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연애중
w. 스핑
02. 사진과 담배
눈을 뜨자마자 전화기를 잡는손에 탄식을 내뱉었다.
오랬동안 반복됬던 하루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8시를 향해가는 시곗바늘에 원우가 느릿느릿 침대를 벗어났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방 안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에츄, 하고 작게 재채기가 나왔다.
방안 곳곳 가득 자리잡은 민규의 흔적들을 바라보던 원우가 얇은 맨투맨을 흰 반팔티 위로 걸쳐입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치우냐.
씻기전에 무심결에 나 씻고올게. 라고 쳐내려가던 손이 멈추었다.
내용을 모두 지운 원우가 핸드폰을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
푹신한 이불 사이로 가라앉은 핸드폰을 바라보던 원우가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공기탓에 젖은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털던 원우가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에 빠른걸음으로 걸어갔다.
[아침밥 먹을시간!]
아, 핸드폰을 초기화하지 않은것이 지금서야 생각이 난듯 원우가 핸드폰의 알람을 껐다.
요란하게 울리던 핸드폰을 금세 조용해졌다.
시끄러운 알람소리는 여전히 원우의 귀를 맴돌고 있었다. 마치 자기와 민규가 했던 사랑처럼.
머리를 말리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남들이 볼까봐 꽁꽁 숨겨두었던 편지들, 메모들, 사진들을 옷장 안에서 꺼내었다.
여러번 읽은 색바랜 편지는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사진들은 오랬동안 빛을 보지 못해 새것 같았다.
앳되보이는 어린 둘의 사진을 발견한 원우가 그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아직 연애를 시작하기 전 열일곱 쯔음. 고등학생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였다.
자신보다 반뼘 쯔음 더 큰 민규 옆에 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있는 자신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원우가 다른 사진으로 눈을 돌렸다.
한번도 붙여보지 못한 스티커사진.
여섯장의 작은 사진에는 어정쩡하게 서있는 자신과 그걸 보고 웃고있는 민규,
민규를 노려보는 자신과 자신을 다정히 바라보는 민규,
장난스레 웃고있는 민규와 그걸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는 자신,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진,
민규가 제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댄 사진
그리고 놀란 제 모습과 웃고있는 그의 사진.
열아홉 수능끝난날 찍은 오래된 스티커 사진을 제처둔 원우가 다른 사진들로 눈길을 돌렸다.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던 원우가 그것들을 한데 모아 봉투에 넣었다.
군대에 갔다온 이후로는 좀처럼 사진을 인화하지 않아 생각보다 사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사진을 모두 담고 편지도 모두 그 사이에 수셔넣었을 때 툭, 하고 편지가 봉투사이에서 떨어졌다.
여러번 읽어 끝이 여러번 접힌 자국으로 가득한 편지지를 열어보았다.
원우야
사실 이런 편지 써 본적이 없어서 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년동안 편지한통 안 써줘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네.
우리도 이제 스무살이다.
우리가 만난지 겨우 이년밖에 안됬네.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그치.
이런말 하면 조금 오글거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정말 죽을때 까지 너랑 같이 사랑하고 싶다.
항상 그리는 내 미래에 너와 함께하고 있어.
미래에 내가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언제나 너와 함께 하고 싶다.
오늘은 좀 답지 않게 진지해도 조금 봐줘. 이주년이잖아?
이년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더 사랑하자.
원우야 정말 많이 사랑해.
2주년에 민규가.
편지지 사이에 끼워져있던 폴라로이드 사진이 원우가 편지를 열자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케이크 앞에서 울고있는 자신과 웃고있는 민규. 그리고 민규의 글씨로 적힌 글자.
[울지마 바보야ㅋㅋㅋㅋ]
저를 바라보는듯한 그의 눈동자가 너무 행복해보여서 원우는 자신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오묘하게 간지러운 느낌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목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어 원우가 다시 편지를 비닐안에 집어넣었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주워든 원우가 사진을 집어뒤집었다.
[사랑해.]
사진 뒤에 쓰인 익숙한 글씨체를 한참을 바라보다 편지와 같이 비닐 안으로 넣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정리하자. 원우가 작게 읖조렸다.
"이렇게 엉망으로 해오는 사람이 어디있나! 자네 이래서 승진이나 하겠나? 요즘 젊은것들은 말이야, 어?"
바닥으로 흩뿌려진 종이들을 하나씩 줍던 민규가 입술을 물었다.
세게 눌린 송곳니에 입술이 하얗게 변색되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해오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한 민규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괜찮아요? 라며 서툰 한국어로 물어오는 얼마전 새로 들어온 프로그램 매니저-중국에서 왔다고 했다.-가 물어왔다.
괜찮습니다. 원우가 대답했다.
답답하게 목을 죄어오는 셔츠를 손으로 잡아당기던 그가 이내 단추를 두어개 풀어내렸다.
그제야 조금 숨통이 트이는지 그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책상에 널부러진 제 정장 자켓을 들어올린 그가 빠르게 팔을 끼워넣어 그것을 입고 그 옆의 담배곽을 집어들었다.
회사 옥상문을 열고 들어서자 차가운 초겨울 바람이 몸을 감쌌다.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들어 '날씨 추우니까 옷 따듯히 입어' 라고 반쯤 써내려가던 민규가 이내 핸드폰을 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쉰 그가 옥상 가장자리로 다가가 익숙하게 담배곽을 열었다.
어..
담배곽 안에 있어야 할 담배는 없고 막대사탕 네개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사탕을 꺼낸 민규가 막대에 둘러진 포스트잇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금연한다면서 또 샀더라.]
날려쓴 글씨체에 민규가 실소를 내뱉었다.
차례대로 놓인 막대사탕을 하나씩 꺼내었다.
각자 달린 포스트잇을 조심스레 떼어낸 민규가 그것들을 차근차근 읽어내렸다.
[담배대신 사탕이나 먹어.]
[아, 요즘 이말 잘 안해줬지.]
[사랑해.]
허, 하고 민규가 작게 내뱉었다.
품 안에서 꺼낸 지포라이터는 쓸 곳이 없어 길을 잃고 말았다.
사탕포장을 깐 민규가 입 안으로 그것을 들이밀었다.
달큰한 포도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더럽게 다네.
민규가 옥상 아래를 바라보며 혼잣말 했다.
[암호닉]
사랑해 원우야나랑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