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바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07
" …아."
" …엄마? "
" 지민아, 미안해."
" 어디가? …엄마? "
늦은 새벽, 지민에게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다 속삭이곤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가는 모습. 그게 지민이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뛰쳐나가는 그 순간까지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부어올라있었고, 지민은 그 모습이 너무 슬퍼 한참을 울었단다. 그렇게 엄마가 떠난 후, 지민의 삶은 조금 더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 …찾아와, 느그들 엄마 찾아오라고."
" … …."
" 잡으면 죽여버릴거니까."
사실 흔치않은 일은 아니었다. 폭력성이 다분한 아버지와 그를 견디지못하고 떠나버린 엄마. 하지만 아직 중학생 밖에 되지 않은 지민에게 이 모든 상황은 너무 무거웠을 테였다. 제 품에서 울고 있는 어린 여동생을 달래주며 지민은 누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민은 누나에게서 확실히 본인과는 다름을 느꼈었다. 누나는 늘 당당했고, 그렇기에 든든했다. 늘 동생들을 대신해 나서서 맞고 있는 누나를 볼때면 왠지 눈물부터 나는 지민이었다.
" …누나, 뭐해? "
" 깼어? 누나 공부하고 있지."
" …누나 안아파? 입술 또 터졌다. 약 갖다줄게."
" 아냐, 괜찮아. …지민아."
" 응."
" 누나가 공부 열심히 해서 너희 꼭 아빠 눈치 안보고 살게 해줄게."
확신에 찬 눈빛으로 본인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누나에게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쁜 얼굴에 빨갛게 부어올라있는 입술을 바라보며 지민은 늘 떠나간 엄마 생각이 났다. 하지만 누나는 그렇지 않을거라, 꼭 본인과 어린 여동생을 지켜줄거라 그렇게 믿었다.
" 너 뭐하냐? "
" …학생이 공부하는게 뭐요."
" 아니, 이 책 누구 돈으로 샀냐고."
" …적어도 아빠가 번 돈은 아니겠죠."
" 이거 웃기는 년이네, 진짜."
하지만 그 희망은 그렇게 길지않았다. 짝ㅡ 하는 큰 마찰음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공부하는 것을 들키지않기 위해 새벽마다 몰래 공부하던 그녀였지만, 아마 그조차도 허락이 안되는 집안이였다. 책을 꼭 껴안은 채 맞고있던 그녀는 곧 정신이 흐려짐을 느꼈다.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죽일듯이 원망스러운 아버지와 어느새 깼는지 겁먹은 표정으로 서로 부둥켜 안고있는 동생들이 보였다.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그녀는 생각했다. ' …꼭 성공해서 너희들만은 지킬게.'
* * *
" …아."
" 누나 괜찮아? …미안해."
" …너가 뭐가 미안해."
" 어떻게든 아빠 막아보려고 했는데…미안해."
" …설마."
몇 시간을 쓰러져있던 그녀였다. 깨고나니 시야 속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부은 채 앉아있는 남동생과 울다 지쳐 잠든듯한 여동생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지민의 말에 지끈대는 머리를 붙잡고 책가방과 모든 서랍들을 뒤져봤지만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동생들과 집에서 나오기위해 지금껏 알바를 하며 모아왔던 돈들, 또 공부를 위해 없는 돈을 조금씩 모아서 샀던 몇 권의 문제집들. 그리고 교과서까지. 그녀가 지금껏 노력해왔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버린 후였다.
" …제발."
아무것도 없는 책가방과 서랍장을 떨리는 손으로 계속 확인하며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런 본인의 누나를 바라보며 지민은 마음이 찢어짐을 느꼈을테였다. 이유 없는 구타와 본인의 시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힘든 일상 속에서도 동생들에게 한번도 눈물을 보인적 없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껏 동생들을 데리고 나오겠다는 희망 하나로 살아왔던 그녀에게 그 희망들이 다 사라졌다는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평생을 후회하게 될 선택을.
* * *
" 지민아."
" …누나? "
그날도 그들에겐 어김없이 힘들었던 하루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유 없는 폭력을 남기고는 나갔고, 집에 남은 세 남매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잠에 들었던 지민은 곧 본인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다 깨지않아 흐릿해진 시야 속에 본인의 누나가 있었다. 눈물 섞인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에서 지민은 무언가 가슴을 내리찍은듯 불안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 그 얼굴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던 자신의 엄마가 보였기 때문일테다. 그리고 그런 불안한 기색을 확신이라도 시켜주듯이 점점 또렷해지는 시야 사이로 큰 가방 하나가 그녀의 어깨에 메어져있었다.
" 누나 왜그래…가방은 뭐야."
" 지민아, 딱 두달. 그만큼만 동생 지키고 있을 수 있겠어? "
" …누나도 우리 버릴거야? "
" …아니, 누나 돈 벌어서 너네 데리러올게."
" 우리도, 우리도 지금 데려가. 누나, 응? "
" 지금은 누나가 가지고있는게 하나도 없어. …너네까지 길바닥에서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어."
" 우리한테는 여기가 더 지옥이야. 누나도 알잖아…."
" 지아 몸 약한거 알잖아. 지민아, 잘할 수 있을거야."
" …제발 누나."
울먹이는 눈빛으로 '제발.' 이라며 자신을 쳐다보는 지민을 바라보며 그녀도 눈물을 머금었다. 하지만 몸 약한 여동생을 추운 겨울에 돌아다니게 할 수 없기에 그녀는 '두달 안에 꼭 올게.' 라는 약속을 남긴 채 자신의 옷깃을 잡고 있는 남동생의 손을 놓아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가는 누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지민은 곧 잠꼬대를 하는지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여동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 …오빠? "
" 응, 오빠 여기있어. 자자."
잠에서 얼핏 깨었는지, 졸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지민은 한참을 울었다. 든든하던 누나처럼 동생을 잘 지켜줄 수 있을까. 이상하리만큼 무거운 불안함에 휩싸인 그였다.
* * *
그렇게 두달이 되어갈 때까지 지민은 열심히 버텼다. 그동안 맏이에게 쏟아지던 모든 구타와 질타들은 오롯이 어린 남매에게 쏟아졌다. 여동생만은 지키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지민은 그 많은 폭력들을 견뎌냈지만, 아니, 견뎌내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의 누나처럼 그 모든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동생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침을 조금 하는 듯 하더니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기침 또한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 …열이 내리질않네."
" 오빠, 이러다가 아빠 오시면 우리 혼나…."
" 아픈 애가 그런거 신경쓰지마. 혼나도 내가 혼날게."
이번에 오시면 맞아죽더라도 동생 진료비를 달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지민은 열이 나서 아픈지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동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날이 지나고, 또 다음날이 지나도 그의 아버지는 돌아오지않았다. 대신 동생의 병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줄 알았는데, 지민은 주머니 속 천원도 채 되지않는 돈을 바라보며 손톱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동생을 병원에 데려갈 병원비를 마련해야한다.
" 오빠, 나 너무 아파…."
" …이거 뭐야? 왜그래, 너."
" 몇일전부터 …이랬어."
" 오빠한테 말을 했어야지! "
" 오빠 걱정하잖아…."
기침을 하자 입에서 새빨간 각혈을 토해내는 동생을 보며 지민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누나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당황하는 본인이 너무 미워서 자신도 모르게 누나를 찾고 있는 지민이었다. 병원을 가야하는데 병원비는 없다. 119를 부르고싶은데 집에 전기 또한 끊겼고, 병원은 집에서 멀다.
"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숨을 옅게 쉬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지민은 속으로 누나를 수천번도 더 불렀단다. 하지만 그렇게 속으로 부른들 누나는 돌아올리 없었고 동생은 서서히 의식까지 옅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동생을 등에 업고 지민은 밖으로 나와서 뛰었다. 주변의 집이란 집은 다 두들기며 '동생 좀 살려주세요.'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그렇게 지민은 뛰었다.
* * *
얼마 동안을 그렇게 뛰었는지 모른다. 눈을 떠보니 하얀 병원 천장이 보였고, 지민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뛰다가 어디에서 쓰러진 모양이었다. 일어나 동생을 찾던 지민은 곧 앞에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에게 말을 걸었다.
" 저기요."
" 일어났네. 안그래도 찾아갈 참이었는데. 과호흡 증세로 실신해서 실려왔거든."
" 그건 괜찮고, 제 동생은요? "
" …같이 실려온 애 말이지? …그 애 때문에 찾아가려고 했는데."
" 어디있어요? "
" …일단 따라올래? "
황급히 의사를 따라간 곳에는 하얀 천에 덮힌 동생이 있었다. 이럴리가 없는데. 지민은 멍하니 차가워진 동생의 손을 잡았다. 너무 당혹스러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지민은 곧 의사를 다시 바라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제 동생 왜 이래요? 왜 갑자기…."
" …급성 폐렴이었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 그럴리가 없어요. 제 동생이 이렇게 차가울리가 없는데…."
조금만 일찍 병원에 왔다면 살았을 수도 있었다. 지민은 이미 차디찬 동생의 손을 잡으며 그날 하루종일 울었다. 그리고 동생을 지키지못한 죄책감은 곧 누나에 대한 미움으로 번져갔다. 물론 지민도 알고있었다. 누나는 어린 동생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렇게 누나를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누나가 돌아올 그 집을 버리고 알바와 궂은 일을 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아픈 동생을 데리고 갈 병원비가 없었던 것이 큰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 저기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지민은 탄소를 만났다. 탄소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여자를 이상하리만큼 많이 만났다. 아마 엄마, 누나, 여동생까지 지민의 곁에 있던 모든 여자들이 다 떠나갔다는 상처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항상 곁에 여자가 있기를 바랬지만, 여자는 언젠간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편견이 박혀버린 그였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은 남이 보았을 때 '오는 여자 안막고 가는 여자는 잡지않는다.' 와 같았을 것이다.
" 이름이 뭐예요?"
" 아, 아! 그 … 김탄소 …요."
" 이름 예쁘다."
하지만 탄소에게는 왠지 다른 느낌을 받은 그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그녀 주변으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사실 지민이 먼저 말을 건 것도 탄소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지민에게 탄소는 그 이후에도 특별했다. 다른 여자들이 그의 무심함이나 바람기에 지쳐갈 때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지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탄소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붙잡게 되었다.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었고, 달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에게 곧 누나가 찾아왔다.
" 지민아."
" …아는척 하지마."
" 다 들었어. …미안해."
" 들었으면 더 잘됐네. 내가 데려가달라고 했지. 그렇게 애원했는데 어떻게…."
" 미안해, 누나가 미안해."
" …누나만 안갔으면 내 동생… 아니다. 그냥 각자 살자. 찾아오지마."
어린 남매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알고있던 지민이지만, 막상 누나의 얼굴을 보았을 때 드는 그 미운 감정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민은 누나가 본인을 찾아왔을 때마다 그렇게 차갑게 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핸드폰 번호도 바꾸며 피해다니다가 마주친 사람이 태형이었다. 그 날 탄소가 약속이 있다고 간 뒤,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을 뿐이었고, 그러다 밖에서 본인을 발견하고 쫓아온 누나를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탄소를 마주친게 화근이었다.
" 영화 취소하시고 5시인데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시죠. 싫으시면 탄소는 남자친구 권한으로 제가 데리고갈게요."
그저 어떤 놈이 내 여자친구를 탐내나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에게 그 이상의 호기심은 없었다. 그래도 나름 탄소에게 위기감을 느끼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해주어서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그가 본인의 누나를 건드린 순간부터 지민에게 태형은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격한 적대감의 의미. 자신도 마주치기 싫었던 트라우마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들춰내고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큰 분노로 다가왔을 테였다. 그리고 이런 분노는 곧 탄소에 대한 불안함을 가져왔다. 여동생이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죽었다는 트라우마를 그녀도 알게될 것이고, 이것은 곧 그녀가 자신을 떠나갈 것이라는 불안함으로 번져갔다. 그렇게 탄소에게 몇마디 밖에 해주지못한 채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
으아, 너무 늦었네요. 원래 지민이의 과거를 되게 어둡게 써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대로 썼는데
원래 약간 가벼운 느낌의 글이 지민이의 과거로 한층 무거워져버렸어요..!
게다가 원래 생각한 스토리를 글로 쓰니까 분량이 엄청 길어..! 쓰면서 너무 길어서 당황했답니다..
즐거운 이야기를 보러오셨는데 얘기가 너무 어두워서 죄송해요..(ㅠㅠ)
서브 남주의 이야기가 너무 어둡고 길어지면 좀 그렇지않을까 해서 좀 줄여볼까 했지만..
뺄 이야기를 다 빼도 원래 생각하던 설정들 중 중요한 것들을 계속 넣다보니 이렇게...흐귱.
혹시 의문을 가지실까봐 뺀 이야기 중 한개만 말씀드리자면!
아버지는 추운 날 음주를 하시고 네.. 그래서 못오신 설정이었습니다..
맞아, 그리고 초록글! 그것도 첫페이지! 다른 좋은 글들 너무 많은데 제 글이 거기에 올라갈 줄 꿈에도 몰랐어요(ㅠㅠ).
여러분들 너무 감사드려요.. 흑.. 진짜 감동인데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어! (부끄)..
그리고 제가 공지를 읽어봤는데 타 아이돌 움짤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흑, 그 얘기가 없어서.
원래 누나분 생각할 때부터 윤아님 생각하고 있어서 넣었는데 안된다면 꼭 피드백 부탁드려요! 수정하겠습니다.
다들 너무 감사드리고, 다음화에 암호닉 가져오겠습니다 다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