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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김원식] 블라인드 26 | 인스티즈


주미연 - 그대는 눈물겹다



26


물결이 넘치는 강가였다.

겨울바람이 그 끝물을 알리려는 듯 

알듯 말듯 한 봄기운을 끌어안고 있었다.

상혁은 한강 벤치에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저택으로 돌아가느니 겨울 강바람을 맞다 감기에 걸려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 아파버리면 그녀가 간병이라도 해주겠다고 그 따뜻한 손으로 차가운 물수건을 얹어줄지도 몰랐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져 상혁은 고개를 숙였다.

실없는 헛웃음만이 폐에 가득 차는 공기를 애써 빼내었다.


상혁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하루하루 일기처럼 적어놓은 그녀의 관한 이야기들.

그녀가 땅에 떨어진 알약들을 주워 달라 부탁한 그날부터 적어내려 간 것들이었다.

괜한 관심과 귀찮은 오지랖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 와서야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치의는 차도는커녕 악화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윤설은 자꾸만 눈이 흐려진다는 듯 제 눈가를 비비곤 했다.


낮에 코피를 쏟은 윤설의 얼굴이 기억에 스치자 상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뻘건 피는 뚝- 뚝- 떨어져 바닥에 쌓여갔고,

윤설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하얗게 질려서는 얕은 신음만 뱉어냈다.

하루 일어나고 말 일 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불면과 스트레스에 그녀가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고, 또 너무 많이 걱정하고 있어서 탈이었다.

그녀 덕에 그는 줄 곳 바빴고, 그녀 덕에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의 말이라면 싫어도 꾹- 참고 알았다고 한 날들을 뒤집어

이제는 그가 싫어도 해야만 한다고 따가운 충고를 날려야 할지도 몰랐다.

왜 자신만 이렇게 힘든 역할을 맡아야 하는 건지 상혁은 괜히 원망스러웠다.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는 듯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상혁은 이내 일어나 비어버린 캔을 쓰레기통에 불퉁하게 던저버리고는 기지개를 켰다.

피곤한 칭얼거림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는 눈을 꾹- 감고 깊이 눌러놨던 숨을 내뱉었다.

하얀 김이 무언가의 숨결처럼 앞에 머물다 이내 덧없이 사라졌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정말 아파 보이면, 정말 아픈 것 같다 생각되면 주저 없이 행동하자고.

마음도 두려움도 다 닫아버리고 마지막을 위해 나방처럼 덤벼보자고.


그녀가 자신은 나방이 아니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럼 나는 나방일까?


...


차에 올라탄 상혁은 조금 추워졌는지 코트를 여맸다.

시동을 켜고 히터를 켜자 천천히 온도가 올라갔다.

그냥 그러고 한참을 앉아있다 몸을 돌려 뒷좌석을 바라봤다.

깨지지 않도록 잘 포장된 그릇과 컵들을 가만히 쳐다보다

힘겹게 손을 뻗어 작은 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아주 예쁜 컵이었다.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 정교하게도 빗어놓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윤설이 점토를 처음 만졌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잠시 상상했다.

그러다가 이내 조수석에 그 컵을 내려놓고는 안전벨트를 맺다.


하나쯤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너의 단 하나의 조각쯤은?


----------


"흐... 아..."


살짝 떨어진 입술 사이로 그녀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할퀴는 것만 같았다.

윤설은 어느새 옷 속으로 들어온 그의 커다란 손을 꾹- 누르다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예상외로 깜짝 놀란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원식은 가쁜 숨을 내쉬며 윤설을 떼어놓고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어서 그런지 온몸이 다 화끈거렸다.


계속 눈을 감고 있던 윤설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그 눈동자를 마주 보다 이내 창가를 바라봤다.

어느새 달빛이 숨어들었는지 구름 사이로 희미한 흔적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달빛이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자 원식은 제 입술을 꾹- 깨물며 다시 윤설을 바라봤다.

큰일 날뻔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었다고.


"으아-"


꽤나 솔직한 탄식이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윤설은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식은 자신을 잡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떼어내고는 이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몸이 기우는 느낌에 눈을 꼭 감았던 윤설이 다시 눈을 뜨자 눈앞에 일렁이는 건 어둠에 묻혀버린 그의 실루엣이었다.

어느 것이 어둠이고 어느 것이 그인지 감히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저 숨소리로만, 제 어깨에 둘러진 단단한 팔이라던가, 아니면 섞여버린 머리카락 정도로 그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윤설은 눈을 깜빡이다 더듬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 손이 제 얼굴에 닿자 원식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어디 아파요?"

문득 그녀가 물었다.


"...아니야"

그가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열이 나는 것 같지?"


그녀의 손이 그의 귓가에 닿았다.

원식은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고는 눈을 떴다.

눈앞에 제 팔을 베고 누워있는 윤설의 모습에 원식은 다시 한 번 눈을 꾹- 떴다 감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그 눈동자도. 마치 별처럼.


"안 아파, 신경 쓰지 마"


"...걱정"

그녀가 중얼거렸다.


"..."


"걱정돼서요"


원식은 그렇게 말하는 윤설의 입술을 바라봤다.

화장기 없는 입술. 어느새 붉은 꽃잎처럼 달아오른 자국들.

조금 부어오른 그 입술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던 원식은

이내 그 손을 얼른 치워버리고는 가늘고 긴 숨을 내뱉었다.


윤설은 평소와 다른 그를 가만히 기다렸다.

평소와 다르게 거칠지 않고, 평소와 다르게 제멋대로이지 않은 그를.

그러면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아이러니하고,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 그를.

영원한 숙제이자 또 영원한 고문이 될 것만 같았다.

변해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초조함.


초조하기는 원식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애처럼 뛰는 심장을 가만둘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지면 혹여나 부서져 버릴까 초조하고 걱정돼서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그저 계속 거짓말만 할 뿐이었다.


끝까지 계속 거짓말만.


한참을 그렇게 마주 보고 누워있었다.

원식은 천천히 감기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참 태평한 건지 아니면 조심성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누르고 원식은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넘겼다.

이내 잠에 빠졌는지 새근대는 숨소리에 그도 눈을 감았다.

조금 더 품에 파고들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부드럽고 가녀린 네 품에 안겨보는 것도 꽤나 기분 좋은 일 일 것만 같았다.


기분 좋은 일...


"잘 자"

하고 그가 말했다.


----------


아침에 일어났을 때 문득 혼자였기에 윤설은 무릎을 끌어안았다.

괜히 코끝이 시려오는 건 아마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서운해하는 것이라고.

오롯이 진실되기가 이렇게 섬세하고 감정적이며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녀는 몰랐다.


더 생각해서 뭐 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윤설은 눈을 비볐다.

어젯밤의 흔적들이 입술과 쇄골에 남아 따가웠다.


"하..."


응어리를 뱉어내는 듯 떨어뜨리는 탄식도 이제는 마지막이었다.

오롯이 진실된 마음으로 그저 괜찮다는 자기최면을 걸 뿐이었다.

당신이 나를 단지 소유물, 아니 양분처럼 사랑을 받기에 적당한 사람으로 생각해도 괜찮다고.

아마 괜찮을 거라고, 나는 괜찮다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식의 최면을 걸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괜찮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니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가끔 따뜻하고, 또 가끔 다정하게 대해달라고.

그게 당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이니까.

날 헷갈리게 하는 거.


당신의 그 지독한 다정함으로 날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눈을 비벼서 그런지 조금 어두워진 시야에 미간을 찌푸리던 윤설은 이내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문득 일어나려 하자 갑자기 밀려오는 현기증에 몸이 기울었다.


덜컹- 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세상이 모래시계처럼 기울고 있었다.

그가 뒤집어 버리던 그 모래시계처럼.


차마 무언가를 붙잡기도 전에 풀린 다리에 그녀는 딱히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의자에 무릎을 부딪히며 쓰러지자 꽤나 큰 소리가 났다.

나무 의자가 쓰러졌는지 한바탕 소란스럽다가 밀려오는 고통에 무릎을 움켜쥐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머리가 아직도 어질어질해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새카맣게 변해버린 시야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윤설은 신음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무릎이 쓸렸는지 쓰라렸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설은 얼굴을 구긴 채로 고개를 들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먹물을 쏟은 듯 흐린 시야와 울리는 머리에 그녀는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다급하게 그가 물었다.


"...괜찮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손 치워봐"


그가 그녀의 손목을 움켜줬다.

윤설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조금 창피하다가도 이내 계속 욱신거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은 또 왜 갑자기 안 보이는지, 머리는 왜 갑자기 이렇게 어지러운 건지.

도무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윤설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진짜 괜찮아요 상혁씨"


"도대체 그런 거짓말은 왜 하는 거야?"

윤설의 손을 억지로 치우며 상혁은 화를 냈다.

"다 까졌잖아"


윤설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입술 깨물지 마, 부어가지고"


"..."


"자-"

상혁은 그녀에게 팔을 내밀며 말했다.

"잡아, 우선 침대에라도 앉자"


윤설은 머뭇거렸다.

기다려도 제 팔을 잡지 않는 윤설에 상혁은 슬쩍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상혁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아주 잠시였다.


"안 잡을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가 물었다.


"아..아뇨"

그녀가 더듬거리며 손을 뻗었다.


조심스레 들어 올린 그 손이,

매번 소름 끼치게 자연스러웠던 그 움직임이,

마치 이가 나간 시계 바퀴 처럼 엇물린 듯 주춤대고 있었다.

긴장 한 듯 천천히 들어 올린 그 팔이 어이없게도 허공을 가르자 상혁은 숨을 삼켰다.

윤설은 불안한 얼굴로 다시 한 번 허공에서 팔을 옮겼다.

상혁은 그 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 안 보여?"


"아니, 그게 아니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안 보여?"


"...조금 어지러워서 그래요"

그녀가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어지러우면 눈이 안 보이나?"

상혁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방에 햇빛이 이렇게 가득한데?"


"..."


상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커다란 두 손의 온기가 볼에 전해졌다.

윤설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그 눈동자가 문득 덤덤하다는 생각에,

무던하다는 기분에 상혁은 마음이 갑갑했다.


"솔직히 말해"

그가 말했다.

"지금 안 보이지"


"..."


"실루엣도 안 보이지"


그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없이 윤설은 가만히 얕은 숨을 내뱉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이내 바닥을 짚고 있던 두 손을 꼭- 주먹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상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쇄골에 붉게 피어난 자국을 눈치챘지만 보기 싫다는 듯 눈을 돌려버렸다.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그에게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바엔.

아니 이럴 바엔 차라리.


너에게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안 보여요"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마치 처음 원식과 대면했던 날의

그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표정과 같아 보였다.

상혁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욱신대는 상처들과 현기증에 그녀가 얕은 신음을 흘렸다.

조심스럽게 윤설은 침대에 앉힌 상혁은 내팽겨진 의자를 정리하고

빠르게 나가 구급상자와 따뜻한 물수건을 챙겨왔다.

까진 생채기를 조심스럽게 닦아 낸 후 연고를 발랐다.

슬슬 멍이 들려고 하는지 무릎이 퍼렇게 뻘겋게 변하고 있었다.

꽤나 보기 싫은 색의 조화였다.


"언제부터 그랬어"

연고를 바르며 상혁이 물었다.


"원래 자주 그랬어요"


"언제부터 심해졌냐 묻는 거야"


"...얼마 안 됐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원래 이렇게 넘어지기도 했어? 갑자기 안 보여서?"


커다란 밴드를 그녀의 무릎에 붙인 상혁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안주머니에서 익숙한 노트를 꺼내들고 책상에 굴러다니는 펜을 집었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나자 윤설은 그에게 물었다.


"뭐 적어요?"


"응"


"뭘 적어요"


"알 것 없어"


"..."


그의 말 한 마디에 질문 없이 그저 그런 얼굴로 돌아온 윤설은 보며 상혁은 마른 세수를 했다.

그러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야 해, 있는 그대로"

달칵- 하고 펜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나는 네가 말한 대로 적을 거야"


"그걸 적어서 어디에 쓰게요"


"네 주치의한테 가져갈라고"


"병원에?"

그녀가 물었다.


"그래, 병원에"


다리가 욱신거리는지 윤설은 제 무릎을 만졌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선생님도 다 아시는 걸요"

무던하게 그녀가 말했다.


"이렇게 자주 그런다는 건 모르잖아"

상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 심해졌다는 건 모르시잖아"


윤설은 눈을 비볐다.

아직도 어둠 속이었다.

머리가 울려서 상혁의 목소리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어지러움이 몰려와 마치 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귀에 물이 가득 찬 것 같았다.


몇 분 동안 윤설은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상혁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상혁은 그런 그녀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진짜 괜찮아요 상혁씨"

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가끔 이런 적 많았고, 또 심해지더라도 별로 기대는 없었어요 원래"


"..."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안 보일 수도 있다는 거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녀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이렇게 마음에 안 든 적 없었는데...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 건지.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난 상혁 덕에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윤설은 고개를 들다 어지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보이지도 않으면서 눈을 가늘게 뜨는 그녀의 헛짓거리에 상혁은 얼굴을 구기며 그녀의 어깨를 움켜줬다.

눈높이를 맞추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는 그녀를 꽉- 붙잡고 심각한 얼굴로 그 눈동자를 응시했다.

당황한 듯한 표정이 윤설의 얼굴에 드리웠다.

아팠는지 어깨를 살짝 비트는 그 행위에도 상혁은 그녀를 놓아줄 줄 몰랐다.

그저 더 세게 그녀를 잡고서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입을 열 뿐이었다.


"그래서 수술 안 했어?"


"...네?"

윤설이 물었다.


"가망 없을 것 같으니까 아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수술 안 받은 거냐고!"


"그걸..."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래, 어렸을 땐 네 빌어먹을 아버지가 술과 도박에 미쳐 사느라 네 눈은 안중에도 없었다고 쳐

 그럼 나중에는? 나중에는 왜 안 받은 거야"


"..."


"...왜"


"고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상혁이 말을 끝마치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가진 게 빚밖에 없는데..."


그녀의 그 덤덤한 한 마디에 상혁은 절망적인 한숨을 뱉어냈다.

안에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 결국 다 돈 때문이었다.

결국 다 그 때문이었다.


너의 눈도,

너의 미래도,

너의 이 덤덤함도.


다 김원식 때문이었다.


비약이라 할지라도.


상혁은 그녀의 어깨를 놓고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숙여 윤설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윤설은 그저 가만히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다정함이 더 아파서 상혁은 눈을 꾹- 감았다.

왜 이렇게 슬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담담히 윤설에게 선을 긋던 자신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었다.

속으로는 수 천 번 그와 그녀를 이어주자 마음먹었었는데,

이제 다 소용없는 노력이자 허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원래는 눈 보였지?"

그가 웅얼거렸다.


"어렸을 땐 보였죠"


"미련..."


"미련 없어요, 무슨 미련이 남겠어요"

그녀가 웃었다.


"거짓말 하지 마-"

상혁이 말했다.

"거짓말 좀 하지 마요"


"거짓말 아니에요 상혁씨"


"미련 없다면서 그렇게 꽃잎을 만졌어?"


"..."


"미련 없다면서 눈 오는 날 산책하는 걸 좋아하고"


"..."


"미련 없다면서 나한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어?"


"한상혁씨"

윤설이 그를 불렀다.


상혁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사실은 너도 보고 싶었던 거잖아"

그가 말했다.

"읽고 싶었던 거잖아"


윤설은 눈을 꾹- 감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애써 그 습기를 눌러내렸다.

왜 이렇게 이 사람은 날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안 그런 척 매번 나를 챙겨주는 것인지.

그리고 왜 이렇게 눈물 나게 예리한지.


"이제 다 지난 얘기에요"

그녀가 애써 씩씩하게 말했다.

"어차피 잘 안 보이던 거, 더 나빠진다고 뭐가 그리 달라지겠어요-"


꾸며낸 티가 역력한 그 활기찬 한 마디에 상혁은 얼굴을 굳히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이내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윤설은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있었다.


"더 좋아질 수도 있어"


문득 그가 그렇게 말했기에 윤설은 고개를 들었다.

상혁은 평소답지 않게 초점을 못 맞추는 그녀의 눈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윤설은 다시 현기증이 났는 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가 신경 쓰이는 듯 얼른 내렸다.

상혁이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어지러웠어"


"...상혁씨"


"대답이나 해"


"...얼마 안 됐어요 어지러운 건"


"전에도 코피 난 적 있어?"


"전에는 없었어요"


"눈은 언제부터 안 보였어"


"가끔, 아주 가끔 그랬었는데"

그녀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요즘에는 조금 자주..."


"자주?"


"많이는 아니고-!"


"어떤 식으로?"


"..."


"대답"


"그냥, 매번 달라요"

그녀가 말했다.

"갑자기 불 끈 듯 캄캄해질 때도 있고, 지금처럼 머리 아프면서 점점 안 보일 때도 있어요"


"...그래"

상혁이 말했다.

"우선 이 정도면 됐어"


"..."


"정밀 검사받아봐야 할 수도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가 말했다.

"오늘은 쉬어, 식사 가지고 올라올게"


"상혁씨"

윤설이 그를 불렀다.


돌아서 나가던 상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진짜 내 담당 선생님 만났어요?"


"응"


"수술 얘기도 다 그 선생님한테 들은 거예요?"


"응"


"..."

윤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선천적인 거 아니라는 얘기도?"


"그래"


"..어떻게 알고"


상혁은 나가던 발자국을 돌려 윤설에게 향했다.

그녀의 앞에 선 그는 천천히 제 손을 뻗었다.

부드럽게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느낌에 윤설은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희미하게 시야가 밝아지고 있었다. 이제야.

윤설은 안개 낀 듯 뿌연 눈을 연신 깜빡거렸다.

상혁은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며 속삭였다.


"나는 너에 관한 일은 다 알고 있어"


매번 그녀를 위해 책장을 넘겨주던 그의 손의 온기가 그녀의 목 언저리에 머물렀다.

붉게 피어오른 지난밤의 자국을 애써 가리려는 듯 꽤나 슬픈 지분거림이었다.

조금은 질투와 조금의 아픔과 또 조금의 원망까지 갈아 넣은,

차마 지워지지 않을 만큼 따뜻한 그의 손길.


상혁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원식은 집으로 향했다.

매일 매시간 그녀와 함께 보내기에도 모자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일까지 내팽개쳐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갑갑하게 매고 있던 넥타이를 늘어뜨리고 원식은 고개를 젖혔다.

도로의 불빛이 그의 얼굴에 드리웠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이 유난히도 차갑게 들리는 저녁이었다.


지난밤 달뜬 입맞춤과 이례 없이 자신에게 매달리던 그녀의 손길이 생각나자 원식은 다시 귀가 빨개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괜한 헛기침을 하고는 눈을 비비다 이내 조명을 켜고 뒷좌석에 놓여있는 책을 꺼내들었다.

조금 풀린 그녀의 눈과, 걱정한다던 그 목소리가 자꾸만 울리고 또 울렸다.

달빛에 젖는 모습과 희미하게 드러난 그 허리 선도.

무방비하게 잠에 빠져들던 그 모습까지도.


아- 도무지 품에 안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매일 입을 맞춰야 할 것 같았고, 매일 괴롭혀야 할 것만 같았다.


아무 일도 없이 같은 침대에 눕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고문이자 시험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였기에 그는 다 참을 수 있었다.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단 한순간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답다고.


원식은 손에 든 책 표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셰익스피어 - 로미오와 줄리엣'


이미 다 정독한 이 비극이라 불리는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볼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덜 익은 아이들의 엇갈리고 대담한 사랑 이야기 따위는 전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로맨틱하다 일컬어지는 부분의 대사들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녀의 눈은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대답을 해야지"


겨울의 마지막 비가 내리고 있었다.


원식은 책을 덮었다.











그녀의 눈은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대답을 해야지.

<로미오와 줄리엣 /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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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이번편은 상혁이편이네요ㅠㅠ...우이 효기ㅠㅠㅠㅠ불쌍해서 어떠케ㅠㅠㅠ
8년 전
무지개
상혁이 찌통 8ㅅ8
8년 전
독자2
아이쿠...상혁의 감정이 이제 점점 숨길 수 없게 되는 것 같아요..ㅠㅠ앞으로 또 어떤 감정을 보여주게 될 지 기대되네요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오늘도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다음화에 또 봐요!
8년 전
독자3
우리 혁이 불쌍해서 어떡해요... 혁아ㅠㅠ 정말 안타까운것 같아요 짝사랑이라는게.. 불쌍한 우리 혁이ㅠㅠ 아침부터 좋은 글 읽으니까 힘이나네요 오늘도 좋은하루보내세요!!
8년 전
무지개
감사합니다! 독자님도 좋은 하루 되길!
8년 전
독자4
아 세상에...ㅠㅠㅠ설이 눈이 이제 거의 안보인다니....8ㅅ8 상혁이도 불쌍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다들 불쌍한 이야기가 되어버릴까 걱정이에오 8ㅅ8 오늘도 고마워요!
8년 전
독자5
정주행 완료..ㅠㅠㅠㅠ이렇게 재밌는 글을 이제서야 보다니 나란 바보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정주행해줘서 고마워요! 알라뷰 ♥
8년 전
독자6
작가님 두이에요...세상에 너무 슬프네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니 새드엔딩 복선인가요? 정말ㅠㅠㅠ혁이도 불쌍하고 설이도 식이도 다 불쌍하네요
8년 전
무지개
두이! 새드엔딩일까요? 8ㅅ8
8년 전
독자7
아니길 바랍니다!8ㅅ8 설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8년 전
독자8
아ㅏ아앙아ㅏㅏㅠㅠㅠ브금이랑도 너무 잘어울리고..상혁이 말 한마디한마디에 진심 묻어나서 제마음이 다 찢어지는 것 같아요ㅠㅠ 글 항상 잘보고있어요 작가님 감사합니다ㅜㅜㅜㅜ
8년 전
무지개
저야말로 정말 고마워요! ♥♥
8년 전
독자9
안녕하세요 노예입니다ㅠㅠㅠㅠㅠㅠ 설이 눈 상태가 점점 악화되나봐요 맴찢.. 8ㅅ8 그걸 지켜보는 상혁도 맴찢.. 원식도 맴찢.. 8ㅅ8 무지개님 글은 항상 몰입하게 만드는거같아요ㅠㅠㅠㅠ진짜 표현력이랑 분위기 깡패.. bb 좋은글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게요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노예♡ㅋㅋㅋ 아 왜케 웃기죠^^ 암호닉 마음에 들어욬ㅋㅋㅋ 칭찬 너무 고마워요! 항상 감사합니다 ♥
8년 전
독자10
연이에요ㅜ 스크롤을 내리는데 내려도내려도끝이없는 분량 역시나 감사하구요 우리상혁이 짠내나서어째요ㅜㅜㅜㅜㅜ 얼른다음화오기를기다릴께요!!
8년 전
무지개
연이!! 이상하게 버릇이 됐나 쓰다보면 항상 비슷한 분량으로 끝나더라구요!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요!!♡♡
8년 전
독자11
욕심이겠지만 상혁이가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네요ㅠㅠㅠ눈도 고쳐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
8년 전
무지개
상혁이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 ㅇㅅㅠ 다음화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
8년 전
독자12
정주행하고왔아요ㅠㅠㅠ 진짜 혁이가 윤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잘보여준 화가 아닐까 생각해요
8년 전
무지개
정주행 너무 고마워요!
8년 전
독자13
주치의를 만난건 원식이의 지시가 아닌 상혁이가 스스로 찾아간건가요?ㅠㅠ 힝ㅠㅠ 설이 눈이 제발 낫기를...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14
세상에ㅠㅠㅠㅠㅠㅠㅠ잉 눙물이 ㅠㅠㅠㅠㅠㅠㅠ아이고...아이고ㅠㅠㅠㅠㅠ근데 작가님 진짜 책 좋아하시는갑ㅈ다.......읽는 재미가 쏠쏠해요..!
8년 전
독자15
효기ㅜㅜㅜㅜ너무마음아픈걸요ㅜㅜㅜ
8년 전
독자16
아ㅠㅜㅜㅜ설이너무아픈게아니였으면..상혁이도너무찌통이넉요ㅠㅜㅜ그래도원식이가채고..둘이제일잘어울리니까요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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