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X
여주야, 쟤 너무 섹시하지 않아?
수업시간에 멍하니 턱을 괸채로 창문만 바라보고 있길래 뭐 재미있는거 하나, 싶었던 터라 친구의 말에 즉각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곳에는 한창 축구를 하고 있는 남학생무리가 있었다. 저중에서 누구 말하는거야. 내 말에 친구는 내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그걸 왜 물어? 당연히 김민규지. 친구의 대답에 마시던 물을 도로 내뱉었다. 책상서랍에서 휴지를 꺼내려 더듬대며 친구에게 토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미쳤지, 드디어? 그런 내 반응에 친구는 눈을 흘겼다. 왜, 김민규 섹시하잖아. 아 땀 닦는거 봐. 흐음-하며 긴 한숨을 내쉬는 친구를 보며 또 토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김민규가 섹시라니. 차라리 내가 더 섹시하다. 휴지 덩어리를 손으로 뭉개며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말에 친구가 내 등짝을 퍽퍽 내리쳤다. 야, 장난으로라도 그런말 하지마라. 그에 책상에 얼굴을 묻고 짜증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김민규 미친새끼. 속으로 김민규에게 있는 욕이란 욕은 다 퍼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잠이나 자자. 그렇게 김민규 욕을 하며 잠에 들어서일까, 점심시간 종소리와 함께 뜬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내 앞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책상 위에 올려둔 내 교과서를 훑어보는 김민규의 모습이었다.
이제 일어났냐?
그걸 또 언제 본건지, 날 살짝 내려다보며 묻는 김민규를 째려보며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래, 일어났다. 내 대답에 김민규는 그 특유의 빙구같은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밥먹으러 가자. 아까 축구해서 배고파 죽겠는데 너 일어나는거 기다리느라 더 죽을뻔했다고.
그 말과 함께 앞문으로 휘적휘적 걸어나가는 녀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섹시하긴 개뿔. 못마땅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밍기적거리면, 앞문에서 기다리던 김민규가 참다못해 내게로 걸어와 내 손을 낚아채갔다. 빨리 안오고 뭐하냐, 진짜. 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탈탈 털며 한손으로는 내 손을 꽉 부여잡은 김민규의 팔뚝에 힘줄이 남자답게 서있었다. 넋을 놓고 김민규의 팔뚝을 한참을 쳐다보다, 침을 꿀꺽 삼켰다. 손끝이 저릿해지는게 느껴졌다.
김민규, 섹시한가...?
김민규와 나의 첫만남은 바야흐로 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 갓 중학교에 입학한 열네살이었고, 그날의 난 첫 등교를 별탈없이 마친 채 동생 찬이와 대문앞에 앉아 윗층으로 이사를 오기로 한 그애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복층구조인 우리집 2층에 세를 들어 살던 대학생 언니가 이사를 가버리고, 비어버린 그곳에 나와 또래인 남자아이가 이사를 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전해듣자마자 들뜬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침내 다가온 그날에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이삿짐 트럭이 큰 소리를 내며 우리집 앞에 멈추는 소리가 들렸고, 앞좌석에서는 나와 키가 비슷한 남자아이가 내렸다. 대문 앞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온 그애는, 세상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안녕 여주야!
그에 문을 열어주며 김민규 뒤를 뽈뽈 쫓아다니며 별의 별 질문을 다 물어봤었던 것 같다. 내이름 어떻게 알았어? 내 물음에 김민규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사오기 전에 아줌마가 알려주셨어!
그에 고개를 끄덕여보이고선 질문을 다다다, 퍼부었고 그럴때마다 김민규는 짐을 풀기 바쁜 와중에도 친절히 뒤돌아서 일일히 대답해주었던걸로 기억한다. 그애가 마지막 짐을 푸는 걸 도와주고 난 후 둘다 기진맥진해 벽에 등을 기대 앉았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질문에 김민규의 대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부모님의 해외출장 탓에 오랫동안 혼자서 이곳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김민규의 말에 내가 안외롭겠어? 하고 걱정스레 던진 물음에 김민규는 어느새 땀이 범벅된 얼굴 위에 웃음을 환히 띄우고선 대답했다.
응, 너 있으니까 걱정 없겠다.
그렇게 풋풋하던 우리가 지금은 열여덟살, 혈기왕성한 나이로 호르몬향을 폴폴 내뿜고 있다. 김민규는 어느새 나보다 세뼘은 더 키가 컸고, 나는 어느새 김민규의 웃음 말고 팔뚝이랑 어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생각없이 급식을 퍼먹으며 수저질하는 김민규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정도면 거의 내 손보다 두배는 더 크겠네. 저렇게 큼지막한 김민규의 손에 내 손이 잡히면... 문득 든 생각에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김민규가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먹다말곤 갑자기 내 이마에 제 손을 갖다댔다.
야, 어디아파?
김민규의 손이 닿은 이마가 불에 데인것 마냥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안아파! 외마디 비명과 같은 대답과 함께 김민규의 손을 쳐냈다. 그에 김민규는 이상하다는 듯 제 어깨를 들썩이더니 다시 급식먹는데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들썩이는 녀석의 어깨가 무진장 넓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들어차는 바람에 결국 그날 급식은 하나도 못먹은 채로 버려야 했다. 생각을 떨치려 황급히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날 김민규가 돌연 막아세우더니, 내 어깨를 제 손으로 꽉 잡고선 눈을 맞춰왔다.
김여주 너, 어디 안아픈거 확실하지?
물어오는 눈빛이 은근해, 냅다 고개를 저으며 앞문을 쾅 닫아버리고선 자리로 돌아가 이어폰을 꼽고 볼륨을 최대로 키운 뒤 엎드린 채로 눈을 꽉 감았다. 그런데도 계속 어디선가 김민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그 눈빛까지 눈앞에 아른아른. 어질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생각했다.
섹시한거 같다. 그것도 존나게.
집으로 가자마자 방문을 닫고 침대에 털썩 누워 배게를 주먹으로 연신 쳐댔다. 아 김민규 머릿속에서 좀 꺼지라고, 꺼져버려. 속으로 연신 외치고 있던터라,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아 꺼지라고. 고개를 들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고 있는 이찬이 보였다. 왜. 내 말에 이찬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민규형이랑 같이 집 안왔냐. 그에 대답대신, 찬이에게 질문을 해보였다. 야, 넌 김민규가 섹시하냐? 내 물음에 어이가 없는지, 찬이 헛웃음을 치더니, 잠깐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고선 대답했다. 응. 섹시하지. 키크고 잘생겼잖아. 섹시하다고? 김민규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되묻는 내모습에 찬이는 뒷걸음질을 치더니 왜이래... 하며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찬의 등뒤로 방문을 닫으며 다시금 물었다. 야. 똑바로 대답해 너 내 동생 맞지. 고개를 끄덕이는 이찬에게 다시 한글자 한글자 강조하며 물었다. 김민규. 섹시해? 내 말에 찬을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 아니 하나도 안섹시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침대에 누워 만세를 외쳤다. 곱게 미치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방 밖으로 내달리는 이찬도 무시한 채.
머릿속을 정리하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자마자 방문이 홱 열렸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면, 망설임 없이 휘적휘적 들어와선 책꽂이에서 책 하나를 꺼내 방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 김민규가 있었다. 야, 안나가? 내 신경질적인 물음에 김민규는 내쪽으로 돌아눕더니, 살살 웃음을 쳐보였다.
아 왜, 좀만 있다갈래. 니 침대가 제일 편하다니까?
곱게 접히는 김민규의 눈가가 오늘따라 더 야살스레 느껴졌다. 대체 왜 내 침대가 편하단거야. 속으로 연신 불만을 토해내며 잠자코 책을 읽는 척 했다. 그렇게 가만히 눈에 하나도 안들어오는 책을 읽고 있으면, 갑자기 김민규가 투정어린 목소리로 내 등 뒤에 대고 연신 내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여주야. 야 김여주.
그에 짜증난다는 듯 왜, 하고 짧게 대답하면, 김민규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너 오늘 왜 나 안기다리고 먼저 갔어? 꽤나 당황스런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있으면, 김민규는 아 왜애, 하며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침대에 누워 저 애달픈 표정을 지으며 말꼬리를 늘여트리는 김민규를 보고있자니.... 책상 아래로 손을 뻗어 허벅지를 있는 힘껏 꼬집었다. 정신차려 김여주!!! 일부러 김민규의 시선을 피한채 앞만 보고 무심히 대답했다. 뭐, 내가 친구가 너밖에 없어? 내 질문과 동시에 김민규가 침대 위로 벌떡 일어나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손에 들린 책을 단숨에 치워내더니 짐짓 진지한 눈으로 내게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야, 김여주 너 남자 생겼냐?
그 물음을 묻는 눈빛이 또 숨막힐 정도로 갑작스레 다가와, 얼른 김민규를 밀치곤 방 밖으로 밀어냈다. 막무가내로 방문을 잠군 후, 침대에 누워 귀를 막아도 김민규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려댔다.
아 김여주 문 열라고!
주먹으로 문을 쾅쾅 치며 연신 짜증을 내는 김민규는, 내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긴 개뿔, 오히려 더 머리만 복잡해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는 소리가 행여나 문 밖에까지 전해 들릴까, 조용히 숨을 참았다. 진짜, 어떡하지.
김민규를 피한지 어느새 일주일은 된 것 같다. 점심 종이 치자마자 달리는 건 기본, 쉬는시간 마다 김민규를 피해다니기에 이어 마지막 교시 종이 치자마자 집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잠구는 일은 내게 막대한 육체적 피로를 안겨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끔 수업시간마다 눈에 들어오는 운동장에 서있는 김민규의 모습에 가슴이 마구 뛰어대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요즘 체육시간의 김민규는 이상했다. 원래의 김민규라면 기다렸다는 듯, 운동장을 미친 듯 내달리며 축구를 하고 있었을 터인데, 요즘은 축구는 커녕 힘 없이 축 늘어져 벤치에 앉아있기 일쑤였다. 맨날 힘이 넘치고도 모자라 남아돌던 김민규가 저 상태니, 마음만은 달려가 녀석을 걱정해주고 싶었지만 내 음란한 마음이 따라주질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오늘도 벤치에 축 늘어져있을 김민규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애꿎은 수학 교과서 위를 펜으로 꾹 꾹 눌렀다. 녀석을 향한 나의 이상한 마음들을 눌러담는 심정으로. 그리고 무심결에 내다본 창문 밖엔,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서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김민규가 보였다. 그리고 그건, 내 착각이 아니라면 우리교실 쪽이었다. 또 주체할 수 없이 붉어지는 볼에 김민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나머지 시간동안 줄곧,
내 시선이 녀석이 있는 쪽에 닿을 때마다 김민규는 나와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수학시간의 김민규가 자꾸 생각나 집으로 가는 걸음이 평소보다 더 느려졌다. 그렇게 집까지 몇걸음 채 남지 않았을 때, 멀리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면, 그곳엔 김민규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아까의 김민규가 측은했어도, 절대 안돼. 이를 악물고 대문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뒤돌아봤을 때, 김민규는 내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아 여주야 좀 서보라니까?
그렇게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 김민규는 어느새 날 따라잡아, 우리는 같이 현관 앞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헐떡이며 방으로 내달렸을 때, 내 어깨는 이미 김민규의 손아귀에 꽉 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김민규는, 저도 헐떡거리는 숨 사이사이로 내게 물어왔다.
여주야, 너, 왜, 나 피해?
그 물음에 대답 못한 채 이리저리 움찔거리자, 김민규는 허, 하고 낮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침대 위로 날 넘어뜨렸다. 내 위에서 어이없다는 듯, 내려다보는 김민규의 눈초리에 또다시 얼굴이 터질 듯 붉게 물드는게 느껴졌다.
진짜 너 남자 생겼냐?
김민규가 물어옴에 따라 전해지는 뜨거운 숨결에, 다시금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워졌다. 고개를 돌리며 녀석의 눈길을 피했다. 생기면 뭐. 내 말에 김민규가 다시 제쪽으로 내 고개를 잡아 돌리고선 대답했다.
안되지,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그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말을 곱씹어보기도 전에, 김민규가 제 머리를 쓸어넘기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김여주 너, 예뻐보여 죽을 것 같을때마다 얼마나 참았는데. 어색해지면 어쩌나 하고.
뭐야, 나만 그랬던게 아니었어. 혼자 생각하며 억울한 마음을 애써 추스리며 태연한 척 대답했다. 나 남자 안생겼는데. 김민규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곤, 이어지는 김민규의 물음에 난 할말을 잃었다.
그럼 여태껏 나 왜 피했는데?
한참을 뜸들이면,김민규는 장난스런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운채로 말했다.
혹시 그거 때문인가? 아니, 몇일 전에 찬이가 나한테 와서 그러더라고. 여주 네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민규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와중에 손끝에서 느껴지는 김민규의 입술의 말랑한 감촉에 황급히 손을 떼면, 김민규는 내게 조금씩 더 가깝게 제 몸을 낮춰왔다.
그런데 그걸 찬이가 알리가 없지.
왜냐면 찬이는 내가 지금부터 너한테 할껄 본적이 없을거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까 손끝에서만 느껴지던 김민규의 입술의 감촉이 내 입술에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머릿속이 펑 터져버릴 것만 같은 열기에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으면, 김민규의 입술이 부드러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게 느껴졌다. 내게서 입술을 뗀 김민규는 붉어진 입술을 하고선 내 입술을 제 새끼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물었다.
그럼 이제 네가 대답해봐.
여주야,
나 섹시해?
감 떨어졌네요... 글이 예전같지 않구.... 글을 써야 감이 돌아올텐데...... 2주 후 방학.!.!.! 글만 쓸꺼에요ㅠㅠㅠㅠㅠ8ㅁ8꽃봉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