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 OST 너를 태우고
내가 낮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줄게.
아주 오래 된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도깨비가 살았어.
도깨비들은 밤에 활동을 하고 낮에는 주로 잠을 잤어. 우리하고는 밤,낮이 바뀌었다고 이해하면 될거야.
그런데 그 중에 낮에도 나타나는 도깨비가 있었대. 그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 도깨비는 유독 잠이 많은 편이었어. 자는걸 워낙 좋아해서 밤활동을 할 때에도 조금만 움직이고 그냥 집에 들어갔지. 움직이는게 귀찮았거든.
그러던 어느 날은 잠을 너무 많이 자버린거야. 그래서 아 이러다간 죽겠어, 하고 나왔는데. 어? 밤이 아니라 낮이네.
도깨비는 인상을 팍 썼어. 눈이 너무 부셨거든. 그런데 계속 서 있으니까 뭔가 따듯하고 좋은거야.
동굴에만 있다가 햇빛을 받으니까 산뜻한게 기분이 썩 괜찮았던거지. 그래서 도깨비는 기지개를 쭉 켜고
좀 돌아다녀 볼까, 하고 숲을 돌아다니다가 마을을 내려다보게 됐어. 도깨비의 눈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게 보였어.
그러다가 마을에 흥미가 생긴거야. 밤에 보던 마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거든.
"재밌겠다."
도깨비는 뿔을 숨기고 사람처럼 둔갑해서 옷을 곱게 차려입고는 마을로 내려갔어. 시장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보고 동굴로 다시 돌아왔어.
그 이후로 밤활동보다 낮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됐대. 그런데 마을에 가는 횟수가 잦아질 수록 도깨비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진거야.
자주 보이는 청년인데 아무도 그 청년이 어디사는 누구인지 몰랐거든. 그래서 도깨비는 생각했지. 이제는 자주 못내려오겠다고.
그 날은 기운이 쭉 빠져서 터덜터덜 숲으로 들어갔어. 기운이 빠져서 뿔이 나왔는데, 너무 슬퍼서 그것까지 신경을 못쓰고 동굴로 향했지.
그렇게 한숨을 쉬며 동굴로 들어가려는 그 때,
"도깨비니?"
하는 웬 꼬마의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너무 놀라서 쳐다보니 어린 여자아이가 동굴옆에 서있지 뭐야.
도깨비는 본능때문에 순간 그 아이를 보면서 눈이 빨갛게 빛났어. 그런데도 아이는 무서워하지않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봤대.
그저 뿔이 보인다면서 신기해할 뿐이었지. 도깨비가 되려 당황해서 멍한 표정으로 보고있으니까 아이가 그러더래.
"우리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거든. 약초를 찾고 있었어. 너는 어디있는지 아니?"
그러면서 도깨비의 소매를 잡아끌었어. 곧 해가질터이니 자신과 같이 다녀달라고. 숲은 금세 어두워져서 무섭다면서 말이야.
그런아이를 보면서 도깨비는 속으로, 어둠은 무서워도 도깨비는 무섭지 않은가봐, 하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지.
돌아다니면서 약이 될만한 풀을 함께 찾았어. 그리고 아이의 사연을 말없이 들어주었어.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병든 어머니를 혼자 모시게 된 사연을.
안쓰러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시간이 꽤 흘렀어. 도깨비는 너무 늦기전에 아이를 마을 입구까지 바래다 주었지.
그날 밤, 동굴로 다시 돌아온 도깨비는 아이의 꿋꿋하고 밝은 모습이 떠올라서 괜시리 웃음이 났어.
*
다음날 아침, 도깨비는 동굴에서 나와 쓸쓸히 마을을 내려다보았어.
내려가서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그 후에 여러가지로 곤란해질걸 알았기 때문이지.
물론, 요술방망이만 있으면 얼마든지 금은보화를 만들어 마을에 집을 지을 수 있었지만
도깨비는 사람들 틈에 섞여 살아갈 자신은 없었거든. 하는 수 없지. 동굴로 들어가 누웠어.
그렇게 한시진이 흘렀을까, 작은 돌멩이가 동굴안으로 굴러들어왔어. 자고있던 도깨비는 돌멩이가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떴어.
또로록- 한,두개가 굴러들어오더니 이번엔 갑자기 웬 복숭아 하나가 굴러들어오지 않겠어?
도깨비는 바깥쪽을 노려보았어. 곧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어.
"도깨비 있니? 고마워서 가지고 왔어."
그 아이다. 반가운마음에 벌떡 일어났어. 뿔을 숨기고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했지.
그리고 나가려다 멈칫, 오래 전 일이 생각났어. 사람들 앞에 도깨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돌팔매질을 당한적이 있었거든.
아이 한명에게 잠깐 들킨 것 정도야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지만, 엮이기 시작하면 복잡해질 것이 뻔했으니까 나가지 않기로 했어.
도깨비는 동굴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아이의 발걸음이 서서히 멀어졌어.
외로이 동굴에 누워있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졌을 즈음 도깨비는 동굴을 나왔지.
그리고 마을을 내려다보며 복숭아를 베어 물었어. 참 달구나, 하고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쓸쓸한 속을 달랬어.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또 왔어. 도깨비는 나가지 않았지.
그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나흐레를 하루도 쉬지않고 아이는 동굴을 찾아왔어.
그렇게 열흘 째 되는 날. 또 동굴을 찾아온 아이는 다시한번 돌멩이를 굴려보냈어.
"안에 있는거 안다. 내가 주었던 복숭아 씨가 요 앞에 떨어져있었는걸. 내가 무섭니?"
도깨비는 웃음이 났어. 무섭냐니. 잔뜩 올라간 입꼬리를 다시 내리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이곳에 찾아오는 것이 위험하다는걸 아이에게 일러주어야겠다고 말이야.
도깨비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동굴 밖으로 나갔어.
"와아! 드디어 나와주었구나!"
방방뛰는 아이의 모습을 조금 무섭게 내려보았어. 그래도 아이는 맑게 웃으면서 도깨비를 올려다 보았지.
도깨비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말했어. 처음 만났을 때는 손짓만했지 말을 꺼내진 않았거든.
"앞으로 이곳에 오지마. 도깨비와 사람이 어울려서는 안돼."
꽤 무섭게 말했는데도 아이는 박수를 짝짝 치며, 도깨비는 목소리도 멋지구나!- 하더니 도깨비와 사람이 왜 어울려서는 안되는지 연유를 묻는거야.
그래서 도깨비는 위험해서. 하고 답해주었지. 그 답이 아이에게는 와닿지가 않았던건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어.
"그건 아니야. 도깨비는 위험하지않아. 네 덕에 우리어머니도 많이 좋아지셨어."
도깨비는 한숨을 쉬었어. 그럴 수 밖에. 아이가 안쓰러운 마음에 약초에 기운을 조금 넣어주었거든.
도깨비의 기운은 아주 세서 사람의 병을 고치기도, 악화시키기도 하니까.
"그래도 안돼. 사람들에게 들키면 큰일나거든."
그렇게 꽤 오래 아이를 다독였어. 오늘이 마지막으로 너와 내가 마주하는 날일거라고.
그리고 아이에게 작은 금덩이 하나를 건넸어. 어머니의 병을 치유하는데에 쓰라고 말이야.
아이는 받지 않겠다고 했어. 저번에 쓴 약초를 쓰면 된다면서.
도깨비는 날이 제법 어둑해지는 것 같아서 아이를 마을로 향하는 길로 데려다주었어.
그리고 마을로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작별인사를 했지.
그런데 돌연, 아이가 뒤를 돌아 다시 오는게 아니겠어?
도깨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이를 보았지. 그랬더니 아이가,
"나는 내일도 또 올거야."
도깨비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어. 그랬더니 아이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다가오는거야.
우리 오라버니가 되어주면 안되겠느냐고. 아이의 친오라버니는 얼마 전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거든.
그래도 도깨비오라버니라니 그건 안될 노릇이였어. 도깨비는 다가오는 아이를 등졌어.
그랬더니 아이가 도깨비의 손가락을 꼭 잡아오는게 아니겠어? 결국 도깨비는 아이를 다시 마주했어.
"대신 나와 약조를 하자."
나를 보러올 땐, 이 금방울을 들고 와서 나를 부르렴.- 하고 작은 손에 방울을 하나 쥐어주었어.
아이는 눈물을 뚝 그치더니 물었어. 그러면 너를 뭐라고 불러야해?- 하고 말이야.
도깨비는 이름이 없었어. 그냥 도깨비라고 해. 하고 꼭 혼자만 몰래 찾아올 것을 당부했어.
그리고 방울을 아이 손에 다시 꼭 쥐어주고 숲으로 향했지.
"윤기오라버니!"
아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꽤 멀어진 아이의 인영이 손을 흔들며 한번 더 외쳤어.
"네 이름은 민윤기야! 우리 오라버니의 이름하고 똑같지. 또 올게!"
하며 금방울을 흔들고 마을쪽으로 향했어. 도깨비는 뒷짐을 지고 아이가 완전히 안보일 때 까지 바라보았어.
그리고 동굴로 돌아와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을 입밖으로 발음해 보았어. 도깨비는 어딘가 뭉클해진 것 같은 기분으로 날을 지새웠어.
마음속으로 윤기라는 이름을 새기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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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필명도 그렇고 글의 제목도 그렇고
저는 윤기를 볼 때마다 도깨비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무서운 도깨비보다는 낮에 나온 얄궂지만 조금은 귀여운 도깨비 같은거요.
자주 상상했던 이야기인데 이렇게 정리해서 올릴줄은 몰랐네요.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역시 장편은 저랑 안맞음.
쓰면서 진이 빠져여.
단편이 낫네요. 루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