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민루] 나는 펫 20
W. 냉동만두
"니냐니뇨~니냐니냐니뇨~"
민호를 태우고 카레이서마냥 무섭게 질주하던 이씽은 온데간데 없었다. 민석이 부르는 정체불명의 노래를 들으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묵묵히 운전하는 이씽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찌됐건 민석의 오너들은 어차피 부딪혀야 할 사람들이었다. 어디서부터, 그리고 무엇이 꼬여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씽은 그저 옆에 있는 민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민석은 그런 이씽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그렇게 유행이라는 존나박의 노래를 따라부를 뿐이었다. 어느새 차는 민석의 집앞에 멈춰섰다. 백미러로 안절부절한 크리스와 루한의 모습이 이씽의 눈에 들어왔다.
"주인!!!!!!!! 하이!!!!!!!!!!!"
이씽이 뭐라 할 틈도 없이 민석은 빠르게 창문을 내리고 오너들을 불렀다. 그런 그의 목소리는 마치 '밥 먹었어?' 라고 묻는 투와 비슷했다. 그만큼 민석의 목소리는 가출한 펫 치고는 상당히 뻔뻔한 태도이기도 했다. 그런 민석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루한은 민석을 발견하고 빠르게 달려와 차 문을 열었다. 민석은 고양이답게 한쪽 팔을 척 내밀었다.
"뭐해? 내려줘야지."
도도한 모습에 루한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팔은 크리스에 의해 저지되었고 그는 아예 민석을 끌어냈다. 아니, 정확히는 빼냈다는 말이 맞았다. 이씽은 민석을 무 뽑듯 쑤욱 차에서 뽑아낸 크리스가 한바탕 호통을 치리라 예상했다. 민석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고양이로 변해 얌전히 크리스에게 안겨있을 뿐이었다.
"잘못했지."
크리스가 민석의 콧잔등을 툭 쳤다. 민석은 도리질을 치며 강하게 거부했다. 고양이는 개와 다른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체벌보다는 고양이가 싫어하는 부류의 행동으로 혼을 내야 한다. 민석의 경우는 특히 더 그랬다. 두 주인들이 오냐오냐 키운 만큼 민석은 상당히 버릇 없는 편에 속했다. 크리스는 민석에게 강하게 나간다면 오히려 삐뚤게 나간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민석을 혼낼 때마다 신중했고, 민석도 혼내는 그의 앞에서는 얌전해졌다. 그 결과로 다른 오너들은 가끔씩 자신의 펫에게 물리기도 했지만 크리스와 루한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크리스의 벌주는 방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민석은 다시 잠잠해졌고, 미안한 듯 크리스의 품으로 파고드는 민석을 빼내는 루한이었다. 민석은 루한에게도 파고들며 애교를 부렸다. 어쩌면 그것은 벌을 덜 받으려는 발칙한 고양이의 습성이기도 했다. 루한은 민석을 안아들고는 여전히 운전석에 앉아있는 이씽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한의 시선을 따라가던 민석의 시선도 이씽의 끝에 머물렀다. 민석이 뭐라 말 할 틈도 없이 루한은 민석을 안고 차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루한이 창문을 톡톡치자 이씽이 창문을 내렸다.
"민석이 데려다준 건 고맙다."
무심하게 뒤돌으려는 루한의 시야를 막은 건 민석의 두 앞발이었다. 루한의 눈 위로 앞발을 척 올린 민석이 한심하다는 듯 루한을 쳐다보더니 이내 한쪽 앞발로 루한의 머리를 퉁 때렸다. 욱한 루한이 민석을 떼내려 하자 이씽이 잽싸게 뛰어나와 민석을 잡아냈다. 루한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이씽에게로 가 안긴 민석을 째려보았다.
"사과해."
"뭘?"
"이씽이한테 사과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민석은 루한을 앞에 두고 그동안 크리스와 루한이 오해했던 모든 일들을 구구절절 풀기 시작했다. 민석이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크리스와 루한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가고, 이씽은 그저 무덤덤하게 셋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침내 오해했던 부분들을 다 듣고 난 오너들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민석은 자신의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리고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인간들이 어떻게 펫만도 못해요...사과 처음 해봐?"
민석은 그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더니 사람으로 변해 이씽의 품에서 내려왔다. 민석은 억지로 오너들의 손과 이씽의 손을 맞잡게했다. 악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하고, 그렇다고 파이팅 모션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포즈였다. 민석은 셋의 손을 붙들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그들은 민석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 그 다음에는!"
*
"ㅁ..미안.."
"루한, 똑바로."
"미안해..."
"목소리 작다."
"미안해!!!!!!!!!!!!!!!!!"
"그게 사과야?!!!!!!!!!!"
죽어도 남에게 미안하다고는 못하는 루한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꽤나 힘들었다. 듣는 사람도 듣는 사람이지만, 말하는 당사자인 루한은 그저 미칠 지경. 그것은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에게도 충분히 두려운 일이었다. 이씽은 티격태격 다투는 오너와 펫을 가만히 바라봤다. 겉으로는 저렇게 다투고 있어도 애정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일까. 그 모습이 참 다정해보였다.
"민석씨. 나 괜찮아요."
"진짜지?!!! 민석아 나 끝났다?"
"끝나긴 뭐가 끝나!"
"민석씨 나 진짜 괜찮아요. 사과 받은 걸로 할게요."
"저..저는요.."
"크리스씨도요. 사과 받은 걸로 해요."
"사과를 받긴 뭘 받..우우우웁!"
크리스가 급하게 민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이 막힌 채 대롱대롱 매달린 민석이 크리스의 손을 앙 깨물고 나서야 풀려났다. 민석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도대체 왜?
"민석씨랑 민석씨 오너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보기 좋은 거 알아요? 솔직히 나 지금 좀 부러운데."
이씽이 민석을 안아들고 한번 볼을 부비적거리더니 그대로 크리스의 품으로 다시 넘겨주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오해 할 수 있잖아요."
이씽은 자애롭게 웃어보였다.
**
"종대야 카운터에 먼지 한 톨 발견."
"아 루싸장님 먼지 가지ㄱ.."
"월급 반만 받고 싶지?"
"싸장님."
"나쁘다고?"
"아 싸랑해요."
종대는 이씽에게 누명을 씌운 죄(?)로 월급 절반이 날라갈 뻔 하다가, 역시나 이번에도 괜찮다며 말리는 이씽 덕분에 알바생에서 청소부로 아예 전락해버렸다.
"썬배니이임~"
"종대씨 청소 안해도 된다니까.."
"종대씨라뇨.. 전 후배일 뿐인걸요...흑..."
"김종대 너 이씽한테 수작부리면 죽여버린다. 닥치고 가서 빨리 일이나 해."
"넵 싸장님."
그리고 여전히 김종대는 월급의 노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