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하루가 꼬박 지나고 이틀이 지났는데, 경찰서에서도 지갑 주인한테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심 사례를 할 줄 알았던 나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김이 새버렸다. 전화도, 메시지도, 카톡도 오지 않은 핸드폰 액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파위로 엎어져버렸다.
“오늘은 또 왜 그래, 우지호?”
“아. 별거 아녜요.”
“흠. 이상한데.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만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핸드폰이 요~물이라.”
“개그친다.”
염색약을 섞고 있던 재효형은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다 꿰뚫고 있었나보다. 아까부터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많이 티났나? 괜히 머쓱해져 뒷목을 매만졌다. 머리가 많이 자랐다. 형한테 머리나 잘라달라고 할까. 곧 추워질 텐데 그냥 놔두는 게 좋을까.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나에게 다시 재효형이 말을 건다. ‘오늘 저녁에 치킨 먹을까?’ 치킨! 그 소리에 부루퉁하게 나온 입을 집어넣고 나는 씨익 웃었다.
“콜!”
-
“아, 여기 이 학생이 지갑을 찾아서 경찰서에 갖다 줬어.”
“얘, 신원 조회 해봤어요?”
“뭐?”
선이 굵은 기다란 손가락이 포스트잇위에 적힌 ‘우지호’ 이름 세 글자를 콕 집어 가리켰다. 낮은 목소리가 내뱉는 한숨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 학생 신원조회 해 봐도 아무것도 없어. 소매치기는 무슨, 전과기록도 하나도 없더구먼. 그냥 우연히 주운 지갑 찾아서 가져다 준 거 같은데 사례라도 하는 게 어때?’ 경찰아저씨는 앞에 선 남자를 타이르듯 말했다. ‘아, 이 안에 꽂혀있던 현금만 얼만지 알아요?!’ 급기야 소리로 짜증을 뱉어내는 남자. 경찰아저씨는 저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그 남자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기분을 달랬다.
“아, 알겠어요. 얘 번호가 이거라고요? 010-96xx....”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지갑과 우지호란 이름이 적힌 종이를 구깃하게 손에 쥐곤 경찰서를 나섰다. 인사라곤 한마디도 없이 그저 문 앞게 걸려있던 방울만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경찰서의 문이 닫혔다. 그런 남자의 꼬락서니를 본 경찰들이 한마디씩 했다.
“뭔 나이도 어린놈이 싸가지를 밥말아 처먹었나.”
“나이도 어린놈이 부모 빽 믿고 멋대로 살다보면 저렇게 되는 거지.”
지호에게는 선한 미소를 지어주던 경찰관이 정색을 하며 말하자 뒤이어 젊은 여경이 방금 전 경찰서를 나간 짜증스런 남자의 정체를 물어왔다. ‘누군데요? 뭔데요?’ 그러자 그 경찰아저씨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주간일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도 나와 있잖아. 한신전자 스마트폰 새로운 기술 개발 특허 출원.’ 여경은 신문의 헤드라인에 떡하니 적혀있는 글씨를 훑어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예요? 한신전자 사장 아들?”
“아버지가 표재철이던데. 자회사 말고. 한신그룹 이사 아들인가 봐.”
-
“야!”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무시하려다 어쩌면 지갑 주인이 걸어온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뭐? 다짜고짜 엄청난 목소리로 ‘야’라며 소리친다. 뭐야 이 앞 뒤 없는 새끼는. 갑자기 짜증이 확 치솟았다. 차라리 ‘고갱님- 핸드폰 바꿔드려요-’ 라며 쨍알대는 광고가 더 나았을 것만 같다. 무슨 또라이인가 생각을 하다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일 것 같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또 성난 목소리가 핸드폰을 뒤흔든다.
“니가 내 지갑 훔쳐갔지!”
“저기요, 처음부터 왜 야, 니가, 반말을 하세요?”
일이 끝나고 재효형과 치킨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있었는데, 이 얼굴도 모르는 새끼가 걸어온 전화로 한순간에 기분이 구려졌다. 나는 어디다대고 반말이냐며 되물었다. 그랬더니 저쪽에선 또 잔뜩 열이 받은 목소리다. ‘내가 세상에 존댓말을 할 사람이 몇 안 돼. 니가 내 지갑 훔쳐갔지? 안에 들어있던 돈 봤어? 몇 장인지 세 봤냐?’ 헐? 보아하니 그 날 내가 주워서 경찰서에 가져다 준 지갑 주인인 것 같다. 이거 완전 나를 소매치기정도로 보고 있는 모양인데.
“니가 훔친 거 맞지? 그리고 죄 없는 척 경찰서에 가져다 준거 아냐!”
“지금 무식한 거 인증 하냐? 내가 훔쳐서 내가 경찰서에 주워다 주게. 너 혹시 아메바냐?”
“야! 누가 무식하대, 누가! 너 거기 어디야?”
“아, 됐다. 끊자.”
“야! 야!”
귓전을 때리는 시끄러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빨간 종료버튼을 꾸욱 눌렀다. 그 큰 목소리는 저쪽에서 염색약을 펴 바르던 재효형에게도 들린 모양인지 재효형은 사슴 같은 눈을 하고 물었다.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지가 지갑 털려놓고 주워준 사람한테 성질부리는 무식한 놈이지. 별 이상한 놈 다 봤네.
“요즘은 아메바도 전화를 다 하네요.”
“혹시 지금 것도 개그?”
“아님 말구요.”
나는 괜스레 웃어보였다.
-
영업시간이 끝난 미용실의 문을 닫고 재효형과 마주앉아 치킨을 시켜먹었다. ‘형, 반반무많이여-’ 혹시 몰라 덧붙이니 ‘알아, 알아.’ 진작 그렇게 주문을 했단다. 아직 미성년자는 술은 안 된다고 수능 백일 전에 백일주를 한 잔 하자며 형은 내게 콜라를 건넸다. 그러면서 자기는 캔 맥주가 맛있다고 벌컥벌컥 들이킨다. 나는 마치 까만 콜라를 맥주처럼 마셔대며 아까 있었던 불쾌한 전화를 잊어버리기로 했다. 살다가 모처럼 착한 일을 하려니 그마저도 운이 안 따라준다 싶다.
“오- 우지호 오늘 콜라 좀 달리는데? 혼자서 페트병 다 마시겠다?”
“왜요? 형도 좀 마실래요?”
페트병을 쭈욱 내밀자 재효형은 됐다고 손을 저으며 자기 전에 이나 꼭 잘 닦으란다. 완전 애기 취급이다. ‘나 애기 아니거든요-’ 한마디 했더니 형은 피식 웃더니 그런다. ‘그러게, 우리 지호 많이 컸지. 키도 많이 크고.’ 이건 또 무슨 엄마 같은 소리야. 닭살 돋으니까 닭이나 먹으라고 치킨을 쥐어줬더니 형은 껍질을 벗겨내며 말한다.
“그때는 키도 작고 얼굴도 작았었는데.”
“뭐요? 그럼 지금은 얼굴도 커졌단 말 이예요?”
“안 커졌을 거 같냐.”
“헐-”
흘겨보는 내 눈을 보고도 일부러 약 올리는 표정으로 생글거리는 형은 이번엔 내게 닭다리를 쥐어주며 그랬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커야 돼?”
-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를 간다. 학교에선 내리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알아서 시간을 때우다 저녁을 먹기 전에 재효형의 미용실로 가서 알바라는 이름으로 형의 일을 돕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러니까 나의 생활은 집 학교 미용실 집의 반복. 이렇게 며칠 하다 보면 일주일은 금방 간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치킨 먹은 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이거다.
일주일 후에도 나의 생활은 변한 것이 없다. 우리 집은 밤이면 달빛이 쏟아지는 달동네 언저리에 위치해 있지만, 그마저도 반지하라서 달빛 같은 로맨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잠이 안 올 때면 책을 읽거나 노래를 들으며 밤을 새기도 하는데, 그게 어제였단 말이지. 오랜만에 밤을 새 자꾸 감겨오는 눈꺼풀을 말릴 수 없어 이어폰을 꼽고 책상위로 엎어졌다.
난 분명히 엎드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누가 어깨를 콕콕 찌른다. 아 뭐야. 찢어진 눈꼬리를 더 사납게 하고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오늘은 담임이다. 에이 뭐야.
“우지호, 넌 고만 자. 앞에 봐라.”
아침 자습 시간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다가 오늘은 뭔가 전달사항이 있는지 담임이 교실에 얼굴을 비췄다. 뭐 이런 날이 자주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잠을 방해받은 나는 어쩐지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니 비로소 담임이 뭘 말하고 있는지 들린다. 오늘은 전학생이 있다네. 그치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 학교는 남고이기 때문에 전학 올 사람은 어차피 사내새끼라는 생각에 다른 녀석들도 별 흥미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야 두말 할 것도 없고.
“들어와.”
담임의 말에 앞문이 열리더니 꽤나 키가 큰 녀석이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얼굴을 보아하니 좀 뺀질대게 생겼다 싶었다. 담임 옆에 서자 그 기럭지는 더 빛을 발한다. 우리 담임이 168정도였나. 남자치고 작지. 그럼.
“간단하게 소개 좀 해볼래?”
“이름은 표지훈이고, 좋아하는 건 모르겠고, 싫어하는 건 귀찮은 거, 어려운 거, 복잡한 거.”
“그게 끝...?”
살짝 어리버리한 담임은 소개가 그게 끝이냐며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봤지만, 자신을 표지훈이라 소개한 전학생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임이 어쩐지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그때 문제는 바로 여기 내 옆자리에 있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럼 지훈이는 저기 맨 뒤에, 지호 옆에 앉으면 되겠네. 그치?”
“맨 뒤요?”
되묻는 그 목소리가 어디서 꼭 들어본 목소리 같았단 말이지. 어쩐지 표지훈이라는 이름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왜 손을 들고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하지 못했던 걸까. 지금은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녀석은 한쪽 어깨엔 가방을 느슨하게 매고 내가 앉은 뒷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자습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치고 담임은 ‘1교시 수업 준비 잘 하고, 어제 야자 튄 놈들은 좀 따라와라.’ 라며 시크하게 앞문을 열고 나갔다.
공교롭게도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나는 그게 나름 편하고 좋았는데, 담임이 그런 내 사정을 봐줄 리는 없겠지. 난 다시 이어폰을 꽂고 반대방향으로 돌아누우려고 했거늘, 녀석은 옆으로 성큼 다가와 의자를 빼며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냐.’ 방금 담임이 말 하지 않았나-싶었는데, 전학생한테 그 정도도 못 알려줄건 없다 싶어 대답했다. ‘지호, 우지호.’ 그랬더니 갑자기 녀석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니가 우지호?!”
난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뭔가를 꺼낸 녀석이 내 코앞으로 그 검은 것을 들이민다. 이게 뭐야.
“야!!!!! 너 이 지갑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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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로리~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역시 급전개가 제맛^.^전 분량 조절을 잘 못하는 멍청이니까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