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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오월의 소년 05 | 인스티즈



오월의 소년









05-01







앞으로 학교에서 아는 척 안 할게, 라고 했던 말을 아주 제대로 실천하려는 모양인지 김태형과 만나게 되는 빈도수가 확 줄어들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교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오늘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냥 기분 탓이었나. 하긴, 애초에 이과반과 문과반은 떨어져 있어서 자주 만날 일도 없다. 확실히 김태형이 내게 인사를 했을 때 한 몸에 꽂히던 시선이 없어 편하긴 한데, 묘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는 사인데 아는 척하지 말라고 한건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보면, 김태형은 학교 밖에선 친한 척해도 되냐며 능청스럽게 웃는 성격의 소유자니까, 별 신경 안 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오늘은 그 전보단 편한 하루다. 친구들도 김태형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고, 그저 김태형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하루랄까.





"아, 오늘 일찍 올걸. 줄 겁나 길어."

"오늘 뭐 나오는데?"

"피자랑 스파게티."

"그럼 줄 길만도 하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들과 급식실 앞에 와 있었고, 꼭 그날처럼 줄은 길었다. 김태형 친구들을 목격한 그날 말이다. 안 그래도 배고파 죽겠는데, 피자 냄새는 솔솔 풍겨오고, 줄은 엄청 길고. 이게 고문이 아닐 수가 없다. 찔끔찔끔 줄어드는 줄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급식 줄에 서서 따분하게 눈을 굴리고 있는데, 문득 뒤쪽에서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걸걸한 남자 목소리에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애들이었다. 김태형과 어울려 노는 남자애들. 항상 느끼지만 쟤네는 욕 안 하면 대화를 못하나? 듣기 껄끄러울 정도의 큰 소리로 상스럽게 욕을 써대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제 봐도 쟤네 너무 싫어. 김태형은 왜 저런 애들이랑 노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다, 무심결에 김태형을 옹호한 것 같은 기분에 나 혼자 놀라 멈칫했다. 아니지, 김태형 친구들인데 내 알 바 아니지. 신경 쓰지 말자.





"아, 쟤네 너무 시끄러워."

"그러니까……. 니가 가서 맞짱 뜨고 와."

"싫어어, 나 쫄보란 말이야."





친구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사실, 나와 내 친구들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모든 애들이 그 남자애들을 꺼려했다. 다들 인상을 찌푸리고, 뒤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직접 가서 얘기하지 못할 뿐이었다. 물론 나도. 저런 애들에게 직접 가서 대놓고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는 건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현실에선 어렵다. 쟤네한테 어떤 꼴을 당하려고. 그저 이 상황에 대해 불평하며,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마치 자기들이 학교를 한 손아귀에 잡아넣은 양 배려 없이 행동해도 어쩔 수가 없다. 쟤넨 원래 그래, 하고 체념하는 수밖에. 아무리 생각해도 김태형은 저기 왜 끼어있는 거야? 혹시 김태형도 저 안에 있나 싶어 살짝 줄 옆으로 나와 뒤쪽을 보았다. 잘 안보이는데…….





"야, 나와봐."

"우리 좀 지나갈게, 친구들아."





까치발을 들고 뒤쪽을 바라보는데, 순간 가지런히 정렬됐던 줄이 흩어지더니 뒤쪽에 서있던 남자애들이 줄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곧장 길게 늘어선 줄을 지나쳐 앞쪽으로 걸어왔다. 저거 또……, 새치기하려고 저러는 거야? 말이 부탁이지, 험악한 표정으로 서있던 애들을 밀치고 앞으로 걸어오는 모습에 깊은 빡침이 밀려왔다. 아오, 빡쳐. 내가 몇 분을 기다렸는데, 쟤네 때문에 또 밥 늦게 먹게 생겼네. 자기들만 배고픈 줄 아나. 점심을 먹을 생각에 들떠있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애들이 내가 서있는 곳까지 왔을 때, 줄 밖으로 내가 살짝 튀어나와 있었던 탓인지 한 남자애와 어깨가 부딪혀버렸다. 아야, 조금 강하게 부딪혀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고,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부여잡고 나와 부딪힌 남자애를 올려다보았다. 





"아, 씨. 뭐야."

"……."

"뭐. 뭘 봐."





그 남자애 역시 나와 부딪혔음에 짜증이 났는지 험악한 표정을 짓고 날 내려다봤고, 나 또한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기에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껏 그 애를 째려봤다. 뭘 봐. 말투가 이렇게 싸가지 없을 수 있나. 새치기에다, 먼저 부딪혀놓고 사과는커녕 되려 당당하게 시비를 거는 모습에 제대로 빡침이 밀려왔다. 아, 진짜 어이없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경멸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남자애를 올려다봤고, 그 남자애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다가 한 대 칠 듯 한걸음 다가왔다. 순간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렸다. 아무리 내가 깡 좋게 그 앨 째려봤어도, 나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힘도 센 남자애였다. 육두문자를 섞어 날 향해 욕을 던지는 목소리에 화가 나 움츠렸던 고개를 다시 들었는데.





"야, 그만해."

"아니, 얘 눈빛이 존나 사람 기분 더럽게 한다니까?"

"그만하라고."





내 어깨를 치려던 모양인지 내게 뻗어오던 우락부락한 손이 다른 손에 의해 멈춰져 있었다. 자연스레 내 시선은 그 손의 주인을 향해 갔고, 그곳엔 당연하게도 김태형이 서있었다. 김태형과 짧게 눈이 마주쳤다 떨어지고, 김태형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그 남자애의 손을 힘을 주어 내렸다.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남자애는 억울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향해 삿대질을 했고, 내 기분은 낭떠러지 저 밑으로 떨어졌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 애랑 시비가 붙어서는. 입술을 깨물곤 힐끔, 김태형의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김태형의 표정은 아까전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김태형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나와 그 남자애의 사이로 살짝 움직였다. 내 눈앞에 김태형의 등이 보였다.





"여자애잖아. 하지 마."

"아니, 야. 김태형."

"배고프다며, 얼른 밥 먹으러 가."

"……알았다."





내 앞을 가로막은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꼭 부여잡았다. 배고프다며, 얼른 밥 먹으러 가. 상황을 정리하려는듯한 김태형의 말에 그 남자애는 무어라 더 말하려 하다가, 이내 수긍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후우,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서야 온몸에 들어갔던 힘이 풀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김태형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고, 이내 김태형은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잠깐 동안 가만히 김태형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는데, 김태형 표정은 이제껏 내가 봤던 표정 중에 제일 어두웠다. 김태형은 손을 들어 제 머리를 헝클어놓다가, 천천히 부딪힌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괜찮아?"

"아, 응."

"……미안."





괜찮아? 한참을 망설이다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김태형은 내 어깨에서 손을 땠다. 손을 어디 둘지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김태형은 내 어깨에 닿았던 손을 등 뒤로 숨기고 짤막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안. 순간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네가 미안하다고 하느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그만뒀다. 문득 생각난 게, 김태형이 저렇게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게 나를 학교에서 아는척하지 않기로 했던 약속 때문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고, 김태형은 잠깐 내 눈을 보다가 이내 제 친구들을 따라가버렸다. 후우, 급격히 피곤해져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다 문득, 급식실에서 줄을 서 있던 많은 아이들의 관심이 나에게로 향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던 친구들이 내 어깨를 잡으며 괜찮냐고 물었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 오늘 기분 다 잡쳤어, 짜증 나.







05-02







당연히 점심시간 이후로 나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친구들은 나서서 보호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괜찮으냐고 연신 걱정을 해주었지만 다 이해했다. 걘 덩치도 엄청 크고, 솔직히 당당하게 그 남자앨 째려보긴 했었지만 속으로 나도 무서웠다. 걘 여자도 때릴 것 같았거든. 점심을 다 먹고 교실에 와서도 다 같이 그 남자애를 욕하던 친구들은, 슬쩍 김태형의 얘기도 꺼냈었다. 근데 김태형 걔는, 착한 거 같더라. 그 말에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김태형이 고맙긴 했다. 진짜 그대로 가다간 그 남자애하고 무슨 일이 나도 진작에 났을 텐데, 김태형이 말려준 거나 다름없으니까.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애와 김태형이 친구라는 사실이 짜증 났다. 김태형 걔는 왜 그런 놈하고 노는 거야. 짜증 나.


오늘 운수는 확실히 안 좋다. 그래서 오늘도 보충수업을 빼기로 했다. 어제는 솔직히 핑계였지만, 오늘은 도저히 학교에 앉아있을 수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머리도 살살 아프고. 결국 교무실에 가 담임선생님께 허락을 받아내고 일찍 학교를 빠져나왔다. 보충을 안 듣는다고 해도 어차피 오늘은 학원이 있는 날이라, 집에서 잠깐 쉬다가 바로 학원을 가야 했다. 내가 학원 숙제를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한 기억이 없다. 오늘은 병원에 들리지 않고 바로 집에 가서 밀린 숙제를 해야겠다. 날씨도 오늘따라 유난히 덥고, 습기 때문에 끈적거리고. 최악이네. 땀이 흘러 끈적해진 이마를 손등으로 훔쳐냈다. 목말라, 물 마시고 싶다. 딱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덥다, 그치."

"아, 깜짝이야!"

"자."





귓가 가까이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자, 목소리의 주인공인 김태형이 재밌다는 표정을 짓고 키득대고 있었다. 아니, 얘는 왜 맨날 기척도 없이 나타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대뜸 내 얼굴 앞으로 파란색 음료수 캔을 내미는 김태형에 그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팔 떨어진다, 얼른. 음료수 캔을 흔들거리며 내게 자꾸 가까이 들이미는 김태형에, 어쩔 수 없이 캔을 받아들고 뭐냐는 뜻으로 김태형을 올려다보았다. 





"날씨가 덥길래. 원랜 내가 마시려고 샀는데 특별히 너한테 준다."

"아, 뭐. 땡큐."





원랜 내가 마시려고 샀는데 특별히 너한테 준다. 뿌듯해죽겠다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에 피식 웃으며 캔을 땄다. 치이이, 소리를 내며 열린 캔 입구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라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 모금 크게 들이키자 이온음료 특유의 달달한 맛이 목을 타고 넘어가며 그대로 느껴졌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김태형을 힐끔 올려다보자, 날 쭉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인지 바로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는 게, 꼭 나한테 잘못한 게 있는 사람 같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라 말해보라고 재촉하는 눈빛을 빤히 보내자, 김태형은 제 머리칼을 손으로 마구 헝클어대더니 겨우 한마디를 꺼낸다.





"큼, 너 어깨는 좀 괜찮냐?"

"아, 그거? 엄청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닌데 뭐. 괜찮아."

"그 새끼 성격이 원래 그래, 아무한테나 시비 걸고 다니고 선생님들한테도 반항하고 막,"

"야, 나 괜찮다니까?"

"……아무튼, 미안."





역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내 표정이 많이 아파 보였나, 부딪힌 어깨를 걱정하는 말에 괜찮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 당시엔 좀 아팠는데, 시간 지나니까 하나도 안 아픈데 뭐. 그런데 김태형은 대답을 들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내게 시비를 걸었던 그 남자애에 대해 침까지 튀겨가며 열성적으로 험담 아닌 험담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겨서, 풉 웃음을 터트리고 김태형의 어깨를 툭툭 치자 김태형은 금세 말을 멈추고 왜인지 시무룩해진다. 그러고선 하는 말이 또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아, 나 참. 이해가 안되네. 아까 급식실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야,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네가 왜 미안해."

"어? 그야……. 내 친구기도 하고, 학교에서 아는척하지 말랬는데 아는척해버렸고……."

"됐어, 그게 그렇게 미안할 일이야?"

"……."

"야,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그땐 경황이 없어서 아무 말도 못했는데, 다음에 만나면 내가 아주 사과를 꼭 받아내고 말 거야."





결국 답답한 마음에 길가에 멈춰 서 팔짱을 끼고 김태형을 빤히 바라보자, 김태형은 그 큰 덩치로 죄지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린다. 대형견이 주인에게 혼나는 것 마냥, 꼬리를 축 늘어뜨린 것 같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덩치는 산만하면서,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학교에서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던 건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는데 그걸 직접 언급하다니 심장을 무언가가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괜히 미안하게, 진짜. 안 그래도 그 이후에 한참이나 곱씹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넘어가는 건 억울해서 나중에 날을 잡아 사과를 받아낼 작정이었다. 그 마음을 그대로 큰소리로 내뱉자, 김태형은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작게 웃음을 짓는다. 생긴 걸로는 세상 무서울게 없어 보이는데, 이런 작은 거 하나로 표정이 수십 번은 바뀌고. 의외란 말이야. 


그렇게 마지막 말을 뱉고 나서 왠지 모를 민망함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탁 넘기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가자, 잠시 뒤 발소리가 들려온다. 근데 이 길은 병원 쪽으로 가는 길인데, 오늘도 병원엘 가나? 나야 병원과 집이 가까이 있어서 항상 하교를 이쪽 길로 하지만 김태형은 어떤지 몰랐다. 힐끔 어느새 내 옆에 따라붙은 김태형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너 지금 병원 가?





"어. 잠깐 병원 들렀다 가려고."

"넌 학원 안 가? 맨날 보면 병원 가는 것 같애."

"난 학원 가봤자 머리에 안 들어가. 돈 낭비지, 돈 낭비."





역시나, 맨날 병원에 출석체크를 할 모양인가 보다. 요새 보면 병원에 하도 자주 와서 조카인 나보다 삼촌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학원은 안 가냐는 말에 제 머리를 콩콩 두드리며 헤실 웃어버리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겉모습만 보면 공부에 손 놓은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엄청 멍청해 보이지도 않는데. 어쨌든 본인이 그렇다니 수긍하고 입맛을 쩝 다시다가, 순간 머릿속을 스쳐간 기억이 있었다. 김태형이 병원에 가는 건 고양이 치즈를 보러 가는 거고, 삼촌이 치즈를 입양할 거냐고 물었었지. 그때 김태형은 부모님과 의논해본다고 했었고. 그게 어떻게 됐나 궁금해 김태형에게 물었다.





"너 치즈 입양하는 거, 부모님께 여쭤봤어?"

"어?"

"삼촌이 물어봤었잖아. 응? 얘기해봤어?"

"어……. 깜빡하고 못 물어봤다. 하하."





대답이 궁금해 재촉하듯 묻자 김태형은 그저 그 큰 눈을 또르르 굴리기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인상을 쓰고 팔을 흔들자, 결국 하는 말이 못 물어봤다, 이거였다. 실망감에 팔을 탁 놓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렇게 중요한 걸 안 물어보고 뭐 했대. 내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음 짓는 모습이 영 수상하다. 제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그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을 미심쩍게 바라보자, 김태형은 해명하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오, 오늘! 오늘 물어보려고 했어! 긴 팔을 마구 휘저으며 더듬대는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태형은 헛기침을 하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수상해 이거.





"암튼, 오늘 집 가서 꼭 말씀드려. 응?"

"아, 알았어."

"난 그럼 집에 간다."

"병원 안 가고?"

"오늘 학원 가는 날이라, 학원 숙제해야 돼. 아무튼 꼭 물어봐야 된다?"

"알겠다니까. 빨리 가."





병원이 점점 가까워져 이젠 눈으로 보이는 곳에 왔고, 우리 집은 병원 근처의 아파트 단지였기에 중간에서 다른 길로 가야 했다. 길 중간에 멈춰 서서 꼭 부모님께 물어보라는 당부의 말을 하자 김태형은 눈을 감으며 지겹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 안 가느냐는 물음에 학원을 간다고 답하자 이내 수긍하더니, 말 끝에 빼놓지 않고 붙인 부모님께 꼭 물어보라는 당부에 김태형은 웃음기 섞인 한숨을 쉬며 커다란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알겠어, 알겠어. 김태형은 내 어깨를 살짝 잡고 아파트 단지 쪽으로 돌리더니 얼른 가라는 듯 등을 툭툭 민다. 아, 진짜! 김태형에게 밀려가면서도 나는 꿋꿋이 소리쳤다. 꼭 물어봐라, 어? 







05-03







학원 수업은 10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어느새 어두컴컴해진 밖을 바라보며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미뤄둔 숙제를 한 번에 끝내느라 저녁도 못 먹어 그런지, 굶주린 배는 시끄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책으로 가득 찬 가방은 무겁지, 밤인데도 날씨는 꽤나 덥지, 거기에다 배까지 열심히 꼬르륵대니. 온몸에 힘이 쭉 빠져 가방을 고쳐매고 학원을 나섰다. 학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다. 버스를 타고 가면 집 근처 정류장에 바로 도착하겠지만, 운동 삼아 걸어 다니는 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힘이 들었다. 역시 공복인 탓이 큰 게 분명하다.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라도 사서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애써 배고픔을 떨쳐내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편의점 간판이 보였다. 병원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이라 항상 오며 가며 마주했던 곳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도 반가운지. 빠른 걸음으로 와다다 뛰어가 편의점 안에 들어서곤 나를 기다리는 듯 영롱하게 빛나는 각종 음식들을 보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내일 부을 내 얼굴을 생각해 자제하려 해봤지만, 컵라면에게 향하는 내 손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 먹으면 된다고 합리화를 하며 컵라면 두 개를 집어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삼각김밥 코너 앞에 섰다. 참치마요도 맛있고, 전주비빔도 맛있는데…….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 나는 결국 삼각김밥을 둘 다 집어버렸다. 몰라, 배부르면 내일 먹으면 되지. 지금 공복 상태라 그런지 눈에 보이는 건 그저 다 먹고 싶었다.





"4200원입니다."

"여기요."





결국 이것저것 쓸어 담다 보니 꽤 지출이 커졌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용돈을 생각하며 지갑을 여는 속도가 더뎌졌지만 어쩔 수 없다. 배고픈 걸 어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봉지에 담아준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받아드는 순간 손에 느껴지는 무게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편의점을 나왔다. 빨리 집에 가서 라면 끓여먹고 자야겠다. 콧노래를 부르며 작은 건널목을 건넜다. 병원이 있는 길을 지나서 코너를 꺾어 들어가면 금방 우리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가는 길에 있는 24시간 카페를 지나고, 약국을 지나면 내겐 너무나 익숙한 하얀 동물병원 간판이 보인다. 손에 든 편의점 봉지를 휘두르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병원을 향해 뛰어가는데.





"아, 깜짝이야!"

"아아! 깜짝아!"





병원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시꺼먼 형체에 손에 든 봉지까지 날려가며 소리를 빽 질렀고, 내 목소리에 정체 모를 사람 또한 놀랐는지 고개를 들고 굵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왜 이 밤에 남의 병원 앞에 쪼그려 앉아있대? 깜짝 놀라 미친 듯이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는데, 아까 들린 목소리가 어째 익숙하다. 분명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찬찬히 어둠 속을 바라보았고, 어둠에 적응된 내 눈에 점점 그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적잖이 놀랐는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는 저 얼굴은 분명…….




"뭐야. 김태형?"

"아, 놀랐잖아!"

"네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왜 있어!"





김태형이다. 불과 몇 시간 전 봤던 김태형 말이다. 여전히 교복 차림으로 책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곤 큰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김태형. 소리를 지른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 섞인 한숨을 길게 뱉던 김태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지금 이 시간엔 병원 문도 닫았는데 왜 여기에 쪼그려 앉아 있는 거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몇 없는데 무섭게! 내 물음에 김태형은 말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봉지에 주워 담았다. 아니, 물어보면 대답을 해줘야지 답답하게 진짜!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다 담았는지 김태형은 내게 봉지를 건넸고, 나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그 봉지를 받아들었다. 이젠 대답해 보라는 눈빛을 보내며.





"야, 너 집에 안 갔어? 병원 문도 닫았는데 왜."

"김여주."

"왜. 왜 그, 그러는데."





아직도 놀란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놀란 마음과 왜 여기 김태형이 있는지 황당한 마음에 추궁하듯 소리치던 내 말을 김태형은 별안간 내 이름을 부르며 끊었다. 왠지 모르게 비장한 눈빛에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왜 그, 그러는데. 봉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말을 할지는 몰라도 그 말이 평범한 말은 절대 아닐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빨리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란 말이야. 잔뜩 긴장한 채로 김태형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고, 결국 약간의 정적 끝에 뱉어낸 김태형의 말은.





"나 가출했다."





내 예상대로 나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티티입니다. 꽤 오랜만이죠 ㅠ_ㅠ

꼭 일주일에 하나씩 글 올리고 싶었는데 이번 주에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늦어졌답니다 흑흑

다음 주부터는 꼭 일주일에 글 하나씩 올릴 수 있도록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이번 화도 사실 좀 급하게 쓴 감이 있어서 나중에 손을 한번 봐야 될 것 같긴 해요 ㅠ_ㅠ

오늘부터 첫 번째 에피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허허

가출 소년 태형이의 이야기는 다음 화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커밍 쑨~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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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허르르르 태형이 .. 저번부터 뭔가엤을거라생각은했는데 ㅠㅡㅠ뭐져 이제탸형ㅇ이를 여주집으로데려가면되겠딩 ^~^
6년 전
독자2
뜌입니다! 으허헣 우리 태태가 가출이라니ㅠㅠ 무슨일이ㅠㅠ 다음편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을게욯ㅎ 작가님 이번편도 정말 잘 읽고가요! 항상 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6년 전
독자3
[웅앵웅]
태형이 가출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부모님한테 고양이에 대해 안여쭤본 이유가 부모님이랑 안친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가출이라니 깜짝 놀랐어요

6년 전
독자4
코튼캔디 입니당 !
가출 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아 이제 시작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늘 잘 보고 있습니당 다음 편도 기대되여 ㅎㅎ

6년 전
독자5
ㅈㅁ입니다
아 태형이가 여자애잖아 하고 막아주는거에 한번 자기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거에 두번 포카리스웨트 주고 쳐다 보고 있던거에 세번
마지막 가출 했다에 네번 윽 그냥 모든 장면마다 태형이 한테 완전 심쿵했어요ㅠㅠㅠ대박입니다ㅠㅠㅠ엉엉

6년 전
독자6
밍입니다
와 저렇게 태형이같이ㅜ잘생기고 찯한 아이는 학교에 존재하지르루않죠... 그리고 설마 태형이 고양ㅇ이땸시 기출한것...아니죠오...? 그쵸오...?
아긍데 태형이ㅜ너무기여우구ㅜ룰

6년 전
비회원196.74
땅위입니다!! 흐에엥?? 태형이가 가출했다니 전부터 가출한건가요? 아니면 지금 가출한건가요? 궁금하네요ㅠㅠ 그리고 태형이도 은긍 귀여운면이 많은 것 같네요 호홓ㅅ
6년 전
독자7
핫초코
가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어ㅐ 가출이야!!!!
은근히 알다가도 모르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가 막 미안해 하고 근데 진짜 어ㅐ 그런 애들이랑 같이 다녀...

6년 전
독자8
태태 가출했니 진짜루??????뭐야 뭐때문에 집까지 나온거야....
6년 전
비회원209.91
안녕하세요 작가님 [슝아]로 암호닉 신청하고 가요 ㅎㅎ 저번 글에 분명히 덧글을 달았던 기억이 있는데 비회원이라 24시간 지난 이후 확인하니, 달려있지않네요... 시무룩... 글을 볼 때마다 현실적인 면모들이 많이 보여서 더 재밌어요! 물론 태형이 같은 남학생은 비현실적이지만요. 늘 잘보구 있습니다 왜 가출했는지 궁금하네요 ㅠㅠ 글 감사해요!
6년 전
독자9
워더에요ㅜㅠ개설렌다.....김태혀악ㅌ은학생!!!!!!어디없나욤!!!!!
6년 전
독자10
마지막에 태형잌ㅋㅋㅋ 가출 했다니?? 어땋게 된 거죠???
6년 전
독자11
아고 못 물어본 이유가 그거였구만 가출을 해써ㅜㅜㅜ? 잉 뭔일이 있었을까우 그나저나 여주 성격 = 제 성격 배고프면 앞뒤 안 가리고 다 먹고싶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아아아 돼지보스
6년 전
독자12
엥 가출~~~?!?! 이친구가! 뭐때문에!!! 가출했어서 데리고 살 집이 없어서 입양못했던 거였냐!! 요친구 요거!!!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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