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같은 자식, 여우 같은 기지배 01
혹시, 구미호라고 들어봤을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우리 종족이 지은 별명은 아니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그렇게 불려왔다. '구미호' 라고.
뭐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사람을 홀릴 수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간을 빼먹는다거나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등 … 그건 다 부풀려진 얘기이다.
우리한텐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여우구슬 때문에 인간의 정기를 조금씩 훔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인간이 죽을 정도도 아니고 한동안 피로가 심하게 오는 정도?
간을 빼먹는다던지 그런 야만스러운 짓은 죽어도 안하는데 말이야. 줘도 안먹어, 간 같은건.
그리고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아니, 평생을 젊은 상태로 살 수 있지. 인간들보다 세고 똑똑하지.
영생의 삶이 싫으면 우리 사이에서 호(狐)의 자살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냥 여우구슬을 없애는 방법이 있다.
만족스러운 삶에, 혹여나 죽고 싶다면 죽을 수도 있는데 인간이 될 이유가 어디 있으랴.
뭐, 사실 이런 삶을 사는게 우리 뿐만은 아니다.
인간들이 보통 말하는 뱀파이어나 용, 늑대인간과 같은 존재들은 생각보다 그들 주변에 많은 편이다. 50년에 한번 꼴로 볼 수 있는 정도?
전설이라는 게 아예 없는 것을 지어낸 건 아니라는 뜻이다. 다들 어디서 본게 있으니까 살을 덧붙여서 전설이 된거지.
하여튼간, 예를 든 이 세 종족을 대표적으로 얘기해보자면,
일단, 뱀파이어.
얘네는 너무 유명해서 딱히 할 말도 없지만, 나는 사실 얘네 종족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건 조금 싫지만, 그래도 잘생기고 매너 좋은 종족이라 대부분 만나면 기분이 좋더라구.
그리고 인간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막 피 빨아먹고 죽이고 뭐 그런 애들도 아니라, 야만적이지도 않고 대부분 좋은 애들이라고 보면 된다.
용 … 얘네는 되게 대단한 존재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 같은 여우들이 오래 살아서 특별한 힘을 얻어서 되는게 구미호라면, 얘네도 뱀이 그렇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들이 말하는 것처럼 승천한다던지 그런건 아니다.
그냥 특별한 힘이 있는 뱀? … 그래, 인간들이 말하는 이무기. 그게 용이다.
마지막으로 얘네.
내가 진짜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이 성질 더럽지, 또 얘네 달 뜨면 인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갑자기 폭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전에 몇백년전인가, 한번 봤다가 몇일동안 비위 상해서 밥도 못먹었던 것 같다.
어쨌든, 뭐 예도 들어가며 설명하긴 했지만, 그 내용을 간단히 두 가지로 요약해보자면,
인간들 주변에는 생각보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많다 ㅡ 라는 것과. 그 많은 종족 중에서도 나는 늑대 놈들을 겁나게 싫어한다 ㅡ 이렇게 할 수 있겠네.
근데 대체 이 상황은 뭐냔 말이야.
" 뭐야, 여우가 왜 왔어? "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이 자식아.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늑대의 냄새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 쪽도 별로 탐탁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있다.
내가 알기로 저 쪽도 아마 우리를 별로 안좋아한다고 들었다. 교만하고 야비한 종족이라서 그렇다나 뭐라나.
" 난 이 집 정식으로 계약하고 왔는데, 그 쪽은? "
" 난 이 집 주인."
" … …. "
분명, 이 집 계약할 때는 그런 얘기 못들었었는데. …하긴, 부동산 직원이 쟤가 늑대라는 걸 알리가 없구나.
한숨을 푹 내쉰 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그런 나를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늑대가 입을 열었다.
" 웬만하면 다른 집 알아보지? 집에 여우 들이고 싶지는 않은데."
" …말투가 싸가지가 없으시네."
" 우리 종족이 원래 좀 예민해. 천박하게 인간이든, 뭐든 홀리고 다니는 니네 종족보단 낫겠지만."
재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씩 웃고는 문을 쾅 닫아버리는 늑대 놈 때문에 어이가 없어서 닫힌 문 앞에서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은 채 한참을 서있었던 것 같다.
진짜 웃기는 놈이네, 이거. 니가 몇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천 년 가까이 살아온 구미호 중에서도 탑급 구미호라고.
" 야, 너 뭐야? "
" 난 돈도 미리 냈고, 여기서 살거거든. 짐도 안풀었는데 문을 닫아버리면 어떡해."
" …그렇다고 문을 부숴버리냐? "
누가 더 성질 더럽나 해보자 이거야.
무기력하게 바깥 공기를 받아들인 채 부숴져있는 문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지었다.
집터 바꾸는게 생각보다 얼마나 귀찮은데.
" 적어도 20년, 많으면 70년. 혹은 무기한."
" … …."
" 잘 부탁해, 늑대."
* * *
" 니가 쓸 방은 여기."
" …아주 쓰레기통이 따로 없네. 마치 누가 일부러 헤집어놓은 것처럼 말야. 그치? "
늑대가 가리킨 방에는 먼지며, 쓰레기 더미며, 솔직히 누가 봐도 일부러 어지럽혀 놓은 듯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생긴 것보다 되게 유치하게 노네. 캐리어를 신경질적으로 방에 던진 뒤, 삐딱하게 서있는 늑대 놈을 뒤로 하고는 거실에 있는 쇼파에 털썩 앉았다. 그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나를 계속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던 늑대는 곧 한숨을 푹 쉬고는 내가 앉아있는 쇼파로 다가와 종이 한 장을 툭 던진다.
" 뭐야? "
" 진짜 여기서 살거면 규칙은 지키고 살아야 할 거 아냐."
" 규칙도 있어? 진짜 까다롭네."
늑대가 던져 놓은 종이를 들어 살펴보자, 이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 몇 가지가 적혀있었다.
「 첫째, 2층 왼쪽 방에는 사전 노크 없이 절대 출입 불가.
둘째, 설거지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은 요일을 정해 돌아가며 하기로 한다.
셋째, 선지 금지, 금지 금지! 」
첫 번째는 뭐 2층 왼쪽 방이 늑대 놈 방이면 인간은 웬만하면 안되니까 그럴 수 있다 치고, 두 번째도 뭐 다 같이 쓰는 집에서 자주 있는 규칙이라고 쳐도 세 번쨰 규칙은 뭐람. 늑대 놈들이 선지를 싫어하던가? 종이와 늑대를 번갈아 바라보자, 늑대는 한숨을 푹 쉬더니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첫 번째나 두 번째는 니네 종족 멍청하진 않으니까 왜 그런지 알거고."
" … …."
" 세 번째는 여기 나 말고 둘이 더 사는데, 그 중 하나가 뱀파이어야. 하나는 용이고."
" …어? "
" 근데 또 인간이 아닌게 찾아왔네."
" 여기 사는 애들 중에 인간이 하나도 없다고? "
" 어. 곧 올 시간 됐네. 여기 사는 동안 괜히 애들 홀리지말고 조용히 지내. 우리 집에서 여우가 날뛰는 거 보기 싫으니까."
" 근데 이 새끼는 왜 말 끝마다 우리 종족 욕이야. 뭐 여우한테 크게 홀린 적 있나봐? "
" … …."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방에 들어가버리는 늑대 놈을 보면서 콧방귀를 흥 뀌었다. 진짜 재수 없는 놈이네. 그 놈이 들어간 방을 힐끗 쳐다보고는 퉤, 하고 침 뱉는 흉내를 냈다. 들었겠지, 귀 좋은 놈들이니까. 들으라고 한거다, 새끼야. 그렇게 몇 분간을 쇼파에 앉아있었을까, 슬슬 방 정리를 해야겠다 하고 일어나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내가 아는 그 두 종족의 냄새와 함께 한동안 함께 살게 될 두 명이 들어왔다.
01)
안녕하세요! 젤봉임니다:)
허윽, 요새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 정말 현실에 치여 사는중이에요...주륵주륵.
그래도 이제 곧 황!금!연!휴!
독자님들 황금연휴 잘 보내시길 바랄게요1 물론 저도..헷..
으으, 이번에 1편은 왠지 프롤로그 + 0.5..? 이런 느낌이네요 흑흑, 이 앞부분을 프롤로그에 넣었어야했는데
왠지 프롤로그는 짧은 느낌으로 끝내고 싶어서 1화에 대략 소개와 같은 부분들을 넣어버렸네요 ㅎㅎ
맞아, 프롤로그에서 신청해주신 암호닉들은 조만간 정리해서 가져오겠습니다!
그럼 다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