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첫사랑 _ Prologue
w.피자피자
“이상, 재판 마치겠습니다.”
땅땅- 넓은 재판장에 의사봉의 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맞은편에서 날 노려보던 피고인은 경찰에 손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갔고 난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서류들을 정리해나갔다. 하얀 종이 뭉텅이를 대충 모아 검사 측 테이블 모서리에 놓곤 한 시간 넘게 앉아 있던 그 자리에 힘없이 풀썩 앉았다. 몇 분 전 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시끌벅적 했던 재판장은 적막만이 맴돌았고 난 그 사이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것인지, 생각보다 적은 형벌을 받은 피고인이 못마땅했던 것 인지. 알 수 없는 뒤숭숭함이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한참을 빈 재판장에 앉아있었을까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곤 흐트러진 검사복을 정리하며 종이 뭉치를 챙기려 든 순간 종이 바로 옆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길쭉한 손이 내 시야를 방해했다. 익숙한 손이었다.
“잘 했어?”
“뭐야, 언제 왔어.”
“재판 끝난 지 꽤 된 것 같은데 로비에 없길래.”
테이블에 두 팔로 기댄 채 살짝 미소 짓다 자연스레 종이 뭉치를 안아 드는 그였다. 이에 나도 익숙하단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재판장을 나와 한산한 복도를 걸었다. 어두침침한 재판장에 있다 큰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많은 햇빛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보다 조금 앞에서 걷고 있던 그가 내 자그마한 움직임을 눈치 챘는지 힐긋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 이내 아무 말 없이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내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햇빛을 차단시켜주었다. 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내 미간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어, ㅇㅇ가. 재판 승소 했다며?”
“아, 네!”
한 기수 선배의 안부 인사와 같은 말에 살짝은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히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말을 이어나가는 선배였다. 말이라 해봤자 백 번도 더 들은 자기 자랑 뿐이었지만 일개 막내 검사가 무어라 반박을 하겠는가. 귀에 딱지가 앉을 법한 이야기에도 그저 검사 배지를 만지작거리며 웃는 것만이 내게 허락된 행동이었다.
“아니 그래서 내가 그때 딱 증거물을, 어 옆엔.”
“아, 제 친구에요. 이제노 변호사.”
5분 정도는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이제야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걸 눈치 챈 건가. 조금은 어이없는 상황에 살짝 웃음을 흘리다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친구? 애인 아니었어?”
“네? 제가 얘랑 무슨, 저희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자랐어요.”
손사래를 치며 웃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그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의심 가득한 선배의 눈초리였다. 자기가 얼마나 촉이 좋은 줄 아냐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다가왔지만 글쎄, 저 선배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듯 했다. 눈치 없기로 유명한데. 아니라며 몇 번을 부정했지만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선배가 점점 짜증이 날 쯤이었다.
“저, 검사님. 저희 바로 다음 재판 들어가 봐야 돼서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밥 한 번 같이 먹어요.”
“아, 네? 네. 그래요.”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인 후, 종이 뭉치를 안은 팔이 아닌 다른 팔로 내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어리둥절해 선배에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손길에 이끌려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그의 손가락은 B2 버튼으로 향했다.
“야, 거기 주차장인데?”
“알아.”
“너 재판 있다며.”
“뻥이지. 나 오전에만 재판 있다고 했잖아.”
그제야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점점 짜증이 올라오는 내 모습을 눈치 채곤 자기 일로 둘러대 선배의 자기 자랑 파티에서 발을 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었다. 고맙기도, 기특하기도 한 마음에 눈을 접어 웃어 보이며 주먹을 내밀었다. 이에 저 또한 예쁘게 웃어 보이며 내 주먹의 1.5는 되어 보이는 주먹으로 툭 치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그였다. 조금 뒤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어느새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괜한 어색함에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다 안 타냐는 그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곤 조수석에 올라탔다.
“벨트 맸지?”
“응.”
“집으로 갈까?”
“너 볼 일 없으면 그러자. 피곤해.”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는 그의 옆태를 바라보았다. 선이 굵어진 옆모습 또한 더 이상 소년이 아닌 남성의 향기가 새어나오는 듯 했다. 나는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제노야.”
“응?”
“너 언제 이렇게 컸냐-”
“뭐야, 갑자기.”
그가 나른한 웃음을 흘리며 내 머리 위에 큰 손을 턱하니 얹었다. 잔잔히 깔리는 라디오와 석양의 조화가 내 마음 한 구석을 간지럽혔다.
***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 정적 또한 나쁘지 않았고 차는 어느새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곳곳이 빈 자리였고 차는 부드럽게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나는 검사복을 팔에 걸친 채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익숙한 딩동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로 몸을 실었다. 이어 올라탄 그가 익숙한 손길로 버튼을 누르곤 거울로 제 머리를 정리했다. 그의 옆에 나란히 선 내가 거울로 비치자 씩 웃어 보이는 그였다.
서로 눈높이가 비등비등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엿한 성인 남녀의 모습이었다. 키도 머리 하나 쯤은 차이가 나 보이고. 괜한 어색함에 헛기침을 하며 거울 속의 내 모습만 빤히 바라보며 엉킨 머리를 빗어 내려갔다. 어색함도 잠시, 12층입니다- 하는 여자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각자의 집 앞으로 향했다. 1201호, 1202호.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두 집이었다. 축 늘어진 손길로 비밀번호를 쳐 가던 손길이 마지막 번호에서 멈추었다.
“ㅇㅇㅇ, 나 씻고 반찬 주러 갈게.”
“아, 응. 어, 야 잠시만.”
“응?”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서려 한 내 시선을 빼앗은 건 다름 아닌 삐뚤어진 그의 넥타이였다. 교복을 입기 시작한 순간부터 수트를 입는 지금까지 항상 넥타이는 조금씩 삐뚤어져 있던 그였다. 익숙한 손길로 그에게 다가가 넥타이를 고쳐주려다 어차피 갈아입을건데, 싶어 그냥 풀러버렸다. 예상 외의 행동에 놀란 것인지 살짝 붉어져 있는 귀가 꽤나 귀여웠다.
“어차피 옷 갈아입을 거니까. 근데 너 오늘 그러고 내내 재판한 건 아니지?”
“어, 맞는데.”
“아, 진짜 너 그러면 검사가 얕본다고 했잖아- 안 그래도 싸가지 없는 검사들 많은데. 다음부턴 넥타이 못 하겠으면 나한테 해달라고 해. 알았지?”
“응.”
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자 내 몸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비밀번호의 마지막 자리를 눌렀다. 삐리릭- 하며 울리는 경쾌한 소리에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꽤 오래 비운 집임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는지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집에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베란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노을이 아까 전 붉어진 그의 귀와 비슷하다는 생각 또한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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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당! 제노가 변호사라니...수트라니..제가 써놓고 상상하니까 너무 발려서 죽을 것 같아요...엉엉
주제 준 심 너무너무 고마워요!!!!! 움 이거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하지...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모두 굿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