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간다는 게 맞는 것일까.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김종인과 싸움…. 아, 아니네. 따지고 보면 싸운 것도 아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소리치다가 혼자 나가떨어진 것일 뿐. 여하튼 그렇게 사이가 틀어지고 난 이후로 며칠간 일절 연락이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애가 어떻게, 무슨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고. 항상 그 애에 관한 일은 내가 가장 먼저, 제일 잘 알고 있었는데. 백현이의 입에서 나온 그 애의 소식이. 타인에게서 전해 듣는 그 애의 근황이 그렇게나 어색할 수가 없었다. 그건 둘째 치고, 사실은. 많이 핼쑥해졌더라는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어디야...]
그 말을 듣고 난 후, 내내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 문자라도 보내볼 생각에 똑 같은 문장을 썼다가 또 지웠다를 하루 종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전송을 위한 확인버튼을 누르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워 결국엔 홀드버튼을 꾹 눌러버렸다.
아직도 네 걱정에 마음이 불편한 나를,
너는 알고 있을까.
너와 나만의 시간
3부
13.
“변백현 퇴원이 언젠데?”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그나저나 넌 어떻게 된 게 병원에서 사는 것 같다?”
“…내가 뭘.”
오늘도 변함없이 학교 대신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식욕이 넘쳐나는 변백현의 옆자리만 지키다가 나오는 길에 병원 입구에서 박찬열을 만났다. 녀석의 얼굴을 본지도 꽤 오래돼서 나름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녀석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내 팔을 끌고 병원 로비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에 하는 수 없이 끌려 들어가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는데, 박찬열이 나를 보고 처음 꺼내는 말이 ‘오세훈이 너 찾는다.’ 였다. 어우, 징글징글한 오세훈. 얼마나 애들을 들들 볶아댔으면 이런 반응이 나올까 싶은 것이, 나중에 한번 마주치기라도 하면 제대로 욕을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그래서 말을 돌리려고 괜히 백현의 퇴원 날짜를 물었다. 어쩌면, 박찬열보단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일지도 모르는데도.
“요즘 어디서 지내는데?”
“…어디긴 어디야. 집에서 지내지.”
“집은 무슨. 네가 집에 있었으면 오세훈이 그렇게 날뛰지도 않았지.”
“…….”
“너 찾으면 죽여 버릴 거라고 아주 제대로 벼르고 있더라. 조심해.”
“하나도 안 무섭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조금 무섭다.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찬열이 뚫어져라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외면했다. 이 녀석은 또 어디서 뭘 듣고 왔기에 날 보자마자 앉혀놓고 추궁인지….
“학교는 왜 안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바람은 무슨…. 곧 갈 거야. 그냥, 뭐. 가기 싫어서 안 간 거지. 다른 이유는 없어.”
“…….”
“뭘 그런 눈으로 봐. 진짜라니까?”
“속일 사람을 속여라. 아무튼, 거짓말 더럽게 못해요.”
“…….”
“무슨 일 있지?”
“…무슨 일 없어.”
백현이나 찬열이를 만났을 때, 녀석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 때문에 조금은 섭섭했다. 오세훈이 너 찾는다. 가 아니라, 김종인이 너 찾는다. 이길 바랐다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세훈이도 나를 찾는데, 넌 어디서 뭐해 종인아….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데.
며칠 전의 그 다툼이 우리의 관계를 무너뜨릴 만큼 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니, 나에겐 그만큼 컸을지라도 너에게는 사소한, 그런 일상적인 다툼이었을 텐데. 그냥,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먼저 연락해서 손 내밀어줬다면. 바보같이 모른 척, 괜찮은 척하면서 네 손을 잡았을지도 몰라. 잡았을 거야. 나는 바보잖아. 안 기다리는 척, 네 연락이 무서운 척 하면서도 사실은 너의 연락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아닌 척 하면서도 핸드폰만 붙잡고 지냈었다고.
이런 나를 너는 왜 몰라….
“근데 김종인은 왜 학교 안 오는데?”
“…….”
“그래, 네 말대로 넌 그냥 가기 싫어서 안 갔다고 치자. 근데 걘 요즘 왜 그러냐고. 성실하던 놈이 툭하면 학교도 안 나오고 어디 있는지 연락도 안 되고.”
“…….”
“나랑 그 자식이랑 교양수업 같이 듣는 거 알지?”
“…어.”
“그거, 나 혼자 들은 지 벌써 몇 주째다.”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녀석을 쳐다보았다. 같은 과는 아니지만, 같은 학교를 다니는 녀석들이어서 교양수업을 같이 듣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김종인이 웬만한 큰 일이 있지 않고서는 절대로 수업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런데, 학교에 안 나간 지 꽤 됐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며칠도 아니고 몇 주씩이나….
“니들 자주 싸웠잖아. 돌아서면 화해하고, 그렇게 지낸지 벌써 2년이 넘었잖아.”
“…….”
“근데 요즘 둘 다 왜 그래? 사춘기냐?”
“…잠시만.”
“…….”
“그럼 김종인 학교 안 나간 지 꽤 됐다는 말이야?”
내 말에 찬열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공은 모르겠는데, 교양이라 만만한 건지, 자신이 있는 건지…. 수업 빠진지 꽤 됐어.”
“…….”
“너도 알다시피 걔가 너처럼 기분 안 내킨다고 땡땡이 칠 위인은 아니잖아?”
“…….”
“무슨 일이 있긴 있는 것 같던데. 그거 너랑 관련된 거 아니야? 너 아니면 걔가 왜 그렇게까지 하겠어.”
정말로, 종인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 일이 현재 진행형인지, 완료형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말할 수 없던 그 일 때문에 학교도 잘 나가지 않았단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서운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보단 그 애 걱정으로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무튼. 무슨 일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테니까 빨리 풀어.”
“…….”
“종인이 그 자식한테 너무 그러지 말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一
혼자서 터덜터덜 걸었다. 병원을 나온 이후로 목적 없이 계속 걷기만 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걸었다.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 엉킨 생각들이 너무도 많은데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계속 엉켜있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를 모르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토록 힘들게 했는지, 그 이유를 왜 나에게는 말해줄 수 없었던 건지….
내가 고민하고 있던, 나를 괴롭게 만든 것들이 정말 우리 관계를 곪게 만드는 이유인건지도 모르겠고. 친구들을 만날수록 하나씩 새롭게 들려오는 네 소식에 그동안 쌓여왔던 서운함은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감추고 나는 또 너를 그리워하고. 며칠 동안 너와의 연락이 없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나는 그대로였다. 네가 옆에 있으나, 없으나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것. 다 모르겠다. 내가 지키려고 애썼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너니까, 투정 부리고 싶었고 너라서 내 모든 걸 다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너만은 어리광 부리는 내 모습을 몰랐으면 했다. 나를 어리게만 보는 게 싫어서.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결국은 다 보여주고 말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네 모습이 진짜인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내가 보여주었던 그 많은 모습들.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는 그 모습들을 네가 다 받아주었듯이 나도 다 할 수 있었다. 나도, 너의 그 모든 것들을 받아줄 수 있는데.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내게 숨긴 것인지 그 마음이 못 견디게 서운하다가도.
우스운 건, 문득 떠오르는 네 얼굴이면 한 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는 거다.
“…….”
더 생각했다간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냥, 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었다. 너무 지쳤다. 몸도, 마음도. 모두다.
길을 걷다 제자리에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집 근처였다. 준면이 형의 집이 아닌, 우리 집. 목적 없이 걷는다고 걸었는데, 무작정 집까지 찾아오는 걸 보니 신기했다. 이래서 술에 취하더라도 집엔 귀신같이 찾아 들어간 건가 싶기도 하고…. 며칠간 찾지 않았어도 익숙하기만 한 거리에 쓴 웃음이 나왔다. 마치, 김종인에게 찾아온 것 같아서. 그래도 무언가 망설여졌던 것인지 차마 집 앞까진 가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 집과, 너의 집을 바라보았다.
집을 멀리서 바라보긴 처음이다. 친구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청승맞다고 놀렸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놀릴 사람도 없으니 다행이다. 괜히 나 혼자 어색해져선 아랫입술을 세게 꾹 말아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가 공유한 2년의 시간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네가 이사 오던 날도 생각이 나고, 너의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내 모습도 생각이 난다. 술에 취한 너를 부축하고 있던 오세훈도, 변백현 때문에 다리를 다친 나를 업고 지나가던 너도. 그리고, 집 앞에서 나누었던 우리의 첫 키스 까지. 모두다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문득 그리웠다. 교복을 입고 이 길을 드나들던 우리가.
톡,톡,톡.
둥그런 모양의 앞코를 일정한 리듬으로 땅에다 박았다. 해가 진 거리에 주홍 불빛의 가로등이 골목을 환하게 비추고, 나는 그 아래에 기대듯 서있었다.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꺼풀이 떨리고, 바지 속에 자리 잡은 두 손은 태연한 듯 보이지만 전혀 그러질 못했다. 타는 가슴을 달래보려, 애꿎은 입술만 깨문 지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그러고 있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지나간다. 혜인누나였다. 오랜만에 보는 누나의 모습에 반갑기도 했지만 앞으로 나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아, 너 몰랐나보네.’
‘…….’
‘김종인 여자 생긴 거.’
혜인누나의 여자가 생겼다던 그 말에 흔들렸지만,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정말 그것 때문인 걸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나에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걸까. 아직도 너만 바라보는 나 때문에. 너는 내 눈만 바라봐도 아니까. 그래서 네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일까.
“…….”
멍하니 불이 켜진 너의 집 창문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一
감기에 걸렸다. 어제 너무 늦은 시간까지 집 앞을 서성였던 탓일까. 어제부터 목이 컬컬한 것이 영 심상치 않더니만 드디어 오늘, 내 몸속에 침투해있던 감기 바이러스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킁킁. 코가 막혔다. 목도 따갑고,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손을 짚어보니 이마에는 미열까지 있다. 이젠 하다못해 감기까지 걸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나마 들어 올렸더니, 형은 학교엘 갔는지 집엔 나 혼자뿐이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찾아 홀드버튼을 꾹 눌러보니 한시가 넘었다. 오늘은 정말로 학교에 가 볼 생각이었는데. 어쩔 수가 없네. 그나저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핸드폰에 문자가 와 있는 건 며칠이 지나도 그대로다. 얕은 한숨을 내쉬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일어나면 전화하도록.]
형이다. 괜히 형에게 감기를 옮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그 걱정을 내려놓았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해서 몸이 이지경인데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해. 내 몸이나 걱정하자.
[미친 새끼. 미쳤어. 진짜 미친 게 분명해.]
[일주일 채우려고 작정을 하셨네.]
[내가 널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이 새끼야? 응?]
[제발 전화해라. 오늘도 전화 안하면 친구고 뭐고 쫑나는 줄 알어.]
세훈의 문자를 확인하니 괜히 웃음이 났다. 아프면 애가 된다더니. 기댈 곳이 필요했다. 아, 곧 다가올 중간고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조만간 시작될 벼락치기로 한 2주 정도는 쉽게 허락되지 않을 자유다. 그래, 오늘 하루 푹 쉬고, 그리고 내일이 되면.
다, 잊는 거다. 모든 걸 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一야, 도경수!
“…여보세요?”
一여보세요오? 여보세요오?! 넌 지금 태연하게 그 말이 나오냐, 이 미친놈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악에 받친 세훈의 목소리에 왜 또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파서 그런 거라고.
“오센.”
一너 어디야!
“나 아파….”
아프니까 그런 거라고 나를 달랬다.
***
이번엔 빨리왔죠?^*^
어제 가요대전 보셨어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얼마만에 보는 애기들인지..헝....
예뿌당...
그나저나 어제는 부농머리 오센이 제일 예뿌당...ㅠㅠㅠㅠ(주관주의)
너네 대체 언제 나올거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참, 미리 새해인사 할게요!
여러분 모두 새해복많이받으세요! happy new year!
다음편부턴 종인이 번외입니다.
기다려주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