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찬백오] 연예인과 매니저의 갑을관계 w. 자몽누나 — 너 연예인 보려고 매니저했냐? — 그렇게 안봤는데 실망이네, 변백현 — 도경수 구경 나오지 말고 대기실에나 있어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디오 디오 하면서 노래 부르는거 떡하니 알면서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리가 나와? 큰 눈으로 날 똑바로 노려보면서 (정확히는 내려다 보면서) 화를 냈던 박찬열의 얼굴이 떠오르자 한번 더 부아가 치민다. 적어도 나한텐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였다. 내 인생의 , 그것도 청춘을 불태우는 이십대 중에 3년을 바쳐서 이 자리까지 올려놨는데. 이게 다 누가 발로 뛰어서 올려다 준 자린데! 배은망덕한 놈. 은혜라고는 코빼기도 모르는 놈! 천하의 상남자인 내가, 변백현이 내 연예인 박찬열 때문에 방송국 비상구 계단에서 질질 짜고 있다니. 이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은 평생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발달은 이거였다. 난 오래 된 디오의 남팬이고, 평소 예능 프로에 잘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디오가 우연히 박찬열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일부러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도 하고, 신나는 기분으로 박찬열의 집에 들러 기분 좋게 픽업을 했다. 거기까진 참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디오와, 아니 경수씨와 (아까 번호까지 교환했으니 이정도 호칭은 괜찮겠지) 박찬열이 같은 대기실이라는 것 부터가 시작이었다. 난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마치 소녀팬 마냥 수줍게 대기실에 들어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경수씨의 목소리에 그만 녹아버릴 뻔 했다. “찬열이 왔네. 오랜만이다. 여기는 매니저 분?" “아, 네! 벼,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방송국에 소문이 파다 하던데요? 제 남팬이라고" “네? 아니, 그게…하하…" 솔직히 쪽팔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붉어졌을 것만 같은 얼굴을 애써 손 부채질로 식히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나와는 달리 박찬열은 매우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내게 박찬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고, 결국 박찬열은 그게 화가 난게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점 몇가지. 첫째, 박찬열은 내가 이미 경수씨의 오래 된 팬이란걸 잘 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 핸드폰을 구경하는 녀석이 매일 봤을 내 핸드폰 배경화면은 경수씨의 얼굴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테마니까. 둘, 오늘 방송국까지 오면서 나 혼자 신나 주구장창 경수씨 얘기를 하는데도 화 한번 내지 않았다. 그랬으면 진작 화를 냈어야 하는거 아닌가? 왜 이제 와서 사람들 다 있는 방송국에서 이렇게 내 자존심을 망가트려야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지 신인 때 얼마나 고생해서 스케줄 잡아주고 하면서 여기까지 키웠는데.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운게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 모르게 울어댔다. 어차피 촬영 때문에 여기까지 올 스태프고 연예인이고 아무도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백현씨, 울어요?" 바보같이 비상구 문이 열리는 줄도 몰랐나보다. 한참 속으로 신명나게 박찬열 욕을 하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다름아닌 경수씨의 얼굴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초면인 사이에 이런 얼굴까지 보여주다니. 이 쪽팔림은 이루 설명할 수 없었다. 아예 내 옆에 자리까지 잡고 앉아버리는 경수씨 때문에 계속 숙이고만 있던 고개를 살짝 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저 깊은 눈망울에 빨려들어갈 것 같… 아니,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왜 여기서 울고 그래요." “네? 아니 그게…" “찬열이가 혼냈어요? 아까 자기 신경 안써주고 우리끼리 하하호호 했다고?“ “그런거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백현씨가 울 정도면 걔 성격에 엄청 심한 말도 했을 거 같은데." “……" “혹시 연예인 보려고 매니저 했냐고… 맞구나. 그랬구나." 정곡을 찔러대는 목소리에 그만 또 청승맞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우는거라는데, 난 망할 놈의 박찬열 때문에 하루에 두번씩이나 울고 말았다. 그것도 초면인 경수씨의 품에 안겨서. 박찬열이 싸가지 없는건 진작에 알았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준면이형이 소개시켜줬을 때 모르는 척 했어야 했었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래도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박찬열이 언제나 싸가지가 없던건 아니었다. 예전엔 말도 잘 듣고 (물론 반말을 쓰는건 지금이나 예전이나 변함 없었다. 내가 두살이나 형인데도) 적어도 이렇게 나를 면박주는 일은 없었는데… 이제 와 곱씹어본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한참을 펑펑 울다가 번쩍 정신이 들어 경수씨의 품에서 후다닥 빠져나왔다. “죄, 죄송해요. 촬영 들어가봐야 하는거 아니에요?" “아뇨, 감독님이 콘티 좀 수정하신다고 해서 딜레이 됐어요. 지금 쯤 들어가면 시간 맞을거에요."“그럼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아, 찬열이한테는…" “당연히 비밀이죠. 그럼 이따가 봐요." 어쩜 저런 천사가 다 있을까. 먼저 비상구를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다시 대기실로 향했다. 나도 스튜디오 가보고 싶은데. 가서 경수씨 어떻게 찍나 구경하고 싶은데. 몰래 가서 보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찬열의 후환이 두려워 다시 대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렸다가는 차 안에서 제대로 갈굴게 분명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촬영이 끝날 때 까지 핸드폰과 뽀뽀를 할 기세로 화면을 쳐다보며 열심히 손가락을 놀려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웅성거리는 바깥 소리가 들려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던지다 싶이 올려놓고는 소파 위에 드러누워 자는 척을 했다. 아마 이건 박찬열과 마주하기 싫어 내 몸이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리라. “야, 집에 가자… 뭐야. 잠이나 자고 있냐?"“자는게 뭐 죄라고 그래. 솔직히 네시간 동안 대기실에 갇혀서 뭘 할게 있었겠어." “너 오늘 처음 본 우리 매니저한테 너무 잘 해준다?"“그게 뭐 어때서. 그나저나 백현씨가 너보다 형 아니냐? 말버릇 하고는" “니가 무슨 상관인데. 가서 니 매니저나 불러와. 니 매니저는 니가 얼마나 갈궜으면 스케줄을 안 쫓아오냐." “휴가 간거야, 멍청한 놈아." 둘의 말 싸움을 들어주다가 결국 이제서야 잠에서 일어난 척 연기를 하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필 시선이 박찬열과 마주쳤고, 나는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차키가 있는지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며 나를 재촉하는 행동에 경수씨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목례로 대충 인사를 하고는 방송국을 질질 끌리다 싶이 빠져나왔다. 주차장에 들어서서 벤을 타고 시동을 거는데 갑자기 열리는 조수석 문에 놀라 옆쪽을 쳐다보니 박찬열이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 뒷자리가 아니면 타지도 않던 놈이 조수석에, 정확히 말하자면 내 옆애 앉아있는게 적응이 되지 않아 (사실 아까 박찬열의 면박 때문에 아직도 삐져 있었다) 일부러 차를 빼며 녀석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물었다. “갑자기 왜 거기 앉았어." “내 마음" 어휴, 저 싸가지를 진짜… 속으로 한번 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경수씨 반만 닮으면 얼마나 좋아. 매끄럽게 주차장에서 차를 빼 박찬열의 집 쪽으로 향했다. 슬쩍 조수석을 쳐다보니 어울리지 않게 창밖을 바라보는 박찬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잠이나 자버리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어색한 공기가 숨을 조여오는 것 같아 노래라도 틀어볼까 싶어 오디오를 재생시켰다. 아뿔사. 하필 아까 넣어놓은 경수씨의 앨범이 돌아가고 있었다는 걸 깜빡했다. 노래가 흘러나오자마자 정지를 누른다는게 나도 모르게 아예 오디오를 끄고 말았다. 안그래도 경수씨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을 녀석에게 부채질을 한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화는 내가 더 난 상황인데 이 와중에도 난 녀석의 심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천성이 매니저 임에 틀림 없었다. 슬슬 녀석의 눈치를 살피며 운전을 하는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하마터면 급정지를 할 뻔했다. “노래 듣고 싶으면 그냥 틀어"“엉?" “아까 화내서 미안하니까 노래라도 편하게 들으라고." 적응 안되게 저답지 않은 말을 꺼내는 박찬열을 쳐다보다가 이내 파란 불로 바뀌는 신호에 다시 엑셀을 밟았다. 박찬열은 아예 창문 쪽으로 몸을 틀어 눈을 감아버렸다. 아마 자기 딴에는 사과를 했다는게 꽤나 창피했을거다. 이럴 때 보면 영락 없는 애라니까. 집에 가면 저녁이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코너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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