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선 향기가 나, 짜증날 정도로 달콤한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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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뿌린것도 아니었고, 샴푸를 바꾼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나를보고 넌, 무슨 향기에 꽂혔다는지.
친구와 복도를 지나가던 중이었다.
"야야, 저기 오네 권순영"
친구가 팔뚝을 툭툭 치며 턱짓 했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남자애들이 걸어왔다. 한눈에 봐도 삐딱한 선을 탄 양아치들. 상종할 가치가 없는 애들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역시 노란머리, 권순영이 있었다.
"쟤는 진짜 왜 저런 애들이랑 다니는지 이해가 안간다니까?"
맞다. 친구의 말처럼 별다르게 나쁜짓을 하는것 같지도 않았다. 소문이 더러운 애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고. 별다른 사고를 친 적도 없었고. 저의 친구들같이 여자와의 관계가 복잡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주목받게 된 이유는. 일단 하나를 꼽자면, 고집스럽게 노란머리만 고수한다는 점?
입학때부터 머리 색깔로 전교생의 화젯거리가 되더니. 교장실까지 불려 갔다와서도 여전히 저모양이다. 뭘 어떻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이젠 선생님들도 거의 다 포기한 상태다. 선생님들은 뭐 별다른 짓도 안하는데 노란 머리는 내가 참아준다.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권순영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다. 말이 워낙 없는지라. 입학한지 한달이 돼 가도록 권순영이 입을 여는 모습을 단 한번도 못 봤는데. 아무 말도 없는 권순영을 애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유는 권순영만 가진 눈빛 때문이다.
권순영을 둘러싸고 신비주의다 재벌 2세다 벙어리다 하면서 터무니없는 말들이 오가지만 정작 권순영 앞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그저 권순영의 귀에 그런 소문이 우연히 들려오면 자다가 깨어다 슥 쳐다봄으로써 입을 다물게 해 줄 뿐이다.
길게 찣어진 눈을 실제로 마주하면 아무 말도 안나온다고. 그 위압감에 눌려 아무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거라고들 한다. 난 한번도 마주쳐 본적이 없지만 전해져오는 애들의 소문이 자자하다.
아무튼 아마 권순영은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어 보이며, 그로 미루어 보아 나를 포함한 같은 반 아이라 해도 얼굴을 알아볼리가 없었다.
그런 권순영이 양아치 무리에 속하게 된것은 간단한 이유에서였다다. 양아치들이 권순영을 지들 무리에 끼우려고 그렇게 애를 썼나보다. 몇날몇일을 계획을 세우다가 겨우 한다는 말이 우리랑 다니자, 살살 웃으며 물어보는 것이었는데. 끙끙거리던 날들이 무색하게 권순영이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귀찮아서였을것이다. 그 이후로 권순영은 그 무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가 돼 버렸다.
에휴, 다들 권순영 하나에 왜 그렇게 난리인지. 권순영은 전교생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지금 나랑 걷고 있는 친구도 권순영이랑 한번 눈을 마주쳤다고 난리니까 말이다.
"눈을 마주쳤는데 와 내가 그런 눈빛은 처음 봤다니까?"
"그래"
"다들 노란머리 노란머리 하는 이유가 있다고"
"알았다고"
하루종일 호들갑을 떨더니 마침내 복도에서까지.
"야 잘봐봐. 쟤랑 눈마주치면 너 오늘 잠 못잔다."
도대체 어떻길래, 주변에서 하도 난리를 피우니 이쯤되면나도 궁금해진다. 가까워지는 권순영을 슬쩍 흘겨본다.
이렇게 대놓고 본 적은 처음인데 다시보니 저번보다 머리가 더 노랗게 보이기도 하고. 그다음엔 길게 찣어진 눈매. 와 진짜 묘하게 생기긴 했다. 이러니까 다들 주목하지.
무리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권순영은 여전히 무심하게 걷고 있다. 이때쯤이면 시선을 돌려야 하려나, 이제 바로 앞으로 다가온 권순영을 보며 갈팡질팡 고민을 한다. 이걸 피해 말아.
긴장되기는 친구도 마찬가지인지 팔목을 꽉 끌어잡는다. 그러는 사이 고민이 무색하게도 권순영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가고,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은 채 가던 길을 간다. 아 뭐야 괜히 긴장했잖아. 한숨 돌리며 복도에 잠시 멈춰선다.
그 순간 누군가 내 팔목을 잡고 아직 긴장이 덜 풀린 내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자. 와, 권순영이. 어지러운듯 눈을 감고는 표정을 찡그리고 있다.
내가 뭐 잘못한거 있나?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어깨빵이라도 쎄게 날린 모양인데. 난 그런 기억이 단 한 구석도 없다. 너무 놀란 나머지 멀뚱멀뚱 권순영을 쳐다보고만 있는데. 권순영이 느릿하게 눈을 뜬다.
그 눈빛을 본 순간 정신이 어질했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의, 상대방을 아무말도 못하게 만드는 차분한 눈빛.
그렇게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가 한마디 내뱉는다.
"냄새."
이제야 어지러움이 좀 가라앉는 듯 찡그린 인상을 펴는 권순영.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니 냄새."
환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존나 달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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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글잡에 글써보는건 처음이네요ㅎㅎㅎ1편을 기다리시는 분이 호옥시 있으시다면 여유롭게 기다려 주세여!!제가 글쓰는 속도가 많이 느려서여....아무튼 읽어주신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