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냄새"
체육시간이 끝나고 반에 들어서자마자 폴폴 풍기는 땀냄새에 반사적으로 입에서 나온 말이였다. 냄새의 주인공들은 흰 무지 반팔티, 아니 땀에 젖어 비치기까지하는 옷을 입은 남자애들이였다. 그래, 어쩐지 농구 열심히 한다했다. 니네가 열심히 한게 잘못이랴. 열심히 하면 날 수 밖에없는 땀냄새가 잘못이랴. 그냥 환기 하면 되지 뭐. 하고 내 자신을 토닥이며 악취때문에 목에 걸려 나올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욕지기를 간신히 삼켜내곤 집게손을 만들어 코를 틀어 막으며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여주야,"
"어?"
"춥지 않아?"
난 좀 추워서… 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하며 내게 창문을 닫을 것을 권유하는 아이였다. 아이는 반에서 이쁘장하다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자애였다. 염병, 너는 이 땀 냄새가 진정으로 느껴지지 않는거니? 분명 다음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시자마자 냄새난다고, 창문 열라며 잔소리 해댈게 뻔했지만, 이미 예쁘장한 여자애의 말에 내가 열어뒀던 창문을 합심하여 하나 둘, 닫아내는 남자애들이였다. 그에 나도 체념하곤 창문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했는데,
"미안한데,"
어디선가 달달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이상하다 아까까지만해도 분명 땀냄새만 그득했는데, 하고 의문을 갖음과 동시에 창문 손잡이를 잡고있는 내 손위에 타인의 손이 겹쳐졌다. 그에 이게, 뭔. 무슨 상황이지? 하며 내가 사리분간을 못하고있을 때 닫고있던 창문을 여는 남자애였다.
"열고 있자."
그 말을 끝으로 제 목부근의 천을 펄럭이며 '아 더워' 하더니 제 자리에가 앉는 남자애였다.
미친, 복숭아 냄새나.
그날부터였다. 원체 여자애들끼리만 똘똘 뭉쳐놀았었고, 또 새학기였기 때문에 이름도 모르던 남자아이가, 정확히 그날을 기점으로 뒤통수만으로도 구분 할 수 있을 정도로 내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남자아이를 보는 시간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을 기미가 안보였다. …엄마. 딸 심장 떨려.
운명을 믿는 편은 아니고, 금사빠는 더더욱 아니였다. 오히려 그 반대였음 반대였지. 근데 이상하지. 고작 냄새하나에 설레하다 결국 좋아하는 감정까지 싹틔우다니, 그리고 그런 내가 오늘로써 딱 7일 째 남자의 책상에 바나나우유를 두고있다니 말이다. 아, 바나나 우유. 뭐, 별건 아니고 내 나름의 관심표현이다. 초코우유는 뭔가 칙칙하고 딸기우유는 너무 여자여자하잖아. 아 바나나우유를 두는것도 그리 순탄하지 않았는데, 민윤기 그 아이가 꽤 일찍등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에 비해 나는 항상 지각 처리되기 10분전에 등교를 했던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내겐 고문 그 자체였다. 글쎄 잠과 아침밥을 포기했다니까? 아무래도 나 걔 진짜 좋아하나봐.
드르륵, 하고 미닫이인 교무실 문을 열었다. 이제, 교무실 책장에 꽂혀있는 반 열쇠가 걸려있는 출석부를 가지고, …어? 이상하다. 출석부가 없다. 그것도 우리반 출석부만. 7시도 안된 이 시간에, 설마 누가 먼저 와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아 일찍 출근하신 부장선생님 자리에 가 '저희반 출석부가 없어요...' 하고 물꼬를 트자 아, 아까 어떤 남자애가 가지고 올라가던데, 하셨다. 헐. 그 얘기를 듣고 내가 경악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손에 들고있는 바나나우유를 가방 속에 집어넣는 일이였다. 누구지. 누가 먼저 온거지. 애꿎은 입술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며 반으로 올라가 교실 문 앞에서 서성이길 여러번 심호흡을 몇차례 해대곤 간신히 교실 문을 여는데에 성공했다.
"ㅇ, …왜"
망했다. 설마, 설마 하던게 역시나가 되버렸다. 왜, 도대체 왜, 하필 빨리 온 남자애가 많고 많은 반 아이들 중에 민윤기 저 아이인건지. 이렇게 되면 내일은 얼마나 더 빨리와야 되는건지. 아니 당장에 지금 내 가방안에 들어있는 바나나우유는 어떻게 처치해야 할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 무슨 할 말 있어?"
"ㅇ, 아니야. 풀던 거 마저 풀어."
수학 문제지를 천천히 흝어보던 남자아이가 내 절규와도 같은 소심하고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을 때는 보는 시늉도 안하더니 말이다. 그에 온전히 나만 보고있는 아이가 부담스러워진 나는 문제지를 풀라고 말하며 남자의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이제 어떡하지? 어? 일단 뚜벅뚜벅.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가 내 자리에 앉았다. 공기의 흐름마저도 어색한 기분이였다. 그 와중에도 저 아이의 뒷통수를 보며 동글동글하고 예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나는 진짜 어디하나 모자른 애 같았다. 그니까 이 바나나우유를, 쟤가 보면. 와. 어떡하지 진짜? 대책이 세워질리 없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근데 쟤 머리색 예쁘네, 아니 바나나우유 어떡해. 무한 루트였다.
"…그렇게 해서 안 뚫리는데,"
"…어?"
"거울에 다 비쳐."
"어?!"
"나 자꾸 뚫어져라 쳐다보길래,"
"ㅇ,어? 아니야,"
미쳤네, 칠판 옆에 있는 거울에 내 모습이 다 비쳤댄다. 그에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있자니 다시금 드르륵, 하고 교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 그 예쁘장한 여자애다.
"어? 여주야 안녕!"
"어, 어 안녕"
"와 민윤기 와 있었네? 어쩐지."
예쁘장한 여자아이는 반갑다는 듯 내게 인사하곤 내 인사를 마저 듣지도 않곤 자신의 자리에 가방을 두고 제 자리가 아닌 남자아이가 앉아있는 앞 자리에 앉아 남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마저 변명 하고싶은데, 안 믿겠지. 사실 변명거리도 없어 입을 합. 다물었다. 그렇게 입을 다무니 졸려왔다. 둘이 꽤 친한가 보네.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예쁘장한 여자아이와 민윤기는 꽤나 많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둘의 반해 대체 학교를 일찍와서 어디다 써먹는 건지 모르겠는 나는 점점 졸려 오기 시작했다. 꿈뻑꿈뻑. 졸려오는 잠을 내쫒을 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팔을 쭉 피곤 베개삼아 베고 눈을 감으려 하자,
"근데 윤기야, 오늘 왜이렇게 일찍 왔어?"
아까부터 내가 묻고 싶었던 물음을 묻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대답만 듣고 자야지. 진짜, 왜이렇게 일찍 왔대. 궁금했다.
"뭐 좀 찾을 게 있어서."
뭘 찾길래...
"응? 뭐 찾는데?"
"그냥."
…그냥?
"뭔데 내가 찾아줄까?"
"아니. 그런게 있어, 바나나우유"
…?!
남자의 말에 내 가방에 있을 바나나우유가 생각났다. 아니, 잠깐만 그럼 일찍 온 이유라는게, 거짓말처럼 남자의 말 한마디에 졸음이 싹 가셨다. 이제 다시금 간신히 잊어가고있던 내가 바나나우유를 준 사람인 걸 들키면 어쩌지. 라는 고민을 반복하고 있자,
"바나나우유? 아 그 니 책상에 바나나 우유 올려두는애?"
"…알아?"
"…어, 어? 응!"
"누군데,"
"ㄱ, 그거 난데"
내가 한 말이 아니였다. 예쁘장한 여자애 입에서 나온 말이였다. 왜 저런 거짓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왜. 나는 곧 죽어도 말하지 못할 진실을 저렇게 거짓으로라도 말하려 하는 건지. 화가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바나나우유를 주는 아이라는 걸 전해줄 용기따위 내겐 없었다. 이놈의 성격탓이였다. 아, 근데 왜이렇게 억울하지. 둘의 투샷을 보고있자니 배알이 꼴려 더이상 반 안에 있기 힘들어졌다. 그에 신경질 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야, 이 망할놈의 성격아. 제발 일 좀해. 왜 말을 못해. 니가 찾는 바나나우유가 나다. 내가 너 좋아해서 그랬다! 왜 말을 못하냐고... 아, 망할. 생각만 했는데 화끈하고 빨개지는 얼굴에 내가 바나나우유라는 것을 밝히는 건 아무래도 글른 일이었다.
"…아,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빵떡같이 생겼어!"
화장실 거울을 보고 있자니 예쁘장한 여자애의 얼굴과 겹쳐보이며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껴졌다. 내가 소심한 탓인건 혹시 이 빵떡같은 얼굴때문이 아닐까 싶어졌다. 내가 그 아이처럼 예쁘장하게 생겼으면 이렇게까지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아니였다. 나도 예뻤으면 왠지 성격이 막 활발하고 그랬을 것 같, ‥ 성격아 미안해. 얼굴이 잘못했네. 으 아니야 그냥. 그냥! 내가 문제네.
"짜증나,"
에라이 이 바보야, 짝사랑 하나도 제대로 못하냐! 아 씨, 추워. 거울 속 나를 보며 질책하다 오들오들 추위에 몸이 떨렸다. 따뜻한 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도 예뻐지지 않는 나 자신에게 등을 돌려 화장실 문을 열고 반으로 향했다. 아, 아니 향하려고 했는데, 그게.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
"알아."
"어...? 어, 그래. 그럼."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마주한건 민윤기. 그 아이였다. 여자 화장실에 무슨 볼일이 있나보다. 싶어 비켜줄 겸 걸음을 옮기니 내 앞을 가로막는 아이였다. 아니, 내가 잘못느낀거겠지 하고 반대쪽으로 몸을 트니. 또 그쪽으로 길을 막는 아이였다. 그런 그 아이의 당황해 신발 코만 보고있던 시선을 옮겨 남자아이에게 두곤 간신히 말을 잇는 나였다.
"나 반에, 가려고 그러는데 좀,"
"너지 바나나 우유."
"…어, 어?"
"너잖아. 바나나 우유."
"…"
"다 티나. 나 좋아하는 거."
티를 낸적이 없는데 티가난대, 와 나 진짜 어떡하니. 쪽팔려, 숨고싶어.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갈까. 춥긴 하지만 이 상황에선 더할 나위없는 안락한 공간일 것 같은데,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때였다. 민윤기가 내 손목을 붙잡아 제 코로 갖다대는게,
"어, 뭐하는."
"딸기 냄새."
"어?"
"딸기 냄새 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목을 놔줄 생각이 없어보이는 아이였다. 어, 그니까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며 눈을 도륵도륵 굴리고만 있다 이내 얼굴 빨개졌다며 내 얼굴을 보며 입동굴을 보이며 웃는 남자아이에 누구 놀리나 싶어, 괜히 심통이나기 시작했다. 해서 남자에게 아직 붙잡혀 있는 내 손목을 비틀어서 빼내며 호기롭게 말했다.
"지, 지는! 복숭아 냄새 나면서,"
"어? 복숭아?"
"그래! 그래가지고 내가, 내가 향기 좋은 남자가 이상형인데! 너한테서 복숭아냄새 나서, 좋아가지고! 그래서 줬다. 그래 내가 바나나우유야. 됐어? 그니까, 웃지마, 이제 안 줄게. 어?"
그에 제 손목에 코를 갖다대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다 모르겠다는 듯 얄궃게 웃어보이며 말을 잇는 남자였다.
"안나는데. 남자한테 무슨 복숭아 냄새야. 근데, 너"
"그거야 니 냄샌데,"
"얼굴 빨개 졌다."
"…"
"내가 그렇게 좋아?"
그 날 부터였다. 내가 민윤기한테 단단히 꼬인게. 망할 민윤기. 내가 민윤기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우리 반에 마하의 속도로 빠르게 퍼졌고. 어쩌다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버린 우리 둘은 민윤기로인해 대학 동기들에게 역시 내가 민윤기를 좋아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아니 전보다 한술 더 떴지. 글쎄 내가 지를 고등학교 삼년내내 좋아했다고 소문내고 다녔다니까? 염병할 민윤기, 그렇게 민윤기의 놀림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설탕아, 니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쫒아다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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