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전정국과의 거래는 꿈처럼 느껴진다. 정작 연예계 생활에 작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사람은 전정국인데 그는 의연했다. 정말 나에게 찍혀 줄 작정인가? 그의 말이 의심스러운 건 당연하다. 내가 정보 제공자로서 전정국에게 무슨 일을 해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는데 그는 어떻게 날 무턱대고 믿는 걸까? 머릿속이 뒤숭숭한 채로 사무실에 출근만 반복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윗선에서 일을 처리해줬다.
"김여주. 이거 봐."
조금 전 사무실에 도착해서 아직 몸에 찬 기운이 서려 있는 내게 호석 선배가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느릿하게 건네받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호석 선배가 걱정 서린 목소리로 물어와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전정국한테 들켜서 은밀한 거래를 했어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
"지금 팀장님이 너 나오래. 그거 들고."
"...네."
나는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팀장님이 있다는 사내 쉼터로 갔다. 구석 자리 테이블에 계신 팀장님 앞에 앉아서 기다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팀장님을 입을 열었다.
"BH엔터에서 그러더라. 전정국 공개 연애 발표권 디스패치한테 주겠다고."
"......"
"대신, 지금 준비 중인 기사는 접으라고."
혼부터 낼 줄 알았지만, 팀장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럴수록 주위의 공기가 내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막내야, 전정국이 먼저 냄새를 맡은건지, 네가 그걸 풍기고 다닌건지는 상관없어. 어찌 됐든 간에 이미 합의가 끝난 걸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이 일이 끝난 후에 네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한 마디로 '들떠 있었다'. 사무실을 벗어났다는 것에, 톱스타를 밀착 취재한다는 것에, 전정국이 나를 내치지 않는다는 것에.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런 여유롭고 즐거운 상황이 될 수 없다. 전정국에게 들킨 순간부터 나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던거다. 전정국도 자신의 지위와 명성이 있는데, 그가 눈 감아 줄 거라고 착각한 나의 자만심이 칼이 되어 내게 되돌아온 것이다.
"가봐. 그 서류 잘 읽어보고 시간 맞춰서 나가."
나는 팀장님에게 꾸벅 인사를 드리고 쉼터에서 빠져나왔다. 사무실로 돌아가서 서류를 확인하니 전정국의 연애설 상대와 그 둘의 모습을 언제 찍을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전정국에 비해서 아직 굳어진 입지는 없지만 요즘 영화계에서 떠오르는 신인 여배우의 얼굴을 보니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전정국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일게 기자일 뿐이고.
목요일 밤 10시. 자동차극장 데이트. 전정국이 알려준 것일 거다. 나는 조용히 전정국과 그의 연인을 따라가서 사진만 찍으면 된다.
*****
지금은 열 시 사십 분이다. 영화는 이제 막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고 나는 전정국의 모습을 선뜻 찍지 못하고 있다. 전정국은 평소에 몰고 다니는 BMW가 아닌 처음 보는 차를 끌고 나왔는데 선팅이 돼 있지 않아서 내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이러다가 기사 나가기도 전에 극장 안의 사람들이 저 모습을 찍어서 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팀장님의 말 따라 나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연예부의 막내로 남아 있을지, 부서가 옮겨질지, 아니면 최악의 경우지만 디스패치에서 쫓겨날지. 아니다, 이런 생각은 다 쓸모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 뒤처리나 잘해야지. 차 안에 울려 퍼지는 영화의 음성을 최대로 키우고 잡생각을 해치우려 했다.
'덜컥'
그 순간 조수석의 문이 열리고 전정국이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재빠르게 차 안에 몸을 담았다. 나는 어리둥절해진 채로 그를 올려다봤다.
"이러니까 알림이 안 들리지."
전정국은 오디오의 볼륨을 아예 없애버리더니 선반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내 휴대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읽지 않은 문자가 3통이나 왔다고 뜬다. 전정국이 확인해보라고 고갯짓을 해서 홀드를 풀었더니 모두 다 전정국이 보낸 거다. [잘 찍힐 곳에 차 댔어.] [지금이 영화 볼 때야?] [왜 안 찍어.]
"아..."
"차도 일부러 저걸로 가져왔는데."
전정국이 본인의 차로 시선을 잠시 옮겼다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조금 전 차 문이 열리는 바람에 들어왔던 차가운 공기는 어느새 우리 둘의 체온에 데워져서 포근하게 느껴진다. 그 편안한 느낌에 나는 입을 열어 답하는 대신 그의 얼굴만 봤다.
"무슨 일 있어?"
나의 착각이겠지만 전정국이 오늘따라 다정하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까 봐 괜히 감성적이게 변하는 내가 싫다.
"없어요. 그냥... 영화가 재미있어서."
"편하게 말하기로 했잖아."
아. 동갑이니 말 놓기로 한 것을 잊고 있었다. 민망함에 나는 괜히 눈을 굴려서 시계를 봤다. 어느새 영화가 끝나기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어쩌지. 또다시 전정국을 볼 일이 생길까. 아무리 생각해도 연예부에 남아 있기는 힘들 것 같아서 걱정된다. 나랑 전정국이 무슨 특별한 사이도 아니면서.
"김여주."
"......"
"네 상황 어떤지 알아."
"......"
전정국은 마치 나와 친구인 것처럼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전정국은 내가 궁금해하는 걸 알면서도 말해주지 못했을 일들에 대해 알려줬다.
내가 밀착 취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자신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 내가 입사하기 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 이 모든 것과 호석 선배가 연관돼 있다는 것.
"몇 년 전에도 내 스캔들을 내려고 디스패치가 나선 적이 있었어. 그 당시에는 호석이 형이 아직 얼굴 팔리지 않은 신입이었으니까 나를 쫓아다녔지. 나도 그때는 지금보다 덜 떴을 때였으니까 설마 누가 나에게 따라붙을까 의심하지도 않았고. 그런데 어쩌다가 형이 나한테 들켰고 결국 지금과 비슷하게 소속사에 알리는 대신 스캔들의 자극성을 한 단계 낮춰서 내보내기로 형이랑 합의를 보고 형은 내 정보 제공자가 돼 주기로 약속했어. 너랑 상황이 어때, 비슷하지?"
"그러네."
회의를 했을 때부터 호석 선배는 전정국에게 미리 내가 미행할 거라고 귀띔을 해줬을 거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왠지 어딜가나 나를 눈치챈다고 했어. 하지만 저번에 들었던 말에 의하면 전정국은 더 이상 정보 제공자를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묻자 전정국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형이 자꾸 일을 키우는 것 같아서."
"그게 무슨 뜻인데?
"사실 그냥 호석이 형이랑 김여주, 너희 선에서 입 다물면 전정국은 연애 말고 다른 건 잡을 게 없구나, 이렇게 끝났을 일인데 자꾸 회사끼리 합의를 보라고 해서. 그래서 지금 네 상황도,"
"그럼 호석 선배가 일부러 그랬다는 거야?"
생각이 여기까지 마치자 믿을 수가 없어서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전정국의 말이 맞다. 팀장님이 준 기간 동안 정말로 연애밖에 잡지 못했다면, 그럼 회사는 그거대로 연애설 기사를 내보냈을건데. 굳이 회사끼리 상의하라고 호석 선배가 시킨 거다. 내가 이렇게 내몰린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전정국은 긍정의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구는데 내가 어떻게 믿어."
어느새 차 안은 조용해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느라 말을 하지 않았고 전정국은 할 말을 다 했는지 가만히 나의 모습을 지켜본다. 다시 가봐야 하지 않아? 영화가 마치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해서 전정국에게 물었다.
"쟤랑 선후배 사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떠오르는 스타 뭐 그런 건데 나랑 기사나면 더 뜰 줄 아나보지. 며칠 전 급하게 소속사끼리 합의 본 일이야. 전정국은 내가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그냥 알았다고만 했다.
"그리고,"
"응."
전정국은 차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나를 향해 뒤돌아보고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듯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굴리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중요한 얘기라도 하려나 싶었는데 그는 별 게 아니라며 문을 열고 나갔다. 괜히 허무해진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짐을 느꼈다.
"다음에 또 봅시다, 김기자님?"
"뭐야."
장난스러운 마지막 인사에 나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정국은 문을 닫고 자신의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다음에 또 봅시다'라. 그러게, 다음에 또 만날 일이 있으면 좋겠다.
전정국이 다녀가고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해졌다. 별로 도움되는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친한 선배에 대한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건데. 해탈한 건가. 괜히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카메라를 꺼냈다.
렌즈를 당겨서 전정국의 차에 초점을 맞췄더니 며칠 후면 연인으로 전국적으로 기사 날 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둘은 전정국의 말마따나 선후배 사이이긴 한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신호를 보내려는 건지 나의 렌즈를 잠시 응시하던 전정국은 그대로 여자의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키스라기보다는 정말 입만 대고 있는 모습이 내가 얼른 찍어주길 바라는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잘 나왔네."
사진을 확인하니 연애설 증거 자료로 쓰여도 될 정도로 둘의 얼굴이 충분히 선명하게 나왔다. 잠시 고개를 들어 전정국의 차를 보니 둘은 어느새 몸을 떨어트리고 영화에 집중하고 있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 기사 작성을 해야 해서 차의 시동을 켰다. 자동차극장을 나서기 전 휴대폰이 짧게 진동해서 나는 빨간 불에 걸린 틈을 타 문자를 확인했다.
[너 연예부에 그대로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전정국]
나의 추측이지만 전정국은 아마도 차에서 나가기 전에 이 말을 하려 했던 것 같다. 괜히 신경 써주는 것으로 보일까봐 말을 꺼낼 수 없었겠지. 저 문자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고 반복해서 한 열 번쯤 읽었을까, 뒤에서 신경질적인 클락션 소리가 울렸다. 평소였으면 불쾌감이 들었을 법도 한데 나는 오히려 경쾌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아마 전정국의 문자 덕분이 아닐까 싶다.
*****
나는 그날 밤 기사를 작성하자마자 호석 선배에게 제출했다. 내 손을 떠난 기사는 전정국의 소속사에 확인받고 정확히 사흘 후에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젊지만 국민 배우답게 넓은 팬층을 소유하고 있는 전정국은 하지도 않는 연애를 축하받고 있다.
"막내야, 내일 <잭과 산나물> 첫 촬영인데 네가 가서 좀 찍어. 괜찮지?"
"네!"
전정국의 말대로 나는 연예부에 남아 있다. 아마 전정국이 회사와 얘기를 주고받았거나 팀장님이 힘을 썼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나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호석 선배만으로도 충분히 회사 생활이 불편해졌다. 호석 선배는 변함없이 내게 살가웠지만 나는 그가 껄끄러워져서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상태로 며칠이 보내니 선배도 업무와 관련된 전달 사항을 제외하고 더는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막내야~ 점심때 갈 식당에 자리 예약해."
"저번에 복사 시켰던 거 아직 김사원한테 있지?"
"네. 네."
한 번의 위기를 겪고 나니 회사 생활에 더 열심히 임하게 됐다. 막내인지 심부름꾼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는 연예부에 있는 게 가장 좋다는 거다.
*****
(다음 화 예고)
"전정국씨, 본인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제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정민호'에요. 대기업의 간부인데 '정민호'라는 캐릭터는 그에 걸맞게 결단력 있고 머릿속이 오직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워커홀릭이에요. 저랑 닮은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서 더 몰입이 잘되요."
"어떤 부분이 닮았다는 거죠?"
"눈에 들여서는 안 될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점이요."
사담 |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할게요ㅎ 저를 매우 쳐 주세요. ...반가워요^ㅠ^ 저 잊진 않았죠?ㅎㅎ(뻔뻔)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어씅요... 자세한건 말하지 못하지만... 예... 아시는 분들은 아실거라 생각합니다...약속한대로 아는 척 하지 말기...와하하!!!!!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욬ㅋㅋ진짜 면목이 없어요 암호닉 신청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해주셔서 놀랐고 기뻤어요!ㅠㅠㅜㅜ(감격) 제가 기간을 너무 짧게 잡은 바람에 놓치신 분들도 많은데 진짜 그 분들 댓 볼 때마다 맴찢...ㅜㅜ 다음에 받을 기회가 생기면 꼭 받고 싶어요 진심으로. 아직 가나다순으로 정리는 못했어요! 순서대로 쳐 내려간건데 찾기 힘들거에요.. 그럴땐 Ctrl+F! 분위기 전환ㅋㅋㅋ한답시고 작가 이미지를 추가해봤어여 참 고급지쥬? 네. 고급진 척하려 했는데 필명이 다 망쳤네요... 왜 옴뫄야라고 했을까... 자몽타르트 뭐 이런 상큼한걸로 할걸ㅠㅠㅜ 후회되네요 아래는 겹치는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입니다. 엇! 왠지 이 댓 내가 쓴 것 같아! 하시는 분들은 암호닉 공지로 가서 한번만 더 확인해주세요ㅠㅜㅜ 요 네 분은 반드시 암호닉 재신청해주시길 바랍니다ㅠㅠ 메일링 문제랑 관련 있는거라 중요해유! |
♥사랑해요♥ (암호닉 신청은 당분간 받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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