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바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09
그 날 이후 며칠이나 지났을까. 한 이주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그동안 지민이는 나에게 깊은 이야기를 해서인지 나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다. 그런 지민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며 한동안은 지민이의 아픈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그 날 밤, 그렇게 친구로 남기로 했던 나와 김태형은 한동안은 조금 어색한 듯 싶더니, 곧 다시 예전처럼 돌아온 것만 같았다. 솔직히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작은 호의들에도 조금씩 심장이 떨릴 때가 있지만, 그런 감정은 최대한 무시하기로 결정하니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 과제 준비 잘되가냐? "
" 뭐, 하고는 있는데 무슨 1학년 전공이 이렇게 빡세냐."
" 2학년 되셨으면 열심히 하셔야죠."
" 1학년 때 학점 좀 잘 채워놓을걸. 자퇴하고싶다."
" 으이그,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아, 제발 심장아. 며칠째야, 그만 좀 하자. '으이그' 라며 내 머리를 헝클이는 김태형 때문에 또 심장이 이 모양이다. 진짜 맨날 하던 행동인데 왜 이게 이렇게 떨리는건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황급히 핸드폰 배경화면 속 잘생긴 지민이를 보며 다시끔 '난 지민이 뿐이야.' 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때 지난 맞바람도 아니고 이게 무슨 꼴이람. 내 남자친구는 존나 잘생긴 박지민이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쉼호흡을 하고는 왜 안오냐며 소리치는 김태형을 따라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 아, 맞아. 너 엠티 가냐? "
" …아, 이번 주 주말 엠티지. 개싫다, 진짜."
" 너 작년에 안갔던것 같은데, 이번에도 가기 싫으면 가지말지 그래."
" 저번 동엠 안갈 때 과대랑 이번 엠티 가기로 약속했었단 말야."
" 차라리 동기엠티를 가지, 1,2학년 다 같이 가는것보단 그게 편하잖아."
" 그 때 지민이랑 여행 날짜 겹쳐ㅅ…ㅓ."
순간 나온 지민이 얘기에 나도 모르게 말을 멈추자 태형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왜 말을 하다가 말어.'라며 오삼 덮밥을 입에 한가득 집어넣는다. 아, 김탄소 병신 진짜…. 왜 거기서 말을 멈춰가지고. 내가 더 신경쓰는 것 같아 보이잖아, 쪽팔리게. 속으로는 나에게 수만가지 욕을 하며 태형이에게 '아니, 목 메여서.' 라고 대답하며 괜히 물 한모금을 마셨다.
" 너는 가? "
" 새내기는 이런저런 행사 다 참여해야지."
" 하긴…."
하긴 새내기면 웬만한 행사는 다 참여하곤 하지. 하지만 나처럼 언젠간 최대한 빠지려고 하는 너가 보일거다. 속으로 생각하며 김태형을 보고 실실 웃었다. 아, 엠티라 … 오랜만에 술이나 진탕 먹어야겠다. 실없는 생각을 하며 치즈돈까스, 일명 치돈을 한 입 베어물었다.
* * *
" 나는 김치볶음밥에 치즈 넣는게 좋아."
" 그래? 냉장고에 치즈 있어. 갖다줄래? "
몇일 간 거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학교가 끝나자마자 지민이의 집으로 향했다. 김치볶음밥을 해준다는 말에 신이 난 채 냉장고에서 치즈를 꺼내던 나는 곧 식탁위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비닐봉투들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 근데 병원 가보는게 좋지 않겠어? "
" 뭐가? "
" 너 가끔 아픈거. 이렇게 비닐봉투 쌓아놓을 정도면 꽤 심한거 아니야? "
" 가끔 스트레스 받을 때나 옛날 생각날 때 과호흡 오기는 하는데 … 괜찮아. 걱정하지마시고 치즈나 가져다주세요."
"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안하냐."
" 째려보는 것도 귀여워."
치즈를 가져다주며 지민이를 째려보자 지민이는 그런 나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요리로 시선을 돌린다. 능글 맞기는, 진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지민이의 허리를 안았다. '설레게 웬 백허그람.' 이라며 내게 미소 지어주는 지민이를 그렇게 안고 있었을까, 곧 내 코를 찌르는 듯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으, 김치볶음밥에서 나는 참기름 냄새 너무 좋아.
" 가서 먹자. 맛있게 된 것 같아."
" 응, 숟가락이랑 젓가락 가져갈게."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식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지민이를 따라 나도 식탁으로 총총 걸었다. 지민이가 해준 볶음밥을 한 입 가득 입 속에 집어넣으며 우물우물 먹던 나는 곧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지민아, 뭐 불편하면 더 이상 말 안할건데 … "
" 누나 얘기 하려고? "
" …귀신 같기는."
" 조금만 더 천천히."
" … …."
" 내가 날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만."
" …으이그."
동생 생각 때문인지 약간 어두워진 것만 같은 표정의 지민이를 바라보다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줬다. 니 잘못이 아닌데. 그 어린 나이에 많이 힘들었을 지민이 생각에 괜히 찡해져서 코를 쓱 문지르고는 이야기의 주제를 넘겼다.
" 맞아, 나 이번 주말에 엠티 가."
" 엠티? "
" 저번에 너랑 여행간다고 동엠 빠져서 이번 엠티는 꼭 가기로 약속했거든."
" 맞아, 기억난다."
보통 엠티 간다고 하면 남자친구들은 질투하던데, 역시 지민이는 쿨하구나 ㅡ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식탁이 계속 덜덜덜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너 다리 떨어? "
" 어? …아니."
" 너 혹시 질투 중? "
" … …."
" 아, 뭐야. 천하의 박지민이 웬일로 질투 중? "
" …술 많이 먹지 말고, 남자 조심하고… 놀 때 전화는 안할게, 시간 날 때 해."
" 뭐야, 진짜 지민이 아닌거 아니야? "
" 너는 이제 내 옆에 계속 있었으면 하니까."
장난스레 말을 건넨 내 말에 진지하게 답하는 지민이 때문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민이한테 이런 말 듣는게 소원이었는데, 좋은 기분이랑 자꾸 고개를 드는 미안한 마음이 섞여서 오묘한 기분이 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민이는 마냥 내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그런 지민이를 향해 나 또한 미소 지어주며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 뭐가 문제냐, 김탄소.
* * *
그렇게 평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 어느덧 벌써 주말이 와버렸다. 놀러가는건데 대체 왜 이렇게 일찍 만나는거야. 밝은 아침 햇살을 맞으며 하품을 쩍 하는데 그런 내 입으로 짜디짠 손가락 하나가 쿡 들어온다. 놀라서 콜록콜록 재채기를 하는데 앞에서 실실거리는 김태형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 아, 뭔데! "
" 그러게 누가 하품하래? "
" 내가 하품도 니 허락 맡고 하리? "
진짜 내가 미쳤다고 얘 때문에 … 말을 말자. 요새 김태형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일까, 괜시리 짜증나는 김태형을 째려보고는 고개를 휙 돌려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김태형은 '삐졌어?' 라며 또 졸래졸래 쫓아온다. 그런 김태형을 뒤로 하고 저 멀리 보이는 과대에게로 향하는데 …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무슨 술이 이렇게 많아? "
" 아, 교수님이 몇일전에 기분 좋으셔서 엠티비 하라고 갑자기 돈을 주셔가지고."
" …그래서? "
"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개인 사비로 쓸 수는 없잖아? "
" … …."
" 다 술에 쏟아부었지."
너넨 다 죽었어, 라며 살벌하게 미소 짓는 과대와 도저히 양을 셀 수 없는 초록색 소주병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 이번 엠티 진짜 끝을 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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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젤봉입니다:)
요새 중간고사 기간이라 정말 눈코뜰 새 없이 바쁘네요.
리포트 쓰랴, 시험 준비 하랴.
독자님들은 모두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흑흑.
시험 가까우신 독자님들 모두 시험 잘 보시고! 아니신 분들도 산뜻한 봄이니까 좋은 일 있으시길! :D
암호닉은 다음 화에 가져올게요! 다들 사랑함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