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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녹차 전체글ll조회 1331l

 

 

 

 

 

 

 

 

경수는 자신이 잡은 내 외야 플라이볼을 하나씩,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 경수를 코치님이 의아하게 쳐다보았으나 경수는 아랑곳않았다. 가방 안에 넣을 때마다 꼭 공에다 입을 맞추고서, 유니폼 소매로 흙같은 것들을 다 닦아내곤 했다. 낡아서 실밥이 터진 그 공이 무슨 금덩어리라도 되는지 경수는 그 공을 정성스레 닦고, 또 닦았다. 하교길 버스 안에서도 가방 속에서 공을 꺼내 공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그걸 왜 챙기는 거야?" 경수는 날 보며 대답했다.

 


"네 마음이잖아."
"내 마음?"
"네가 진심으로 친 네 마음. 그 마음을 글러브로 잡은 건 나고."

 


경수가 환하게 웃었다.

 


"벌써 열 개째야. 너가 나한테 쏜 마음이."

 

 


[오백] 배트와 글러브
w.레녹

 

 

 

그 날 이후로 나와 경수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경수와 같이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다. 둘이 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늘 훈련 후에 끝까지 남아 같이 느긋하게 하교를 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이어폰 한 쪽 씩 나눠 끼고 같은 음악을 공유하고, 같은 시간을 나누며 우리는 가까워져 갔다. 서로 좋아한다, 말은 않았지만 우리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친구 이상의 스킨십에도 부담스럽긴 커녕, 두근거리고 설레기만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는 내 손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경수는 덕아웃에서 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배트에 송진을 바르듯, 경수의 손은 내 손등을 쓸어내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뱃 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입술을 꾹 깨물어야만 했다. 아마 경수는 내 반응을 보며 즐기는 것 같았다.

 

 

"하지마."

 

 

내가 경수의 손을 떼어내며 작은 목소리로 경수를 어를 때마다 경수는 웃으며 속삭였다. "왜? 좋잖아. 난 네 손 잡는 게 좋아." 경수가 이렇게 대답하면 난 할 말이 없어졌다. 입에 꿀을 바른 것 처럼,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입술 대신 심장이 대꾸를 하고 있었다. 경수가 내 손을 쓸어내릴 때마다, 내 심장은 마구 뛰어댔다. 안타를 치고 베이스를 신나게 돌 때 처럼, 생각보다 공이 내 배트에 잘 맞아서 우리 학교 야구장의 낮은 담장을 넘어갔을 때 처럼,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경수는 타자석에 나가서도 날 보며 웃었다. 대개 경수와 나는 훈련 경기 때 다른 팀에 배정되곤 했는데, 경수는 타자 석에 설 때마다 2루 쪽에 서있는 날 보며 햇살처럼 웃곤 했다. 그럼 나도 경수를 보며 희미하게 웃어 주었다. 경수는 우리 학교 야구부의 아이돌답게 큼지막한 홈런을 자주 날렸다. 베이스를 도는 경수의 눈은 항상 날 향해 있었다. 경수의 미소는 언제나 햇살 같았다. 경수와 같이 있으면 나는 경수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착각했다. 경수가 햇살인 것 처럼, 나도 햇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햇살에 가린 그림자였다. 같이 훈련을 하고, 같이 하교를 하니까 경수와 같은 급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참 멍청하게도, 난 내 능력을 '다섯 장'에 산 후에 며칠 동안씩이나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경수에게 가린 그림자였음을 감사하게도 다시 깨닫게 해준 건 감독님이었다. 훈련 준비로 경수와 같이 몸을 푸는데 감독님이 날 불렀다.

 


"백현아. K대, Y대에서 연락이 왔다. 꽤 좋은 선수라고 말을 했어."

 


감독님의 말에 난 그저 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다섯 장'을 등에 엎고 2류, 3류에서 꽤 좋은 선수로 진급을 했다. '다섯 장'의 위력은 컸다. 대학 두 군데서나 연락이 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다섯 장을 주고 대학 행 티켓을 산 건 우리 어머닌데, 난 감독님께 감사 인사를 해야했다. 돈을 주고서라도 능력을 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히 눈물이 났다.

 


"울었어?"

 


경수는 눈썰미도 좋았다. 감독님과 이야길 하고 밖으로 나온 날 보고는 조금 내 눈가가 벌게진 것을 귀신처럼 알아차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얼른 배트를 손에 쥐었다. "아냐, 하품했어." 나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고 배트를 휘둘렀다. 배트가 공기를 가르며 붕,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한참동안 붕, 하는 소리를 내며 배트를 휘둘렀다. 여태껏 살아온 18년 중 나에게 남은 진실은 이 배트에 묻은 손 때 뿐이었다.

 

 

"어제 잠 못잤어?"

 

 

경수는 말도 안되는 내 거짓말을 믿어주었다.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트를 쥔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손에 땀이 나서 축축했다. 까딱하다가는 배트를 손에서 놓쳐버릴 것 같았다. 경수는 날 물끄러미 보더니 글러브만 만지작거렸다.

 


"날씨가 꽤 쌀쌀하다."

 


경수는 그렇게 말하며 글러브 속에 감춰두었던 핫팩을 꺼냈다. 그리고는 내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어주었다.

 

 

"컨디션 안 좋은 거 같아서."

 

 

훈련 준비를 하기 전부터 미리 숨겨놓았던 건지, 경수는 가방 속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글러브 속에서 핫팩을 꺼내들었다. 경수가 핫팩을 넣어준 주머니에 금세 따뜻하게 열이 올랐다. 아마 얼굴에도 열이 올라 붉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붉어졌을 얼굴을 숨기느라 고개를 푹 숙였다. 죄라도 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서 나는 짧게 말했다.

 

 

"고마워."
"아프지 마."

 


경수가 내 말에 짤막하게 대꾸했다. 경수는 귀도 밝았다. 기어들어갈 만큼 작은 내 목소리를 경수는 용케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경수는 머쓱하게 웃고는 괜히 멀쩡한 모자를 고쳐썼다. "아프면 야구 못해." 고개를 여전히 숙인 채로 주머니 속 핫팩만 만지작거리는 날 보며 경수가 덧붙였다.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경수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핫팩이 터질만큼,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손이 떨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핫팩 속의 작은 알갱이들이 느껴졌다. 지금 내 마음 속에서도, 그렇게 작은 알갱이들이 톡, 톡, 터지면서 열을 내고 있었다. 금방 손에, 마음에 열이 올랐다. 이상하게도, 경수의 웃음만 보면 나는 부끄러워졌다. 연예인을 만난 소녀들처럼 나는 가슴이 주체하지 못할 만큼 두근거렸다. 나도 경수를 따라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억지로 웃는 거라 웃는 얼굴이 우스꽝스러웠을 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당긴 입꼬리에 볼록 솟은 볼이 파르르, 떨렸다.

 


"나랑 계속 야구해야지, 백현아."


 

응. 그래야지. 나는 경수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다시 떨려오는 손 때문에, 나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꼭 주었다. 내 떨리는 손을 경수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

 

 

훈련은 생각보다 일찍 끝이 났다. 여느 날 처럼 나는 평상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고, 느지막히 들어온 경수는 그런 내 옆에 앉아 mp3를 꺼냈다. 익숙하게 이어폰 한 쪽을 내 귀에 끼어준 경수는 노래를 틀었다. 여느 때처럼 흐르던 잔잔한 노래가 아닌 꽤 빠른 박자의 노래가 첫 곡으로 흘러나왔다. 늘 익숙하던 상황에 낯선 것이 하나 끼어들자 나는 반사적으로 경수를 쳐다봤다. 경수는 그런 날 보며 조용히 웃었다. "기분이 안 좋은 거 같아서." 경수는 그렇게 말하고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올려 노래의 박자에 맞춰 내 손등을 톡, 톡, 건드리고 있었다. 경수의 손가락 끝이 내 손등 위에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내 심장도 그에 맞춰 덜컹거렸다. 경수와 있을 때면 솟구치는 두근거림에 난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난 너랑 같이 야구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나도. 나도 좋다, 경수야.

 

 

"졸업하면, 너랑 나랑 같은 구단에 들어갔으면 좋겠어."

 

 

나도, 경수야. 나도 너랑 같이 구단에 입단해서 같이 야구를 하고 싶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야구장에서, 같은 공으로 야구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할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내 길은 이미 내가 '다섯 장'을 주고 닦아놓았기 때문에, 나는 그 길에 맞춰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경수의 말에 나도 그렇다고 내 마음처럼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경수는 대답이 없는 날 보며 여느 때처럼 햇살같이 웃었다. 그러면 난 또 그 햇살에 가린 그림자가 되는 것이었다. 너가 웃을 때마다, 난 그림자가 되어버린다. '다섯 장'은 내게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이 되었지만, 그 줄을 잡고 올라간 내 손에는 상처가 남아 지울 수 없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다섯 장'은 계속 내 마음 속에 자책감으로, 열등감으로, 족쇄처럼 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 터였다.

 

 

"나도, 경수야."

 

 

내 대답에 경수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쥐었다. 배트를 쥐고,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느라 거칠해진 손이 마주닿았다. 여자의 손처럼 부드럽진 못해도, 아무렴 좋았다. 나도 너랑 같이 야구하고 싶다, 지금처럼. 고등학교라는 우물의 하늘 아래서는 똑같은 선수인 우리가, 이 우물을 벗어나면 넌 깨끗한 프로로, 난 상처가 남은 아마추어로 길이 나눠질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동앗줄을 잡고 올라가느라 남은 내 손의 상처는 경수에게 보이지 않기로 했다. 상처는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으로도 족했다. 경수에게는 보이기 싫었다.

 

 

"너랑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 같이 야구할 수 있어서 더 좋고."


 
경수가 날 보고 환하게 웃었다. 햇살같은 그 웃음이 내 손에 남은 상처를 가려주었다. 경수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경수와 같은 햇살이 되는 착각을 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그림자라는 걸, 나는 애써 부정을 했다.

 

 

"좋아해, 경수야."

 

 

그리고 서로 말하지 않았던 마음을 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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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죠?

요새 집안에 일이 있어서...안좋은 일이 있어서...

한동안 문명과 동떨어져 살았네요.

 

저번 A편에 답글 못 달아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독자님들 좋아하는 거 사랑하는 거 잘 아시죠^*^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합니다.

몸 조심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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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ㅠㅠㅠㅡ백현이가말하는다섯장..ㅠㅠㅠㅠ다음편도기대합니다
10년 전
레몬녹차
댓글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행쇼입니다. 백현이 마음이 핫팩 같다니 너무 귀여워요ㅠㅠ 백현이가 자꾸만 경수는 햇살이고 저는 그림자로 비교하는게 마음이 아프지만 햇살이 있으면 그림자도 꼭 존재하는 거니까요. 비록 백현이의 꿈은 다섯장으로 겨우 길을 이어갔지만 그래도 백현이가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야구 했으면 좋겠어요. 경수도 백현이한테 힘 잘 복 돋아 주고 더 높게 날았으면 좋겠고. 레녹님 인생은 세옹지마예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반드시 있어요. 꼭 나쁜 일이 해결 되셨으면 좋겠어요. 글 써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10년 전
레몬녹차
행쇼님! 행쇼님 댓글도 핫팩같아요ㅠㅠ 늘 따뜻해ㅠㅠ 정말 행쇼님 댓글보면 없던 힘도 나는 것 같습니다! 행쇼님도 제게 햇살이에요! 아 진짜 저한테 행쇼님 없었음 어땠을까 싶어요...ㅠㅠ 늘 감동감동...!ㅠㅠ 맞아요, 행쇼님 말이 맞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 저도 많이 살진 못했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느꼈던 것들이에요. 근데 매번 겪을 때마다 적응하기는 힘든 거 같아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인데 그 당시엔 왜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ㅠㅠ 행쇼님 댓글 보면서 힘 낼게요! 이번에도 좋은 댓글, 힘이 되는 댓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10년 전
독자3
아이고 세상에 감사합니다. 백현이가 어서 마음을 진정시켰으면 좋겠어요 경수하고 같이 빠따를 즐겁게 붕붕~~~ 애들은 무슨 구단으로 갈까요 갠적으로 롯데면..좋을거..같은데....ㅎㅎㅎ 그리고 나쁜일은 곧 흔적을 지우고 사라질 꺼에요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조금 뒤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있을 거에요 고작 이런 댓글로는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어서 죄송하네여ㅠㅠ 좋은글 감사합니다
10년 전
레몬녹차
아이고 댓글 감사해요! 가만 보니 롯데 팬이신 거 같다...? 저도 롯데 팬인데!ㅠㅠ 백현이도 경수도 신나게 빠따를 휘둘렀으면 좋겠네요 저도...!ㅠㅠ 힘이 되는 댓글 감사합니다. 제 나쁜 일도 곧 사라졌으면 좋겠어요...ㅠㅠ 인터넷 상으로, 익명으로 받는 댓글인데도 왜 이렇게 힘이 되죠?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또 읽고 또 읽고 있어요. 힘들 때마다 보려구요...ㅠㅠ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4
아..ㅠㅠㅠㅠㅠ 햇살과 그림자라니 마음 찡 해지네요잉.. ㅠㅠㅠ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ㅠㅠㅠ애들의 미래가 참 궁금해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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