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버스 탔어]
남는 자리가 바퀴 바로 윗자리밖에 없었다.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나는 남들보다 더 휘청였다. 하지만 그것도 모를만큼 정신이 없었다. 출발할 때 문자하라는 정재현의 말을 기억한게 용할 정도였다. 짧은 문자를 남기고 창밖을 쳐다봤다. 무의식 중으로 자꾸만 흐트러지는 무릎 위 가방을 꼭 끌어안으며. 이민형을 생각했다. 그동안 녀석이 했던 많은 고백들을 떠올렸다. 내 멋대로 정의하고 좋아하는 걸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여주 진짜, 이 등신. 나는 끝끝내 한숨을 뱉으며 창문에 머리를 쿵 박았다.
내려야 할 정류장에 거의 다 와서야 정신을 차리고 벨을 눌렀다. 왜 아무도 벨을 안 눌렀나 했더니 내리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아직도 비가 내리는지 버스를 작게 진동하는 빗소리에 젖은 우산을 펴낼 준비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짠.”
하지만 펴낼 필요는 없었다. 문 앞으로 가자마자 정재현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재현은 큰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눈을 크게 뜨며 천천히 버스에서 내리곤 그 큰 우산 밑으로 들어갔다. 왜 나와있어? 내 물음에 운동차 나왔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데 입고있는 남방이 차가운게 운동차는 무슨, 여기서 한참을 기다린 것 같았다.
“재밌었냐?”
“…당연하지.”
“재밌었던 목소리가 아닌데.”
정재현이 내 어깨를 감쌌다. 한 우산을 쓴 채로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데 녀석의 말에 또 무거운 숨을 뱉어버렸다. 재밌긴 재미있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총 쏘고 운전대 잡고 디디알 밟고 인형 뽑을 땐 재미있었지. 오른팔로 정재현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었는데 왼쪽팔로 나머지 반마저 감싸안았다. 심란한 마음에 얼굴을 푹 묻으며 거의 매달리다시피 걸었다. 정재현, 있자나…. 덕분에 한껏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웅얼 거렸는데 그런 내 머리 위로 큼직한 손이 올려졌다.
“알아.”
“…”
“다 아니까 말 안 해도 돼.”
달래주듯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토닥인다. 그에 고개를 들어 정재현을 올려다봤다. 줄곧 앞만 보던 녀석이 그런 나를 알아챘는지 시선을 내려 나와 눈을 마주했다.
“어떻게 알아..?”
“그냥 뭐.. 딱 보였어. 걔가 말 하기도 했고.”
“..난 진짜 몰랐어.”
“난 몰라서 좋았는데.”
좀 별로지. 그래도 진심이야. 정재현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제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나 눈치가 정말 얼마나 없는 걸까.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이만큼 심하지 않았는데. 비는 여전히 쏟아졌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요란하게 귀를 괴롭혔다. 그 틈에 들리지도 않을 말을 곱씹었다. 민형아, 내가 더 미안해. 라고.
아 진짜 하기 싫다. 앞에서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던 정수정이 별안간 짜증을 내며 화면을 내렸다. 그에 밀린 필기를 하던 나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정수정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둘 다 한참을 제 할 일만 하다 처음 멈춘 거였다. 정수정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제 긴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곧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너 그 얘기 들었냐?”
“뭐?”
“서영호 오빠. S기획사에서 캐스팅 제의 받았었대.”
따라 음료를 마시고 기지개를 펴던 나는 정수정의 말에 행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누구? 영호오빠? 잊고있던 이름이 반가운 건 둘째치고 우리나라 최고로 꼽히는 기획사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니. 하긴 그 오빠가 잘생기긴 엄청 잘생겼지. 피아노도 잘 치고. 허공에 멈췄던 손을 내리는데 정수정이 턱을 괴며 입을 쩝 다신다.
“근데 자기가 깠대. 아이돌 안 한다고.”
“헐.”
뒤이어 들려오는 말은 더 충격이였다. 거기서 데뷔하면… 꽃길 직행인데… 왜 내가 아쉬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빠가 한 선택이 맞는거겠지 싶었다. 손을 뻗어 한 번 더 음료를 마셨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얼음이 둥둥 뜬 복숭아 아이스티였다. 정수정은 그런 나를 눈으로 쫓더니 조심히 입을 열었다. 문태일이랑은.. 이제 아예 연락 안 해? 그 말에 나는 물고있던 빨대에서 입을 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하지. ...왜 하냐.”
“하긴. 너무 당연한 질문이였다.”
아무튼 난 너의 선택 아주 칭찬한다. 정재현이랑도 그대로 결혼해. 엄지를 척 내민다. 나는 눈을 흘겼다. 결혼은 무슨. 그러면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새로 과외가 들어왔는데 지금 출발해야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냐고 묻는 정수정을 향해 대답 대신 시계를 보여줬다. 나중에 보자는 말에 손을 흔들곤 카페를 나왔다. 아이스티를 마셔서 그런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벌써 12월이였다.
“지성아. 너 또 숙제 안 했네.”
“아 쌤 솔직히 에바에요.”
이걸 어떻게 다 풀어요. 너무 많아여. 이마를 긁적였다. 일주일에 꼴랑 두 장 풀어놓는게 숙제였는데 많다고 칭얼거리는 과외 학생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지성이는 중학교 3학년이였다. 약 한 달 전까지 고3을 가르치다가 중3 수학을 가르치니 수업 준비는 훨씬 쉬웠다. 민형이랑은 다르게 통제가 안되는 것 빼곤.. 다 좋았다. 그래 뭐, 그래도 귀여워.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참을만 했다.
“너 자꾸 숙제 안 하면 어머님한테 다 말한다?”
“와 쌤.. 치사해.”
“너가 더 치사해. 숙제를 안해서 진도를 못 나가잖아.”
“쌤. 저도 쌤이랑 공부하면 수능 잘 볼 수 있어요?”
“…너 또 말 돌린다?”
“아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어떻게 저렇게 천역덕스럽지. 지성이와 과외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매주 이 생각을 한다. 녀석의 물음에 나는 잠시간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 이 과외도 민형이네 어머님이 소개해주신 거였다. 어느날 전화를 하셔서 선생님 덕분이라고, 친한 집에 선생님 얘기를 했더니 수업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괜찮으면 연락처를 줘도 되냐고 말씀 하셨다. 나는 당연히 된다고 대답했고.
“민형이는 나랑 수학밖에 안 했어.”
“그래도요.”
“너도 진짜 열심히 하면 잘 볼 수 있지.”
지성이가 나와 공부하면 수능을 잘 볼 수 있냐고 물어본 것도, 어머님이 내 덕분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다, 민형이의 수능이 대박난 탓이였다. 민형이는 8년만에 최고 난이도였다는 이번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동안 녀석이 공부했던 걸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래서 더 기특했다. 그만큼 끝까지 잘 해줘서. 하지만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다 괜찮은 척 축하한다고 메세지를 보내려했는데 타이핑 한 걸 썼다 지웠다만 반복하다 결국 지우는 걸로 끝을 냈다. 어머님께 전화가 왔을 때, 그때 연락처가 다 날라갔다는 핑계를 대며 축하한다고 전해달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민형이 진짜 열심히 했어 지성아.”
“저도 열심히 할게요.”
“그럼 다음주는 숙제 해오겠네?”
“아 당연하죠. 쌤이 양만 조금 줄여주시면 다 풀게요.”
“야, 여기서 뭘 더 줄이냐.”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만점이라는 거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도 궁금하다. 다시 떠오른 생각에 살짝 얼굴을 두들기곤 문제집을 폈다. 진짜 오늘까지만 숙제 같이 풀어주는 거야! 일부러 더 크게 으름장을 놓자 지성이가 입술을 삐쭉인다. 어려워요 쌤. 문제 보지도 않았으면서. 하여튼 요 중딩. 으이그 중얼거리며 펜을 들었다.
“언제 와?”
-한.. 두시간 정도? 배고프면 먼저 뭐라도 먹어.
“뭐? 두시간? …아냐. 싫어. 같이 먹을래.”
-빨리 갈게. 미안해.
“됐어. 올 때 콜라나 사와.”
아까 등산을 간 엄마한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정재현네 부모님과 저녁까지 먹고갈테니 너도 재현이랑 알아서 저녁을 먹으라는 내용이였다. 과제 때문에 멀리 나간 정재현은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며 미안해 했다. 벌써 여섯신데 두시간 걸리면 여덟시잖아. 퍽 짜증이 났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정재현 잘못도 아니고, 지성이네 어머님이 과일을 많이 챙겨주셔서 엄청 배고픈 상태도 아니였다. 자기도 빨리 가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정재현과 전화를 끊은 후 방에 놔뒀던 가방을 가져와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기다릴 동안 다음 수업 준비나 하고있을 생각이었다.
“으음…”
이건 패스. …박지성은 이거 아직 못 풀어. 이거는 개념문제니까 괜찮겠다. 오늘 수업 때 이 개념을 설명하느라 진을 다 뺐었다.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찾기 위해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펜. 펜 어디갔어.
“뭐야. 펜 어딨어?”
필통에 딱 하나 넣어놨던 파란색 펜이 보이질 않았다. 지성이네 집에 두고 온 건가 생각했는데, 아니다. 분명 챙겼다. 필통에 넣은 것까지 기억을 한다고 내가. 미간을 좁히며 가방 안으로 손을 넣었다.이리저리 휘적여도 잡히는게 없길래 홧김에 가방을 거꾸로 들어 탈탈 털었는데 어디로 빠졌던 건지 그렇게 찾던 파란색 펜이 툭 떨어짐과 동시에 흰색 물체 하나가 팔랑 튀어나왔다.
“뭐야..”
머쓱하게 가방을 내려놓은 후 손을 뻗었다. 네모난 봉투였다. 그러니까, 여주에게 라고 정갈하게 적혀있는 …편지였다. 그 순간 몇 달 전 내게 이 봉투를 건네던 정재현이 떠올랐다. 태일이 형이 주더라며 내게 슥 내밀었던 걸 내가 받아서 가방에 쑤셔 넣었었지. 나중에 읽는다고 했는데 깜빡 잊고 계속 가방 안에 넣어놨었나보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편지 봉투를 앞뒤로 훑었다. 그저 무의미한 행동이였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라도 읽기 위해 봉투를 뜯으려는데 때마침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 타이밍 진짜. 나는 손을 멈추곤 핸드폰을 확인했다. 고등학교 동창의 메세지였다.
[야 대박]
[너 지금 티비 틀어봐 SBC 빨리 대박]
연달아 날라온 메세지들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갑자기 연락해서 티비는 왜...(황당) 왜? 라고 답장을 보냈는데 읽지 않아서 일단 하라는데로 했다. 리모콘을 가져와 티비를 틀고 SBC로 채널을 돌렸다. 주말 저녁 타임에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한창 방영 중이였다.
“뭐야.. 뭘 보라는 거야..”
엠씨와 게스트들만 번갈아 나오는 티비 화면에 짧게 입을 삐쭉였다. 오늘 정말 역대급 참가자들만 모았다는 엠씨의 멘트에 게스트들이 그런 것 같다며 리액션을 한다. 역대급이라니 괜히 솔깃해졌다. 아, 얘도 역대급이라서 보라고 한 건가? 목덜미를 긁적이다 다시 편지에 집중했다. 이거 읽고 또 괜히 혼자 궁상 떨 바에야 시끄러운 환경에서 무덤덤히 읽는게 낫겠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티비 볼륨을 키운 후 봉투를 마저 뜯어 편지를 꺼냈다. 역시나 정갈한 글씨체들이 꽤 길게 나열돼 있었다. 찬찬히 눈을 움직였다.
여주야. 안녕.
너한테 편지 쓰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다음 참가자세요. 우리 문태일군. 어쩌다가 저희 프로에 나오게 되셨죠?
-아…
카페에 두고 간 거 잘 받았어. 너가 남긴 쪽지도 잘 읽었어. 이건 답장이라고 생각해줘. 이 편지 끝내면서 다 정리할게. 너 말대로 우리 이미 너무 많이 울었으니까.
-이제 만날 수 없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마지막으로 노래 불러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여주야. 사실 고등학교 때 내가 먼저 너 좋아했었다? 너는 축제 때 나한테 반했다고 했잖아. 나는 축제 전부터 너 좋아했었어. 이제서야 말해서 미안. 내가 오빠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간간이 투덜거리던 거 귀여워서 말 안 했던거야. 눈을 돌리면 계속 너가 보여서, 계속 보다보니까 너가 좋아졌어. 그래서 너랑 사귀게 됐을 때 진짜 행복했다. 물론 사귀는 동안에도 행복했어. 그래서 나 이 말 꼭 해주고 싶었어. 고맙다고. 고등학교 때 생각하면 웃음 나오게 해줘서 고마워.
-어떤 친구인지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 친구요.
-네.
-….
-…
-…아무리 봐도 예쁜 친구였습니다.
아, 그리고 여주야.
나는 너랑 결혼을 꿈 꿨어. 우리는 지금도 어리고 그때는 더 어렸지만 너랑 결혼하고 싶었어. 언젠가 누군가 사랑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효력이 크다고 했어. 그러니까 자주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 자주 말하면 사랑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그래서 나는 차곡차곡 쌓았어. 프로포즈 할 때, 그때 사랑한다고 말 하려고. 내 한 마디에 너가 그 큰 마음을 모두 느낄 수 있게. 진짜 어렸지?ㅋㅋ 나 한동안 목소리 못 냈을 때 제일 후회한게 그거야. 사귀는 동안 맨날 좋아한다고만 한 거. 여주야. 이것도 이제서야 말해서 미안. 말로 못하고 글로 말하게 되서 미안. 나 사실은 너를 정말, 정말 정말 사랑했었어.
사랑했었어 여주야.
목울대에 열이 올랐다. 읽었던 문장을 또 읽고, 읽고, 편지를 다시 반으로 접었다. 오빠는 무슨 편지를 저렇게 끝내. 허,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눈가를 문질렀다.
나도 한때는 정말 정말.. 그랬지.
고개를 들었다. 얇은 편지지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목소리도, 눈빛도 모두 여전했다. 문태일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는데 곧 오빠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노래 했다. 첫사랑이였다.
“김여주 나 왔,”
익숙하게 도어락을 연 정재현이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달려가 입 맞췄다. 양 볼을 감싸 내 쪽으로 당겼는데도 까치발을 들어야했다. 정재현은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듯 주춤하더니 곧 무언가를 던지듯 내려놨다. 아마 콜라인 것 같았다. 그러고는 상체를 더 숙이며 제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는 키스가 한참 이어졌다.
“왜 이러실까.”
간신히 입술을 뗀 후에야 나는 정재현과 눈을 마주했다. 코 앞에 있는 정재현은 내 눈을 한 번, 아마도 붉어진 입술을 한 번, 또 눈을 한 번 바라보다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마저 너무 가까워서 숨결이 코끝에 닿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런 정재현을 빤히 바라보다 허리춤을 꽉 끌어안았다. 실은 그 편지를 발견 했을 때도, 열었을 때도, 읽고난 후에도, 정재현 너가. 너가…,
“보고싶었어.”
만나자. 정재현이 대뜸 전화를 걸고 그렇게 말했다. 새삼스럽게 무슨. 누가 들으면 싸우기라도 하는 줄 알 정도로 비장한 목소리였다. 의아한 채로 지금? 하고 묻자 지금 만나야 한다며 집 앞 카페에서 보자더니 전화를 끊었다. 이게 내가 지금 몸을 잔뜩 움츠리며 찬바람 사이를 뚫고 걸어가는 이유다. 아, 코트 말고 그냥 패딩 입을 걸.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어제는 눈까지 와서 길가가 미끄러웠다. 도대체 할 말이 뭐길래 바로 앞 동 살면서 카페에서 보재? 쯧쯔 혀를 차며 어느새 도착한 카페 문을 열었다.
“야 정재현.”
안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정재현을 보자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언제부터 와있었던 건지 내가 마실 코코아까지 시켜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왔어?”
정재현의 맞은 편에 앉으며 코트 주머니에 넣어놓은 손을 꺼냈다. 히터가 빵빵해서 손이 녹는 기분이었다.
“추워 죽겠어 진짜. 그냥 우리집 오지.”
“집에서 할 말이 아니야.”
…진짜 심각한 건가보다. 정재현의 낯빛이 어둡다. 살짝 뻘쭘해진 탓에 볼을 긁적이며 입술을 다물었다. 스멀스멀 불안한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뭐 예를들어 헤어지자던지.. 헤어지자…던지.. 헤어…지자……(울컥) 아냐. 그럴리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계속 뽀뽀해서 나한테 뒤통수까지 맞은 놈이라고. 나도 모르게 달달 떨고있던 다리를 멈춰세우며 잠자코 정재현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조용하던 정재현이 깊게 숨을 내뱉은 후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김여주.”
“왜.”
“…”
“아 왜.”
불안하게 진짜 왜 저래ヽ(`Д´)ノ 눈에 힘을 꾹 줬다. 이름을 불러놓고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정재현의 모습에 입술까지 깨물어버렸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김이 모락 피어오르는 코코아를 들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내려놨다. 하마터면 한 입 꿀꺽 넘기고 입천장 다 까질뻔 했네. 바로 그때 정재현이 내 앞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나..”
“…”
“나 영장 나왔어.”
삐걱. 정재현의 말에 내가 일순 휘청인 소리다. 뭐가 나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재차 묻는 내게 정재현은 친절하게도 답 했다. 영장 나왔다고, 영장. 나는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정재현이 내민 걸 집어들었다. 빌어먹게도 진짜 입영통지서였다. 성명란에 정재현 석자가 곱게 박힌. 생년월일 1997-02-14. 병역법 제 16조의 규정에 의하여 위와 같이 현역병 입영을 통지합니다. 정재현한테 온 입영통지서가 분명했다.
“재현아.”
“응..”
“..우리 이제 백일 좀 넘었는데..?”
뚫어지게 쳐다보던 입영통지서에서 눈을 떼 정재현을 바라봤다. 정재현은 내 시선에 마른세수를 했다. 자기도 아침 먹는데 아빠가 영장 왔다고 하셔서 숟가락 떨어뜨렸다고. 자기가 이제 군대 갈 나이이기는 하다고. 그런 말을 하며 손가락 사이로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래, 군대 가야지. …군대 가야지.
아아, 진짜 심각한 거였네. 시발. 나 고무신 신게 생겼잖아;;
그리고 조금 특별한 사족을 달아보려고 합니다.
1년 넘게 달려온 피치크러쉬는 다음 화에서 완결이 납니다! 와아! (박수)(눈물)
그런데 초반부터 같이 와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연재주기가 완전 뒤죽박죽이였잖아요ㅋㅋㅋㅠㅠ 텀도 길구.. 그랬잖아요... 따흑
그래서 곧 마지막화를 업뎃하기 전에 1화부터 29화까지 하루동안! 구독료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주행 하시면서 잊었던 부분이 있다면 다시 읽고 전체적인 흐름을 잡으신 후에 마지막화를 읽는게 좋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에요.
7월 1일, 이번주 토요일, 낫닝겐 티와이님의 생일에 이벤트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구독료를 없애는 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투표창을 열려구 해요!
투표 한 번씩만 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그럼 정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