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주고싶은 세가지 - 박혜경
나에게는 잊지못할 첫사랑의 추억이 있다.
열여덟, 초여름, 여럿이 여행을 갔던 그 날.
***
여자 셋, 남자 셋. 총 여섯이서 기차를 타고 떠났다. 지민이 친척분이 계곡옆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있으셔서 그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역에서 내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흙길을 한참 덜컹거리며 가고 있을 때, 친구들은 다 잠이 들고 내 옆자리에 앉은 지민이와 나만 눈을 뜨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귀기 시작한 우리 둘 사이엔 묘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눈웃음만 치고, 덜컹이는 버스때문에 중심이 기울어 닿을까봐 온몸이 긴장되었다.
생각해보면 사귄지 세달정도 된 데다가 학교에서도 맨날 보는데 서로 뭐가 그리 수줍고 긴장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손 한번 잡고,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볼에 뽀뽀 한번 받은게 다 였다.
버스 창문으로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저녁 하늘, 평온한 분위기에 용기를 내고 싶어졌다. 잠든 척 지민이 어깨에 살짝 기댔다.
눈을 감으니 진짜 졸린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그 어깨에 머리를 기대니 맞닿은 부분이 간질거렸다. 가슴께도 간지러운 것 같고 심장이 너무 크게 뛰었다.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잠든 척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지민이도 그랬으려나.
*
이동하다보니 날이 어둑해졌지만 계곡물에 발 한번 담궈보겠다고 짐을 두고 나왔다.
다들 신이 나서 계곡물에 들어가 물을 튀기며 노는데 나는 그저 구경만 했다. 춥기도 했고, 그냥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편이 더 좋아서.
"안들어올거야?"
친구들과 놀던 지민이가 다가와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다정하게 날 올려다보던 지민이는 바위 위로 올라와 내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있었는데 같이 온 여자애 한명이 징검다리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지민이는 바위에서 한번에 뛰어내려 그애한테로 갔다. 나도 겨우 내려와 그 쪽으로 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생각보다 크게 다친 것 같았다. 발목이 심하게 긁힌건지 피가 철철 나는 것 같았다.
다친 아이는 놀라서 엉엉 울었고 그 아이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다들 어쩔줄 몰라했다.
어느새 그 곳에 다다른 지민이만이 당황하지않고 아이를 업고 빠르게 움직였다.
*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앉아있던 나는 겨우 그들을 뒤따라갔다. 가장 늦게 방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지민이와 그 애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민이는 여자아이 발목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괜찮다며 다정하게 달래주는 것도 잊지 않고.
뒤늦게 나를 본 친구들은 다친 친구가 걱정되어서 뛰다보니 너를 못 챙겼다며 나를 옆에 앉혔고, 생각보다 크게 다친건 아니었다고 금세 흩어져 짐을 풀기 시작했다.
나도 다친 친구를 걱정하다가 짐을 풀고 바베큐파티를 준비했다. 분명히 즐거운 상황인데 어딘가 자꾸 슬프게 느껴졌다.
사실 그건 다친 친구를 다정하게 챙기는 지민이 때문이었다. 속으로 계속 다독였다. 질투할걸 질투해야지, 하고.
아픈 친구를 두고 무슨 생각인가 싶었지만, 지민이는 정말 너무도 다정했다.
그 애를 안듯이 부축해서 의자에 앉히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고, 몇번이나 다친 곳은 괜찮냐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 속에서 울컥했다. 다들 바베큐파티를 즐기며 재밌는 이야기도 하고, 내일은 뭘 할지 신이나서 깔깔 웃는데 난 그게 잘 안됐다.
"왜 안먹어?"
아니야, 먹고 있어- 지민이가 내옆으로 와 말을 걸고 웃어도 같이 웃어지지가 않았다.
자꾸만 지민이가 그 애한테로 뛰어가 업어주고 부축해주고 손을 잡고 끌던 모습만 생각났다.
*
결국 다들 잠이 들 때까지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이 슬픈 기분으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걸어서 불빛이 거의 없는 돌계단으로 내려와 앉았다.
아직 조금 덜 마른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살랑였다.
" 밤이라 아직 추워. "
언제 날 보고 따라온건지 지민이가 내옆에 앉았다. 지민이는 자기가 걸치고 있던 집업을 내어깨에 걸쳐주고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별이 진짜 많이 떴다고 했다.
하늘을 보니 평소에 보던 밤하늘보다는 훨씬 예쁜 하늘이 보였다. 지민이는 내어깨를 제 품으로 당겨 어깨에 기대게 했다. 놀라서 움찔했더니, 샴푸냄새 좋다- 하며 웃었다.
"더 기대. 아까 버스에서 좋았는데."
그래서 어깨에 기댄채로 올려다보니 지민이는 하늘을 보며 혼잣말처럼 얘기했다. 아, 너는 자느라 몰랐을 수도 있겠다-
그 말에 왜 눈물이 나는지. 자꾸 서글펐다. 지민이가 나한테만 다정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두방울 떨어지던 눈물이 고개를 살짝 숙이니 후두둑, 떨어졌다.
울어?- 조금 당황한 지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피해져서 집업소매로 눈물을 막 닦는데 내 양손목을 잡은 지민이가 고개를 숙여 눈을 맞춰왔다.
왜 울어- 하는 다정한 목소리에 참고 있던 서러움이 터졌다. 결국, 나는 네가 나한테만 다정했으면 좋겠어!- 하고 엉엉 울면서 말하다가
다시 한번, 나는 업어준 적도 없으면서, 제대로 안아준 적도 없고!- 하고 울어버렸다.
지민이는 잠깐 벙찐듯 날 보더니 하하, 소리를 내며 한참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눈물을 닦아주면서 그게 그렇게 서러웠냐고 안아줬다. 그러면서 그냥 그 친구한테 미안했다고 했다.
자기친척별장에 온건데 내 책임도 있지 않냐면서. 그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서운한건 여전했다.
지민이는 내표정을 살피더니 두손으로 내양볼을 살짝 잡아올리고 눈을 맞춰 얘기했다.
"나는 너만 좋아해."
그리고 천천히 다가와 입을 맞췄다. 버스에서 기댔던것보다 더 크게 심장이 뛰고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런 다정함은 나밖에 못느끼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기도 했다. 입을 맞추고 천천히 떨어진 지민이는 다시 나를 제 어깨에 기대게 했고
몇분을 더 그러고 있다가 손을 잡고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에는 업어줄까?- 하며 놀려서 창피했지만 그래도 설레고 좋았다.
***
그게 나의 첫키스 이야기. 어느덧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고 벌써 사귄지 3년째. 지민이는 가끔도 그 날 얘기를 꺼낸다.
그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서 내가 조별과제를 한다고 남자후배와 통화를 한답시면,
어어? 나한테만 다정했으면 좋겠다면서- 하고 나를 놀리기도 한다. 그만 놀리라고 어깨를 살짝 밀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나만 좋아해줄래?"
하는데 안웃을 수가. 이번엔 지민이 폰이 울린다. 여자선배 전화.
네. 제가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아니요, 그럼요. 네, 듣고 있어요- 지민이말투는 세상 다정하다.
그런 지민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꼭 이렇게 질투가 나게 한다.
지민이는 계속 통화를 하면서 날 보더니 살짝 웃고 손을 다시 깍지껴 잡아왔다.
역시. 지민이가 나한테만 다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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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는 낮도깨비 이야기는 안쓰고. 계절썰을 잇고 있네요. 이제 석진이만 쓰면 되는데.....
그의 이야기 넘나 풀기 어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