을 짓던 녀석이 내 책상 끝에 살짝 걸터 앉은 채 내게 곧은 시선을 옮겨왔다.
"다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치."
"전혀."
"왜? 야자 때문에? 공부하기 싫어서?"
"너랑 사귀기 전이잖아."
"… 하긴."
"내가 그때 삽질했던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 그래도 아쉽다. 고딩 때 하는 연애가 진짜 설레고 재밌다던데…."
"누가 그래."
"그냥, 들리는 말로…. 야자 시간에 땡땡이도 쳐 보고, 쉬는시간마다 만나서 얼굴도 보고…."
웅얼거리듯 말을 늘어놓으며 애꿎은 김종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게 그렇게 하고 싶었어? 다정한 목소리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귀엽다는 듯 제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톡톡 건드려온다. 넌 아니야? 의아하게 묻는 내 목소리에 녀석은 대답한다. 나도 그래. 근데 난 지금이 더 좋아. 그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해보였다. 그리곤 바로 앞에 있는 녀석의 허벅지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그런 내 행동에 순간적으로 온몸에 힘을 주는 듯한 녀석의 모습이 이상하게만 느껴졌지만, 아랑곳 않은 채 작게 하품을 하며 허공을 응시했다. 부드럽게 내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여간 간지럽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살짝 시선을 옮겨 녀석을 올려다 보았다.
"김종인."
"응."
"넌 어떤 여자가 좋아?"
"내 여자."
"아니…. 귀여운 여자가 좋아, 섹시한 여자가 좋아?"
"네가 좋아."
"……."
"귀여운 네가 좋아. 섹시한 너도 좋고."
"……."
"오글거리네."
스스로 뱉어놓고도 살짝은 오글거렸던 건지, 제 손등으로 애꿎은 내 볼만 쓰다듬는 김종인이다. 녀석의 멘트에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오히려 저가 더욱 부끄러워 하는 것만 같은 모습에 푸스스 웃음이 터졌다. 그리곤 녀석의 허벅지에 살며시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어 바르게 허리를 펴 앉았다.
"옆으로 조금만 가 봐."
얼마 안 있어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툭 건드리던 김종인이 한 마디를 건네왔다. 많은 의자를 두고 굳이 좁디 좁은 의자 하나에 나눠 앉자며 말을 건네오는 모습이 제법 웃겨 몰래 웃음을 터뜨리며 의자의 반을 내주자,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옆자리에 살며시 엉덩이를 붙여오는 녀석이다. 꽤나 가까워진 거리에 괜히 침을 꿀꺽 삼키며 애꿎은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겨 놓았다.
"… 이거 뭐지?"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겨놓음과 동시에, 그리 예쁘지 않은 글씨체로 쓰여진 문구 하나가 시야를 자극해왔다. 내 말에 덩달아 문구 쪽으로 시선을 옮겨놓던 김종인의 표정이 작게 일그러졌다. '김종인 바보 멍청이 해삼 말미잘 븅신ㅋㅋㅋ 오세훈보다 키도 작고 못생김~ ㅗㅗ' 그게 오세훈의 짓이라는 건 삐뚤빼뚤하게 끄적여진 문구를 딱 한 번만 훑어 보아도 단번에 알아챌 수가 있었다.
"… 오세훈 진짜 유치하다, 그치."
"짜증나."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낙서를 응시하고만 있던 김종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녀석의 투정이 그저 귀엽게만 느껴져 살풋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오세훈의 글씨체로 보이는 짧은 문구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었다. 김종인의 이름과 내 이름, 추가로 여러 숫자들까지 있는 걸로 보아 흔해 빠진 수학공식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이게 무엇인지 도무지 감조차 잡히지가 않았다. 혹시 이름 궁합, 뭐 이런 건 아닐까…. 그나저나 오세훈이 왜 이런 걸-.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그려내며 휴대폰을 꺼내 몰래 사진을 찍었다.
"종인아, 우리 또 어디 갈까?"
"체육 창고."
"… 왜이리 으슥한 곳을 좋아해? 옥상도 그렇고…, 체육 창고? 거기서 뭘 하려고?"
"뭐가."
"응큼해."
"… 너야말로 무슨 생각을 하길래."
날 뚫어져라 바라봐오는 눈빛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작게 헛기침을 해보였다. 그리곤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평소엔 잘 사용하지도 않는 DMB 어플을 눌러 까만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을 머금던 녀석 또한 제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무언갈 해나가기 시작한다. 분명 애니팡일 테지-. 뻔히 예상이 갔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종인아, 뭐 해?"
"사랑해."
예상치 못한 답에 그저 벙찐 채 김종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자, 제게 쏠려있는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곧이어 녀석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왔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워온 건지… 날이 가면 갈수록 그에 비례하듯 능글거림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입술 위로 녀석의 입술이 겹쳐졌다. 교복을 입은 채 학교에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 옥상에서 은밀하게 나누는 입맞춤이 이리도 달콤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을을 알리는 상쾌한 바람이 나와 녀석을 휘감아왔다. 입맞춤 만큼이나 달달하고 포근한 김종인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게 맴도는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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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데이트 의견 내주신 0618님 감사합니다 :)
여러분.. 열어분.. 저.. 진짜 오랜만인 것 같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아서 제가 마지막으로 쓴 글이 도대체 며칠 전 글인지 보고 왔다가 식겁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의 한 달 전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요즘 너무 바빴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것저것 할 게 많다 보니 글쓰는 것도 미루게 되고.. 비회원 독자 분들께 아직 채 보내드리지 못한 불맠도.. 제자리걸음 중이고.. 저를 매우 치세요..! (방어막) 어쨌든 보고 싶었다구요. 여러분은 벌써 저를 잊으셨을지 모르지만.. 전 보고 싶었어요.. (눈물) 다들 잘 지내셨죠?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ㅎㅎ 티켓팅이라든가.. 고척돔이라든가.. 돔이라든가.. 돔이라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시험기간이신가요? 물론 저도입니다.. 한 달 만에 28화 하나 올려놓고 또 시험이 끝나면 돌아올 듯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연재 텀을 되도록이면 빠릿빠릿하게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는 게 아니더군요.. 용서해주십사..☆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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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0408 / 0616 / 0618 / 0622 / 1226 / 3관왕센 / 500원 / 84니니
[특수문자] #두근
분명 암호닉을 신청한 것 같은데 목록에 내가 없다, 하시는 분들 몇몇 계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아마.. 제 실수로 누락되신 분들입니다. 다시 신청을 해주세요. 암호닉 신청은 [ ] 요렇게 해주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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