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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김원식] 블라인드 27 | 인스티즈


위너 - 사랑가시


27


겨울이 유난히도 길었다.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아- 그녀의 눈은 매번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해야했다.

나에게 이야기하는 그 멀어버린 두 눈을, 

나는 외면하는 대신 대답했어야 했다.


조금만 더 일찍 내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내가 너에게 솔직했더라면 너는 지금 내 곁에 있었을까?

나는 너를 보내주지 않았을까?


내가 채운 사슬, 그리고 내 두 손.


아주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주 어리석은.


----------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셰익스피어,

가장 싫어하는 작가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리석었고,

한 여름밤의 꿈은 정말 한 여름밤의 꿈만 같았고,

Sonnet과 사랑 이야기는 진정 나의 사랑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도 그랬다.


내 눈을 눈물로 멀게 하는 대신 멀어버린 네 두 눈.

그 눈이 나의 추함 결함들을 찾아내지 못했으면 했다.

온통 더러운 것들 투성이인 나의 이 실체를 네가 몰랐으면 했다.


내가 하는 일이라던가,

내가 네게 한 짓이라던가,

내가 네게 한 말들이 다 없었던 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를 찌르던 낱말들과

너를 아프게 하던 내 손이 사라진다면,

그 기억들이 다 없어진다면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보다 더 많이 너를 사랑한다고.


.......


괜히 책을 읽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속이 울렁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원식은 이내 고개를 젓히고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겨울밤 빗소리와 발맞춰 가쁜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시원해 마다않던 그 소리가 문득 찐득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운 오물처럼, 몸에 찍힌 주홍글씨처럼 끔찍하게도 들러붙어 있다고.


겨울의 마지막 비는 이상한 기우와 함께 그를 감싸 안았다.

그 검은 뱀과 함께. 그 끔찍한 검은 뱀과 함께.


왜 초조하지?


네가 나를 사랑하는데,


왜?


----------


상혁은 의자를 끌어안은 채로 앉아서 그녀를 바라봤다.

늦은 저녁이었고 빗소리는 창가를 때리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에 애처롭게도 빗방울이 맺혔다.

그녀의 무릎에는 붉은 꽃이 피어있었고,

그녀의 팔꿈치에는 덩굴 같은 푸른 이파리가 감겨있었다.

그게 차마 아름답지 못할 만큼 아파 보여 상혁은 얼굴을 구겼다.

윤설은 침대에 앉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모든 걸 다 잊게 만드는 그 목소리로.


"겨울의 마지막 빈가 봐요-"


"그러게"

상혁이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많이도 오네"


"잘 보여요? 어두울 텐데"

그녀가 물었다.


"스탠드 불빛이 창에 반사돼서 잘 보여요"

그가 대답했다.


상혁은 이내 다시 그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커다란 눈이 윤설을 응시했다.

질투날 만큼 긴 속눈썹도 깃털처럼 그녀를 향했다.

아주 부드러운 깃털처럼.


"부딪힌 덴 좀 어때"

상혁이 나지막히 물었다.


"이제 괜찮아요"


"다음부터는..."


문득 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가 그를 바라봤다.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듯한 눈동자였다.

이제는 잘 보이는 듯했다.

그 간헐적임이 상혁은 더 싫었다.

아주 헷갈리는 그 간헐적임이.


"다음부터 아프면 그냥 아프다고 말해"

그가 말했다.


윤설은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가....


아... 그 미소가...


"상혁씨는 좋은 사람이네요-"

윤설이 가볍게 말했다.


상혁은 잠시 숨을 멈추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표정을 그녀가 보지 못한 다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었는지,

그는 오늘에서야 절실하게 느꼈다.


만약 네가 지금 나의 표정을 봤다면 넌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너를 사랑해 마다않는 나의 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봤다면,

네 친절한 한 마디에 사실은 이렇게도 흔들리는 나를 봤다면.


아마 아주 처음부터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를 만났던, 오월의 정원을 느꼈던 그날부터.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너의 움직임을 봤던 그날부터.


이상하게 신경 쓰였던 건 네가 불쌍해서도, 네가 안쓰러워서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반했던 건지도 몰랐다.


그래,


반했던 거야.


아주 처음부터.


병신같이.


한참을 머뭇거리던 상혁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가벼운 코웃음을 쳤다.

평소와 같은 그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짧고 가볍고 또 일상적인 그 웃음이.


"그걸 이제 알았어?"


----------


졸리면 자랬다고 진짜 자버리는 저 여자는

사람을 너무 믿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너무 믿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상혁은 턱을 괴고 눈을 깜빡였다.

그의 시선 끝에는 어느새 잠든 윤설이 있었다.


그만큼 편한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같기도 했고,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할 사이라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그녀에게 상혁은 편한 조력자 그 이상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상혁도 그랬다. 아무리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이미 마음먹은 일이었다.


아니 이제는 조금 변해버렸지만.


나는 그저 ...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그냥 그렇게 앉아서 한참을 그 얼굴을 뜯어보았던 것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탠드 불빛에 의지한 채, 

어스름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 얼굴을 하나하나 꼼꼼히 눈에 새겼다.

어여쁘다 못해 벅차게만 느껴지는 건 아마 콩깍지가 쓰여서 그런 걸 거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아주 두껍고 또 너무 바싹 붙어있어 차마 떼어내지 못할 그런 마법이 걸린 거라고.


그녀의 숨소리가 방 안에 겹겹이 쌓였다.

상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새근대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낮은 숨을 뱉어냈다.

곁에 있고 싶다거나 쓰다듬고 싶다는 등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작은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호한 시간의 둘레를 깨고 이내 그가 눈을 떴다.

꾹 다문 입술로 눈을 비비적거리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혁은 창문 앞에 서서 그 비내리는 겨울의 정원을 내려다봤다.

자동차 헤드라잇이 물에 번진 수채화처럼 일렁거렸다.

그 불빛이 꺼지고 잘 보이지도 않는 우산을 든 남자의 실루엣이 아른거릴 때까지 상혁은 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저택에서 유일하게 불이 꺼지지 않는 윤설의 방 창가에서 상혁은 정원과 우산과 또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혁이 이내 커튼을 쳐버렸다.


차가운 문고리에 축축한 향이 묻어있었다.


어두운 복도.

상혁의 발소리.


그리고 빗소리.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일.


----------


저택에 도착한 원식은 꽤나 거세지는 빗줄기에 우산을 펼치며 차에서 내렸다.

복잡하고 초조한 생각들과 비극이라 부르는 이야기에 속이 메스꺼워 미간을 찌푸렸다.

코트 자락을 파고드는 겨울바람과 빗방울의 하모니에 뼛속까지 시릴 지경이었다.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 깜깜해서 원식은 숨이 막혔다.

검은 심해 속에 잠겨있는 듯했다.


희망의 빛줄기는 절망의 빗줄기를 이길 수 있을까?


그런 막연한 의문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었다.

그저 그녀의 방에서 새어 나오던 그 빛이 그를 끌어당겼듯,

오늘도 그런 식으로 그녀에게서 아무도 모르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아주 작으면서도 커다란 바람이었다.

도둑처럼 윤설의 따뜻함을 조금씩 훔치고 있었다.

영원한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다정함을.

사랑한다던 그 목소리를.


원식은 우산을 살짝 뒤로 젖히고 그녀의 방을 찾았다.

이층 맨 끝자락, 조금 커다란 창문과 꺼지지 않는 스탠드 불빛.

그걸 찾다 문득 마주한 선명한 그림자에 원식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눈엣가시처럼 어느 순간부터 거슬리기 시작한 그의 존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비교해보아도 이성적으로 자신이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일까.


그 누구에게 물어도 뻔한 승부였다.


더 나은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신은 언제나 그의 편을 들어줄 것이 뻔했다.


"한상혁"


원식은 가만히 그 그림자를 응시했다.

착각이라 하기에는 멈춰 선 그 실루엣이 꽤나 견고해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상혁도 원식을 보고 있었다.


괜히 메스껍던 속이 이번에는 한 번 더 뒤틀리는 것 같았다.

입안에 맴돌던 無의 감각이 씁쓸한 무언가가 되어 혓바닥을 마비시켰다.

원식은 무섭게도 무표정한 얼굴로 빛과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아주 늦은 저녁이었다.


이내 그녀의 방 커튼이 닫혔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원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캄캄한 집 안은 마치 윤설이 오기 전의 저택 같아 원식은 괜한 이질감이 들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매우 익숙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어색해져 버린다는 것은.


상혁도 이미 사라졌는지 저택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원식의 젖은 코트 자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너무 오래, 너무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았다.

그냥 너무 오래,


제 방으로 들어온 원식은 코트를 벗고는 이내 셔츠 단추를 풀었다.

소매를 접어 말아올리고 이미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넥타이는 대충 벗어던졌다.

습기에 빗소리가 가득 배인 머리칼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헝클어뜨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본 거울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꽤나 차가운 얼굴에 원식은 눈을 꾹- 감았다.

무엇이 되었건 쉽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자신이라는 존재가 쉽게 변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원식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 이렇게 이질감이 들었던 것이겠지.

어느 순간 빛으로 채워져가고 있는 이 저택이...


늦은 밤 빗소리와 상혁의 실루엣이 감긴 두 눈 사이로 유영했다.

원식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눈을 떴다.

아무리 부정해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질투하고 있었다.


원식은 그 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한 번 제 커다란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피곤한 듯 고개를 움직이자 우드득-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잠은커녕 숨 막혀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다가 악몽 아닌 악몽을 꾸게 돼버릴 거라고.


원식은 계단을 올라가며 아주 오랜만에 다시 숫자를 셌다.

별로 의미 없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이층 계단의 끄트머리에서 가는 빛을 내뿜는 그녀의 방 문을 그는 가만히 바라봤다.


참 유혹적인 자태였다. 

윤설, 그녀만큼이나, 유약했지만 확실했고 덤덤했지만 솔직했다.

그 빛은 항상 그랬다.


원식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작은 한숨을 그는 뱉어냈다.

바닥에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재에 문을 열고 들어간 원식은 이내 샹들리에를 켜며 책장으로 다가섰다.

오래된 책들의 곰팡이 냄새와, 비가 와서 그런지 눅눅한 향이 은근하게 코를 자극했다.

담배를 하나 태울까 싶어 꺼내들고는 입술 사이에 물고 불을 붙였다.

뿌연 담배 연기가 적당한 크기로 피어올랐다.

원식은 이례 없이 커다란 창가로 다가가 이례 없이 그 커튼을 걷고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빗방울이 숨어들어와 그의 손등의 잠시 적셨다.

담배 연기는 밖으로 새어 나가다 무겁게 가라앉았다.


원식은 한참을 그렇게 창가에 서 있다가 이내 제 손가락에 걸린 담배를 바라봤다.

작은 화로가 끓어넘치듯 붉게 달아오르는 재의 환영을 응시하다 어느새 들어온 빗방울에 비벼 그 불을 꺼버렸다.


치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한 걱정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솔직하지 못하니까 이런 초조함이 드는 걸까 하고.

사실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숨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지례 제 발 저린 범죄자처럼 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뒤척이고 있는 걸까?


너무 잘 보이는 그녀의 진심에도 원식은 숨이 막혔다.

입을 맞출 때에는 혀가 아릴 듯 달았고,

품에 안을 때에는 속이 타는 듯 뜨거웠지만,

매번 혼자 남겨지게 되면 이상하리만큼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작 너는 나를 떠나겠다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원식은 이런저런 생각들에 짜증 난 듯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구겼다.

괜한 기우일까 생각하다가도 상혁의 그 단단한 그림자와

아닌척하면서도 어둠 속에 갇히던 그녀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웠다.

네가 없이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수 천 번 할 때,

어쩌면 네가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수만 번 했었다.


뭐가 그리 무서웠던 걸까?


솔직하지 못 해서?


정작 자신은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


며칠 동안 원식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기에 윤설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그냥 바쁜가 보다- 하는 마음에 자신도 밀린 일들을 조금씩 처리해나가기에 이르렀다.

상혁은 피곤할 만도 한데도 불평 하나 없이 윤설의 번역 일을 도왔고,

슬슬 풀리는 날씨에 선물이라며 예쁜 봄옷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정말 겨울의 마지막 비였는지 날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직 찬 바람에 옷깃을 여매고 목도리를 두르는 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유난히 추웠던,

유난히 어둡고 또 유난히 길었던 그 겨울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마치 이 저택의 공기가 바뀌어버린 것처럼,

계절의 향도 변해가고 있었다.


눈이 녹아 이파리에 물방울이 맺혔다.

그 축축한 정원을 걸으며 윤설은 쏟아지는 햇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겨울 특유의 차고 흰 공기가 사라지고 새로 자라나는 생명들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했다.

봄의 향기는 이상하리만큼 비밀스러웠고 또 수줍은 듯 솔직하지 못 했다.

아마 꽁꽁 숨죽이고 살아온 겨울의 여파가 꽤나 마음 아프게도 독했던 것 같았다.

윤설은 이내 고개를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김원식씨는 엄청 바쁜가 봐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게"

상혁이 간단히 대답했다.


"요새 통 집에 안 오는 것 같아요"


"으응"


상혁의 시큰둥한 대답에 윤설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 얼굴을 쳐다보던 상혁이 이내 그녀에게 물었다.


"이 정원에서... 그 남자가 싫다고 당신이 내게 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소리에 윤설은 상혁을 바라봤다.


"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렸지?"

상혁이 물었다.


"질문이에요?"


문득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


윤설은 이내 돌아서서 현관으로 향했다.

흙이 묻은 신발을 어찔 알았는지 툭- 툭- 털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

그녀가 문득 싱그럽게 웃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뭘?"

그가 물었다.


"사랑하고 있었다는 거"

윤설은 이내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 상혁을 바라봤다.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거"


상혁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천천히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윤설은 조금 웃다가 다시 조금 얼굴을 찌푸렸고,

햇살을 따뜻했지만 바람은 여전히도 차가웠다.

동백꽃은 이미 지고도 남았을 계절이었다.

그렇다면 이 붉은 꽃잎은 또 왜 떨어지는 걸까?


왜 바닥에 아픈 붉은 자국들을 자꾸만 남기려는 걸까?


화끈화끈 타오르는 불길처럼,

화끈화끈 뜨거운 그 자국들.


----------


상혁의 손수건으로 코를 움켜쥔 윤설은 

문득 민망한 듯한 탄식을 뱉어냈다.

손에 묻었던 새빨간 피가 어느새 검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상혁은 그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그녀를 인도했다.


"미안해요"

하고 윤설이 말했다.


"...뭐가"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말했다.


"손수건 또 못 쓰게 됐네요"


그 일상적인 한 마디에 상혁은 얼굴을 구겼다.

이 여자는 내가 그깟 손수건 보다 당신을 더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알면서 나한테 일부러 이러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들자 차오르는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하고 간신히 그가 대답했다.


"내가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아-"


현관에 도착한 윤설은 자기 대신 무릎을 꿇고 신을 벗겨주는 상혁에

얼굴에 가는 웃음을 띠고는 조용히 말했다.

미안함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상혁은 짜증이 나는 것만 같았다.


문득 그가 벌떡 일어났다.

상혁은 천천히 현관 안으로 걸어들어온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조금 놀란 윤설이 어깨를 움츠렸다.

상혁은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식으로 좀 얘기하지 마-"

그가 말했다.


윤설은 눈을 깜빡였다.


"당신 귀찮다는 생각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

꽤나 단호한 목소리였다.

상혁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말하지 마"


윤설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이제 안 그럴게"


"..."


"상혁씨가 나를 많이 챙겨주니까 고마워서 그런 거였어요"


그 말에 상혁의 손에서 힘을 빠지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간질거리게 이야기해서 버티기 힘들게 하는지.

모든 말과 행동들이 나에게 고난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당신은 왜 알지 못하는지.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고 있다는 사실에 상혁은 놀라 손을 내렸다.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나... 나는..."

그가 더듬거렸다.


"...?"


"나는 당신을"


"네?"

윤설이 물었다.


"ㅅ... 사...해서 그래"

그가 말했다.


"상혁씨 잘 안 들려요"


"나도... 사..ㄹ-"


"이제 들어와?"


상혁의 머뭇거림을 깨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타이밍이라고 상혁은 생각했다.

아무리 싫어도 등이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상혁은 눈높이를 맞추려 숙였던 허리를 펴고 몸을 돌렸다.

윤설은 그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두리번거렸다.

상혁은 그저 그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그도 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설, 이리 와"

원식이 말했다.


눈동자는 그에게.

이야기는 그녀에게.


겨울보다 차가워지는 둘 사이 온도.










우리 자주 걸을까요 

너는 아직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나는 너에게 대답을 하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오래 계속된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종로사가, 황인찬>


아 영리한 사랑이여 그대는 눈물로 나를 눈멀게 했구나,

잘 보는 눈이 그대 추한 결함들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소네트 148,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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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이고 혁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혁이 너무 짠내나요ㅠㅠㅠㅠㅠㅠ그냥 확 고백해버렸으면 ㅠㅠㅠㅠ 작가님 글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칭찬 고마워요!! 매번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하뜌♡
8년 전
독자2
불쌍한 우리 혁이ㅠㅠㅠㅠㅠ 신알신 뜨자마자 달려와서 읽었어요ㅠㅠㅠㅠ 아 우리 혁이 불쌍해서 어떡하죠 그냥 확 고백해버렸으면 좋겠어요 혁아ㅠㅠ
8년 전
무지개
혁이 너무 찌통이죠 8ㅅ8 항상 읽어주고 댓 남겨줘서 너무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8년 전
독자3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편이네요ㅠㅠㅠㅠ상혁이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날은 언제 오는 걸까요ㅠ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진찌 사랑은 타이밍인가봐요 ㅠㅠ 혁이가 둘을 지켜본다는 생각 없이 사랑했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을 텐데.... 우리효기 8ㅅ8
8년 전
독자4
이공이에요!
ㅜㅠㅠㅠㅠ오늘은 내용이 어렵네요ㅠㅠㅠㅠㅠ원식이는 왜이렇게 고민을 하는거고ㅠㅠㅠㅠ 상혁이도ㅠㅠㅠㅠㅠㅠㅠ찌통

8년 전
무지개
이공! 솔직하지 못해서 그래요 8ㅅ8 둘 다 솔직하지 못해서. 어쩌면 가장 용감한 사람은 설이 일수도.... 8ㅅ8
8년 전
독자5
세상에...원식이랑 혁이 사이의 긴장감이 저한테도 느껴지는것같아요..제가 다 눈치보는 기분..8ㅅ8 혁이도 식이도 안쓰러워요..8ㅅ8
8년 전
무지개
다들 마음아프다는 감상이 많아서 저도 8ㅅ8힝 매번 찾아와서 읽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하뜌♡
8년 전
독자6
세상에ㅠㅜㅜㅜㅜㅠㅜㅜ우리혁이 안쓰러워서 어째ㅠㅜㅜㅜㅜ
8년 전
무지개
혁이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 8ㅅ8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ㅠㅜ
8년 전
독자7
오.. 세상에... 오..... 안녕하세요 노예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지금 저의 심정을 말하자면 무지개님 그 특유의 표현방식이 너무 좋아서 지구 맨틀에 쳐박히고 싶은 심정..? ㅠㅠㅠㅠㅠㅠㅠㅠㅠ상혁이가 표현을 안했어서 그랬지 설이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네요ㅠㅠ맴찢.. 8ㅅ8....
8년 전
무지개
노예님! 매번 예쁜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요! 맨틀레 박히면 안돼요 8ㅅ8 블라인드 완결까지 보고가야졍 ㅠㅠㅋㅋㅋ
8년 전
독자8
구름이에요. 오늘은 좀 늦었죠. 삼각관계가 깊어지고 있네요. 나까지 괜히 초조해지는 기분이 드는거 있죠. 설이의 마음은 확실한데 왜이리 초조하고 시간이 아까운 느낌이 들까요?ㅠㅠ 오늘도 잘 읽고가요 작가님^___^
8년 전
무지개
구름- 찾아와줘서 너무너므 고마워요!♡! 맞아요 ㅠㅠ 설이는 정말 확실한데... 다들 왜 그리 초조해 하는 걸까요...?
8년 전
독자9
자까님...두이에요 오늘도 숨도 못쉬고 읽은 것 깉네요 앞에 잠깐 나온 독백은 왜 점점 새드엔딩으로 향하는 것 같죠ㅠㅠㅠ아휴 고백은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뱉지않고는 못 견딜 때 하는 거라죠 혁이한테 그 시간이 오고있네요ㅠㅠ오늘도 글 잘읽고 가요
8년 전
무지개
두이~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요! 설이만 감정에 솔직하네요 ㅠㅠ 다들 겁쟁이에요 ㅠㅠ
8년 전
독자10
연이왔어요 작가님~ 알람이뜨나안뜨나 들어왔다 나갔다했는데 알람이 떠서 왔어요ㅜ 역시 작가님글은 너무좋은데 삼각관계가 더 깊어진거같아요 어느한쪽은 디게 짠내날텐데 맘이넘나아픈것ㅜㅜ 다들 어서 표현을 잘해주면 좋겠어요 그럼 작가님 다음글도기다리고있을께요♡
8년 전
무지개
연이! 제가 요새 잘 못 들어와여 ㅠㅠ 개강너무싫타... 이번 화도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8년 전
독자11
아.....상혁아...왜이렇게 안쓰럽지..윤설이 원식이랑 잘 지내는건 좋은데 바라보기만하는 상혁이가 이제 안쓰럽네요ㅠㅠㅠ
8년 전
무지개
맞아요 쓰면서도 상혁이한테 미안했어요 ㅠㅠ힝 ㅠㅠㅠ
8년 전
독자12
정주행하고왔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짱ㅠㅠㅠㅠㅠ 신알신하고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신알신 고마워요!!
8년 전
독자13
정주행하고왔어요! 글에 빨려들어가는줄 알았어요 작가님 짱! 설이가 환한 세상을 마주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ㅎㅅㅎ
8년 전
무지개
정주행 해줬다니 8ㅅ8 진짜 너무너무 고마워요!<3
8년 전
독자14
정주행하고 왔습니다!ㅠㅠ 설이가 또 코피를...ㅠㅠ 처음에 봤던 설이는 이만큼 약해보이지 않았는데ㅠㅠ ㅠㅠ목숨에...지장이 있는건 아니겠죠?ㅠㅠ불안하네요ㅠㅠㅠㅠ 블라인드를 읽으면서 작가님을 얼마나 불렀는지ㅠㅠ 으앙 작가님ㅠㅠㅠㅠㅠ너무나 재밌는 글을 써주셔서 감사해요ㅠㅠ
8년 전
무지개
정주행 고마워요! 답댓을 지금에야 달다니 미안해여 ㅜㅜㅜㅜㅜㅜ 저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3
8년 전
독자15
작가님 ㅜㅜㅜㅜㅜ 오래 기다렸어요 ㅠㅠㅠ 잠시 못 오신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블라인드 글 복습하려고 검색해도 안나오는 거에요ㅠㅠㅠ 그래서 몇 일 계속 검색라다 안나와서 걱정 하고 있었눈데 오늘 초록글에 떠서 전 글 분위기랑 줄거리 이으려고 다시 읽으라 왐ㅅ어요ㅠㅠㅠ 작가님 글 진짜 언제 읽어도 가숨이 쿵하네요 여러모로ㅠㅠㅠ 심장에 해로워요ㅠㅠ 감정이입 잘 되게 섬세하게 ㅠ 작가님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8년 전
무지개
와 저도 정말 사랑해요 8ㅅ8 검색해도 안 나온다니 이상하네요 흑흑 편하게 찾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초록글에 떴어요?? 확인해봐야 겠다 히히!! 고마워요 항상♡
8년 전
독자16
으으으 아카짱 마음아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상효가ㅠㅠㅠㅠㅠㅠㅠㅠㅠ눙물눙무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설이는 안 아팠으면 좋겠따.....넘 찌통이지 않나요...?
8년 전
독자17
너무애잔ㅜㅜㅜㅜㅜㅡㅠㅡㅜ효가ㅜㅜ
8년 전
독자18
혁이 불쌍해ㅠㅠㅠㅠㅠㅠㅠ 어쩌면 혁이가 더 먼저 설이를 사랑했을텐데 사랑한단 말도 제대로 못하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흐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19
으아ㅠㅜㅜ원식이질투하는것도설레ㅠㅜ상혁이..찌통이지만진짜너무설레요 저원래삼각ㄱᆞ단계같은거싫어하는데 이건그런감정을덮어버리는문언가가있어여ㅜ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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