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바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0
" 날씨 진짜 좋네."
" 그러게."
버스 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가기 전엔 귀찮아도 가면서 이렇게 버스 안에서 바람을 맞고 있으면 여행 기분도 많이 나고 참 좋단 말이지. 김태형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내 옆에서 그닥 어울리지도 않는 선글라스를 쓰고는 은은히 미소 짓고 있다. 뭐 …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 왜 자꾸 봐. 잘 어울려? "
" 지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선글라스 낀게 웃겨서 그런다, 왜."
" 오빠 썬구리 잘 어울리지 않냐. 크, 잘생겼어."
핸드폰 액정으로 자기 얼굴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김태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 놈의 잘난척은 언제 없어질라나. …사실 잘생긴 걸 부정할 수는 없긴 하다. 옛날부터 저렇게 재수없이 굴어도 잘생겼잖아, 한 마디면 말문이 막히곤 했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지금 니 옆에 있는 남자 이 영화관에서 제일 잘생겼어.'라고 말했을 때도 장난식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보였었고. 사실 그 때는 박지민이 미워서 그런지 박지민보다도 멋져보이더라.
" 아."
" 오 … ㅐ "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태형이 내 어깨를 톡톡 치고는 아, 라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그런 김태형에게 왜? 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내 입으로 새우깡 하나가 들어왔다. 멍하니 입 안에 들어온 과자를 우물우물 씹어먹자, 김태형은 씩 웃고는 '과자 먹으라고.' 라고 대답한다. 왜 먹여주고 난리래, 진짜. 이렇게 별거 아닌 거에도 쓸데 없이 떨리고 있는 날 아는 지 모르는 지 김태형은 과자를 내 입에 넣어주고는 옆자리 1학년과 히히덕 수다나 떨고 있다. 그런 김태형이 왠지 꼴보기 싫어서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던 것 같다.
* * *
" 여기 여관 아닙니다. 눈 좀 뜨시죠? "
" …에."
" 세탁비 청구할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나를 흔들며 깨우는 김태형에 의해 눈을 뜨자 숙소에 도착했는지 다들 짐을 내리고 있다.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던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김태형의 옷. 누가 봐도 침으로 축축해보인다. …저거 설마 내 침인가. 멍하니 그 침자국과 김태형을 번갈아 바라보자 김태형은 핸드폰 액정을 보여주며 입을 연다.
" 니 침 맞으니까 거울 좀 보고 얼굴에 침 자국도 닦지 그러냐."
" …내 침 맞네, 진짜. "
허허, 하고 멋쩍게 웃으며 김태형을 따라 버스에서 내리자 나름 크고 괜찮은 숙소가 나왔다. 와, 이번에 과대 고생 좀 했나보네. 캐리어를 끌고 과 애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자 과대가 이런저런 공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 밤 새서 놀 애들도 많으니까 굳이 방을 정해주진 않을게요. 대신 불미스러운 일은 없어야 할겁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공지를 내리는 과대의 말에 다들 꺄르르 웃었다. 아, 막상 오니 즐겁네.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얼굴에 미소를 한껏 안은채 숙소를 향해 걷는데, 내 옆에 있던 김태형이 숙소가 아닌 마당 뒷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쟤 어디가지? 그런 김태형을 발견하고 김태형이 걸어간 마당 뒷쪽으로 향하자 김태형이 쭈구려 앉아 있었다.
" 아구, 예뻐. 이름이 뭐야? "
아, 강아지구나. 맞아, 김태형은 어렸을 때부터 동물 참 좋아했었지. 쟤도 변한거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김태형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강아지랑 놀고 있던 김태형은 곧 고개를 돌려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엥, 나 여기 서있는 거 알고 있었나?
" 귀엽지."
" 그러게, 여기서 키우는 갠가? "
" 그렇겠지? 너는 왜 와서 아무 말도 안하고 쳐다보고만 있어."
" 그냥 옛날 생각 나서. 근데 나 서있는 건 어떻게 알았대? "
" …11년 친구면 인기척만 들어도 알지."
왠지 씁쓸해보이는 그 표정을 바라보다 괜히 큼큼,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먼저 간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예전에도 왠지 저런 표정을 봤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만 같아서 계속 마주하기 힘들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런 복잡 미묘한 기분을 안고 모두가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탄소야, 잠시만."
" 왜? "
" 이 앞에 마트 좀 가서 여기 적힌 것 좀 사다줄 수 있어? "
" 뭐야, 안 가져왔어? "
" 아니, 이 앞에 마트 있는거 보고 아이스박스 챙겨오기 귀찮아서 와서 사려했는데 준비할게 많아서 사올 시간이 없다."
부탁 좀 할게, 라며 내 손을 잡고는 울상을 지어보이는 과대를 바라보다 알겠다 하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얘랑 친한 내 잘못이지, 뭐. 옆에서 이런 저런 게임 준비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회 애들을 바라보다가 그래도 장보러 가는게 낫지ㅡ 라고 생각하며 짐을 숙소에 대충 넣어놓고는 학생회비를 챙겨 숙소 밖으로 나왔다.
" 어디 가? "
" 과대가 뭐 좀 사다달라해서 그거 사려고."
" 같이 가. 나도 짐 넣어놓고 나왔어."
" 그냥 애들이랑 놀지, 뭐하러."
" 됐어, 지금 남자애들 축구하고 학생회 하는 애들은 열심히 술 게임 할 거 준비하고 있던데, 가서 뭐해."
" …너 혹시 아싸? "
시끄럽고 그냥 가자, 라며 내 등을 툭 치는 김태형에게 밀려 다시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마트에 도착하자 김태형은 익숙하게 종이에 적힌 음식 재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카트에 담았다. 저렇게 이리저리 둘러보면 뭐가 좋은 지 아는걸까나. 나는 봐도 하나도 모르겠던데. '너 혼자 왔으면 분명 썩고 구리구리한 야채나 샀을거다.' 라며 콧대를 세워보이는 김태형의 말에 차마 반박은 못하고 인상만 찌푸리다 다다른 곳은 고기 코너 앞이었다. 고기는 또 내가 잘 볼 수 있지. 전직 고기마스터로 20년을 넘게 살아 온 인생인데.
" 사장님, 삼겹살 20인분 정도 주세요! "
" 뭐 이렇게 많이 사요? 단체 여행 오셨나? "
" 네, 많이 주세요."
" 아, 아저씨. 그것보다 그 뒤에 있는걸로 많이 주시면 안될까요? "
흐뭇하게 아저씨가 담는 고기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조용히 서있던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뒤에 있는 삼겹살이나 앞에 있는 삼겹살이나 아무리 봐도 거기서 거긴데, 김태형은 이게 뭐라고 상당히 심오한 표정으로 뒤에 있는 삼겹살을 가리키고 있다. 아저씨는 그런 태형이를 보다 허허, 웃더라.
" 남자친구가 그 쪽보다 고기를 잘아네. 남자친구 봐서 조금 더 넣어줄게."
" 아, 남자친구 ㅇ …."
" 감사합니다, 아저씨! "
남자친구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해명을 하려 하는데 그런 내 말이 채 다 나오기도 전에 김태형이 나를 막아서고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려버린다. 어어, 이렇게 되면 분위기 이상한데. 김태형을 괜히 슬쩍 쳐다보다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진짜 고기를 많이 담아주신 아저씨 덕에 많은 고기를 포함해 이것저것 양 손 두둑이 들고는 마트에서 나와 다시 숙소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그거 나 줘. 아까 음료수 같은 거 다 거기 넣어서 무거워."
" 됐거든, 그리고 니가 왜 니 남자친구야. 내 남자친구는 따로 있는데."
" 다른 의미 없으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그냥 고기 많이 주신다하셔서 더 말 안한거야."
뭔가 이상한데. 어딘가 이상한 변명에 김태형을 뚱하게 바라보자 김태형은 짐이나 내놓으라며 내 손에 든 짐을 휙 뺏어서는 큰 보폭으로 먼저 걸어간다. 그런 김태형을 따라 숙소에 도착하자, 여긴 아직도 아까랑 같은 풍경이다. 사온 짐들을 과대에게 가져다 준 뒤 김태형이랑 또 투닥투닥하며 있는데 멀리서 태형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하나 들렸다.
" 형, 축구 한 판 안할래요? "
" 할 것도 없는데 그럴까나."
" 아싸는 아니었네?"
내 말에 아니라니까. 라며 기지개를 펴고는 자기를 부른 남자애를 따라 일어나는 김태형을 바라보다가 나도 기지개를 쭉 폈다. 난 뭐할까나. 잠시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데 동기 하나가 다가와 할 거 없으면 마당에서 애들 축구 하는 거나 구경하고 광합성이나 하자며 말을 건다. 그 말에 왠지 혹해서 나도 일어나 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김태형이네."
" 맞아, 너 쟤랑 고딩 때부터 친구랬지."
" 아니, 고딩 때부터 쭈욱."
" 와, 진짜 오래 됐네. 처음에 쟤 왔을 때 잘생긴 신입생 왔다고 다들 그랬는데."
예전부터 잘생겼다는 얘기는 엄청 듣고다녔지, 쟤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김태형을 보고 있는데, 곧 와! 하는 소리와 함께 김태형이 골을 넣었다. 쟤 예전에 축구도 꽤 잘했었는데. 중학교 때 축구부였었나. 그렇게 멍하니 애들 축구하는 걸 보고 있는데 진짜 축구는 잘하나보다. 벌써 몇 번째 골이람. 김태형은 그렇게 골을 한번 더 넣고는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
" 김탄소! "
" … …왜! "
나를 보고서는 내 이름을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 김태형 때문에 왠지 시선이 내게 고정된 것만 같았다. 뭐야, 무슨 7080 청춘 영화도 아니고. 이러지 않기로 하고선. 그래도 왠지 부끄럽고 설레는 마음에 실실 나오는 웃음을 가라앉히며 왜! 라고 소리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김태형이 걸어오는 느낌적인 느낌이 느껴졌다. 곧 내 앞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약간 상기된 볼을 잡고는 고개를 들자,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 니 옆에 있는 물 좀 달라는데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냐? "
그런 거였구나. 괜히 머쓱해지는 고개를 들며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물을 건네주고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는 ' 죽자.' 라는 말을 수천번은 되뇌였다.
♬
안녕하세요! 허헣, 엠티편은 두개로 나뉠듯합니다.
그나저나 너무 늦었죠(주륵). 너무 죄송해요ㅠㅠ.
새로 쓰는 소설 쓰고 학교에서 논문 쓰고 이러다보니 너무 늦었어요..(꾸벅)...
중간만 지나면 별로 안바쁘겠지, 하고 생각하며 새로운 소설도 생각난 김에 덜컥 써버렸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요구하는게 와르르르르...쏟아져서 당황중입니다.. 허극허극...
이래서 강의계획표는 잘 살펴봐야 하나봐요..흑. 다들 너무 죄송하고 사랑해요..!
근데 날씨가 이제 봄을 지나서 초여름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일교차는 너무 크지만.
독자님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