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반 여러분, 오늘은 우리반에 손님이 오셨어요, 다같이 인사!"
"안녕하세요오-"
"오늘은 이 오빠들이 여러분들의 선생님이 될꺼에요! 알았죠?"
"네에-!"
자그만한 아이들이 배꼽에 손을 올린채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에 준면의 입에 헤실헤실 미소가 걸렸다.
으으,귀여워 귀여워. 날개없는 천사들같아. 그치 세훈아?
고개를 들어 세훈을 바라보며 말갛게 웃는 준면의 모습에 세훈이 준면의 귀에 소근거렸다.
형이 더 귀여운데.
능글거리는 세훈의 말에 준면이 세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 치자 세훈이 허리를 접으며 신음을 흘렸다.
그런 세훈을 보며 콧방귀를 낀 준면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얘들아, 안녕?"
"안녕하세요, 선생님!"
무릎을 굽힌채 웃는 준면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아아, 아이들이란 얼마나 귀여운 존재인가.
놀이시간이라 아이들과 함꼐 어울려 놀던 준면을 향해 한 아이가 다가왔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분홍색 원피스를 귀엽게 차려입은 꼬마숙녀였다.
선생님, 선생님. 준면의 팔을 잡아끄는 행동에 준면이 아이와 눈을 맞췄다.
"꼬마숙녀님, 무슨일이세요?"
"선생님, 우리 소꿉놀이 해요."
"소꿉놀이?"
"응!"
준면의 팔을 잡아끈 귀여운 숙녀의 이름은 아영이었다. 아영이 소꿉놀이를 하자며 아이들을 불러모았고, 금새 두어명의 아이들이 아영을 향해 다가왔다.
내가 엄마, 넌 첫째, 넌 막내! 아이들을 가르키며 역할을 맡기는 모습이 익숙한것이, 소꿉놀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인것 같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있는 준면이 아영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선생님, 선생님이 아빠!"
"선생님이 아빠?"
"응! 아영이 남편!"
"그럴까? 그럼 선생님이 아영이 남펴…"
"웃기시네."
뚱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훈이었다. 소꿉놀이에 갑자기 끼어든 세훈의 어깨에는 남자아이 하나가 올라타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멀뚱히 세훈을 올려다보던 준면이 세훈의 말을 무시하며 세훈에게 집중된 아이들의 시선을 돌렸다.
"얘들아, 우리 소꿉놀이 해야지!"
금새 세훈에게서 시선을 뗀 아이들이 각자의 맡은 역활에 맞추어 소꿉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무척 귀여웠지만, 그중에 단연 귀여운것은 엄마역할의 아영이었다.
"여보, 힘드시죠? 어깨주물러 드릴께요."
조막만한 손으로 준면의 어깨를 콩콩두드리며 안마하는 아영의 모습을 뚱하니 바라보던 세훈이 어깨에 태웠던 아이를 내려두고
소꿉놀이를 하는 준면과 아이들의 근처에 앉았다. 표정은 흡사, 니가 어디까지 하나 두고보자. 이런?
안마를 한 아영이 준면의 옆에 다소곳히 앉아 세훈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남편 친구분이세요?"
"아닌데요."
퉁명스러운 세훈의 목소리에 당황한 준면이 세훈의 허벅지를 슬쩍 꼬집었다. 아왜! 하며 투덜대는 세훈을 본 준면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 세훈의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아영이 웃으며 세훈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뭔데요?"
"남편인데요."
"선생님은 남잔데, 어떻게 남편이에요?"
"남자도 남편 할수 있어요."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요."
가치관에 혼란이 온건지 고개를 갸웃대는 아영을 본 준면이 식겁을 하며 세훈의 입을 막았다.
미쳤어, 미쳤어. 애앞에서 못하는 말이없어 진짜.
"아영아, 선생님 잠시만."
세훈의 입을 막은채로 교실밖으로 질질끌고온 준면이 세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그런 준면을 향해 세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저게 니가 자기 남편이라잖아.
"애한테 저게가 뭐야 저게가. 그리고 나 너보다 나이 많거든? 니? 니?"
"뭐 어때. 내맘이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세훈의 반응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준면이 세훈을 지나쳐 교실로 들어갔다. 앓느니 죽지, 앓느니 죽어…
한숨을 푹푹쉬며 들어온 준면을 본 아영이 쪼르르 달려와 준면의 다리에 매달렸다.
"선생님, 선생님. 나 선생님한테 시집갈래!"
"정말? 와, 선생님 정말 기분 좋다."
아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영의 말에 맞장구 쳐주던 준면의 뒤로 목소리 하나가 비죽 끼어들었다.
"안돼."
"왜요? 아영이는 준면이 선생님이랑 결혼할래!"
"안된다면 안되는줄 알아."
"싫어! 아영이는 선생님이랑 결혼할꺼야!"
바득바득 고집을 부리며 세훈에게 대드는 아영과 그런 아영의 말에 또 일일히 대답해주는 세훈을 보며 준면이 한숨을 쉬었다.
어린이집 까지 체험올것도 없었지… 저렇게 큰 애기가 떡하니 옆에 있는것을….
"그만해 세훈아."
"아, 저게 너랑 결혼한다잖아."
"결혼할꺼야!"
"안돼!"
"헐꺼야!"
"안돼!"
"할꺼야아아-!!!"
뺵하고 악을 지른 아영이 눈물을 퐁퐁쏟으며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준면이 아영을 안아들자 아영이 준면의 품에 얼굴을 묻은채 훌쩍였다.
저것봐 저거. 어린게 완전 고단수라니까. 궁시렁 대는 세훈의 정강이를 걷어찬 준면이 세훈에게 등을 돌린채 아영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영아, 울지마. 응?"
"나, 나는 썜이 좋은데. 저,저 나쁜사람이…"
"응, 응."
"쌤이랑 결혼 모,못한다고."
아니야, 선생님은 아영이랑 결혼할꺼야. 그러니까 뚝! 눈물로 흠뻑젖은 작은 얼굴을 닦아주며 어르자 아영이 눈물을 그쳤다.
"선생님."
"그래, 아영아."
"나는 쌤이랑 결혼할래요."
"그래, 선생님이랑 결혼해요, 알았지?"
눈물을 눈꼬리에 대롱대롱 매단채 고개를 끄덕인 아영이 준면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야!!"
옆에있던 세훈이 소리를 지르자 아영이 혀를 내밀었다. 쌤이랑 나 결혼할꺼야!!
*
"자, 여러분. 오늘 하루동안 수고해주신 선생님들께 인사!"
"감사합니다-!"
으아, 힘들다. 뭉친듯한 어깨를 통통친 준면이 곁에선 세훈을 바라봤다. 삐죽하게 튀어나온 입술이, 아직도 세훈은 삐진듯 했다.
무슨 어린애를 상대로 되도않는 질투인지…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안풀어주면 누가 풀어주겠냐 하는 마음에 준면이 세훈의 손을 슬쩍 잡았다.
잡힌 손을 내려다본 세훈은 손을 뿌리치진 않았지만 여전히 튀어나온 입술이 나 삐졌소- 하고 말하고 있었다.
"세훈아, 삐졌어?"
"아니요."
"에이, 삐진것 같은데?"
"안삐졌어요."
삐졌구만 뭘. 한숨을 쉰 준면이 무언가를 결심한듯한 표정으로 세훈의 앞에 섰다.
뭐냐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세훈의 볼을 양손으로 잡은 준면이 세훈의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선생님! 준면이는 나중에 선생님이랑 결혼할래요!"
아, 뭐야진짜… 하면서도 히죽대는 세훈의 표정에 준면도 따라 웃었다. 준면을 내려다보며 턱을 긁적이던 세훈이 준면을 꽉 끌어안았다.
으아, 뭐야. 놔줘. 버둥대는 준면을 더 꽉 끌어안은 세훈이 준면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했다.
길어진 키스에 숨이 찬 준면이 세훈의 어깨를 치자 그제서야 준면을 놔준 세훈이 씩 웃어다.
"김준면 어린이. 나중에 선생님한테 꼭 시집와요,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