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 주장 전정국 X 교대생 너탄
W. 교생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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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다. 뭐가? 뭐긴 뭐겠어, 정국이 못본지 4일째라는거지. 감고있던 눈을 확 떴다. 눈 앞에 보이는 천장에 대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5일전 내 고백에 대한 걱정은 버린지 이미 오래다. 정국이는 아무래도 그날 내가 했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 미안해라고 듣고서 안아준게 아닐까 싶다. 좋아해. 미안해. 처음에는 전혀 똑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거울을 보고 발음해보니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느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제 바뀌었다. 4일전까지만 해도 고백 후 정국이와의 사이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면 지금은 정국이의 건강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간간히 문자를 하면서 잘 지내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전화만큼은 허락하지 않는 정국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피하는가 싶었는데 심하게 감기를 앓고 있는지 목소리가 안나온다고 한다. 왜 아프고 그래, 나때문인 것 같잖아.
사실 정국이네 집에 가려고 했지만 나는 정국이의 집을 아예 몰랐다. 이런 가장 큰 허점이. 그래서 문자로 집에 가도 되냐고 보낼까 했다. 근데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해? 아니, 그것보다 집에 부모님도 계실텐데 내가 찾아갈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저절로 힘이 빠져서 그대로 잠을 청해버렸다. 뭘 어떡해. 잠이라도 안자면 자꾸 정국이가 떠올라서 신경쓰일 것 같은데.
한참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딱 11시다. 역시나 문자는 안와있다. 아니, 왜 문자 한 통이 없어. 말없이 핸드폰만 바라보다 괜시리 화가나서 핸드폰을 이불에다가 내팽겨쳤다. 잔뜩 튕기던 핸드폰은 축구공 쿠션 앞에서 멈췄다. 저 쿠션은 왜 저기 있는거야. 머리맡에 놓고 잔 축구공 쿠션 하나가 침대 끝자락에 홀로 남겨져있다.
홀로 있는 축구공을 보니 뭔가 나같아 보여서 잽싸게 주워서 세트인 축구공 쿠션 옆에다 두었다. 너 혼자 굴러가지마, 진짜 없어보여. 찌질해보인다고. 내 마음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란 말이야. 축구공 쿠션에 대고 혼잣말을 하다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다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자각했고 뒤늦게 창피했다. 이게 다 전정국 때문일거야. 그래, 분명 전정국 때문이야.
"보고싶잖아. 왜 혼자 있는데"
괜히 심술이 나서 축구공 쿠션을 툭툭 건드렸다. 이내 그것도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번 하고는 기지개를 폈다. 이불을 걷어낸 다음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결판을 내야할 것 같다. 뭐랑? 뭐겠어, 정국이의 감기랑 한 판 승부를 내겠다는 거지. 혼자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난 다음에 침대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나서 전화번호 부에서 자연스럽게 '전정국'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찾았다.
그 번호를 누르려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멈췄다. 전정국. 되게 딱딱해 보인다. 지민이도 박지민이라 저장해놨고 태형이도 김태형이라고 저장했는데 왜 정국이를 전정국이라 저장해놓은 건 이상한 것 같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름을 수정했다. 고민을 엄청했다. 국이? 너무 성의 없나? 뭔가 이름 저장하다가 만 느낌인데. 꾸기? 꾸기가 뭐야. 물고기 이름도 아니고. 쿠야? 무슨 게임 캐릭터 이름이야, 뭐야.
그렇게 몇분을 고민하다 결국엔 '정국'이라고 저장했다. 그래도 혼자 성이 없으니까 나름 특별해 보인다. 혼자 뿌듯해져서는 이름을 보고 바보처럼 웃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정국이에게 보낼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써야 가장 자연스러울까. 간호하러 가도 돼? 거절하면 끝이니까 안되고. 집에 누구있니? 이건 좀 변태같은데. 누나가 요리를 잘하는데 밥 한끼 해줄까? 이거 너무 뜬금없는데?
한숨이 나왔다. 너랑 만나기가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생각을 안할때는 히어로라도 되는마냥 동해번쩍 서해번쩍 나타나더니 막상 생각날 때는 왜 만날 기미를 보이지도 않는거야. 속상해서 핸드폰만 만지작댔다. 그러다가 생각없이 옆을 쳐다봤다. 옷장에 걸려있는 정국이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세어나왔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만날 소잿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정국아, 저번에 빌려준 패딩 다시 돌려주려고 하는데 만날 수 있을까?'
'나중에 주셔도 되는데' - 전정국
'너한테 줄 것도 있어서!'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는 정국이의 패딩과 축구공 쿠션을 품안에 꼭 끌어안은채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집은 바라지도 않아 그냥 밖에서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얼굴 좀 보여줘, 정국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한 탓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거지. 손에서 자꾸만 땀이나오고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았다. 아, 진짜 정국아. 누나 죽어, 제발. 손에 흥건한 땀을 바짓자락에 한 번 슥 닦아내었다. 때마침 문자가 도착했고 혼자 깜짝 놀라서는 뒤로 자빠졌다. 아픈 엉덩이를 몇 번 쓸어준 다음에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그럼 저희 집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 전정국
"엄마..."
대박이야. 이거 꿈이야?. 한참동안 정국이가 보낸 문자만 멍청히 쳐다봤다. 볼도 꼬집어보고 뺨도 때려봤다. 더럽게 아프다. 미친사람처럼 발광하며 웃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세상은 아직 아름다운 것 같아요. 진정되지 않는 입꼬리에 광대가 하늘로 승천할 것만 같았다. 나야 괜찮은데 부모님 계시않아?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안계신다고 답장이 왔다. 아, 김탄소 착한 생각, 착한 생각하자.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자 정국이네 집주소가 문자로 날아왔다.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신이 났다. 핸드폰을 책상 위에 놓은 다음 서둘러 세안을 했다. 세안을 끝낸 후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치마나 원피스를 입을까 했지만 나는 물건을 주는 척하면서 환자를 돌보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활동하기 편한 바지를 선택하게 되었다. 옷을 한 10번은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한 것 같다.
옷을 다 입고 난 후 화장대에 앉았다. 피부화장을 늘 하던대로 하고난 후 눈화장을 하려는 순간 손이 멈췄다. 너무 풀로 메이크업하면 신경썼다고 티내는 것 같은데. 허공에 맴돌던 손은 눈화장을 하지 말자는 내 판단에 자연스레 립으로 이동했다. 입술도 틴트나 립스틱보다는 약간의 색조가 있는 립글로즈를 발랐다. 간호해주러 가는거야, 김탄소. 데이트하러 가는거 아니야.
정말 기본적인 것만 한 후 거울을 보니 눈썹이 너무 못생긴 것 같아 눈썹만 그려줬다. 나름 한듯 안한듯 화장이 잘 먹은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마무리로 향수를 살짝 뿌린 뒤 묶었던 머리를 풀어 정리를 했다. 완벽해. 다시 한 번 거울을 살펴보고난 다음에 겉옷을 챙겨입었다. 정국이의 패딩과 쿠션도 가방에 담아 챙겼다. 그 물건들을 한 번 쳐다보다가 떨리는 마음을 가득 안은채로 집을 나섰다. 정국아, 조금만 기다려. 누나가 간다.
"오랜만이네요"
"아, 어, 그러네. 음, 오랜만이다"
"안들어오고 뭐하세요"
"어? 들어가! 들어가지!"
신발장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보던 정국이는 빨리 들어오라며 나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심플하고 깨끗했다. 부끄러움도 잠시 괜찮게 리모델링된 정국이네 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거실에는 꽤나 많은 그림들이 전시 되어있었고 벽에는 가족 사진으로 보이는 액자들이 걸려있었다. 정국이도 있으려나? 설레는 마음에 후다닥 뛰어가서 액자를 살펴봤다. 그 안에는 내가 모르는 정국이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정국이는 태권도를 배웠는지 상장도 걸려있었다. 찬찬히 둘러보다 정국이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다. 누구일까 곰곰히 생각하고 있으면 내가 액자를 보고있는 것을 계속 보고있었는지 자기 형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정국이다. 나랑 안닮았죠? 그렇게 말하는 정국이에게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전혀. 똑같이 생겼어. 진지한 내 대답을 듣고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소리없이 웃기만한다.
"형은 성인이신가봐?"
"누나가 몇살이시죠?"
"나 22살"
"누나 22살이에요?"
"왜, 싫어?"
"우리 형보다 누나네요"
동생인 줄 알았는데
형이 몇살인데
21살이요
그럼 나 20살로 본거야?
어리게 봐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서 바보처럼 웃어댔다. 아니 뭐, 22살도 어린 나이이긴한데 18살한테는 늙은이지. 바보처럼 웃는 내가 웃겼는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는 정국이다. 아, 지금 늙은이가 어려보인다는 말에 신나하는거 보고 비웃는거야? 괜히 나이로 진 것 같은 마음에 정색하고 정국이를 쳐다보면 미안하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러면 풀릴 줄 알지? 정답이야. 이러면 내가 너무 좋잖아.
그 손길을 받아내며 전시된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다 처음보는 그림이다. 직접 그린건가? 꽤나 역동적이고 밝은 그림들에 눈을 반짝이며 보았다. 몇몇 그림은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것도 있었다. 넋놓고 그림을 보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기침을 하는 정국이 덕분에 시선은 자연스레 정국이 쪽으로 옮겨졌다. 아직 많이 아파? 걱정되는 마음에 손을 뻗어 이마에 손을 대면 깜짝 놀라서는 괜찮다면서 내 손목을 잡아채는 정국이다.
"아, 미안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많이 안아파서 그래요. 기침만 조금 나요"
"약은 꼭 챙겨먹어. 그래야 빨리 낫지"
"네. 아, 누나 이 그림 가지실래요?"
"이거? 이걸 왜 나한테 줘?"
"아니, 뭐, 아까부터 계속 유심히 보시길래.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요"
비싼 거 아니야?
제가 그린 거에요
..뭐?
갑작스러운 발언에 놀라서 어버버 거리면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는 정국이다. 한참동안 정국이를 바라보다 다시 그림을 바라봤다. 아무리봐도 너무 잘 그렸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 정국이를 봤다, 그림을 봤다를 반복했다. 이내 그게 신경쓰였는지 내 양볼을 잡고는 자기를 보게 만든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정국이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고 딸꾹질이 나왔다.
갑자기 나온 딸꾹질에 놀란건 나뿐만이 아닌지 두 눈이 커지는 정국이다. 바보같이 서로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이게 뭐야. 한참을 웃어대다 나를 식탁의자에 앉히는 정국이다. 부엌에 들어가 물을 떠서 건네주는 정국이 덕분에 딸꾹질을 겨우 멈췄다. 이제보니까 이 자식 별로 아파보이지도 않는다. 뭐야, 그동안 나 피하려고 꾀병이라도 부린거야? 물을 마시며 정국이의 상태를 체크하다 문득 고백했던 그 날이 떠올랐다. 아직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컵을 천천히 식탁 위에 내려다 줬다. 물 마시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정국이는 더 주냐고 물어왔고 고개가 좌우를 저었다. 멍청히 쳐다만보는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웃어보이는 정국이다. 진짜 못들은 거일까, 안들은 거일까. 깊게 고민하다 옆자리에 둔 가방을 한 번 쳐다봤다. 다시 말해볼까. 컵 손잡이를 잡은채 손톱을 톡톡 컵을 게속 쳐댔다.
"아,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 있었어"
"그게 뭐에요?"
그 날, 네 마음은 뭐였는지 궁금해
바보처럼 뭐냐고 묻는 정국이의 질문에 바로 말해버렸다. 3초정도 서로 눈을 마주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선을 서로 회피했다. 아, 미쳤어. 김탄소 미쳤나봐. 분명 머릿속에선 말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입은 그게 안되는지 바람처럼 빠져나가버렸다. 한순간에 어색해져버린 공간에 그 날 정국이가 내 말을 못들은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추가로 이제 더이상은 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까지 미치자 기분이 울적했다. 손에 들어온 물컵을 꽉 쥐었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진짜 울기는 싫은데 니가 너무 좋으니까 막, 막 눈물이 난다. 여기서 울면 더 싫어할 것 같아서 아랫입술만 꾹 깨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몇분을 기다렸을까 아무런 말이 없는 니가 이상해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 바라보고 있었는지 고개를 들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너와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주책이야, 나이 먹어서. 차마 오래 보기 힘들어서 고개를 떨구려고 하면 재빨리 내 양볼을 감싸쥐는 정국이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면 말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자세히 보니 정국이의 귀가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어있다. 손끝이 하애질 정도로 물컵은 꽉 쥐었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널 보다가 쓰러질 것만 같았다.
"미안해요, 누나"
내가 먼저 말 못해서
진짜 좋아해
누나보다 먼저 반했어요
교생쌤 |
안녕하세요! 교생쌤입니다:) 제가 너무 늦게 왔죠. 죄송합니다:( 다음주에 또 공연이 있어서 준비하느라고 늦었어요. 그래도 분량은 최대한 빵빵하게 했습니다! 요즘 들어서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이 아프면 제 마음도 아파요:( 점점 끝을 달리고 있습니다 하하 끝까지 잘 달려서 좋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화도 재미있게 보시고 지금까지 교생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