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보름달
몇일 전부터,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오래전, 마을 사람들의 무차별적인 사냥 탓에 황무지가 되어버린 위쪽의 숲에, 여우가 산다는 소문이었다. 이걸로 끝이라면 괜히 '흉흉한' 소문일까, 마을 사람들의 말로는 그 여우가 포악하기 그지없다 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 여우는 번뜩이는 핏빛 눈동자에, 새파랗게 하얀 털을 가진, 꼬리가 아홉개나 달린 망측하고도 무서운 생명체였다. 그 말을 동네 꼬마에게 전해들은 난 아이들에 의해 작은 소문이 와전되었겠거니, 하고 잊으려했지만, 그 아이들이 끝에 덧붙인 그 한마디가 뇌리에서 잊혀질 생각을 않았다. 언니두 조심해, 그 여우가 밤마다 몰래 우리 마을로 내려온대. 어른들 말로는 누굴 찾으러 내려온다나. 그 말을 다시 곱씹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에이, 설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걸음을 재촉하며 종종걸음으로 밤길을 홀로 걸었다. 그에 나뭇가지라도 밟은 듯, 내 발은 일순간 삐끗하며 이내 내 몸이 휘청이더니 바로 앞의 도랑이 얼굴과 점점 가까워왔다. 그렇게 꼼짝없이 도랑에 얼굴을 쳐박히게 될거라 생각하던 그때, 서늘한 손이 내 어깨를 세게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난 얼굴을 도랑에 쳐박히는 신세는 면했지만, 그 손아귀에 잡힌 어깨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한손으로 잡고, 한손으로는 땅을 짚은 채 주저앉아 있으면, 누군가 내 손 위에 제 손을 겹쳐오더니 이내 날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올려다본 그 손의 주인은, 앳된 외모의 남자아이였다. 조금은 부스스한 머리, 그리고 짓고 있는 그 환한 미소에 경계심을 풀고선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따라 웃어보였다. 내 표정을 잠시 응시하던 그는, 이내 따라 웃었다.
"괜찮아?"
조금은 걱정되는 듯, 경직된 표정으로 묻는 그가 귀여웠다. 내가 그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에 잔잔히 미소가 퍼지더니, 이내 다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변해선 내 발목을 살짝 건드리곤 울상을 지었다.
"많이 아프겠다... 괜찮아?"
그의 말에 다시 바라본 내 발목은 붉게 달아오른 채, 살짝 부어있었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통증에 인상을 쓰자, 그는 길가의 경사에 기대에 앉더니, 이내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좀만 쉬다가, 아프잖아."
마침 발목도 아팠던터라, 엉거주춤 그애의 옆자리에 앉아 멍하니 앞만 바라보면 불쑥 그애가 말을 걸었다.
"넌, 이름이 뭐야?"
그에 내가 대답하자, 그애는 함박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제 두 손바닥을 맞대고선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주구나, 이름 드디어 알았다!"
그말에 같이 웃어보이기도 잠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그렇게 살짝 의아한 마음에서 그애를 바라보면, 갑자기 환히 웃더니 제 이름을 말해오는 그애였다.
"난 권순영인데."
마치 내말을 막으려는듯이. 이상한 기분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봐야겠다, 이제. 내말에 순영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벌써 가게?"
그에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순영에게 횡설수설 말했다. 글쎄, 마을에 여우가 온대. 그것도 밤마다. 내 말에, 순영의 눈이 갑작스레 번뜩이기 시작했다. 여우,? 하고 되묻는 순영의 표정이 이질적이게 와닿았다면 설명될까. 그렇게 잠시동안 손가락을 까딱이며 순영이 무언갈 생각하는 동안, 난 그자리에서 일어난 그대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날 붙잡는것처럼, 발이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그 여우가 무엇하러 밤마다 마을에 내려온대?"
입술 한쪽에 미소를 살짝 걸친채 묻는 순영에 식은땀이 이마에 맻히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질린 내 얼굴은 본건지, 순영은 내게로 다가와 제 손등을 내 이마에 가만히 대었다. 이마에 닿은 그의 손은, 소스라칠정도로 찼다. 그리고 그 순간에마저 난 내 몸의 단 한 부분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해봐, 여주야. 그 여우가, 마을에 내려오는 이유가 뭔데."
순영의 부드러운 물음 사이의 눈빛엔, 강압적인 기운이 서려있었다. 벌벌 떨리는 입술로 순영에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 누굴 찾으러, 내려온대. 내 대답에 순영은 만족한 듯,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곤 입맛을 다셨다. 그리곤 물기어린 입술을 내 귓새에 대고 속삭였다.
"근데, 어쩌지 여주야? 그 여우가 드디어 찾았네, 너를."
정신을 놓을 것만 같던 그 순간에 마주친 순영의 눈빛은 더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바닥에 떨어지려던 찰나 내 허리를 움켜쥔 그의 손은,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줄곧 욱신거리던 내 어깨엔, 선명한 손톱자국들이 수놓아져있었다.
눈을 떴을 때 마주한 광경은, 외딴 숲속에 뉘여져있는 나와, 내 주위를 둘러싼 무성한 나무들이었다. 놀란 탓에 헙, 하고 숨을 들이쉬며 일어나자, 곳곳에서 일사불란하게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더불어, 속닥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도령님께 말씀드려야 하는거 아니야? -맞아, 저 분께서 깨어나시면 말하라고 하셨어.
그렇게 얼마동안 몰래 귀기울이고 있었을까, 어느새 작은 아이 하나가 내게 도도도 달려오더니 내 손을 잡고 일으켰다. 도령님께 가요! 그 말과 함께 정신없이 향한 곳은, 작은 집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문을 두드리자마자 문을 열어준 사람은 순영, 그였다.
"왔어, 부인아?"
그말에 펄쩍 뛰었다. 누구 맘대로? 내가 기겁하자 순영은 더 환히 미소짓더니 대답했다.
"그냥 여주라고 부르기엔 밋밋해서, 부인아."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내 어이없는 표정에도 아랑곳 않은 채, 순영은 내 한쪽 팔을 잡아채더니 집안으로 황급히 들였다. 졸지에 막연히 그와 둘만 남게되버리자, 답답함에 난 순영에게 따지듯 쏘아붙였다. 뭐하는 짓이야, 지금 이게. 인상을 쓰며 묻는 나에게 순영은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다시금 뻔뻔한 자세로 대답했다.
"뭐긴, 부인이랑 같이 살려는거지."
"평생"
순영의 말에 깊게 심호흡을 하곤 말했다. 나, 집에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 있으니까,
"거짓말, 부인은 형제자매도 없고 장인 장모님께서는 일찍 돌아가셨잖아."
내 말을 끊어먹는데다가 오래전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하다하다 '장인 장모'라 칭하는 순영이 이젠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의 기세에 말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그치만 마을에 사랑하는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어. 내말에 순영은 미소를 얼굴에서 일순간 지워버리더니 날이 선 어조로 말했다.
"박 진사 댁 아들은, 몇일전 장가 간 걸로 아는데?"
말을 마치자 마자 잡혀오는 손목에 막연한 두려움이 온몸을 타고 퍼졌다. 어떻게 이렇게 날 꿰뚫고 있는지 몰라 미칠 지경이었다. 순영은 내 손목을 잡은 그대로, 내게 가까이 다가와선 말했다.
"부인, 나랑 살자."
그렇게 말하는 순영의 눈망울이 일렁였다. 그 눈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물었다. 왜, 하필 나야. 내 말에 순영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곤 대답했다.
"그야, 부인이 날 여기있게 해줬으니까."
그말과 함께, 어느새 내 앞에 있는 건 순영이 아니었다.
내 앞의 그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 흰 털에 위협적으로 찢긴 눈매, 그리고 그 중심의 붉은 눈동자. 무엇보다 살랑거리는 아홉개의 꼬리. 놀랍게도, 여우는 말하기 시작했다.
"부인이 나 구해줬잖아, 그때."
그 말과 동시에 기억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길 한쪽에서 죽은 듯 누워있던 작은 새끼여우. 거의 죽을 듯, 색색거리는 그 모습이 마음아파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였었고, 다음날 일어났을때 그 여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작은 여우가, 이렇게나 큰 구미호가 되어 나타나다니, 멍하게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느새 순영은 여우의 모습에서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날 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이제 부인이 여기 있는 이유, 알았지?"
항상 그렇지만, 순영이 무언갈 물을 때면 대답을 할 수 없어진다. 눈동자에 결박당하는 느낌, 이라고나 할까.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자니 천장이 핑글핑글 도는 것만 같았다. 눈이 감기려는 순간, 순영의 속삭임을 듣고선 온연히 정신을 놓았다.
"이제 부인은 절대 어디 못가."
그 이후로 항상 순영의 품 안이었다. 순영은 내가 저 없이 한발자국이라도 떼는 꼴을 못봤고, 그런 난 순영의 눈초리가 무서워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말로만 듣던 그 소문의 '여우'와 함께하는 일상은 알게모르게 나를 죄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평생 놓지 않을것만 같던 순영이 어느날 곤란한 표정으로 날 안아오며 말했다.
"부인... 중요한 일이 생겨서 나가야할것 같은데..."
순영의 그 한마디에 눈이 번쩍 떠졌다. 순영은 줄곧 걱정된다는 어투로 내게 혼자 있을 수 있겠냐 물었고, 난 그에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고말고.
"부인, 어디 가면 안돼. 알았지?"
순영은 이말을 끝으로 문 밖으로 나섰고, 창문을 열어 순영이 내 시야에서 온연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난 곧바로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발에 닿는 땅의 느낌에 쾌재를 부르던 것도 잠시, 혼란에 빠졌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발이 아파오는 것도 모르는 채로 걷기만 1시간 째, 모르는 곳에 당도했다는 사실에 눈물이 눈가에 맻히기 시작했다. 하물며 이곳은 순영과 줄곧 있었던 곳과는 다르게 나무와 풀만 우거진 숲속 같았다. 밤의 어두운 하늘에 비춰진 숲의 풍경은, 나를 목놓아 울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럴거면 순영의 말대로 집에 가만히 있을껄,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순영이 간절히도 보고싶다는 생각에 되돌아가려던 찰나,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밟은 나뭇가지 탓에 발에선 피가 베어나왔고, 한계라고 느낀 난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영이 여기까지 찾아와주진 못하겠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 찰나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드는 불길한 생각에 손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하얀 빛깔의 구미호였다. 무서움이 극한에 달한 난, 그자리에서 펑펑 울어제끼기 시작했다. 구미호는 빠르게 내게 다가오더니 이내,
"부인아!!!!"
순영이었다. 온몸에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순영의 품에 안겼다. 내 흐느끼는 소리에 순영의 거친 숨소리가 섞여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무말 않고 걱정어린 눈빛으로 내 눈가를 지분거리던 순영은 이내 미간에 힘을 살짝 주더니 말했다.
"우리 부인 어디 도망가려했어."
그 강압적인 말투에 딸꾹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보며 못말리겠다는 듯, 순영은 살짝 웃어보이더니 이내 날 그대로 바닥에 눕히곤 내 위로 살짝 올라탔다. 위에서 본 순영의 얼굴은, 과연 여우라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았다. 그대로 날 홀리듯, 내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순영은 점점 제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에 들이대었다.
"부인, 도망가지 말라고 내가 말했잖아, 그치?"
"부인 없어진줄 알고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데."
"이렇게 내가 자꾸 부인 찾아다니게 만들꺼야?"
"다음에 또 도망가서 내가 부인 찾으면,"
"확! 잡아먹어버린다?"
꽃봉오리 |
생일 기념으로 200만년전에 올린 글에 [감자오빠] 꽃님께서 신청해주신 소재에요! 쓰는데 2주가 걸려버린.... 정성들여 썼어요... 이뻐해주란말야요...8ㅁ8 슬슬 신청글 다 끝내구! 연애사도 마저 쓰고! 연애사야... 제발 좀 잘 써져라.... 후.... 꽃님들 싸랑해요오오옹~~~~ |
꽃님들♡ |
11지훈22/ 모시밍규/ 이지훈제오리/ 히아신스/ 마그마/ 감자오빠/ 박제된천재/ 디켄/ 전원우향우/ 반달/ 삐뿌삐뿌/ 일공공사/ 절쿨/ 이다/ 비타민/ 밍뿌/ 버승관과부논이/ 우지/ 태후/ 채꾸/ 0103/ 새우양/ 또렝/ 쫑/ 권호시/ 케니/ 레몬유자/ 최허그/ 0320/ 햇살/ 남양주꼬/ 새싹/ 투녕/ 단오박/ 키시/ 별림/ 사향장미/ 닭방/ 하롱하롱/ 애인/ 권수장/ 쪼꼬베리/ 샘봄/ 별/ 돌하르방/ 담요/ 목단/ 아글/ 닭키우는순영/ 꽃밭/ 만떼/ 호시주의보/ 눈누난나/ 오투/ 울보별/ 조끄뜨레/ 에네/ 핫초코/ 라별/ 뿌뿌뿌뿌뿌/ 뀨뀨/ 초록별/ 한라봉/ 여름비/ 새벽세시/ 세봉설♡/ 차니/ 둥이/ 호시기두마리치킨/ 조아/ 칠봉뀨/ 호시시해/ 비글/ 아이닌/ 봉1/ 솔솔/ 양셩/ 붐바스틱/ 복숭아덕후/ 흐헤헿헤/ 17라뷰/ 우리우지/ 뿌블리랑갑서예/ 지훈이넘나뤼귀엽/ 토깽이/ 수달/ 지하/ ♡ㅅ♡/ 지하/ 늘부/ 서영/ DS/뀨잉/ 1600/ 쏠라비타민/ 불낙지/ 귤멍멍/ 반짝별♡ 뿌꾸뿌꾸/ 자몽몽몽/ 밍블리/ @핏치@/ 천사가정한날/ 민구팔칠/ 숨/ 황금사자상/ 케챱/ 피치/ 자몽몽몽몽몽몽/ 눕정한/ 붉을적/ 호시 부인/ 명호엔젤/ 늘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