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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김원식] 블라인드 33 외전 中 | 인스티즈




33 


자신의 손목을 꼭 잡은 그녀의 손이 아주 뜨겁다고 원식은 생각했다.

그의 볼은 아직도 화끈화끈거렸고 그의 심장은 그것보다 더 큰 열기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원식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윤설을 봤으면서도 다시 돌아온 것이겠지.

그녀를 가두고 그녀를 놓아버리고 결국에는 다시 그녀를 붙잡는.

악몽 같은 마지막 악장을 또 제멋대로 시작해버린 지휘자,

그리고 이제는 그런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그녀의 눈동자, 이 곡의 연주자.


영원한 카르마.


----------


"왜 돌아왔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원식은 굳은 채로 서서는 낯선 공간의 낯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설은 그의 그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서점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초침 소리는 이상하게도 크게만 들렸다.

속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그 창가의 블라인드들을 다 내려버린 윤설은 똑바로 서서 원식을 보며 물었다.

목소리와는 상반되게도 근본을 뒤흔드는 그녀의 질문에 원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가 아주 제멋대로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윤설은 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놓으며 이내 책장으로 향했다.

원식은 가만히 그녀를 눈으로 좇았다.

변함없이 흰 손가락으로 책장을 쓰다듬는 그녀의 움직임,

매번 야릇하다 느끼던 그 손가락의 접촉들과 한층 더 견고해진 눈동자.

그리고 그 목소리, 나긋나긋하게, 아주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자신을 흔들던 그녀의 목소리.

그 모든 욕망들을 숨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녀는 모를 거라고 원식은 생각했다.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던 그 비겁한 두려움이 얼마나 자신을 괴롭혔는지 그녀는 모를 거라고.

그래도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다는 것을 원식은 알고 있었다.


이건 다 그의 업보였다.


"내가 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

여전히도 책장을 훑으며 그녀는 말했다.


"...."


원식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한 층 가벼워진 옷을 걸친 그녀의 어깨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 당신을 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윤설은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들고는 종이를 넘기기 시작했다.

팔랑- 팔랑- 넘어가는 그 부드러운 소리가 익숙해서 원식은 식은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늦은 밤 침대 맡에서 책을 읽어주던 너의 그 모습이 변함이 없어서,

그 소리마저도 계속해서 나를 부르고 또 조르고 있어서.


욕한다 하여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또다시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찾았다는 듯 윤설은 책장을 넘기기를 멈췄고,

이윽고 돌아서서 원식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당신을 잊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원식은 꽤나 무표정한 얼굴로 윤설을 바라봤다.

윤설은 그의 그 표정에 화가 났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숨겼다.

복수에서 감정은 제 일의 배제 대상이었다.


"이거 읽어줘요"

윤설이 책을 건네며 말했다.


원식은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윤설은 이내 미간을 찌푸렸고 그에게 다가가 억지로 그 손에 책을 쥐여주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원식을 올려다봤다.

원식은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살짝 인상을 쓰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준 책 표지를 한참 바라보다 이내 다시 윤설의 눈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윤설은 이내 눈을 꾹- 감으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하도 깨물어서 붉게 변해버린 그녀의 입술은 봉숭아처럼 물들고 있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도 결국에는 피어나는 꽃잎과 같아 보였다.


좀 더 차갑고 좀 더 나쁘게 그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좀 더 모질고 좀 더 아프게 그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럼 그 악몽 같은 사랑도 잊을 수 있는 걸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멀리 돌아왔는데, 그렇게 당신을 찾아왔는데,

제멋대로 아주 예기치 못한 순간 마음대로 돌아와버린 당신에게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원망을 쏟아내야 하는 걸까.


.

.

.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읽어줘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고,

아마 기억 속 그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 그녀는 다시 그 검은 시야로 겨울의 정원을 걷고 있었다.

그림자 같은 당신의 품에 갇히고, 몇 번이나 같은 글을 당신에게 읽어주던 밤.

그 저녁의 쓸쓸함과 가끔 내리던 겨울비, 당신의 담배 향과 차가운 손.

그리고 그 입맞춤, 숨 막혀 죽어버릴 것만 같던 당신과의 키스.

시나브로, 내리는 비처럼 천천히 당신에게 젖어들어갔던 시간들.


원식의 한숨 소리가 다시금 정적을 매웠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매번 취하게 만들던 그 목소리가.


".....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윤설은 이내 팔을 들어 제 두 눈 위에 올려놓았다.

색- 색- 거리는 그녀의 숨소리,

책장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가락.


그의 손에 들려있는


Archive

아카이브


바랜 종이,

그녀의 점자.


"한 번 더"

그녀가 속삭였다.


한참을 그는 같은 구절을 읽어내려갔다.

그의 눈을 제 앞에서 눈을 가리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차가운 그의 손은 어울리지도 않게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그녀가 직접 남긴 점자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떠나버린 뒤로 한 번도 소리 내어 읽을 수 없던 그 구절을

그는 너무나도 손쉽게 그리고 견디기 어렵게도 뜨거운 목소리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그 한 문장.

단 한 여자가 네가 되어버리는

그의 그 이기적인 다정함.

끔찍한 다정함.


"나는 인류가 아닌 너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윤설은 그 목소리에 팔을 내리고는 고개를 바로하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원식을 바라봤다.

탁- 소리가 나게 책을 덮은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그의 동공을 보며 윤설은 

전에도 그가 저렇게 나를 봤던 걸까 하는 희한한 의문에 휩싸여 잠시 물속을 헤매듯 숨을 참았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그런 눈으로 내 보이지 않는 눈동자를 바라봤던 걸까?

그렇게 검은 그 눈동자로?


아- 너무 불공평하다.

이제야 마주한 당신의 눈은 너무 불공평했다.

눈을 보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던 당신의 감정들은

새카만 암막 같은 당신의 눈동자에 가려져 여전히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눈이 보이면, 당신의 얼굴을 보고, 그 눈동자를 보면 확신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당신의 감정들이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게 나는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너는 불공평했다.


윤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던 그의 고개도 비스듬히 기울 수밖에 없었다.

윤설은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는 몸을 기울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둘 사이의 거리에 이윽고 뱉어낸 숨결과 들이마신 숨결이 뒤엉켜 탁하게 섞였다.

원식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윤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 깃들 것들을 그는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솔직했던 그녀의 솔직했던 감정들을.


윤설은 그게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러 더 아픈 말들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애를 쓰고 있었다.


복수라고 했으니까.

복수라고 했으니까.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도 아무 말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더 시린 눈으로 그녀를 볼 뿐이었다.

눈물이 떨어지면 입술에 닿을 거리의 그녀를

이례 없이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버리지 말아달라 부탁한 건 당신이었잖아"

차가운 목소리였다.


"........."


"버려질까 두려워 애원하던 건 당신이었으면서"

그녀는 숨을 삼켰다.

"왜 날 버렸어?"


그는 여전히도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칼을 갈았다.


"너는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잔인해"


".....그래"


마침내 그의 입술 사이로 나온 한마디가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내가 못 미더웠어?"


"아니"


"하...!"

그녀가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뱉어냈다.

"결국 당신이 자신이 없었단 거잖아"


"맞아"


원식이 말했다.

윤설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다시금 붉어지고 있었다.


"도망 친거네"


"그래, 도망친 거야"


"그럼 왜 돌아온 거예요"


"......"


"도망 칠 거면 아예 사라져 버리지"

윤설이 말했다.

"왜 미련을 흘려"


"....."


"결국엔 다 미련 아니야?"


그녀가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시금 그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고,

원식의 눈동자는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저택 팔지 않은 것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그 내부도,

 어울리지도 않게 순한 강아지랑..."


"....."


"...그리고 점자"


"......"


"같이 있을 때 좀 읽어주지 그랬어요"


윤설은 이내 그의 앞에 곧게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원식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시선을 떨구고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네 말이 맞아"

하고 그가 말했다.

"내가 개새끼지"


"....."


이윽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원식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윤설은 그걸 쳐다보다가 이내 갑작스레 끌어당기는 힘에 쓰러지듯 기울어졌다.

놀란 그녀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소파에 앉아 있던 원식은 무릎을 자기 다리 사이에 간신히 걸치고는

팔로 제 어깨를 잡고 간당 간당 몸을 유지하는 윤설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다시금 숨이 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넌 그 개새끼 하나를 못 잊었네?"


"무슨...."


윤설이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나려 힘겹게 몸을 움직이자

원식은 제 손을 뻗어 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목에 감았다.

천천히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코 끝이 닿을 거리로,

아주 천천히.


"내가 전에 그랬지?"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젖히며 말했다.

"나쁜 걸 알고도 끌린 넌 얼마나 나쁜 거냐고"


"....억지 부리지 마요"

그녀가 지기 싫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는 낮게 웃었다.


"미련 흘린 거 맞아"

원식이 말했다.

"일부러 흘렸거든"


그의 숨결이 그녀의 입꼬리에 언뜻 언뜻 닿았다.

윤설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보이지 않을 때 가슴을 조이던 것들이

보이게 되자 이제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극복이 되지 않았다.


"착한 우리 그레텔이 잘 찾아왔네?"


"김원식씨!"


윤설이 화가 나서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원식은 그녀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그 팔을 가볍게 쳐버렸다.

중심을 잃은 윤설이 쓰러지듯 품 안에 쏟아졌다.

읏- 하는 가는 신음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제 품 안에 안긴 그녀를 원식은 꽉- 끌어안았다.


"...놔요!"

윤설이 몸을 비틀며 말했다.


"싫어"

원식은 아랑곳 않고 그녀를 더 세게 가뒀다.


"숨막혀- 놔-!"

그녀가 말했다.


"가만히 좀 있어"


"내가 무슨 당신 애완동물인 줄 알아? 시키는 대로 다 하게?!"


화가 많이 났는지 문득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소리쳤다.

손끝이며 발끝이며 다 새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


"...."


"그때도 그랬어! 옛날에도 난 바보같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했단 말이야"


힘껏 투닥거리던 윤설이 이내 그 움직임을 멈췄다.

아주 가쁜 숨소리가 그녀의 기도를 타고 흘러넘쳤다.

이제는 귀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헉- 헉- 거리는 숨소리,

울먹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 울음을 애써 내리누르려는 안타까운 노력들.


"춥다 그래서 따뜻하게 해주고, 듣고 싶다 그래서 읽어주고, 사랑받고 싶다 해서 사랑한다 그랬잖아-"


"....."


"내가 사랑한다고 그랬잖아-"


그의 팔이 문득 느슨해졌다.

윤설은 이내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는

손을 들어 얼굴을 훔쳐냈고 몸을 일으켰다.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이젠 다 필요 없어"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당신을 잊을 거야"


"얘기 다 했어?"


불현듯 그가 물었다.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손이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차가운 냉기가 다시금 그녀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윤설은 고개를 돌려 원식을 바라봤다.


그의 그 눈을.


아- 그의 눈는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나는....

이제 너의 눈이 보인다.


"미안해"

원식이 속삭이듯 말했다.


윤설은 그의 목소리에 습관처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말 한 마디에.


"미안해"


한 번 더 그가 말했다.

다시금 천천히 그는 그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윤설은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애써 견디며 입술을 비틀었다.


"짜증 나, 당신"


"보고 싶었어"


"거짓말 하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끌려가고 있었다.


"진짠데"

한층 가까워진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원식은 말했다.

"죽는 줄 알았는데"


"도망친 주제에..."


"그래, 도망친 주제에"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지 마-"


"안 웃을게"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숨이 자꾸만 쇄골에 닿았다.


"무서웠어"

하고 그가 말했다.


"...."


"네 눈이 보이게 될까 봐 무서웠어"


"....."


"네 눈이 내 추악함을 보게 될까봐"


"...그게 당신이 날 안 믿었다는 증거야"

윤설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맞아"

원식은 그런 그녀를 더 꽉- 껴안았다.


"알면 이제 그만 가버려"


"끝까지 좀 들어"


"끝까지 들어도 마음 안 바꿀 거야, 포옹은 이게 마지막이야"


"그럼 다행이고"

그가 낮게 웃었다.


윤설은 그 웃음이 아이러니해서 얼굴을 구겼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넌 나 사랑하잖아"


"무슨...!"

윤설이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

의외로 손쉽게 물러난 그는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윤설을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마음 안 바꿀 거라며, 그럼 계속 사랑한다는 말 아니야?"

그가 짓궂게 물었다.


"뭐?"

윤설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네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원식이 천천히 말했다.

"네 눈이, 한결같이"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유영했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살짝 벌어지는 그 입술 사이와 결국 새어 나오는 한숨뿐이었다.

아- 그래 이건 참 불공평했다. 언제나 그랬듯 너무 불공평했다.


당신은 나를 읽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진짜 열받아"

마침내 윤설이 콧등을 찡그리며 말했다.


원식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의 웃는 얼굴이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해서 윤설은 더 화가 나는 것만 같았다.

왜 생각보다 더 잘생기고 난리여서, 왜 생각보다 더 진실되게 얘기해서 한 번 더 믿게 만드는지.


"이제 끝까지 말해도 되나?"

원식이 다시금 그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


"....응?"


"내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사람 아니잖아요"


"잘 아네"

그가 낮게 웃었다.

"그래서, 어때?"


"뭐가요"


"보이니까 어떠냐고"


"몰라"


"그게 다야?"


"....좋다가 안 좋다가 했어요"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

"잘 보여서 좋았고, 당신이 안 보여서 싫었어"


"그랬구나"


"이해가 돼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버렸는데 내가 계속 당신 생각을 했다는 게 당신은 이해가 돼?"

문득 답답하다는 듯이 그녀가 물었다.


"응"

간단하게 그가 대답했다.


"진짜 무슨 자신감이야?"

그녀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는 원래 그랬어"

꽤나 진지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그의 손끝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너는 예전에도 그랬어"


"...."


"그렇게 더러웠던 나를 너는 사랑했잖아"


"...난...."


"그때도 이유 없이 사랑했잖아"

그녀의 볼을 타고 내려온 그의 손가락이 이내 가볍게 그 입술을 훑었다.

"내가 사랑한다 말하지 않을 때도"


"... 그럼 지금은"

윤설이 물었다.

"지금은 뭐가 달라....?"


"그래"

그가 문득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피할 수도 없이 짧은 입맞춤.

"지금은 더 솔직해졌지"


"..."


"미안해"

원식은 한 번 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미안한 것보다 더 사랑해서 미안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랑한단 말이야"


길고 얇은 숨이 윤설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말을 하고 있었고,

그의 입술도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볼 수 있었고, 또 들을 수도 있었다.


아- 그가 내게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대답을 해야지.


"아무리 빨아도 깨끗해질 기미가 안 보여"

그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


"사실 아까도 도망치고 싶었어"


"....근데 왜 다시 왔어"


"아까 말했잖아"


"기억 안 나"


"사랑해서"


"....진짜 이기적이다 당신"


"맞아"


"....."


"원래부터 더러웠던 거라 쉽게 닦이지가 않아"

그가 말했다.

"아마 계속 더러울 것 같아"


"......."


"그걸 보여주기 싫어서 떠난 건데..."


문득 그가 그녀의 품에 안기 듯 기댔다.

축- 늘어진 그 몸이 이상하게도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겁쟁이"


그녀가 말했다.

그 소리에 그는 쿡- 쿡- 웃었다.


"너무 화내지 마-"


그가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윤설은 눈을 흘겼다.


"변했다고 해도 좋아요, 그래도 난 당신에게 화낼 수 있는 지금이 더 좋으니까"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원식은 대답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마침내 같은 선 위에 서 있는 그녀를 보며.


커다란 그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목을 감쌌다.

이 야릇한 분위기를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괘씸해도 이길 수 없는 그의 태세 전환과,

매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수법들.


그의 입술은 그의 손과 다르게 매번 부드럽고 뜨겁기 마련이었고,

혀끝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향에 그녀는 홀리듯 취해 버리기 일쑤였다.

마약 같은 사람이었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가느다랗게 늘어지는 그 실 사이로 그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더러워도 사랑해줘"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각별했는지,

서로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어


<황병승 / 황소달리기 축제>





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청혼 /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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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하 일줄 알았는데 중이였군요ㅜㅜㅜㅜㅜ 작가님 사랑합니다...... 원식이랑 설이랑 다시 만나게 돼서 다행이네요;_; 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상혁이도 좋은 사람을 만나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제 욕심으로는 원식이랑 설이보다 훨씬 더요!
8년 전
무지개
저도 사랑해요 ㅜㅜ ♥상혁이도 행복할 거예요
8년 전
독자2
우와 중편이라니! 그럼 하편도 있는건가요(두근두근) 신알신 뜨자마자 기뻐서 달려왔어요*^ㅇ^* 원식이랑 설이랑 다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서 기뻐요;ㅅ; 원식이 분위기가 정말 누텔라처럼 발리네염..(누텔라가됨) 상혁이도 좋은 여자 만나길! 작가님 좋은글 감사해요❤️
8년 전
무지개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
8년 전
독자3
으어 세상에....저 신알신떴을때 중편이라는거보고 너무 기뻐서 광대가 안올라갔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흐어 하편도 있다니...너무 행복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세상에ㅠㅠㅠㅠㅠㅠㅠ둘이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결혼해ㅠㅠㅠㅠㅠ으윽 겁나 좋아ㅠㅠㅠㅠㅠㅠ운동하러 가야되는데 이거 보느라 자꾸 밖을 나가질 못하겠는거있죠...밖에 눈와서 추운데..ㅠㅠㅠ운동가기싫다ㅠㅠㅠㅠㅠㅠㅠㅠ아 그리고 원식이가 점자 읽을수있는줄 몰랐는데!!!외전보면서 설마설마했는데 진짜였다니!!!대박이에여...그리고 설이 걸크러쉬 쩌는것같아요...성격 넘나 발리는것...으윽 진짜 내가 델꼬가고싶은데 원식이 있으니까 참아야지...8ㅅ8 하 진짜 설이도 원식이도 이제 행복해질일만 남았네요 이거보고 저도 너무 좋아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___________^ 이제 하편끝나면 외전 다 끝나는건가요ㅠㅠㅠㅠ블라인드를 보내야하다니ㅠㅠㅠㅠㅠㅠ너무 아쉬운데ㅠㅠㅠㅠㅠㅠㅠ엉어우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드리고ㅠㅠㅠㅠ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ㅜㅜㅜㅜㅜㅜ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 설이는 진짜 눈이 보이니까 더 담대해졌어요 ^^ 저도 사랑합니다!
8년 전
독자4
이공이에요!!
후...핳....!!!!!! 기먼식 나쁜거처럼 얘기하더니 결국 잘 말했네요! 마음대로 떠나고 마음대로 돌아온건 진짜 나쁘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원하던대로 된거같아서 너무 좋네요ㅠㅠ!!! 그리구 중이라니여...중이라니.... 다음 편은 하 >ㄴ<? 핳♡ 오늘도 또 읽으러 다시 올라갑니당!

8년 전
무지개
이공! 원식이 밀당의 귀재라서 ㅋㅋㅋㅋ 하 편에서 또 만나요♥
8년 전
비회원235.21
외전으로 다시 와주신거 나무 감사해요ㅠㅠㅠ 매번 작품 감사합니다
8년 전
무지개
저도 매번 읽어주러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8년 전
독자5
노예에요..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대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드디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ㅠㅠㅠㅠ저는 예전부터 그가 내게 말을 하고 있구나. 나는 대답을 해야지 이 부분이 너무 좋았어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뭔가 이 글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는 문장인것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제 원식이와 설이가 서로 알콩달콩 사랑하는 일만 남았군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노예! 제가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기도 해요! 읽어줘서 고마워요!♥
8년 전
독자6
두이에요..작가님 저 죽을거같아요.....김원식하고 설이 얘기하는데 설이는 안타깝고 식이는 답답해서 가슴이 아팠는데 어느순간 저도 설이처럼 김원식한테 홀려가지고 막 말문이 막히는기분....읽으면서 막ㅠㅠㅠ아 너무 멋있고 로맨틱해요ㅠㅠㅠㅠ미치겠다 작가님 오늘도 사랑해요
8년 전
무지개
두이! 죽으면 안돼용 ㅜㅜ 외전 다 보란 말이야 8ㅅ8 저도 사랑합니다♥
8년 전
독자7
아진짜!!!! 너무재밋어요!!!!
8년 전
무지개
으잌ㅋㅋㅋ귀여워라! 고마워요♥
8년 전
독자8
나리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식아.... 미안했어 무서웠어?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설이는 안떠날껀데ㅠㅠㅠㅠㅠㅠ 둘이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네요ㅠㅠㅠㅠ 이제 짝짝꿍해라!!!!행복할일만 남았네요!! 오늘도 잘 읽고 가요!!♥ 항상 무지개님 글은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에여...... 오늘도 누텔라가 되고 갑니다.......
8년 전
무지개
나리! 이번에도 또 돌고 돌아 여기까지! 이 정도면 저는 좀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취미가 있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 누텔라♥
8년 전
비회원101.215
헉 너무 좋네요ㅠㅠ분위기짱짱...시구절 들어간기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해야하나 아유ㅠㅠㅠㅠㅠ 제 맘에 완벽하게 딱 좋아서ㅠㅠㅠㅠ혹시 노래 제목 알려주실수있을까요?ㅠㅠ 너무 제 취향이네요...
8년 전
무지개
Boy Epic - Fifty Shades 입니다♥
8년 전
독자9
작가님 솔직히 저랑 키쮸해!!!쪾쪾쪾쪾~~
8년 전
독자10
분위기 진짜 핵발리네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인간누텔라화의 현자우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8년 전
독자11
진짜ㅜㅜㅜㅡ김원식진짜ㅜㅜㅜㅜ
8년 전
독자12
아진짜 다시만나서너무다행입니다 얼마나가슴졸였는지몰라요 다시만나게주셔서감사해요 둘다 너무잘어울려요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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