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written SOW.
‥비록 타락은 했지만 위엄 있는 그의 얼굴에는 왕자다운 지혜가 빛난다.
현인처럼 그는 서 있다.
강대한 왕국들의 무게를 짊어질 만한 아틀라스의 어깨를 펴고서
밤처럼 침묵이 깔린 가운데 그의 모습은 군중의 시선과 주의를 끌었다.
-밀턴의 <<실낙원>> 中
55. 전야 前夜
성경의 몸 속에서 누군가 외치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고. 나는 오늘 아침을 먹었다, 이것과 같은 어조로 누군가 말했다. 자신이 악마임에도 불구하고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누군가 ‥ 반란을 꾀하려 하고 있다. 실질적 왕王인 태형에게 대적할 자 누구인가. 가장 유력한 석진? 성경을 고개를 저었다. 석진은 제가 알기론 그렇게 배포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머리의 위치에 앉을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냉정하고 똑똑했지만 태형에게는 있는 것이 없었다. 석진의 영토에 있는 악마들은 풍족한 삶을 산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저급 악마들이었다. 실제로 저번 마왕을 죽일 때 석진이 도와주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태형의 영토인 콜카타의 주민들이 그를 도운 덕이 더 컸다. 석진의 영토 악마들과 다르게 태형의 콜카타는 번영을 이루었다. 그 이유는 하나다. 석진은 방목의 형태로 악마들을 부렸고, 태형은 신경을 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콜카타의 주민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애초에 외로움을 느껴 여주를 만들었다는 것이 태형이 가진 따뜻한 마음의 증거였다. 그 마음은 태형에게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었으나 태형은 그거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진정한 악마는 그 순간의 쾌락만을 생각하는 것.
성경이 태형에게 목 메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악마 답지 않은 악마다움이 성경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왔네, 나의 구원자."
어차피 태형의 마음을 얻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성경은 창문 틈을 열고 들어오는 윤기를 맞이했다. 반란 아닌 반란의 시작이었다.
제 육신을 겨우 가누는 반류의 반란이.
-
"협상은?"
훈련을 하고 있었던 건지 호석의 목 아래로 드러난 살결에 땀이 맺혀있었다. 호석은 태형과 윤기와는 다르게 육체를 강화해서 전투 하는 타입으로 평소에도 가벼운 훈련을 해왔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볍게 몸을 움직이던 호석이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한 건 윤기가 여주를 만나고 온 날 부터 였다. 오직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호석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할 때가 온 것이었다. 윤기는 그런 호석을 내심 탐탁지 않아했다. 하지만 말을 한다고 한들 들을 인물도 아니거니와 지금 병력이 부족한 자신이 물불 가릴 때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성공적이야. 그 여자, 아마 이번에 실패하면 자살할 생각인 것 같아."
"뭐?"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전쟁엔 수많은 피가 흐를 거야. 겨우 안정되어 가고 있던 마계를 뒤흔들만한 대사건이 되겠지."
"역사책에 내 이름도 쓰일려나, 그걸 내 후손이 봐야 할 텐데."
"살아남고, 그 후에 생각하자."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건 호석도 알았다. 어젯밤, 도망쳐도 된다는 윤기의 제안을 거절한 건 호석 자신이었다. 머리로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 제게 최우선은 윤기였다. 맹목적인 충성,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사랑했다는 것과 같은 플라토닉 러브와는 다른 사랑이었다. 충성이라는 이름에 갇힌 또 다른 사랑. 대대로 물려지는 그 충성심은 호석에겐 족쇄였다. 제 삶을 포기함과 동시에 살아가는 숨과 같은 것.
56. 겁쟁이.
"네 예상 대로야. 민윤기가 이성경한테 접근했어. 아마 둘이 붙은 거 겠지. 이제 어떡할래?"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
"그렇지."
"죽이지 않으면, 너도 죽어."
"어후, 그건 좀 ‥."
"죽이지 않으면 ‥ 아가도 죽어."
"민윤기가 원하는 게, 여주가 다가 아니라는 거 알아. 그게 대체 뭐야?"
"‥지민아, 혹시라도 내가 죽게 되면."
"야."
"여주 기억, 네가 지워 줘. 알지? 난 우리 아가 기억 못 지우는 거."
"약한 소리 하지마, 소름 돋아."
태형의 웃음, 지민의 웃음. 거짓되진 않았으나 서로 억지로 짓고 있었다. 감이 뛰어난 지민이 모를 리 없었다. 이번 전쟁에서 지는 건 태형이라는 걸.
윤기가 태형의 집에 왔을 때, 태형이 쓰러진 이유가 그 결정적 이유라는 걸. 똑똑한 지민의 두뇌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마저 섭취하고 말았다.
아마 윤기가 원하는 건 여주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여주겠지만 애초에 반류가 온전한 악마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제 3자가 윤기의 의지를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아마 그 배후에 있는 인물은 윤기의 아버지 일 것이며 윤기의 아버지가 윤기에게 악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줌과 동시에 내건 조건은 아마,
"민윤기의 아버지가 그랬겠지, 제 심장을 가져간 김태형에게서 심장을 돌려받아오면 김여주를 가질 수 있는 힘을 주겠다고."
"아니길 바랐는데, 너 정말 ‥!"
"그깟 외로움이 뭐라고, 내가 같은 대악마를 살생하면서까지 ‥ 씨발. 근데 말이야 지민아, 나는 그 때보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 알아, 악마한테 행복은 없다는 거. 그래서 이렇게 벌 받나봐."
"‥잠깐만, 그럼 민윤기 아버지 심장이 너한테 있다는 건, 민윤기가 김여주를 얻기 위해선 결국 김여주를 죽여야 얻을 수 있다는 거잖아? 이게 말이 돼?"
"내가 학교 다닐 때부터 존나게 똑똑했잖아, 덫 하나쯤은 놔야할 것 같았어. 결국 민윤기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죽게 될 거야. 물론 나도 뒤지겠지만."
민윤기가 김여주를 얻기 위해선, 김여주에게서 김태형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선 태형의 심장이 필요하다. 민윤기는 그 심장이 김태형에게 있는 줄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심장은 여주에게 있다. 원래 태형이라면 윤기에게서 자신과 여주 또한 지킬 수 있겠지만 태형의 몸 속에 있는 그 심장이 윤기의 아버지 것이기 때문에 태형은 본능적으로 윤기를 해칠 수 없다. 심장이 쏟아내는 온 몸의 피들이 태형에게 명령을 내릴 것이다. 민윤기를 죽이지 마라, 라고.
"그럼 어떻게 해야 네가 사는 데?"
"그딴 생각할 시간에 아가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 연구 좀 해봐. 아, 남준이 형한테 연락도 해 놔. 최악의 시나리오는 형한테 보내는 거다."
"태형아."
"오래살았지, 1200년 정도면. 어여쁜 미래 색시도 옆에 있었고. "
지민은 태형의 손에 손수건 하나를 쥐여주었다. 그제서야 태형이 눈물을 터뜨렸다. 그 손수건은, 여주가 태형을 위해 만든 손수건이었다. 태형이 좋아하는 문장을 박은 태형만을 위한 여주의 선물.
The moon, the stars are nothing without you
달빛도, 별들도 당신 없인 아무 의미 없어요
태형이 여주에게 자주 해주었던 말이었다. 여주는 다른 언어를 모른다고 생각하여 자주 했던 말이었다.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엔 태형은 너무 겁쟁이였으니까.
57. 평화 平和의 전초전.
"태형님이 오랜만에 허락한 외출이잖아. 안 신나?"
물론 신났다. 하지만 정국의 말에 틀린 점이 하나 있다면,
오랜만에 허락한 외출이 아니라 처음 허락한 외출이었다. 게다가 이상한 점은 태형이 그리도 싫어하는 석진과 함께 외출을 허가했다는 점이었다. 평소대로라면 태형이 직접 동행하거나 아니면 외출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게다가 오늘 외출은 꽤나 먼 곳이었다. 석진의 영토보다도 더 먼 곳으로 「 히그 」라는 낯선 섬이었다. 태형의 가문 사람이 지배하는 영토라 위험할 일이 없을 게 당연한데, 여주는 오늘 따라 초조해 했다. 정국은 처음엔 여주가 외출에 긴장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차 안에 있는 동안 그 증상이 계속 지속되자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었다. 석진도 때마침 화장실에 갔고, 여주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건 현재 자신 밖에 없으니.
"돌아가자."
"뭐?"
"느낌이 이상해. 이대로 외출 했다간 내가 사고 칠 거 같아. 돌아가자."
"조금 있으면 도착인데?"
"도착 찍고 다시 돌아가자고."
태형이 아침에 손수 입혀준 드레스가 마구 구겨져 있었다. 얼마나 손으로 구겨 댔는 지 다리미질을 해도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낮게 한숨을 쉰 정국이 여주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드레스 자락을 손수 펴주었다. 태형님이 이거 보시면 기겁한다. 근데 더 기겁할 일이 뭔 줄 알아? 네가 갑자기 다시 콜카타로 돌아가는 일이야. 1박 자고 오기로 해서 이미 호텔도 다 예약 해 놨다는 데 돈 깨지면 지민님이 화 내실 거야.
"정국아, 나 지금 장난 하는 거 아니야."
식도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태양 가까이에 다가간 듯한 뜨거운 열기, 정국은 더 여주와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피했다. 처음 태형과 눈을 마주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지.
더 가까이 다가가면 햇빛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투명하게 사라질 것 같았던 그 때. 태형은 어린 정국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네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애는 살릴 수가 없어. 그래도 노력 안하면 죽일 거야. 네 목숨을 바치는 시늉이라도 해. 우리 아가는 그 정도의 존재야. 」
"석진님이 허락 해 주실까?"
"안 해주면 내가 기차표 끊어서 갈 거야."
"미안하지만 그건 안돼.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오지 말라고 그랬어 태형이가."
"상황?"
"아이고 씨발, 이놈의 입이 존나게 방정맞네. 그냥 흘러들어 아가."
"왠지 태형이 아침에 나 드레스 입혀줄 때부터 이상했어. 뭔데요, 상황이라는 게? 빨리 불어요 진짜 나 화나기 전에."
"아, 난 아가가 나한테 욕해주는 것도 좋아. "
"석진, 제발요."
"미안, 내 임무는 아가씨랑 도련님 지키는 수호자 역할이라서."
"그럼, 할 수 없네."
석진이 능글 맞게 웃으며 여주에게 어깨를 두르자 여주가 할 수 없다며 오른손에서 불꽃 하나를 피워냈다. 정국은 그 불꽃을 보자마자 여주가 마력을 가진 것인 줄 알았지만 석진은 알았다. 스크롤을 사용했다는 것을. 일시적인 불꽃이고 화력도 약해서 어차피 대악마인 석진에겐 위협도 되지 않을 터 였다. 피식 웃던 석진이 여주의 오른손을 잡고 천천히 내렸다. 미안 아가, 나 이래봬도 대악마 거든.
"대악마들은 머리가 좋다고 했던 거 같은데, 다 거짓인가봐? 아니면 석진이 예외인건가?"
여주의 말에 갸우뚱 하던 석진이 곧 제 목 뒤를 가격하는 벽돌을 피하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정국은 허공에서 날라온 벽돌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서둘러 나가는 여주의 뒤를 쫓았다. 여주는 벽돌까지 두 번이나 스크롤을 썼다. 인간도, 악마도 아닌 몸이 스크롤을 두 번이나 쓰다니 보통 배짱이 아닐 수 없다. 정국은 비틀거리는 여주를 업고 마침 다다른 역에 내렸다. 석진을 태운 기차는 멀리 떠났고 정국은 정신을 잃은 여주를 업고 콜카타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그 기차가 파국을 향해 달리는 것인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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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 저 수정했어요,,,,, 나 진짜 븅신인가봐 ㅠㅠㅠ
님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정리하면 ,
윤기 : 태형의 심장이 필요함.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복수 해주면 아버지가 윤기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기 때문.
태형 : 현재 태형의 몸 속에 있는 심장은 윤기의 아버지의 것. 즉, 윤기가 태형의 몸 안에 있는 심장을 꺼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건 윤기가 원하는 심장이 아님.
여주 : 현재 여주의 몸 속에 있는 심장은 태형의 것. 윤기가 궁극적으로 여주를 얻기 위해선 여주를 죽여야 한다는 모순이 드러남.
" 다음 화 예고 "
These tears, they tell their own story
눈물에는 모두 이유가 있어요
Told me not to cry when you were gone
당신은 떠나면서 나에게 울지 말라고 했죠
But the feeling's overwhelming, it's much too strong
그런데 이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고 너무 버거워요
Can I lay by your side, next to you, you?
당신 옆에 같이 누워도 될까요? 당신, 바로 당신 옆이요
And make sure you're alright
당신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