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건반을 누르 듯 섬세한 손길로 그녀의 허리를 지분거리는 정국의 손가락에 힘을 주고 있는 다리에 자꾸 힘이 풀렸다, 그리고 몸이 엘리베이터 벽을 타고 힘없이 흘러내리면 정국의 허벅지가 그녀의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파고 들어 주저 앉지 못 하도록 막았다. 민감한 부분을 강하게 짓누르는 정국 탓에 온몸이 성감대가 되어 한없이 녹아내리는 탄소는 데일 것만 같은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분명 먼저 도발한 쪽은 그녀인데 판이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여전히 간지럽게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고 있던 정국이 눈을 감은 채 벽을 잡고 있던 손만 뻗어 엘리베이터 층수를 빠짐 없이 모두 눌렀다. 1층, 2층, 3층...22층, 23층, 24층... 버튼이 눌릴 때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안내음 마저 야릇한 속삭임으로 들리는 지금, 5초 간격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4층, 5층, 그 다음은 6층. 혹여나 엘리베이터 탑승객이 볼 까봐 살짝 걱정이 되는 탄소가 정국의 팔뚝을 황급히 붙잡았다, 물론 사교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체르니 호텔 측에서 꼭대기 층에 위치하고 있는 스위트룸을 제외를 하고 운영을 하지 않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일순간 그녀의 혀를 강하게 옭아 매는 짜릿한 감각에 경직 되고 마는 그녀. 처음에는 정국과 감히 그녀의 것을 건드렸던 여자를 한 방 먹이기 위해 충동적으로 저지른 놀이의 일부였지만 결국 탄소는 맥없이 무너진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탄소가 정국의 목에 팔을 감아 본능이 이끄는 대로 종이 한 장 조차도 들어 가지 않을 만큼 몸을 그의 몸에 가까이 붙였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탄소의 고운 턱선을 타고 내리자 이를 발견한 정국이 엄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 위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의 손가락이 닿는 부근 마다 그녀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가 온통 그 곳으로 쏠렸다.
빨리 도착하기를 바랬다. 얼른 이 차오르는 욕망을 침대 위든, 어디든 풀어 내고 싶었다. 나중에 후회를 할지라도 말이다. 그녀가 사는 동안 지켰던 순결을 정국에게 바칠 수 있을 만큼 탄소는 밑도 끝도 없이 달아 오르고 있었다. 미친 듯이 정국에게 매달리고 있는 지극히 야한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누군가도 보지 못한 채. 정국이라는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탄소를 세밀하게 탐닉하며 그녀의 이곳 저곳을 쓸어내리던 그가 확연히 느껴지는 인기척에 한쪽 눈을 떴다. 그리고 넋이 나간 윤기의 얼굴이 시야에 잡히자 탄소의 입술과 맞대고 있던 와중에 미소를 짓는다.
"..."
윤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는 정국과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고 그 순간 만큼은 취하고 싶어서 술을 들이붓 듯 들이키고 또 들이켰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취하기는 커녕 오히려 또렷해지는 정신에 어떻게 해야 탄소와 정국의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하여 본인의 주위를 눈에 띄게 돌던 여자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되는 대로 아무 층이나 눌렀다. 그리고 지배인을 통해 문을 따고 룸으로 들어가 다짜고짜 여자를 침대에 눕혀 목덜미고 어디고, 되는 대로 물고 빨았다. 하지만 끝없이 아른거리는 두 사람의 얼굴에 결국 머리를 털며 윤기의 허리를 감고 있던 여자의 다리를 거칠게 풀어 던지고 룸을 나왔다.
그리고 귀가를 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취침을 할 생각이었다, 더 이상 이 호텔에 있어봤자 그 두 사람의 얼굴만 떠오를 것이기에.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진한 멜로를 찍고 있는 남녀를 보며 이것도 아까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환상인가 했다. 그러나 윤기와 눈이 마주치며 올라가는 정국의 입꼬리에 그것은 곧 환상이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본인을 비웃는 정국을 이 분노를 풀 겸 당장에 때려 눕히고 싶었지만, 정국에게 바짝 달라 붙어 본인과 키스를 할 때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움직히는 탄소의 모습에 아무런 태세도 취할 수 없었다.
그 때처럼, 또 그에게 그녀를 넘겨준 셈이었다.
병신 같이.
.
.
.
"하아...!"
발가락 끝부터 말라 붙은 와인 자국을 따라 정국이 입맞춤을 하며 핥아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허벅지 깊은 곳을 살짝 빨아 당기자 푹신한 배게 위로 얼굴을 파묻은 탄소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반사적으로 내뱉은 신음에 당황한 그녀가 입을 막으면 정국이 그 손을 느릿하게 끌어 내리며 손가락 하나 하나에 키스를 퍼부었다. 점점 그녀의 몸 위로 올라 타는 정국은 이내 본인 탓에 퉁퉁 부어 색기가 뚝뚝 흐르는 입술을 다시 물고 늘어졌다. 감정은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육체는 서로를 미친 듯이 원했기에, 정국과 탄소는 오늘 하루 만큼은 이성을 놓기로 했다. 사실 감정 마저도 둘의 위태로운 경계를 배신 하고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녀의 말려 올라 간 짧은 치맛단 아래로 손을 집어 넣는 정국, 그리고 떨리는 시선으로 그를 응시 하는 탄소. 내려 가는 드레스 지퍼, 침대 아래로 떨어 지는 정장 자켓. 하지만 동시에 떠오르는 정연의 얼굴, 하필이면 눈을 감을 당시에 본인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반드시 가만 두지 말아 달라던 간곡한 부탁과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 정연의 모습이다. 그리고 갑작스레 멈춘 정국의 동작에 흐릿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살피며 사태 파악을 하는 탄소, 이내 식어 버리는 열기와 반 쯤 내려갔던 지퍼를 다시 올리는 정국의 손길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웃음을 터뜨린다.
"아쉽네, 멋있는 남자가 되지 못해서."
"..."
"너, 내일 휴가야."
갑작스러운 통보에 정국이 탄소를 바라 보았다, 그러면 그녀는 대충 걸려 있는 가운을 휘릭 걸치고 어깨를 으쓱이며 욕실로 가는 방향으로 몸을 튼다. 미세하게 떨리는 탄소의 어깨를 발견한 정국이지만 잠자코 입을 꾹 다물었다. 혼란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은 지금, 그녀에게 손을 대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불과 어제, 그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욕망을 내비췄던 그 때. 정국은 분명 아무렇지 않은 듯 본능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뇌에 빠진 듯한 정국의 얼굴을 빠르게 스캔을 한 탄소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내가 어디 가거든."
"..."
"혼자 갈 거고."
이제 그만 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한 마디를 마치고 욕실로 들어오는 탄소, 샤워기를 틀며 그제야 입을 틀어 막고 울음을 터뜨렸다. 손 틈새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조에 기대어, 거울 속에 비치는 본인의 모습을 응시했다. 상처를 받은 얼굴. 어린 아이들이 하기에는 자극적인 장난에 먼저 불을 피운 것은 본인인데 정국이 그녀의 드레스 지퍼를 올리던 그 때, 왜 눈물이 울컥 쏟아지려고 한 것일까. 그 여자는, 왜 정국과 있는 모습으로 그녀를 자극 하여 이러한 상황까지 오게끔 한 것일까. 오만 생각이 머릿 속에 자리를 잡고 탄소는 이 사람을 원망하고 저 사람을 원망하며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이토록 원망하고 한탄하고 자기 합리화를 해도 결론은 딱 하나였다.
그를 다시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부정하고 부정해도 그 끝은 사랑인 것을 그녀는 미처 몰랐다.
병신 같이.
-
"여기서 세워 주세요."
"예~ 116700원 입니다!"
"감사합니다."
남은 돈을 받지 않고 택시에서 내리는 탄소, 그녀가 찾은 곳은 서울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 쪽의 한 납골당이었다. 깔끔하게 머리를 묶고, 눈에 띄지 않은 무난한 검정색 바지 정장을 착용을 한 채, 한 듯 안 한 듯한 화장기가 없는 얼굴로 신변 보호를 위해 낀 선글라스를 탄소가 조심스레 벗었다. 매년 찾아 오지만 익숙치 않았다,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 같았던 아이가 아직 그녀의 주위로 새하얀 깃털을 흩뿌리고 있을 것만 같았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미소를 그녀를 향해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다시 선글라스로 가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납골당 문을 밀어 내부로 들어섰다.
낮은 굽이 다 비치는 대리석 바닥과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꽃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다른 고인의 유골함을 느릿하게 지나쳤다. 곧 멍하니 앞만 보고 걷다가 바로 보이는 코너를 돌아 날개를 단 작은 석상이 옆에 놓인 유골함 앞에 발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꽃을 꺾는 것을 싫어 하여 꽃집에서 만든 꽃다발이라면 몸서리를 치던 착한 아이를 위해 따로 자체 제작 주문을 하여 산 날개 모양의 목걸이를 석상의 목에 걸었다. 깨질 까봐 무서운 유리 구슬을 쓰다듬 듯 사진 속에 있는 소녀의 얼굴을 만지는 탄소. 동그랗고 커다란 윤기 흐르는 눈동자, 오똑한 코, 백옥 같은 피부와 조화를 이루는 선홍색 입술. 유골함에 적혀 있는 세 글자는.
-전정연-
"정연아, 언니 왔어."
-
"오랜만에 오네, 그렇지?"
"그래."
"오빠도 바빴고, 나도 바빴고... 정연이가 서운해 하겠다."
난데 없는 탄소의 휴가 통보에, 그리고 정연의 기일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 휴대폰 달력에 정국은 오랫 동안 찾지 못한 가여운 여동생의 납골당을 찾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외로이 눈을 감은 천사의 곁에서 잠을 잘까 했다. 하지만 홀로 움직이려고 했던 정국의 바램과 다르게 소희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희가 누구냐 하면, 정국이 탄소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을 당시에 문자를 보냈던 여자였다. 오랜 만에 여동생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휴가를 보내려고 했는데 불청객이 끼어 들었다, 그렇다고 소희도 납골당에 간다는데 정국이 못 간다고 하고 납골당에서 만나면 거짓말이 들통이 날 게 뻔 했다.
소희는 정국에게 있어서 딱 두 가지였다, 정연의 가장 친했던 친구라는 것과 정연의 복수를 위해 정국의 계획에 동참을 하는 또 다른 주동자. 하지만 요즘 들어 계획 수행에 진전이 있으면 있을 수록 소희가 정국과 사적인 만남을 원하고, 심지어 정연의 납골당을 찾자는 핑계로 정국을 만나려고 하는 듯 해서 그는 되도록 소희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만남을 갖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일 수 밖에 없기에 정국은 팔짱을 끼우며 종알거리는 소희의 팔을 빼내고 앞장을 서 납골당으로 들어섰다. 정연의 유골함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납골당에 다른 고인의 유가족도 있는지 울음 섞인 목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왔다. 아랑곳 않고 그는 코너를 향해 걷는 속도를 높였다.
"정연아, 언니 왔어."
하지만 코너를 돌아 정연의 유골함으로 가기 위해 거침 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정국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분명 저 옆 모습은 영락 없는 탄소였다. 온다는 곳이 정연의 납골당이었다고? 정국에게 휴가를 줄 만큼, 혼자 오겠다고 고집을 한 곳이 정연이 잠들어있는 납골당이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아예 예상 자체를 하지도 못했던 상황에 머릿 속이 복잡했다, 탄소는 끔찍했던 과거를 모두 지운 듯 정국을, 동창을 대하 듯 태연하게 대했다. 정연을 죽게 만들고, 정국에게 빌지도 못할 망정 아무 죄도 없다는 듯 굴었다. 그런데 정연의 납골당을 찾아 눈물을 흘리는 모순적인 행동이라니.
"..."
멍하니 서서 바보처럼 탄소를 보는 정국과, 눈이 방울만하게 커져 어버버 거리는 소희. 정국은 정연이 죽은 원인에 그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이를 바득 바득 갈며 올라 왔다. 하지만 정국은 정연이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와서 본인의 죽은 여동생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처음 보는 모습에 모순적인 행동이라고 판단을 하면서도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인생을 걸 만큼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여자를 여동생의 죽음과 바꾸어 배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녀를 오해한 것일 수도 있다며 몇 년 간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병신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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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헤르츠52 입니다!
어제에 이어 너무 자주 못 뵙는 것 같아서 오늘 이렇게 부랴부랴 한 편을 써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분량도 짧고.. 하하, 그렇습니다ㅠㅠㅠㅠㅠ
또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정국이와 탄소와 윤기의 감정을 잡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ㅠㅠ
확실히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답니다...ㅎㅎ
아, 그리고 어제 올렸던 C편! 날라갔던 글을 간신히 쥐어 짜서 급히 쓴 것이라 C편에 대한 반응에 대하여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어김 없이 독자 님들의 따뜻한 댓글에 안도를 합니다ㅜㅜㅜㅜ
결말까지 질질 끌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진도를 빨리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다음 편? 또는 다다음 편? 부터 과거가 나올 예정이에요!
정국이, 탄소, 윤기의 과거는 주로 학창 시절 당시니까 10대들의 배경을 쓰려고 합니다!
과거 편은 계속 보시면 지루하실 테니 과거 편 또한 진도를 빨리 빼겠습니다!
과거를 쓰게 되다니,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ㅠㅠ
그래도 열심히 으쌰으쌰 해서 글 쓸 테니까요!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 드려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