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남, 그 이름하여 박지민이라.
"뭐하다 지금와?"
"몰라"
"아니 화장실 간다는 애가 왜, 아 담배피고 왔, 어? 이상하다 냄새는 안나는데, 너 진짜 뭐하다 왔어?"
뭐하다 오긴 삽질하다 왔다. 어물쩍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내게 대답을 요구하는 친구에게 흘려 말하곤 자리에 앉아 젓가락으로 앞에 놓인 안줏거리를 집어 오물대며 씹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말 걸지 말아달라는 내 무언의 신호였다. '응? 뭐라고?' 오물오물. '야' 오물오물. 더 이상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는 나를 짐짓 째려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곧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 친구였다.
"또? 또 어떤 여자가 싫은데?"
"이제 딱히 없어요. 누나."
저 선배는 질리지도 않나. 아까부터 옆테이블까지 다 들릴정도로 진짜.
"진짜? 그럼 좋아하는 여자는?"
"네?"
"있어, 지민아?"
신환회때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과 선배들의 귀여움을 혼자 독차지하더니 어느새 학교 애들에게 우리 과 이름을 대면, 아 그럼 박지민이랑 같은 과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 학교 다닌 지 1년 만에 박지민이 우리 과 얼굴마담이 됐다는 소리지. 으 오글거리지만 사실이다. 또 툭 터놓고 말하자면 처음엔 박지민 걔가 얼굴이 배우처럼 잘생긴 것도, 말 솜씨가 뛰어난 편도 아니라 왜 저렇게 박지민한테 껌뻑 죽지 하고 의문을 가질 때도 있었다. 진짜.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걸. 그런데 어쩌다 몇 번 대화해보니 알겠더라. 붙임성도 있고, 착한 성격에, 웃을 때 예쁘게 접히는 눈까지. 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 있잖아, 근데 웃는 게 예쁜 얼굴이면 어떻겠어. 좋아할 수밖에 없지. 물론 마지막 건 좀 억지.
아무튼 박지민은 우리과 여자아이들의 어마어마한 짝사랑 지분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누구에게도 절대 책 잡힐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만인에게 친절한 아이고 만인이 좋아하는 아이니까말이다.
"야, 너도 같이 나갈래?"
"어?"
"담배"
"아 나 아까 사오는 걸,"
술자리에서 담배? 흔한 일이었다. 보통 여자애들 화장실 가듯 우르르 몰려가서 피는 게 담배였다. 해서 아, 잘 됐다. 생각했다. 사 오는 것도 까먹었겠다 한 개비만 빌려달라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
그때 왜인지 어디선가 나를 진득하게 쫓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에 마저 대답하기를 멈추고, 그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시선의 주인공과 눈이 마주쳤다 박지민이었다. 박지민은 나와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고 그저 나를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마주칠줄은 몰랐는데, 언제부터 보고있었던 거지? 그에 왜 나를 보고 있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어 그 아이와 다시금 시선을 맞추니 버릇인지, 제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 제 입술을 매만지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내 시선을 강탈한 건 저 아이의 벌게진 엄지손가락 그러니까 내 담뱃불을 지지다 다친 손가락이었다. 아, 아프겠다. 연고라도 사줘야 되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습게도 담배 생각이 싹 달아나는 나였다. 진짜, 이상해.
"…난 안해 너네끼리 해"
"뭐? 너 금연해? 오빠가 그거 다 해봐서 하는데,"
"오빠는 무슨, 그리고 그런거 아니야."
"그래, 그럼. 금연 끝나면 말해."
"아 좀, 저리가"
"..."
저 아이 하나때문에 곧 죽어도 아까같은 자리는 꺼리지 않았던 내가, 거부하기는 물론이거니와 내 책임이 분명히 있는 저 아이의 다친 손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 아이의 눈치를 보고있는 것에 내 나름의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내 기분과는 다르게 내 시선은 곧장 그 아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러자 곧 지금까지 나를 보고있었던 건지 내가 시선을 돌리자마자 눈이 마주친 아이는 이번엔 왜인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훽 돌려버렸다 ...어? 뭐지. 어디서나온 무슨 자신감이였던건지 저 아이가 내 눈을 피하리란 생각은 들지않았어서 지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주는 남자아이때문에 든 당황이라는 감정에 눈을 느리게 꿈뻑이다 다시금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니 제 옆자리에 앉아있는 선배의 말에 대답하느라 바쁜아이의 모습만이 내 눈에 비칠 뿐이였다. 시끌시끌한 술 집 전경에 집에가자며 옆에서 나를 재촉하는 친구까지
혼란스러웠다.
대체 왜 방금까지 내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어보였던 아이가 이제는 내게 눈길조차 안 주는 건지. 난 또 왜, 저 아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 어울리지않는 행동을 늘어놓는건지. 아 나 진짜 없어보인다.
"야 가자니까. 차 끊기겠다."
"어, 어"
*
"어서오세요."
"...쿠바나 더블 아니 잠시만요."
"네? 네, 어서오세요."
염병, 맞다 금연. 코트 안 쪽 주머니가 휑하니 비어있으니 술집에서 나와 친구와 헤어지곤 습관적으로 편의점에 들려버렸다. 미친. 담배안핀다고 한 지 한시간은 지났냐? 아 나 진짜 잠깐만. 아니지, 아까야 박지민 때문에 괜히 미안해서 담배의 디귿자도 꺼내지 못했다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내가 왜 금연을 해? 내가? 참 나
"아니에요. 쿠바나 더블 하나 주세,"
"…여기 연고는 어디서 팔아요?"
어
"여기 앞에 보시면 물티슈 옆에요. 네, 네 거기"
"아, 여기, 얼마에요?"
"네, 1800원이요."
"그럼 이것도 같이 주세요."
어, 익숙한 뒷모습이. 그니까, 판매대 옆에 자리하고있는 조그마한 초콜릿들을 한 주먹 집곤 계산하는 저 아이는.
"5600원이요.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아까 쿠바나 더블이라고, 4500원입니다."
"안주셔도 돼요."
...박지민?
"네?"
"안주셔도 돼요. 안녕히 계세요."
내가 말한 담배를 꺼내 바코드를 찍곤 내가 손에 쥐고있던 카드를 건내받길 기다리고 있던 알바생이 뜬금없는 박지민의 안주셔도 된다는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많이 당황하셨죠...? 지금 저도 많이 당황스러운데요. 이게 무슨 상황 '네? 안녕히가세요' 라고 하는 알바생을 뒤로하곤 박지민에 의해 등 떠밀리듯 편의점 밖으로 나온 나였다. 그니까, 그니까 지금 이 상황은.
"너, 왜 여기..."
"이거 먹을래?"
아까 연고와 함께 한 주먹 집어서 산 초콜릿들을 선뜻 내게 내밀며 내 물음을 묵살시키는 아이였다. 분명 아까 내가 술집에서 나오기 전 까지만 해도 나올 생각도 양 옆, 앞자리까지 여자 선배들의 극성스러운 관심에 나올 수도 없는 상황에 있던 아이였는데 대체 왜 내 앞에 아. 모르겠다. 지금, 당장에 나한테 이거 먹을래? 하는 남자에게 마땅한 대답 할 말도 못 찾겠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응? 이거 먹어.' 대답이 없는 내 손목을 집어들곤 내 손바닥에 반 웅큼을 쥐어주는 남자였고, 곧 조그마한 초콜릿 중 하나를 제 이로 까 입에 넣곤 오물거리는 남자였다. 미쳤어. 이 상황에 오물거리며 초콜릿을 먹는 쟤도, 그걸 귀엽다고 관음하고 있는 나도. 둘다 미쳤지. 진짜.
"어느쪽이야, 집?"
"..."
"데려다줄게"
"어? ...괜찮아. 나,"
"아 연고발라야 되는데"
나, 혼자 갈 수 있어.라고 말하려 하자, 연고를 포장하고 있는 종이박스를 뜯어내려 시도하는 남자였다. 툭, 툭. 엄지손가락이 다쳐 온전히 종이박스를 뜯을 수 없는 건지 인상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시도해보는 아이였지만, 뜯어지려 생각하지 않는 종이박스였다. 해서 아까 초콜릿 비닐을 깠던 것처럼 제 이를 종이박스에 갖다 대려 하는 박지민이었다.
"그렇게하면 이빨 다쳐, 줘, 내가 할게"
"고마워"
"...됐다. 여기."
아, 진짜. 종이 포장을 벗겨내니 이번엔 뚜껑이 말썽이었다. '엄지손가락 다쳤다고 이런 것도 못하네.' 하고 시무룩해져있는 남자를 무시하곤 내 갈 길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거 다 나 때문에 생긴 상처잖아.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내가 지진 것도 아닌데 아 씨.
"줘 봐, 흉 지는 거 아니야?"
"아냐, 그정도는. 연고바르면 괜찮아질거야."
"...그러니까 왜"
"응?"
"왜 그랬어"
드디어 물어봤다. 대체 왜 그랬냐고, 네 일도. 내가 너와 긴밀한 사이도 아닌데 왜 내 담뱃불을 끄는 것에 이렇게까지 한 거냐고. 그런 이유가 뭐냐고. 미끈거리는 연고를 내 손에 묻혀 조심스레 벌건 그의 엄지손가락에 갖다 조금씩 발라주며 묻자니,
"응? 뭐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연고가 발라진 손의 반대 손으로 초콜릿을 집어 이로 초콜릿을 하나 더 까먹는 남자였다. 그에 내가 지지않고 '손 다친거, 왜 담배를 그렇게. 나 때문. 아니 나 때문은 아니지. 담배 때문? 아, 아무튼.' 하고 재촉하니 그제야 아 그거. 하고 탄식이 섞인 말을 내뱉는 아이였다.
"담배피는 여자 싫어해서"
"응?"
"담배피는 여자 싫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냥. 그게다야"
"...나, 지금 잘 이해가 안가서 그러는데 어, 내가 네 앞에서 핀 것도 아니고 또 굳이 골목길에서"
"맞다. 그리고 이 말 하려고 했는데."
"어? 무슨 말."
분명 아까 내가 한 물음과 관련된 말일 줄만 알았다. 오늘이 지나면 더 물어보기도 애매할 것 같아 더더욱 궁금한 박지민이 한 행동의 대한 답을 기다리며, 곧 내 질문에 대답해줄 박지민을 쳐다보고 있자니 박지민의 입에서 나온 답이란 건.
"머리 긴 거, 예쁘다고"
"..."
"나 머리 긴 여자 좋아하거든."
작가의말 |
아안뇨옹 독자들! 스크랩수랑 추천수 너무 무서워서... 막 번외나 연재안하면 진짜 나 큰일날 것 같아서 일단 +로 들고왔어요. 아 귀여운 한 댓글을 봤어여 ㅎ 지민이라면 어장에들ㄹ어가서 마음껏 헤엄칠 거라고 헤헿헿헤 귀여우ㅝ어엉
글로써 표현이 안되었을 수도 있을 거같아 하나 알려드리자면 여주=짝사랑 처음, 자존심 쎔. 이라면 지민이는 뭐랄까 고의적어장이아닌 불가항력적?ㅋㅋㅋㅋㅋㅋ 어장이라 보심됩닏. 여자들이 막 알아서 꼬여 지민=꽃 여자들=나비 자기가 하는 행동이 여자들을 설레게하는지 모르는?ㅠㅠㅠㅠㅠㅠ아 내 글 남주라지만 매력쩌네ㅠㅠㅠㅠㅠㅠㅠ
글구 정국이가 제일 싫어하던 과목이 지구과학이였대... 나 왜 이제알았냐고... 캐붕... 하... 아 폭군민윤기 ...글태긴가봐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