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서지지 못해서 안달하는 듯 애처롭게 울리는 그 소리.
가끔은 쇠에 부딪혀 고통의 신음을 흘리기도 했고,
미처 참지 못한 비명들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이어져 귀를 찢어놓을 때도 있었다.
나는 열린 문틈 사이로 그를 바라봤다.
하얀 셔츠 소매를 접어올리고는 손을 씻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인기척에 그가 나를 돌아봤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문을 열었고,
그는 나를 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잔뜩 묻었어.
내가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렇네?
그가 자신의 셔츠를 내려다 보며 웃었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단 말이야.
나의 핀잔에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이는 그 웃음에 맺히는 건지 미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은 결국 너도 나도 그런 미궁에 빠져버렸다는 것이겠지.
결국 너도 나도 함께 깨지 못하는 꿈속의 미로에 빠져버렸다는 것.
영원히 나갈 수 없는 미로.
너랑 나는.
의지도 자아도 없는 곳.
오직 탐욕과 본능으로,
더러운 욕망과 집착으로,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그런 미로.
벗어야 겠다.
내가 말했다.
벗겨줘.
그는 나를 바라봤다.
얼굴의 웃음기가 증발되어 있었다.
싱크대에 가득 쌓인 붉고 희한한 것들을 나는 바라봤다.
누구의 것인지, 아니 누구의 것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비릿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지 않았다.
오늘도 나갈거야?
내가 물었다.
글쎄...
그가 대답했다.
보름달이 밝았다.
안 벗겨줄거야?
그의 손끝에서 물이 뚝- 뚝- 떨어졌다.
투명하다기엔 붉은 기가 섞여 탁해 보였다.
손톱 사이사이 말라 비틀어진 검은 비릿함은 차마 지우지 못한 듯 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너의 주홍글씨니까.
단추를 풀르는 그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릿하고 끈적거리는 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주변에 있었고
지금 내 눈앞에 일렁이는 너의 매끄러운 가슴팍과
내 귓가에 들려오는 심장소리 속에서도 존재할 것이 분명했다.
비릿하고 끈적한 것들.
붉으면서도 검은 것들.
혈관 속을 유영하는.
피비린내 나지?
그가 가볍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내 얼굴의 감싼 손이 따뜻했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뜨거운 그의 숨이 나의 기도를 타고 넘어들어갔다.
화마에 올라탄 것만 같았다.
밀어붙이는 강한 힘에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싱크대에서 세 개의 손가락이 떨어졌다.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무서워?
숨을 몰아쉬며 그가 내게 물었다.
얼굴을 감싸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아랫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그는 웃었다.
마치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듯이.
무서워도 어쩔 수 없어.
다시 한 번 그 뜨거운 입술.
끈적한 입맞춤.
은밀한 움직임.
도망 못 가, 너는.
Bonnie & Clyde
넌 탈출구가 없는 미로와도 같아
전부 똑같아
영원한 갈망
MA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