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첫사랑니
"있지, 이건 내 예감인데 오늘 왠지 엄청 뭣같은 일이 일어날거 같단 말이지."
아침에 나란히 길을 걷다 말고 길가에 침을 퉤, 하고 뱉으며 이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찬의 뒷통수를 손바닥으로 팍, 치며 대답했다. "참 뭣같은 예감이네." 아, 때리지마! 눈을 치켜뜨며 찬이 짜증을 내며 제 발에 채이는 찌그러진 음료수캔을 퍽, 하고 차버렸다. 그리고 찬의 발에 있는 힘껏 채인 음료수캔은 호선을 그리며 찬의 이마에 깡, 하고 명중했다. 그와 동시에 찬이 제 이마를 부여잡으며 아!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내가 크게 웃어제끼자, 찬은 아직도 제 이마를 부여잡은 채 내게 짜증을 내보였다.
"야, 나 아픈거 안보여?"
잔뜩 울상을 지어보이며 칭얼대는 찬에게 애써 웃음을 참으며 "괜찮아?" 하고 물으면 찬은 됐어, 하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그에 찬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야, 괜찮아. 좀 빨개지기만 하고 혹은 안났어." 그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뒷편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하는 찬의 말소리와 동시에 뒤를 돌면, 그곳엔 웃는 얼굴을 한 지수오빠가 있었다.
"여주 안녕"
평소와 같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보인 지수오빠는 이내 찬을 보며 웃음을 참는 듯, 입술을 꾹 깨물더니 이내 "안녕" 하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멀어져갔다. 점점 멀어지는 오빠의 뒷통수에 대고 찬은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기 시작했다. "야, 방금 봤어? 나 비웃은거지 방금, 그치?" 허, 하고 연신 어이없다는 듯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보이던 찬은 이내 아, 진짜 짜증나!!!! 하며 연신 표효했다.
교실에 들어와서조차 찬은 찡그린 표정으로 연신 아. 짜증나 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의자를 있는대로 뒤로 빼 까딱거리던 찬은 이내 턱, 하고 그 행동을 멈추더니 책상에 턱을 괴며 퍽 진지한 표정으로 내쪽을 빤히 쳐다봤다. "야, 근데 이상하다?" 고개를 기울이며 느리게 말하는 찬에게 뭐가, 하고 물으면 찬은 시선을 위쪽으로 옮기며 대답했다. 아니, 아까전에 그 형. 선도부 배지 안차고 있지 않았어? 그 말에 아까 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던 지수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오빠의 오른팔에 항상 있던 노란 선도부 배지가 오늘은 달려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 오늘 넥타이도 안맸는데 아무말도 없던데?" 그 말과 함께 찬은 휑한 제 목덜미를 가리켰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생각에 빠져 한참을 말을 않다 이내 모르겠네, 하고 대답하는 내 모습에 찬은 못마땅한 듯, 한숨을 푹 내쉬어보이다 이내 얼굴 가득 웃음을 띄웠다.
"그 형 이제 선도부 그만뒀나봐."
신이 나서 말하는 찬에게 말도 안된다며 손을 가로저었다. "설마. 뭣하러 선도부를 관두겠어." 내 말에 찬은 그런가, 하며 모르겠단 표정을 짓더니 이내 두손을 꼭 모은채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하느님, 제발 그 형이 이제 선도부원이 아니게 해주세요. 간절한 목소리로 꽉 쥔 제 두손을 흔들며 말하는 찬의 뒷통수에 딱밤을 먹이고 이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찬에겐 아무렇지 않은 척, 모르겠다 대답했지만 녀석 못지 않게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던 오빠가 선도부 배지도 차지 않은 채로 등교하다니. 턱을 괴며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각자만의 생각에 빠져 멍한 이찬과 내 옆으로 권순영이 빵을 입에 물고 다가왔다. 이내 눈 앞쪽으로 손을 휘휘 저어보이는 순영의 행동에 정신을 차리면, 순영은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뭘 그렇게 바보처럼 앉아있어, 둘다." 비어있는 앞자리에 순영이 앉자마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순영의 팔을 잡고 물었다. "순영아 너, 선도부 맞지." 갑작스런 내 질문에 순영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런 순영의 모습에 옆자리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찬이 이내 맞다, 하고 책상을 큰소리 나게 치더니 고개를 들었다. "선도부에 그 재수없는 형, 이제 선도부 관뒀어? 관둔거 맞지, 어?" 제발 관뒀다고 해라, 하며 다짜고짜 순영에게 묻는찬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며 순영이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 그에 찬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 있잖아, 아침마다 서서 나한테만 뭐라하는 형." 그제서야 순영은 알았다는 듯 아, 지수 형?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형 몇일 전에 관뒀어. 선도부 담당 선생님이 관두라고 하셨다는데?" 순영의 대답에 찬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사람마냥 만세를 외쳤다.
"오늘은 좋은 일이 일어날 날이었나봐 여주야!"
해맑은 얼굴로 제 손바닥을 내게 내미는 찬을 보고 픽 웃으며 그런가보다, 하고 찬의 손바닥을 가볍게 받아쳤다. 이제 아침마다 보는 일도 없겠지? 하는 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욱신거리는, 그런 기분.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저으며 그 기분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런데도 자꾸만 어딘가 욱신거리는 탓에 난 결국 책상위에 엎드린 채 잠에 들려 노력해야만 했다.
회장님이 보고계셔!
be mine!
05
나도 모르는 어딘가 욱신거리고, 이따금 따끔거리는 그 생소한 기분은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평소에는 너무 많이 마주쳐 탈이던 지수오빠가 요즘은 마주치기는 커녕 내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럴때마다 그 이질적인 기분은 점점 심해져, 이내 머리가 울리는 느낌이 드는 착각까지 이르게 했다. 아침마다 상쾌한 표정으로 등교하는 찬과는 달리, 나는 녀석과는 꽤나 상반된 표정을 하며 등교를 하곤 했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등교하는지도 모르다, 이내 반에 도착해 거울에 비친 내 표정에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계속 이러면 병원에 가봐야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수오빠가 보이지 않은지 무려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연신 투덜대며 옆에서 자꾸만 빨리 가자며 재촉하는 찬의 보폭을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그날은 매년마다 돌아오는 찬이 가장 싫어하는 시기였다. 교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들과 자꾸만 따라붙는 선거운동원들이 싫다며 찬은 투표기간만 되면 질색을 하며 펄쩍 뛰었다. 역시나 어김없이 우리의 주위에 몰려 피켓을 흔드는 선배들을 보며 찬은 표정을 구기더니 먼저 교실에 들어가겠다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치사하게 먼저가고있어, 진짜. 낮은 목소리로 짜증을 내며 찬을 따라 달려가려다, 이내 뒤에서 잡아오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면, 그곳엔 이석민이 한손에 피켓을 든 채로 씩 웃고있었다. 하지만 놓으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난 시야에 들어오는 피켓의 모습에 멍해져 아무말도 못한 채 꿀먹은 벙어리마냥 서있어야 했다. 예쁘게 오려진 숫자 2 옆에 지수오빠의 웃는 얼굴이 크게 붙여져 있었다. 뭐야 그거? 하며 묻는 내 말에 이석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긴 뭐야, 보면 모르냐? 또 고집 부리지 말고 꼭 2번 뽑아라." 이석민의 말 뜻을 이해하려 꽤 여러번 그 말을 곱씹어봐야 했다. 이내 "지수오빠 학교 안나오던거 아니었어? 요즘 한번도 못봤는데." 하는 내 말에 이석민은 무슨소리냐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바빠서 못본거겠지, 무슨." 그 말과 함께 이석민은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야, 그리고 여자애들이 지수보고 좋아죽더라. 무슨말인지 알지?" 그말에 아무 대답도 않는 내게 이석민은 다시금 속삭였다. "이제 너 여유부리면 안된다, 이말씀." 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내 얼굴을 보며 웃어제끼던 이석민은 이내 다시 인파속에 섞이며 외쳤다. "아무튼 김여주 너 2번 안뽑으면 호적에서 파버릴꺼야!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건, 삐딱하게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채로 못마땅한 듯, 팔짱을 끼고 있는 이찬과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는 권순영이었다. 왜저래? 내 입모양을 보고 권순영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내젓고는 재빨리 뒷문으로 내달려 사라져버렸다. 제 옆자리에 앉을때까지도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는 이찬의 등을 아프지 않게 치며 왜그러냐 물으면 녀석은 마음에 안든다는 듯 끙,하는 소리를 내며 제 두손을 허공에 대고 휘저었다.
"아니, 그새끼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다 저래?"
찬의 말에 의아해진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찬은 교실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여자아이들을 가리키며 삿대질을 해보였다. "다 그 지수오빤가 뭔가 얘기밖에 안해. 지긋지긋하다 진짜." 찬의 말에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들리는 여자아이들의 대화내용은, 온통 지수오빠에 관한 이야기였다. 회장후보 오빠가 잘생겼다느니, 선도부장보다도 더 멋있는것 같다느니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다시 또 그 이상한 기분이 깊게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꾸만 욱신거리는 기분에 배를 움켜잡았다.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이를 꽉 깨물며 나는 까드득, 소리 뒤로 등교길에 이석민이 내게 놀리듯 한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여유부리지 마.
옆에서 줄곧 툴툴대던 찬이 조용해진 날 의식한 듯 말을 멈추곤 이내 날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녀석의 시선이 슬슬 부담스러워져 고개를 돌려 뭐, 하고 묻자, 찬은 아까와는 조금 달라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굳은 얼굴로 여자아이들을 쳐다보는 내 고개를 제쪽으로 억지로 돌린 찬이 진지한 눈을 하고 물었다.
"김여주, 너 아직도 신경쓰는거 아니지."
꽃봉오리 |
세상에...........,, |
꽃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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