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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남자의 등장에 그도, 나도 그대로 얼어붙었다. 짙은 눈썹이 돋보이는 그는 나와 그를 번갈아 보다 살짝 열려있던 서고 문을 걸어잠갔다. 그리고 장칼을 꺼내드는, 어어 칼, 칼이야, 칼이라고.
"어어 카, 칼!"
"다시 묻는다. 셋 셀 동안 말 안하면 그대로 너네 모가지 날라가는거야."
"어디서 왔어."
훈훈하게 생겨서 말은 참 험하시네.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하는 표정으로 날 데려온 그 남자를 보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안그래도 우리 죽게 생겼는데.
"넌 뭔데."
"넌 뭔데 여기 있어."
아니 온건 우린데 지금 누구 탓을...?
"뭐?"
"넌 뭔데 여기 있냐고."
아무래도 이 양반 미친 것 같다. 저저 봐, 저 사람 표정 굳어가잖아. 아 어머니 아버지, 저 이름 모를 이 곳에서 죽나봐요.
"말 안해?"
"그럼 나도 너 쳐도 되냐?"
마치 저들과 내 사이에 이름모를 장벽하나가 세워진 기분에 나혼자 그들 사이에서 심장 쪼달리고 있다. 묘하게 일렁이는 눈, 그리고 여전히 차갑게 무미건조한 눈. 그리고 그 눈들 눈칫밥먹느라 애타고 있는 나까지.
"... 저기요."
"뭐."
"왜요."
어렵사리 운을 뗀 나를 둘이 동시에 쳐다보니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곤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니까, 그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일단 나 좀 보내주면 안돼요?"
"........?"
"..... 아씨."
"... 나 집 보내달라고요!!!!!"
미드나잇 인 서울
"다시, 다시."
"..... 말했다시피-"
"-그니까. 그니까!!!"
"......"
"나 못간다- 이거 잖아요, 지금. 맞죠?"
"아니 갈 수는 있는데-"
"-갈 수는 있는데 언제갈지는 모른다는거 아니에요!!!"
멘붕. 그야말로 멘붕이다.
저 둘에게 나 돌아갈래-! 하고 외쳤다가 오히려 역관광 당해버렸다. 한 놈은 날 기둥에 묶고, 한 놈은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조곤조곤 설명하고, 나 묶은 한 놈은 어이없다는듯 허- 하고 날 보고.
"너 그 입 안닥치면 진짜 죽-"
"-이는 순간 너도 죽는다."
"......"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건지 짙은 눈썹의 사내는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한다. 뭐, 사납게 생기긴 했지 이 토끼양반.
"갈 수 있어요, 갈 수 있다고요. 그니까 진정하고-"
"-언젠데요 그게!!!"
"아오.. 귀청 떨어지겠다."
"아니 님이 생각해봐요. 다음 월식이 일어나는 자정시간을 어떻게 아냐니깐?!"
.
.
.
.
.
몇 분 전,
"못가요."
".... 뭐요?"
한껏 날이 선 내 말투에 그는 마른 세수를 하고는 다시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옆에 짙은 눈썹은 그저 그를 계속 노려볼 뿐, 들고 있던 장칼은 휘두르지 않았다. 아 저거 거슬리는데.
"월식."
"... 뭔 식?"
"월식이요. 그 때 아니면 못 가요."
"장난해요?"
어쭈.
"... 그것도, 시간 맞춰서 가야해요."
"....... 뭐?"
어쭈?
"... 자정."
"월식이 일어나는 자정이어야 한다고요."
............. 이 새끼가?
"이 씨......"
"........"
"야!!!!!!!!!!!!! 나 돌려보내라고!!!!!!!!"
"조, 조용!"
"닥치고 나 돌려보내라고!!!!! 서울!!! 한국!!!!! 돌려보내라고 이 새끼야!!!!!"
.
.
.
.
.
아직도 몸에서 열이 펄펄 끓는다. 묶여있는 것도 안그래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젠 눈물까지 나올라한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씩씩 대며 내 앞의 그를 보다 옆에서 날 묶어놓은 그를 째려보는데, 허- 날 그렇게 보면 뭐가 달라지니? 이런 표정으로 날 본다. 쟤는 그냥 뭔가 재수없다.
"걱정마요, 여기 얘가 알아서 할거니까."
"......?"
"......??"
내 앞의 그의 목소리에 응?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턱 끝으로 짙은 눈썹 사내를 가리킨다. 쟤요, 쟤. 쟤가 처리할거에요. 막상 지목당한 그는 무슨 상황? 이런 눈빛으로 우리를 번갈아본다.
"세자빈. 빈궁 방 어디야."
"그건 왜."
"이유는 너가 더 잘알텐데."
"......"
"풀어줘, 얘."
"지랄안한다는 조건으로."
"..... 그럴거죠?"
지랄을 하네마네, 지들끼리 쑥덕이는 대화를 듣고만 있는데 날 보며 그럴거죠? 하는건 또 뭐람. 그냥 쳐다만 보고 있으니, 자가해석하며 그러겠대. 라고 말하는 그다. 나 암말도 안했는데.
"... 조용히 가자?"
"......"
이 밧줄 풀리자마자 얠 반쯤 팰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얘 칼 가지고 있었지 하는 생각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 이런 상황 올 줄 알았음 검도 끝까지 다닐걸. 아쉽다.
"마마, 준회입니다."
"... 들라."
여기 가만히 있어라 너네. 눼눼.
입모양 뿐만 아니라 눈빛으로 모든걸 경고하는 것에 알겠다며 손사래 치니 그제서야 들어간다. 그나저나 여기가 세자빈 궁인가. 와- 조선에서 살맛나겠다, 이 정도면. 특히나 눈에 띄는 예쁜 꽃병에 손 끝으로 표면을 만지고 있으니 아까부터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옆 나인이 눈치를 준다.
"왜요."
"... 아니옵니다."
"뭐 비싼거에요?"
"... 중전 마마께서 빈궁 마마께 내리신-"
"-선물?"
"....."
"오, 그럼 값 좀 나가겠-"
"-좀 가만히 있죠?"
옆에서 날 한심하다는듯 쳐다보는 눈길에 쩝, 하며 다시 쪼르르 그의 옆에 섰다. 근데 우리 여기 왜 왔어요? 하고 그를 올려다보니, 날 슬쩍 내려다보던 그가 그저 피식 웃기만 한다. 그리고 하는 말,
"돌아가야하니까요."
"우리도,"
"쟤도."
.
.
.
.
.
"... 어딜 다녀오는것이냐."
"잠시 바깥에-"
"-너도 날 떠나려는 것이냐."
"마마."
너도 날 떠나려는거지. 그 말을 하는 세자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예쁘게 수놓아진 얇은 천에 비춰지는 실루엣에 준회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실루엣마저. 그래서, 그래서. 준회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 상황에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불청객을 만나고야 말았지만.
"저하께서도, 저하께서도 매번 내게 그리 말하셨다. 날 놓지 않겠다, 절대 놓지 않겠다. 그대 옆에 항상 있겠다."
"........."
"..... 그리고 어찌되신 줄 알지 않더냐."
"........."
"떠나셨다, 이 삭막한 곳에 날 홀로 두고."
떠나버린 세자. 아니, 사라져버린 세자라고 하는게 더 어감이 맞을 듯했다. 준회는 그녀의 입에 다시 올라간 그에, 주먹을 꾹 쥐었다. 준회는, 그녀를 사랑하는 준회는.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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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라면 월요일에 내는게 맞지만! 좀 더 일찍 찾아왔어요 흐흐. 다음주에 만나용♡
암호닉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바로바로 달아드려요♡
암호닉
바나나킥 / 김밥빈 / 초록프글 / 뿌득 / 부끄럼 / 준회가 사랑을 준회 / ★지나니★
우리 독자님들 사랑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