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0분째 백현은 거울앞에 붙어서 떨어질지 모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고 왼쪽으로 돌려보고 한숨 한번 쉬고,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문지르고 냄새를 맡아본다. 우엑, 자신의 정수리 냄새가 이렇게나 지독하다니... 충격을 받은 백현은 다시 머리를 감을까?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봤다.
7시 10분. 5분뒤면 찬열이 온다. 거울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백현은 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일로 좀 와봐바!"
"아침부터 와 이리 바쁘노?"
"엄마 내 오늘 못났나?"
"뭐가?"
"내 얼굴말이다... 못났냐고?"
"이쁘다, 긍까 빨리 학교가라"
"아 대충 말하지말고 좀 자세히 봐바!"
"아 개안타 안카나!! 고마 가라! 밖에 찬열이 와있다"
이씨... 자세히 보지도 않았으면서! 백현은 툴툴 거리면서 가방을 매고 현관문앞에 섰다. 이 문을 열면 찬열이 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귀자 백현아'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찬열이 백현을 반겼다.
"가자"
"아..어"
평소와 다를거 없는 등굣길, 백현의 학교에 다다를때까지 찬열과 백현은 별다른말을 하지 않았다. 몇발자국만 더가면 교문이다. 정말 이럴거면 왜 사귀자고 한거지? 백현은 속으로 툴툴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찬열이 백현의 손을 잡아왔다.
"현아"
"..와"
"공부 열심히하고..."
"뭐 언제는 공부 열심히 안했나..."
"약 잘챙기 묵고"
"응..."
"내 생각도 많이 하고"
"알았다, ... 어?"
"내 상각 마이 하라고, 내도 마이 할테니까"
"야... 박찬열"
"와"
"아니.. "
"싱겁기는... 낸 간다"
"어..."
찬열은 손을 흔들며 백현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찬열이 눈앞에서 없어지고 나서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백현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학교로 들어갔다.
* * *
피식, 피식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책을 펼쳐도 찬열의 얼굴이 있고, 창밖을 봐도 찬열의 얼굴이 있고, 칠판을 봐도 찬열의 얼굴을 있다. 고개를 저어도 찬열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야.. 변백현!!"
"네?"
"너 수업시간이 무슨 딴생각이야? 밖에 나가"
수업시간이 처음으로 쫓겨났다. 백현은 그 수업이 끝날때까지 복도에 서 있어야했다. 종이 울리고 백현은 교실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종대가 백현의 어깨를 툭쳤지만 백현은 반응이 없었다.
"야!! 변백현!!!"
종대가 백현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종대를 쳐다봤다.
"아씨!!! 고막 나갈뻔했다이가!!"
"니 뭔 생각을 그래하노?"
"아... 야 김종대"
"와"
"니 귀 일로 좀 대봐라"
"그냥 말해라"
백현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종대에게 속삭였다.
"내... 사귄다"
"누구랑?"
"누겠노?"
"..."
"니 머릿속 한사람"
"헐!! 대박!!!"
"조용히 해라고!"
"헐... 대박이다 진짜..."
"히히..."
종대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백현의 어깨를 잡았다.
"근데 니 그거때문에 집중 못하는기가?"
"뭘?"
"니 오늘 하루종일 수업시간에 딴생각했다이가"
"...어?"
맞다. 백현은 오늘 수업들은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니 오늘 점심에 뭐 나왔는지는 기억하나?"
"..."
"이봐라 이봐라 변백현 클났다"
* * *
백현이 교문을 나서자 멀리 찬열이 눈에 들어왔다. 베시시... 웃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백현을 발견한 찬열은 손을 흔들었다. 백현은 찬열에게 뛰어가서 손을 잡았다.
"공부 열심히 했나?"
"당연하지"
"내 생각도 많이 했고?"
"많이해서 탈이였다..."
"내 생각하는건 좋은데 수업시간에는 하지마리"
"...어"
산 넘어서 산이다. 또 다른 복병이 백현을 막아섰다.
* * *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요 근래 공부는 제대로 하지않고 찬열의 집을 들락날락하고 책을 펼쳐도 찬열의 생각만 하고 수업을 들을때도 찬열의 생각만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업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책 내용 또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월 사설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최악이였다. 여태껏 쳤던 모의고사를 통틀어 최고로 망친 모의고사였다. 언제나 언,수,외는 항상 1,1,1을 유지하던 백현이 못해도 1,2,2이였는데, 사설 모의고사 성적표에는 난생 처음 보는 숫자들이 인쇄되어있었다.
종대가 백현의 성적표를 슬쩍 봤다. 4,2,3 말도 안되는 숫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야... 니 이게 뭐꼬? 밀려썼나?"
"아이..."
"그카믄? 마킹 제대로 안했나?"
"아이... 똑띠했다"
"근데??"
"..."
"니... 설마"
"하아..."
백현은 손에 쥐고 있던 성적표를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백현은 자습시간에 교무실로 불려갔다. 담임 또한 백현의 성적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변백현"
"..."
"니 이게 뭐고?"
"...죄송합니다"
"니 요새 듣자하니까 수업시간에도 집중 안하고 멍때리고 딴생각 한다카드만?"
"..."
"맞나 안맞나 대답해라!"
"..."
"니 요새 연애하나?"
"...네?"
"니 요새 와카는데? 아직 고1이라고 쉽게 생각하는기가?"
"아니요"
'집중해라... 연애는 대학가서도 할수있다"
"예... 죄송합니다"
"가서 자습 마자해라"
백현은 꾸벅 목례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곧장 교실로 가지않고 백현은 화장실에 갔다. 양변기에 주저앉아 주머니에 든 성적표를 펼쳐보았다. 칸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학생 두명이 들어왔다.
* * *
※ 암호닉
ECO
니모
열블리
조무래기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