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첫사랑_01
w. 피자피자
팔에 대충 걸쳐져 있던 검사복은 제 모양을 찾지 못한 채로 소파에 던져져 버렸다. 걸쳐지지 못 한 건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지금 내겐 그런 사소한 것 까지 신경 쓸 기운까진 남아있지 않았다. 방으로 가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편안한 옷을 꺼내 욕실로 향했다. 새하얀 침대가 ‘어서 와서 안겨.’하며 외치는 듯 했지만 또 막상 욕실로 들어가니 얼른 얼굴을 뒤덮고 있는 화장을 벗겨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목을 갑갑히 조이던 블라우스 맨 위 단추를 풀자 숨통이 살짝 트이는 듯 했다. 세면대를 일정한 소리로 두드리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줄기에 손을 가져다댔다. 씻기엔 딱 좋은 온도였다. 사건 내내 숙직실에서 먹고 자고 씻고 했던 터라 아늑한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기분 좋은 느낌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머지 단추를 풀렀다.
따뜻한 물에 샤워까지 마치곤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수건으로 돌돌 말아 올린 채 욕실 문을 닫고 나왔다. 나온 순간 도어락을 해제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고 이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락앤락 통들을 안고 들어오는 그가 보였다.
“오, 이제노. 타이밍 짱인데-”
“다 씻었어?”
“응, 진짜 방금.”
장난스런 눈빛과 같은 말투로 그를 반기자 그는 반찬통을 들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내 이마를 툭 밀곤 부엌으로 향했다. 그와 나의 취향이 적당히 섞인 부엌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곤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의 뒤에 다가가 기웃거리는 것도 이젠 익숙해진 장면이었다.
“이번엔 뭐야?”
“고기 재워놓은 거랑 나물 몇 개. 이모가 너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고 걱정하시던데.”
“우리 엄만 왜 자꾸 너한테 가서 그러는 지 모르겠다. 너도 바쁠텐데,”
“나 바쁜 거 알면 이모한테 먼저 연락도 드리고 하세요- 딸 혼자 보내놓고 맘 편할 부모가 어디있겠어.”
“너 있는데 뭘.”
냉장고 앞에 쭈그려 앉아 반찬통들을 정리하던 그의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 이내 피식하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움직였다. 예쁘게 정리 된 냉장고 안을 곁눈질로 흘깃 보곤 그의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아 엉덩이를 툭툭 쳤다. 일종의 애정표현이랄까, 내겐 그런 행동이었다. 그 또한 익숙하다는 듯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터라 더욱 자주하게 되었던 행동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반응이 이상하다.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얼굴에 웃음기라곤 찾아 볼 수도 없을 뿐 더러 꽤 오랜 시간 눈을 마주하고 있는데 내 눈을 피하지 않는 것까지. 어색한 것 투성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이 주위를 맴돌았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의 얼굴은 소년이 아니었고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 또한 소녀가 아니었다. 한참을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을까,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 의해 공기가 일렁였다.
“ㅇㅇㅇ.”
“..어.”
“아니야.”
익숙한 그의 눈웃음이었다. 분명 몇 십 년 째 봐오던 웃음인데 왜 이리 싱숭생숭한지. 괜히 어색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그의 팔을 툭 치며 장난스레 말했다.
“뭐야, 왜 말을 하려다 말아.”
전보다 조금 더 짙은 미소를 띤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에 내 마음 속은 깊은 내적 갈등을 이루었다. 더 물어볼까, 아님 그냥 여기서 멈출까. 그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꽤나 복잡했다. 하지만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에 갈등을 멈추곤 고개를 올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맥주 있어?”
“응, 베란다에.”
“너 내일 재판 없지.”
“당분간은. 왜? 마시게? 너 내일 재판 있다 그러지 않았어?”
“한 캔 정도는 괜찮겠지, 뭐.”
그래, 우리 사이엔 이게 더 어울린다. 그저 일상과도 같은 일을 꺼내는 그에 아까 전 어색함과 긴장감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는 베란다로 향해 맥주 두 캔을 꺼내 들었고 나 또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찬장에 쌓인 과자 봉지들을 꺼내 거실로 향했다. 치익- 소리를 내며 열린 맥주 캔을 한 모금 홀짝인 후 내려놓곤 머리를 말았던 수건을 푸는 나와 달리 캔을 따자마자 바로 제 입으로 가져다 대는 그였다. 꿀떡 넘어가는 목넘김도 잠시 그의 시선이 젖은 머리를 빗어 내려가는 내 손으로 향해 떨어질 줄 몰랐다.
사람 빤히 바라보는 건 얘 버릇이니까, 딱히 개의치 않은 채 수건으로 머리 끝을 꾹 눌러 남아있던 물기를 짰다. 손에서 느껴지던 수건이 젖어 들어가는 축축함이 그의 손길에 의해 잦아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보자 피곤한 건지 약하게 들어간 술기운 때문인 건지 살짝 눈이 풀린 그가 입꼬리를 당겨 올린 채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머리 많이 길었네.”
“...”
나른했다. 그의 눈빛도, 지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 분위기도. 실로 익숙지 않은 나른함이었다. 이에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다 내 옆을 차지하고 있던 맥주를 들어 그의 눈 앞으로 가져다댔다. 그 또한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내 행동에 응했다.
짠, 하며 맥주를 홀짝이기도, 바삭거리는 과자를 주워 먹기도 하며 간간히 대화가 오갔고 창밖은 어느새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워낙 술이 약한 터라 한 캔을 겨우 비워낸 나였다. 알딸딸한 기분이 내 기분을 조금 높여주는 듯 했다.
“제노야아.”
“응.”
한 손으론 맥주 캔을 살살 돌리며 다른 한 손으론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는 그였다. 나는 그저 아무 이유도, 맥락도 없이 그의 이름을 반복했다. 나른한 밤, 그의 이름을 장난스레 부르는 내 모습과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그날 밤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제노 시점
살짝 젖은 머리를 한 채로 말꼬리를 잔뜩 늘이며 내 이름을 연거푸 부르는 그녀였다. 내 이름이 원래 이렇게 듣기 좋은 이름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했다. 술만 들어갔다 하면 법정에서 그 냉철한 모습은 제 2의 자아 쯤 되는 것인지 애교 가득한 모습이 튀어나오는 그녀에 내 입꼬리는 광대 부근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졸려..”
“졸려? 누울래?”
그녀는 입술을 앙 다물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난 절로 지어지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익숙한 손길로 그녀를 안아들어 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자 아늑한지 이불 속으로 파고들다 고개를 빼꼼 내밀곤 예쁘게 웃어 보이는 그녀에 술기운이 확 몰아치는 듯 했다.
“잘 자-”
“너도.”
내 대답을 끝으로 그녀의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새근새근 잠이 든 모습과 창가로 새어들어 온 달빛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었다. 어릴 적 얼굴이 살짝 남아있으면서도 여성스러워진 선이 고왔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가 정리를 해주자 웅얼거리며 실눈을 뜨는 그녀의 눈을 손으로 덮은 채 토닥였다.
그녀는 여전히 예뻤고, 그런 그녀를 볼 때 마다 빨라지는 심박수 또한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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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헿 제노는 여러분 짝사랑 중!!!! 여주도 자꾸 뭔가 이상한 그런 감정이 꿈틀꿈틀! 여러분 원래 남녀관계는 삽질이 짱입니다 껄껄 제노랑 여주 성격상 둘만 있을 땐 나른한 분위기가 연출 될 가능성이 있지만 지루하지 않게 노력할게요!!!!신알신 해주시고 예쁜 댓글 달아주신 분들 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전 프롤에 더 달린 댓글 읽으러 갑니당! 굿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