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첫만남
01
[화재. 근처 불 난 곳. 불 난 건물. 최근 불이 난 ㄱ...]
노트북 속 연관검색어는 온통 '불'이었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산불소식과 화재소식이 들려오는데, 왜 내 주변에는 불 소식이 없는걸까. 이쯤되면 이 작품은 그냥 접어야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벌써 두 달 째 근처 화재가 난 건물을 찾고 있는데, 그 어디에도 그런 건물은 없다. 불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지만, 엉뚱한데 날 불이라면 차라리 근처 폐공장에 나주면 얼마나 좋겠냐. 뭐 이런거지. 이야기 구상, 캐릭터 설정, 인물 관계도. 모든 건 완벽한데. 영감을 받을 만한 장소가 없다. 장소가. 좋은 작품, 좋은 소설이 나오려면 비슷한 장소에 가서 숨도 좀 쉬어보고, 뭐도 좀 만져보고 해야 하는데 -. 책상 한켠에 잔뜩 쌓인 독자들의 편지를 보고 있자니, 더욱 숨구멍이 텁텁해졌다. 이봐요들. 나도 좋은 작품으로 응? 당신들 앞에 또 다시 딱! 짠! 이렇게 나타나고 싶다구요.
결국 노트북을 챙겨들고 바깥으로 나섰다. 벌써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새벽 공기는 치사하게도 너무 좋았다. 이렇게 좋을 거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간에나 좀 나눠주지. 낮에는 그렇게 성질을 부려서 덥더니. ‘적당하다.’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날씨였다. 그래서 걷고,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새 폐공장 길목 앞까지 와버렸다.
이곳까지 온 건 처음이었다. 매일 이 길목으로 들어서기 전인 편의점에서 사거리로 휙하고 발길을 돌렸으니까. 사실 제대로 살펴 본 적도 없다. 왜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지 않나. 밤에 제 방 행거에 걸린 옷을 보고도 그게 귀신처럼 보여서, 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옷 형태를 바꿔두고 잠에 드는 사람. 내가 딱 그렇다. 그래서 이곳은 쳐다도 보기 싫고, 지나도 가기 싫고. 그런데 오늘은 뭐에 끌린 건지 이곳까지. 게다가 궁금하기까지 한다. 나는 핸드폰 속 손전등 어플을 켰다. 왜 그랬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얼른 등을 돌려 사거리로 갔을텐데. 손전등 어플 하나로 순식간에 환해진 주변이었다. 핸드폰을 공장 길목쪽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드럼통들이랑 나무판자들은 뒤엉켜서 길에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잔먼지들이 공중으로 붕붕 떠올랐다. 신기했다. 먼지들이 떠오르는게. 그렇게 먼지들이 어디까지 올라가나 손전등을 높이 올리는데 -
[북스토리]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듯한 간판이 건물 외부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북스토리. 처음 보는 간판이었다. 뭐지. 북스토리 - 서점인가? 부동산 아저씨한테 서점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나름 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서점이 보이니 괜시리 안심이 됐다. 별로 위험해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뭐 폐공장이라고 해도 그 건물이 뭐 다 그 건물이지. 자고로 책이 있는 곳은 절대 위험하지 않다. 노트북이 든 가방을 고쳐맸다. 들어가지 말라고 쳐둔 테이프를 두 손으로 확 벌렸다. 도둑고양이처럼 발을 내딛었다.
손전등으로 그 간판만을 가리키며 걸었다. 속으로는 마지막으로 외운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구구단을 외우면서. 무서우니까. 뭐 말이라도 해야지. 또 괜히 큰소리도 냈다.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라! 지금 나오면 용서해준다. 아 짜증나! 뭐 이런 식의. 간판만 보고 걸었다. 괜히 다른 데 눈 돌렸다가 뭐라도 나오면...
떨어지는 나뭇잎에 놀라고, 쥐에 놀라고, 부서진 나무판자 소리를 밟고 놀라고. 그렇게 도착했다. 오 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거짓말 안하고 체감상의 시간은 다섯 시간.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정말 딱 다섯 시간. 도착한 곳은 다른 건물들과 다르지 않았다. 비슷했다. 부서질 것 같은 외벽이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잔먼지들까지.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무언가 발에 치였다. 손전등을 밑으로 향하며 허리를 굽혀 보자, mp3였다. 나 역시 핸드폰 말고 mp3로 노래를 들었을 적이 있는데. 괜한 추억에 잠시 잠겼다가, 한 손으로 플레이어를 집어 들었다. 엄지 손가락으로 플레이어를 쓱쓱 문지르자, 손가락에 무언가가 묻어나왔다. 먼진가 싶어 손전등을 비추자, 아주 검은 먼지였다. 나는 손가락을 벽에 문질렀다. 먼지야 떨어져라. 그런데 먼지가 떨어지기는 무슨, 벽에 내가 문지르는데로 묻어난다. 먼지가 아니구나. 그렇구나. 그럼 이건 뭐지? 무릎을 완전히 굽혔다. 바닥에 가득한 검은 가루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코에도 가져댔다. 후각만큼 정확한게 또 없지.
검은 가루에서는 탄 내가 났다. 마치 신문지를 태웠을 때의 냄새. 순간 번뜩였다. 태웠을 때의 냄새? 나는 검은 가루가 잔뜩 묻은 손으로 입가를 턱 막았다. 헐. 이거 재야? 검은 재? 그리고 그 순간 mp3가 희미한 빛을 내면서 플레이 되기 시작했다.
이건 들어가라는 신의 계시다. 그렇게 찾을 때는 없더니. 화재가 일어났던 곳이 분명했다. 그 동안의 자료수집으로 인해 화재장소에 대한 정보로는 빠삭하다. 냄새가 딱, 불 난 장소 냄새야. 위로 향하는 계단은 철조망으로 막혀있는 상태였다. 나는 mp3를 주머니에 대충 넣고는 지하로 향했다. 지하는 건물의 간판 그대로 서점이었는지 내려갈 수록 책 냄새가 강하게 났다. 왜 그 새 책 냄새. 아무리 불에 탔어도 그 고유의 냄새는 안 사라지는구나. 두 층을 내려오자, 그 냄새는 더욱 강했다. 무섭다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런 장소를 발견한 내가 대견할 뿐. 한 층을 더 내려가려는 심산으로 이번 층도 그냥 지나치려는데.
열린 문 틈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지하 이 층에서. 빛이. 그것도 폐공장에서. 이것도 들어가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겠는가. 손전등을 끄고, 핸드폰을 두 손에 꽉 들고 향했다.
빛을 따라가다 보니 도착한 곳에는 - 사람이 있었다. 나는 타다 남은 커다란 책장 뒤에 숨어 사람을 관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남자임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앞에는 아주 큰 거울이 있었고, 남자는 그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을. 근데 춤이라기에 그 춤은 아니. 그니까 춤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움직임? 아니. 뭐라고 해야 하지. 춤인데, 분명 춤인데. 날아오르는 나비 같았는데 또 막 피어나기 전의 꽃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하고.
남자의 움직을 따라 검은 재들이 흩어졌는데, 그게 꼭 수채화 같았다. 그 수체화에 가슴이 벅차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남자를 주인공으로 글을 써야겠다. 아무래도 이번 글은 멜로가 되겠구나. 마지막으로, 저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 요정이나 뭐 그런 거일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현재 01.
[‘남자의 몸은 먹을 머금은 붓 같았다. 한 번 닿으면 절대 없어지지도, 연해지지도 않는 영원한 먹.’]
정국이가 책의 첫 문장을 보자마자 물었다.
“이거 나야?”
나는 괜히 다 먹은 빨대를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어댔다. 글의 주인공이 글을 읽고 있으니. 여간 부끄러운게 아니였다. 그냥 출판되고 보여줄걸! 정국이는 그런 내가 웃긴지 맞은편에서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자꾸 내게 눈을 맞춰왔다. 오늘 화장도 못했는데. 나는 정국이의 이마를 살짝 밀며 말했다. 너무 가까워어. 정국이는 내가 물고 있던 빨대가 꼽힌 음료컵을 테이블 끝으로 밀어냈다. 왜 자꾸 빨대 괴롭혀요. 빨대가 아프대.
정국이의 말에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빨대가 아프대... 빨대가... 정국아. 누나는 심장이 아파. 차마 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고 괜히 입술을 어루만졌다. 입에 뭐라도 안 물고 있으니 이렇게 불안 할 수가 없다. 정국아. 너 다시 저기로 가면 안ㄷ. 금방이라도 녹아 흐를 것 같은 정국이의 눈빛에 내 나름 꾹이에게 힘겹게 말을 꺼냈는데 -
입술에 다른게 물려온다.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아직도 이런거에 놀라면 나는 어떡하지? 귀여운데. 완전”
정국이는 내 입술 위로 짧게 입을 다시 한 번 맞췄다.
“빨대 말고, 이제 나 좀 먼저 물어주지. 나도 아프고 싶다. 좀.”
“아니, 물긴 뭘 물ㅇ”
“나도 잘근잘근. 쟤처럼 해줘.”
정국이의 손 끝이 가리킨건. 엄마야!
*
처음 인사드려요. 겨울소녀입니다! 첫 작품이네요. 너무 길어 읽는데, 불편하실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세요! 오래 볼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