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바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08
지민아, 지민아. 속으로 지민이를 수없이 외치며 나는 지민이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못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가끔씩 찾아오는 지민이의 무관심에, 그 바람기에 상처받고 짜증만 냈었다. 정작 나는 지민이에 대해 아무것도 관심 갖지 않았으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지민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공허했던 표정들에도, 이번 일에 대해서도. 괜찮냐고, 무슨 일이냐고 한번을 물어봐주지 않았었다. 그렇게 나는 미안함에 파묻혀 전화도, 문자도 받지않는 지민이의 집을 향해 뛰었다.
" …지민아, 안에 있어? 나 들어갈게."
그렇게 도착한 지민이의 집 앞에서 초인종도 누르고 문도 두들겨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평소라면 그냥 돌아갔을테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예전에 지민이가 얼핏 말해줬었던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지민이 말없이 집 들어가는거 싫어하는데. 그렇게 실없는 걱정을 하며 문을 열었을 때, 내 시야에 보였던건….
" 지민아! 박지민! "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서 숨을 헐떡이는 지민이었다. 숨을 쉬기 힘든듯 식은 땀을 흘리며 손을 떨고있는 지민이에게 달려갔다. 지민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계속 숨을 가쁘게 내쉬고있을 뿐이었다. 어떡해야하지? 진정하고 생각하자. 일단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119에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드는데, 지민이가 가쁜 숨과 함께 내게 입을 열었다.
" …나 괜찮아, 비닐봉투…좀 줄래…식탁 위에."
" 비닐봉투? 어, 금방 줄게."
이런 상황이 자주 있었는지 식탁위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비닐봉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 중 하나를 집어 지민이에게 전해주자, 지민이는 비닐봉투에 대고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만히 지민이를 바라본지 10분 가량 되었을까, 점차 지민이의 숨이 안정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 …말도 없이 어쩐일이야."
" 언제부터 이랬어? 나랑 사귀기 전부터 이랬어? "
" … …."
" 그날부터야? …어렸을 때 쓰러졌다던 그 날."
내 말에 지민이는 놀란 표정을 하고선 나를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숙이고는 실소를 흘린다. '다 알았구나.' 조용히 읊조리던 지민이는 곧 다시끔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지민이의 그 실소 속에서, 그리고 지금 다시 나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얽혀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누나 만났어? "
" …응."
" 내가 얼마나 한심한 놈인지도 들었겠네."
" …진짜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 … …."
" 이제 보니까 한심한 놈이네."
" … …."
" 이렇게 혼자 아파하면서 나한테 한마디 말도 안한거 보니까."
내 말에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지민이는 곧 조금씩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훌쩍거림으로 시작했던 그 눈물은 점점 불어나 지민이를 아이처럼 목놓아 울게 만들었다. 그런 지민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품에 안아주자 지민이는 내 품에서 그렇게 계속 울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괜찮아.'라는 말을 귓가에 속삭여주며 시간이 멈춘듯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 …나 많이 힘들었어."
" 알아."
" 내 가족은 아무도 없었고, 혼자 살아가기에도 너무 벅찼어."
" …그랬을거야."
" 얘기할 사람 하나 없고, 그래서 더 그렇게 살았어."
" 응, 이해해."
" …고마워, 진짜로."
그 대화 이후로 우리는 말 없이 그저 안고 있었다. 아니, 내가 지민이를 안아주고 있었다고 하는게 맞는거겠지. 그렇게 나에게 안겨 있던 지민이는 곧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잠이 들었고, 그런 지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나도 한참 잠에 들었단다.
* * *
" 데려다줄까? "
" 아냐, 오늘은 좀 쉬어."
" 이거 별거 아닌데. 데려다줄 수 있어."
" 나도 괜찮아. 안에 죽 끓여놨으니까 그거나 먹어. 불 올려놓고 나왔으니까 따라나오면 너네 집 홀라당 탄다."
" 알겠어, 조심히 가고. …고마워."
" 또 그런다. 나 진짜 갈게."
문 밖까지 나와 계속 나를 바라보는 지민이를 향해 손 인사를 하고는 우리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모르는 지민이에 대해 많은 걸 알아버린 것 같다. 사실, 아까 지민이의 애처로운 눈빛에 나도 모르게 뜨끔했었던 것 같다. 지민이가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고, 또 그런 지민이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났었다. 문득 계속 머릿 속을 떠다니는 태형이의 생각이 나로 하여금 지민이에게 더욱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나는 이런 지민이를 절대 떠나서는 안되는데, 김태형이 뭐라고. 로맨틱하지도, 감동스럽지도 않던 그 고백이 뭐라고. 대체 그게 다 뭐라고 한순간에 날 이렇게 흔들리게 하는걸까.
" …김탄소."
김태형 생각을 해서일까. 날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은 야윈듯한 태형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너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걸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의 어깨를 치며 '왜 연락을 안하냐.'라고 말하는게 맞는걸까, 아니면 그냥 너를 멀리하는게 맞는걸까. 그 어떤 답도 찾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는 내게 태형이는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 밤 늦게 찾아와서 미안."
" …언제부터 이런거 신경 썼다고."
" 그 때 그렇게 당황스럽게 한 것도 미안."
" … …."
" 그래도 진심이었어, 그 때 그 말."
" 그게 진심이었으면."
" … …."
" 그랬으면 넌 지금 날 찾아와선 안됐지."
내 차가운 목소리에 나를 바라보는 태형이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는 게 보였다. 이렇게 차갑게 굴고 싶진 않았는데. 태형이의 눈빛을 억지로 피하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안그래도 너 때문에 마음에 확신이 안서서 죽을 것만 같은데, 왜 하필 지금 온거야. 그전까진 아무리 봐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태형이의 목소리 하나 하나에 심장이 떨리는 것만 같아서 미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차갑게 굴어야만 했다. 나는 지금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그리고 김태형은 내 오랜 친구니까. 분명 이건 놀라서…갑작스러웠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감정뿐일테니까.
" …보고싶어서."
" …야."
" 몇일 안봤다고 니가 미친듯이 보고싶어서."
" … …."
" 그래서 왔어. 너 안보는거 못할 것 같아서."
더 모질게 말해야하는데. 보고싶었다는 그 말이 뭐라고 내 말문을 막히게 만든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태형이의 눈빛이, 쓸데없이 기분 좋은 밤공기가, 또 우리 둘만을 비춰주고 있는 가로등이. 그 모든게 다 나를 이렇게 흔들리게 만드는걸까.
" 이제 좋아한다는 말 안할게."
" … …."
" 너 나 때문에 신경쓰지 않도록 할게."
" … …."
" 그냥 나 혼자만의 감정으로 간직할게. …그러니까."
" …김태형."
" 친구라는 이름으로라도 곁에 있게해줘… 널 잃는 건 도저히 못하겠어."
" … …."
" … 탄소야, 제발."
내게 '친구'라는 이름으로라도 옆에 있게 해달라는 태형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걸까. 나 또한 11년씩이나 곁에 있었던 태형이를 이렇게 순식간에 잃는다는 것은 이 몇일 간 경험했던 것처럼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태형이를 곁에 두는 것은 태형이에게도, 지민이에게도 상처를 주는 행동은 아닐까. 수많은 생각들을 안고 가만히 태형이를 바라보았다. 태형이의 눈빛이, 또 밤공기가, 가로등이. 수많은 핑계들을 둘러대며 태형이에게 ' …그러자.' 라고 대답한 그 날 밤, 나는 이기적인 위선자였다.
♬
안녕하세요! 이건 뭐 날이 갈수록 늦게 오니 변명드릴 수가 없네요..(ㅠㅠ).
이런 저런 과제에 치여 살다보니 계속 시간 날때마다 열심히 쓰고는 있는데 계속 늦고 있어서 죄송할 따름이에요.
그리고 7편에서 댓글 하나도 못달아드려서 너무 죄송했어요(ㅠㅠ),
힝. 암호닉 여러분을 포함한 많은 댓글들이 늘 저한테 너무나 힘이 됩니다 ♡
요새 날씨가 이제 완전 봄이고, 벚꽃도 폈는데 독자님들 모두 봄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봄이고 뭐고, 과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교수님들 살려주세요! )
그나저나, 오늘 겨우 태형이를 출연시켰네요! 전 사실 맞바람 처음 생각했을 때 되게 밝을줄 알았는데..
쓰다보니 이건 뭐 밝은 내용보다 좀 어두운 내용이 더 많아지고 있네요.. 제목은 상당히 밝아보이는데.
제 취향이 어두운거라 점점 제 취향 타고 있나봐요..(반성).
어쨋든 독자님들 그래도 즐거운 봄 보내시고 9편에서 봬요! 다들 사랑합니다!
제사랑 암호닉분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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