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과 산나물>은 첫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나는 제작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이곳 저곳 쏘아 다니면서 배우들의 모습을 찍었다. 세트장에 따로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배우들은 간이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나는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 인터뷰를 짧은 시간 안에 끝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전 배우 연애설 그쪽에서 내지 않았나?"
"아, 네... 맞아요."
성량이 남다르신 스태프가 나에게 물었다. 촬영장이 조용해짐을 느껴서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다. 스태프는 능력 있는 신문사라며 껄껄 웃으면서 칭찬해줬지만, 주변의 공기는 차가워져 갔다. 나를 무슨 가해자 보듯이 힐끔거리는 몇몇 스태프들 때문에 괜한 피해의식까지 생기려 한다. 저 사람은 뜬금없이 저런 걸 왜 말해서. 애꿎은 스태프를 탓하면서 나는 급히 촬영장 밖으로 발을 굴렸다.
연예인들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사냥감이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사정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에게 신문사들, 특히 디스패치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며칠 전 큰 사건을 터트려놓고 그것의 주인공인 전정국이 있는 촬영장에 떳떳하게 취재하러 온 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아무리 연예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해도, 이제 새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는 전정국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는 건 드라마 제작사 측에서도 유쾌하지만은 않을 일일 테니까.
"후..."
혼자 밖에서 이런 생각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 역시 알기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촬영장에 들어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 보지 말자. 구석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마시고 촬영장 안을 둘러보자 이전 일정 때문에 늦게 도착한 전정국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 옮겨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갔지만 먼저 인사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안녕."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전정국은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아는 척을 해줬다. 주위 스태프들의 동작이 멈칫하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그것들을 애써 무시하고 인사를 받아줬다. 안녕.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전정국의 담당 코디가 그를 끌고 가서 머리와 메이크업을 손 봐주기 시작했다. 굳이 수정할 필요 없어 보이던데. 왜인지 모를 아쉬움이 들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전정국을 필요로 하는 모든 씬의 촬영이 끝났다. 나는 그의 연기하는 모습, 의자에 앉아 대본을 넘기는 모습 등을 찍었고 이제 인터뷰만 하면 내가 해야 할 일도 끝이 난다. 거의 4시간 동안 배우들을 쫓아다니며 찍어댔더니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팔을 주무르고 있었더니 스태프들 사이에서 촬영본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전정국이 나를 불렀다.
"오라고...?"
나? 지금 나 말하는 거야? 나 자신을 가리키며 재차 물어봤지만 전정국은 그렇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내가 저기에 껴서 할 일이 있나? 모니터링하는 모습을 찍어달라는 건가? 아, 이거네. 전정국의 말뜻을 이해한 나는 급하게 다시 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무리에 다가가서 셔터를 눌러댔다. 일하는 전배우의 모습, 이런 사진을 원하는가 보다.
"아니. 이리 와보라고."
열심히 각도를 취하며 찍어 대고 있었더니 전정국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저항할 틈도 없이 나는 스태프들 틈에 같이 끼여서 화면을 모니터링하게 됐다. 대체 내가 왜 이걸 보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전정국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감독님, 이전의 것 좀 틀어주세요."
연출은 여러 번 촬영한 같은 씬을 처음부터 다시 재생 시켜 줬다. 딱히 내가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슬금슬금 무리에서 빠져나가려고 걸음을 옮기는데 이런. 전정국에게 딱 걸렸다.
씁. 어린아이를 혼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전정국은 나의 어깨에 양손을 얹더니 나를 다시 화면 앞으로 끌고 왔다.
"잘 봐.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어느 게 가장 나은지."
지금 나한테 자신의 연기를 평가해달라고 한 건가. 내가 잘 못 들은 건 아닌가. 전정국의 얼굴에서 시선을 옮겨 그가 부탁한 대로 나름 열심히 촬영본을 봤다. 연기의 '연'자도 모르긴 하지만 두 번째로 재생된 영상이 가장 나은 것 같았다.
자신 없게 손가락 두 개를 전정국에게 보였더니 그는 망설임 없이 감독님에게 두 번째의 영상을 써달라고 했다. 그리고선 모든 모니터링은 마친 것인지 다시 한 번 모든 스태프에게 꾸벅 인사를 드리더니 나를 데리고 촬영장에서 빠져나왔다. 전정국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인근에 놓여 있는 벤치로 가 나를 앉히고 내 옆에 자신도 따라 앉았다.
"촬영장에서 인터뷰하면 신경 쓰일까 봐."
"아..."
"그럼 이제 인터뷰를 시작하시죠? 김 기자님."
그는 탑배우처럼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며 벤치의 등받이에 편안하게 등을 기댔다. 장난을 치는 듯한 모습에 나는 작게 웃고 크로스백에 접어 넣어뒀던 질문지를 주섬주섬 꺼냈다. 질문지를 완전히 펴서 내 무릎에 올려놓고 인터뷰에 필수로 사용되는 녹음기를 켜서 나와 전정국 사이에 뒀다.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서로가 내는 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첫 번째 질문. 팬들 사이에는 벌써 차기작을 찍냐는 걱정이 많던데, 혹 지난 작품을 마치고 휴식기를 취할 마음은 아예 없었던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쉬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죠. 그런데 제가 작품에 대한 욕심도 워낙 많고 여러 가지 배역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번 드라마의 대본을 읽자마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분들은 저의 건강을 걱정하시는데, 여러분 저는 괜찮습니다. 제 몸 튼튼한 거 다들 아시잖아요."
자신의 몸이 튼튼하다는 말에 강조하는 목소리에서 유머의 기운이 느껴져서 웃었더니 전정국은 왜 웃냐며 발끈했다. 발끈까지 할 일인가? 뻔뻔한 표정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더니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째려다 본다. 그래 봤자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전정국 씨.
전정국과 딜을 해서인지 약간은 동등해진 것 같은 관계에 나는 그를 편하게 대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인터뷰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선배는 무슨 질문을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데, 해도 해도 도무지 끝이 안 보인다. 심지어 질문들의 순서가 엉망으로 돼 있었다. 정리할 시간은 없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차례대로 읽어 나갔다. 고맙게도 전정국은 끝없는 질문세례에 성실하게 답해줬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네요."
"와-."
"...이게 왜 마지막에 있는 거지? 음, 전정국 씨. 본인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제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정민호'에요. 대기업의 간부인데 '정민호'라는 캐릭터는 그에 걸맞게 결단력 있고 머릿속이 오직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워커홀릭이에요. 저랑 닮은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서 더 몰입이 잘되요."
전정국은 약간은 외운 것 같은 소개말을 읊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하는 것의 주요 내용을 질문 옆에 작은 글씨로 받아 적었다.
"어떤 부분이 닮았다는 거죠?"
질문지에는 없었지만, 서로의 답에 다시 한 번 질문해 더 많은 대답을 유도해내는 인터뷰의 특성상 나는 어떤 부분이 닮았냐고 물었다. 조금 전에 캐릭터가 워커홀릭이라고 했었나. 전에 들은 답변이 길어서 나는 아직도 그것을 메모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전정국은 앞을 보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눈에 들여서는 안 될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점이요."
그의 말이 마치자 나는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누가 나의 뒤통수를 세게 내려친 듯한 느낌에 나는 멍청하게 새하얀 질문지를 쳐다봤다. 눈에 들여서는 안 될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 눈에 들여서는 안 될 사람... 방금 전정국이 뱉은 그 한 문장이 나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그런데 잠시만, 나는 왜 저 말에 걸려서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는 거지. 이 생각까지 이르자 나의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왜지, 왜야, 왜인 걸까. 왜 약간 화도 나려는 거지? 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거야.
"참, 나 연애설 났지."
"......"
"방금 것은 넣지 마. 너만 들은 거로 해."
연애설 난 배우의 인터뷰에 저런 말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나는 왜 나만 들은 것으로 하라는 전정국의 저 말이 좋을까.
*****
근래에 들어서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해진 적은 없을 거다. 나는 정확히 그날부터, 그러니까 전정국과 인터뷰를 한 날부터 전정국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게 됐다. 따지고 보면 평소에도 항상 그와의 일에 대해 생각을 하고 사는 편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약간.
"...일상이잖아."
말 그대로 일상이다. 하루 내내, 이틀 내내, 일주일 내내. 기분이 더럽게도 그와의 협상이나 그의 정보 제공자가 된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꾸 머릿속에는 그의 재수 없는 잘난 모습과 목소리가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대체 왜!!"
억울하다, 억울해. 침대에 눕힌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괴로워해 봤지만 그는 여전히 내 생각 루트의 중심에서 나가지를 않는다. 이제는 전정국이 미워질 경지에 이르렀다. 왜 내 심장이 네 생각을 할 때만 쓸데없이 팔딱팔딱 뛰는 건데. 이렇게 되면 나는 부정할 수가 없잖아.
'까똑!'
주인이 이렇게 심란해 있는데 멍청한 휴대폰이 알림음을 울려댔다. 그 알림음은 한 번에 지치지 않고 원몰타임을 외치는 듯이 몇 초 뒤에 또다시 울렸다. 누구야. 누군거야. 나 지금 기분 안 좋은데 누가 연락해.
"흐엑."
이 모든 일의 주인공. 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 '나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 같은 프로필 사진이 떴다. 일부러 일주일 째 전정국의 사진을 보지 않았건만,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뭐, 잘 생겼으니까 봐줄 마음이 약간 드는 것 같기도.
[카톡은 처음이지.]
[잘 지내?]
아. 우리 일주일 동안 연락도 안 하고 살았었지. 나는 매일 너의 생각을 하느라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지도 몰랐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 느껴졌다. 어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 자판을 눌러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쳐내려 갔다.
[응. 너도?]
[그럭저럭.]
그럭저럭? 너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구나. 나는 지금 너 때문에 그럭저럭 하지 못해. 혼잣말로 속마음을 중얼거리며 대화를 어떻게 이어야 하나 고민했다.
[이번에 면세점 광고 찍게 됐는데.]
[오.]
[상품권 좀 많이 받아서. 좀 가질래?]
오, 내 남자 면세점 광고도 찍었어요? 우쭈쭈-. 나도 모르게 민윤기를 덕질할 때 쓰는 말투가 나와버렸다. 내가 지금 누굴 보고 내 남자라고 한 거야. 나는 내 멍청한 주둥아리를 손바닥으로 퍽퍽 쳐대며 자책했다.
[괜찮아.]
너무 단호한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내가 보낸 메시지 옆의 1이 없어진 걸 보고 급하게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ㅎㅎ]
[그래, 그럼.]
[나 내일 화보 촬영 때문에 출국하는데 공항 사진 찍으러 올 거야?]
면세점 광고에, 화보 촬영에. 역시 나 같은 서민의 삶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구나. 상대는 탑배우인데 나와 비교해서 무엇하겠냐만, 전정국이 이럴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거리감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나.
[내일은 선배가 가신데. 난 안 가.]
일단 나는 전해 들은 바가 없으니 아마 선배가 가실 것 같다. 오랜만에 전정국을 보고 싶기는 하지만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나는 화면을 보며 괜히 입맛을 쩝쩝 다셨다.
[갑자기 웬 다른 기자.]
[그냥 네가 전정국 맡겠다고 해.]
[이젠 다른 기자 불편해졌어.]
그리고 나의 아쉬움이 무색하게 전정국의 빠른 답장이 나를 다시 한번 설레게 만들었다. 아무런 뜻 없이 정말로 다른 기자가 불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내 멋대로 과대 해석할 거야. 전정국은 나를 원한다고.
사담 |
안녕하세요 옴뫄야입니다 약 2달만..이죠?ㅎ (셀프싸대기) 이젠 자책하는 것도 익숙해질 것 같네요*.* 현생에 치이느라 이제서야 글을 올려봅니다 하하.. 행복했던 방학이 그립네요 (눈물) 저는 방학동안 8키로나 쪘답니다. 개학하면 살은 저절로 빠진다고 했던 인간들 다 잡아와!!!!!!!!! 이씨... asky(안생겨요)를 이을 안빠져요(abjy)네요ㅋㅋ
이번 글에 댓글이 달리는 게 더 신기할 것 같아여ㅠㅠㅜ 아마 다 잊으셨을 듯... 하지만 제 글은 심오하거나 딱히 그런 건 아니니까 어느 화를 읽어도 대충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을거에요ㅋㅋㅋㅋ약간 일회성이랄까 (자폭)
아무쪼록 모두들 현생에 화이팅하시고 덕질도 화이팅하세용^0^ 그럼 저는 다시... 현생에 치이러...20000 |
♥사랑해요♥ (암호닉 신청은 당분간 받지 않겠습니다!) (오타 수정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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