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이준혁 강동원 김남길 엑소 라이즈 온앤오프 성찬
다앙근 전체글 (정상)ll조회 254l 1

너무 추웠다. 추워서 깼다.

속눈썹에 엉겨붙은 뻘건 먼지 덩어리들을 훔쳐내고 의자를 짚고 일어섰다. 아프던 것이 왼다리인지 오른다리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귀에선 끊임없이 이명이 울리고 먼지를 들이마신 입안은 폐부까지 얼얼했다. 깨진 뒷문 역시 그대로였다. 아니, 이젠 담벼락도 무너졌지. 우우웅하고 먼지바람이 다시 들이닥쳤다. 심호흡을 했다. 환영이 보였다. 그러게 하필 그 순간 거기에는 왜 있었어. 그 찬 흙바닥을 기어서 하필 그 순간 나한테는 왜 오려고 했어. 몇초만 있다가 나오지, 그럼 오래오래 나 볼 수 있는데 왜 그때 하필 진지를 옮기려고 들었어. 아아, 날아간 팔. 군모 밑 광대뼈를 쓰다듬던 손길. 입술을 열어줘. 너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 아직 너무나.. 너무나 많아. 네가 부르던 내 이름. 순영아. 아아, 순영아. 순영아, 한번만 더 네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줘.


"순영아?"


마른세수를 하다 습관처럼 무심코 불렀다. 그럼 어디에선가 자잘한 발자국 소리가 잡힐 것 같아서. 사람인지 로봇인지 그 사이인지 그 둘 다인지 까만 머리를 동동거리며 맑은 그, 빌어먹도록 맑은 무표정으로 봐줄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 그 이름의 주인은 없다. 사람이든 로봇이든 그 무엇이 됐든 이 집에 존재하는 것들은 먼지이거나 곧 먼지가 될 것들이다. 추워, 바스라질 세상은. 너무 추워.


양 팔을 감싸안고 창고 문을 간신히 열었다. 추워. 이 버석거리는 세상이란. 네가 쓸고닦던 마루에 네가 이름 지어준 팬지와, 읽고 싶었다던 책은 그대로 놓여있는데 너는 어디에?


김윤아의 앨범을 꺼냈다. 아이가 따라부르던 노래. CD를 부러트렸다. 생각보다 낭창낭창해 힘이 없었다. 이럼 안돼. 단숨에 너를 보러 가자. 바들거리는 손으로 케이스를 집어던져 깨트렸다. 구부러지지 않는 손목을 억지로 꺾어 힘을 주자 혈관이 북 튀어나왔다. 망설이지 않고 날이 바짝 선 플라스틱 조각을 그어내렸다. 찢어지는 고통에 폐가 쪼그라들었다. 숨이 막혀 비명도 토하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붉은 먼지를 축축히 물들이며 퍼져나가는 파편들.. 아직 못한 말이 너무 많아 생뚱맞은 것이 튀어나왔다.


추워. 너무 추워, 순영아.

네가 없는 세상이란 여름도 춥구나.


-


울고 싶었는데, 울지 못했어요. 소령님은 단호하셨어요. 국방부에서 홈봇을 무기화하려 하고 있다. 반대해봤지만 소용 없다. 키 넘버는 내가 알아서 해킹할테니 어디로든 숨어라. 잡히지 말고 무조건 피해다녀라. 최후의 명령이다. 살아남아라. 구할 수 있는게 너뿐이라 미안하다. 무슨 일인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쓸 일은 많지 않으니까요.


"안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


너무 천진하게 물었나봐요. 소령님께서 입술을 깨무셨지요.


"전장에 투입될거다. 사람을.. 죽일거야."


저는 소령님이 좋았는데. 저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챙겨주셨거든요. 떠나야 한다는게 서운해 못내 표정이 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소령님이 저렇게 확고하게 말씀하시는걸. 그때 아마 눈물이 좀 글썽했나봐요. 소령님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거든요.


"너 살라는거야. 싫어서 내치는게 아니야."

"압니다. 아는데, 그래도 좀.. 그래서 그렇습니다."


코끝이 찡해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소령님이 왜 우시는진 모르겠는데 하여튼 소령님 눈자위도 벌게졌어요. 곧 저를 다복히 안아주셨죠.


"수고했다, 승관아. 내가 너같은 아이를 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몰라."


어깻죽지에 코가 묻힌채 비죽비죽 눈물을 참았습니다. 더 울면 소령님이 힘들어하실테니까요. 이제 소령님 회의 갔다오시면 커피는 누가 타드리지. 기분 안 좋을때 쪽지 써드리면 좋아하시는데 그거 아는 사람 없을텐데. 저도 뭔가 인사를 해야할 것 같았어요.


"저도, 소령님같은 분을 상사로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

"소령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어요."

"..."

"감사합니다."


영문도 모르고 소령님이 문득 저를 더 끌어안으셨어요. 어깻죽지가 뜨끈해지더라구요. 우시나? 생각하기가 무섭게 품에서 저를 떼어내시고 미셨습니다. 차갑게 가라앉히려 한 티가 역력한 목소리로 그러셨죠.


"이제 가."


비상용으로 달아놓은 부스터를 켜고 날다시피 뛰어가는 중에 다시금 생각이 났어요. 전쟁이라고. 홈봇을 병력으로 쓴다고. 그럼 지금 내 네트워크에 잡히는 이 수많은 친구들이 다 군인이 되는건가. 볼 수 없는거라고. 좀 시무룩해져서 눈물이 솟아나려는데 시속 80km를 찍던 즈음, 사람 없는 텅 빈 동네를 지날 무렵이었어요. 붉은 원에 초록색 별이 그려진 비행기가 메다꽂힌 광장 어느 구석에서

피 냄새를 맡았어요.


저는 사실 의무병이거든요. 사무 보조로 고용되긴 했어도 전시 상황에 대비해서 의무병 칩도 이식되어 있어요.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작동하더라고요. 최단경로로 날아가는 중에 보니 집이 말이 아니었어요. 뒷담이며 문은 다 깨져있지, 먼지바람이 얼마나 불었는지 그 너머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부엌은 이미 엉망진창이지. 바닥에 뭔가 끌린 자국이 있는걸로 봐서는 사람이 살긴 하는 것 같은데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어요. 뒤돌아서 가려는데 저 귀퉁이 점처럼 보이는것이 아무래도 사람의 손 같아서 복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지요.


누가 쓰러져 있더라고요.


-


승철은 여전히 고민중이었다. 저녁 7시가 넘고, 아이들도 모두 하교했을텐데 혼자 교무실에 남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갈등하느라 배가 고픈줄도 몰랐다. 찾아가도 되려나. 나 까먹은거 아냐? 몰라보면 어떡하지. 기억 안 날 만한 시간이지. 변했으려나. 일단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한참 늦게 하교하던 한솔이 교무실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가 승철을 발견하고 다가와서 어깨를 툭 쳤다.


"뭐해, 형."

"어? 아, 어. 응. 뭐?"

"...? 뭐야. 뭘 그렇게 생각해."


잽싸게 모니터를 끈 승철이 괜히 뒷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났다. 한솔이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자 괜히 등을 다독거린다.


"배고프지. 밥이나 먹자. 나도 아직 안 먹었어."

"아니, 뭘 그렇게 보는데."

"있어, 그런거. 몰라도 돼."

"수상한데."

"쓰읍- 그냥 가자."


주섬주섬 옷이며 가방을 챙겨 내려오는데 한솔이 말을 붙인다.


"찬이 있잖아, 내 친구 이찬."

"어, 걔 왜."

"걔 요새 형한테도 예민해?"

"왜, 너네 싸웠어?"

"어? 아니, 괜히 여자애들 편지 전해주는데 지 혼자 심통났길래."

"와, 넌 요새도 편지 받고 다니냐."

"아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형한테도 그렇게 예민하냐구."


여전히 모니터 속에 정신이 붙박힌 승철이 대강대강 대꾸한다.


"글쎄, 그런 것 같기도.."

"에? 그런 것 같기도가 뭐야. 애매하게 대답하지 말고."

"걔한테 물어봤어?"

"어. 근데 끝까지 자기는 안 예민하대."

"그럼 네 기분 탓 아냐?"

"아니야. 난 멀쩡했다고."


길을 걷던 승철이 느닷없이 멈추고 한솔을 한심하단 듯 쳐다본다. 한심할 수 밖에.


"지금 요 몇 달 사이에 부쩍 느끼는건데."

"? 뭐가."

"너네 좀 수상해."

"엑? 뭐, 이찬이랑 나?"

"어. 너네 뭔가 좀 있어. 친구끼린 이런 고민 안 하거든."

"뭐래. 뭔 헛소리야."

"이찬이 모르든, 네가 모르든, 둘 중에 하나는 지금 뭘 많이 모르고 있다. 둘 다 모르던가."

"그게 뭔데? 뭘 모른다는건데?"

"시끄럼마. 네가 찾아. 난 너무 잘 알겠는데."

"아, 형, 아, 샘, 진짜. 가르쳐 줘. 뭐 얘기하는건데?"

"저어기 찬이 오네. 나는 오늘 가봐야 할 데가 있어서 이만."


승철이 낼름 혀를 내밀고 주차장 쪽으로 꽁무니를 뺀다. 한솔이 허둥거리며 찬을 찾다가 뚱한 표정으로 함께 교문을 나선다. 운전석에 올라탄 승철이 화면을 불러와 다시 살핀다. 홈봇 수리센터 주소.


"내가 세상에, 살다살다 이지훈 목소리를 다 까먹을라구.."


기어를 빼고 교정을 빠져나가며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전화로 들었던 그 어투하며 얍살스러운 목소리 톤이 영 지훈인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는다. 솔이고 찬이고 알 바냐. 어느새 사이좋게, 그러나 표정만은 여전히 뚱한 상태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교하고 있는 둘을 백미러로 살피다 속력을 올린다. 저것들 저러다 또 화해 금방하겠지, 뭐. 그땐 싸우고 다시 붙는게 일이니까. 그리고 라디오 뉴스를 켰을 때였다.


"국방부는 오늘 대국민 성명을 통해 홈봇 병력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주식회사 SVT 테크닉스의 후원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전국에 보급된 홈봇을 병력으로 치환시켜 국내 장병 수요를 충당하고 인명 피해는 줄이고자 하는 바로서.."


운명이란게 어찌나 우스운지. 라디오를 틀자마자 이런 말이 나올 줄 승철이라고 상상했으랴. 넋놓고 핸들을 두드리며 앉았던 고등학교 화학선생님의 입꼬리가 굳는다. 홈봇을 뭘, 어쩌고 어째? 그럼 연구원은? 지훈이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었다. 라디오에선 쉴새없이 말도 안되는 소리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뒤늦게 석민이 생각났다. 맞다. 석민이 홈봇 들였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수리센터와 석민의 집 양갈래 길 앞에서 수리센터쪽 신호가 먼저 온 것을 핑계 삼으며 승철은 죄책감을 눈감았다. 미안, 석민아. 지훈이 맞는지 확인만 하고 바로 갈게. 얼마 전부터 연락이 잘 안 되는게 불안하긴 하지만 설마 뭐, 별 일 있겠어.


-


눅눅하기도, 때때로 선선하기도 한 날씨. 아이스크림 선데는 자꾸만 녹아 결국 손 전체가 끈적끈적하게 물들었다. 한솔은 핥아먹기를 포기하고 쓰레기통 아무데나 다 녹은 선데를 처박아넣었다. 찬은 야무지게도 바닥까지 핥아먹을 기세였다. 한솔은 혀를 한번 쯧 차다 습관처럼 광장으로 몸을 틀었다.


"다 녹은거 뭐 맛있다고 자꾸 먹냐."

"신경 쌉치고."


유달리 예민한 찬의 반응에 관자놀이가 움씰거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대화를 해보리라. 편지 전해다주는거에 화는 왜 자기가 내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한사코 예민한거 아니라고 피할건 뭔지 그 대답 좀 속 시원하게 들어야겠다. 아 그리고 입술 봐주던 그 새끼 누군지도.


"야, 이찬."


먹는다고 정신이 있든 없든 나는 내 할 말을 해야겠다.


"너 기분 더러운걸 왜 나한테 풀어. 여자애들 질투는 왜 해. 안 한다면서. 왜 니가 화를 내고 지랄이야."

"화 안 냈다니까 진짜,"


찬이 솔의 말을 막아세우다 아이스크림을 흘렸다. 아, 교복 어제 빨았는데.


"아, 최한솔 진짜 너,"

"왜 지가 흘려놓고 나보고!"

"씨발, 지?"

"그럼 지라고 하지 친구한테 내가 뭐, 극존칭이라고 써야 되냐?"

"말 곱게 안 해?"

"먼저 곱게 안 한게 어떤 새낀데 누가 누구보고 훈장질이야?"

"씨발, 내가 뭐 어쨌는데 너 어제부터 자꾸,"

"아 니가 자꾸 여자애들 편지 고분고분 다 갖다주잖아!"

"그게 뭐가! 전해달라는거 전해주는데!"

"어휴,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얘길 하겠니."

"저 새끼 인성 보소. 사람 개무시하는 버릇 또 나오네."

"개무시? 하, 니가 이래놓고 나보고 말 안 예쁘게 한다고 뭐라 그래?"

"잔소리 할 만하지 않냐? 지가 먼저 컷팅 똑바로 안해놓고 책임 뒤집어 씌우긴."

"오호, 그래서 넌 막 약국에서 키스라도 할 기세로 네 입술을 그렇게 까뒤집어서 남들한테 보여주고 막, 어, 막, 그러냐?"

"오오냐. 죄다 내 탓인줄 아는 니 새끼 존나 짜증나서 그랬다. 그게 왜, 그게 뭐!"

"그래서 사람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그냥 들어가? 그 새끼 누군데? 왜 말 못하냐?"

"하? 말 못할건 또 뭐 있어. 지랄도 정도껏이지. 애인이다, 어쩔래. 나 원조 교제한다, 이제 어쩔래, 니가!"


한솔의 눈빛이 더럭 거리감으로 굳었다. 찬도 뱉어놓고 보니 말이 심했나 싶다가도 애써 교복 얼룩으로 촛점을 돌리기로 했다. 에이씨, 하얀 셔츠에 초코 시럽. 에이씨. 한솔이 와락 찬의 손을 잡았다.


"아니지?"

"씨발, 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 장난치지 말고. 아니지?"

"나 빡쳤어. 곱게 얘기할때 놔라."

"아 이찬 진짜,"


한솔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물기가 어린다. 더 놀란 찬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씨발, 좆됐다. 난 몰라. 근데 얜 왜 울어? 한솔의 얼굴이 벌게진다. 눈만 꿈벅꿈벅 문대며 간심히 말을 잇는다.


"야, 너, 왜, 울고,"

"아오씨.. 아니잖아, 이찬.. 아니라고 하라고.."

"아니, 니가 지금 왜 우냐고. 너 왜 울어?"

"그러는 넌 화 왜 내는데? 여자애들이 편지 써주는거 내가 싫어서 안 읽겠다는데 그거 가지고 나한테 화는 왜 내? 씨.."

"아니, 니가 사람 마음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그걸 그렇게 쓰레기 취급을 해.. 내가 그거 한두번 전해주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 취급 아니라고. 내가 언제 사람 진심 그렇게 막 무시했어.."

"그럼 너 편지 버리는 그건 다 뭐야."

"걔넨 안 중요한 애들이잖아. 중요한 사람한텐 안 그런다고.. 왜 넌 자꾸 그거만 보고서 나 막 몰아가냐고.."

"중요한 사람 뭐. 니가 안 그러는 사람도 있냐. 난 몰랐지. 내가 보는건 그게 단데 어떻게 알아."


한솔의 표정이 억울함으로 굳는다. 입만 벙긋거리다 얼굴만 더 시뻘개져서 캔만 걷어찬다. 찬의 손도 놓고 혼자 씩씩대며 걸어가버린다. 졸지에 혼자 남겨진 도가 슬그머니 쫑쫑거리고 솔을 따라간다.


"같이 가! 알바 같이 가."

노을 뒤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가 한 줄로 이어진다. 한솔은 여전히, 빌어먹을 승철이 한 소리가 무엇인지 감도 못 잡겠다고 불평한다. 뭘 모른다는거야. 몰라도 그건 저 새끼겠지, 난 알거 다 알거든. 찬을 따돌리려고 몸을 숨긴 어느 골못 전봇대에서였다. 홧김에 나오던 눈물도 대강 그쳤겠다, 찬이 먼저 보내야 되겠다, 전단지를 읽은게 화근이었다. 홈봇, 병력 모집..? 자원 입대? 강제 동원령? 약물? 칩? 알고리즘 개조? 잠깐만, 접때 그 아저씨 홈봇 있지 않았나. 요즘 잘 안 보이시던데. 순간 등줄기에 찬소름이 쫙 끼쳤다. 불길했다. 그 친구 설마..


숨니 나발이니 하는 것들을 다 까먹고 멍청하게 골목 초입 전봇대의 전단을 쳐다보고 있는 한솔을 발견하고 찬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야, 너 무슨 애가,"


찬의 눈망울도 자석처럼 전봇대가 붙들어놨다. 한솔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상황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닐지도, 아닐텐데, 아니라면..?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찬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커졌다. 한솔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시선이 그림자마냥 한 줄로 겹쳤다. 한솔의 머리 속에서 톱니바퀴가 찰칵, 나아갔다. 찬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다음 순간, 둘이 꺼낸 대사는 똑같았다.


"그 아저씨."


-


내 몸에 손을 댈 수 있는건 오직 너여야 한다. 너는 나의 제비꽃이고, 나는 너의 백합이므로. 눈을 떴을때 네가 없는 것도 시려 죽을것 같지만,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는게. 버릇처럼 살아난게 너무 춥다. 먼지가 자욱히 깔린 바닥, 무릎을 꿇고 앉은 듯한 내 옆의 자국. 네가 왔다간걸까? 이 붕대를 감아준걸까? 아닐것이다. 너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으니까.


그래서 좀 울었다. 팔꿈치를 짚고 몸을 일으켰을때 몸이 세워지는게 신기해서, 그걸 옆에서 도와줄 네가 없는게 너무 생소해서, 그럼에도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쳐서. 나는 좀 웃다가, 울다가, 쓰러졌다가, 말끔히 치워진 쓰레기들을 보고 오열했다가, 지쳐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났다. 네가 고백을 하던 밤처럼 보름달이었다.


그 밑에 광장 복판에 머리를 처박고 누운 비행기를 보다가, 좀 보고 있다가, 무릎에 온 힘을 실어 일어섰다. 가만히 좀 더 보고 있다가, 머리가 어지러워 벽에 좀 기대 섰다. 전기를 켤 생각도 않은채 달만 멍하니 다시, 보고 있다가,


목구멍에서 들끓어오르는 울음소리를 길게 토해냈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너 하나만 보낼 수 없다. 한번이면 충분하다. 다시 잃을 수 없다.

조금만 기다려, 구하러 갈게. 꼭 구해낼게. 이번엔 놓치지 않아. 열만 세고 있어. 금방 도착할게. 손잡고 집까지 걸어오자. 장도 보러 가고, 꽃도 새로 사고, 네가 해준 요리 먹으면서, 나는 네 팔을 베고 잠들테다. 그거 우리 꼭 다시 하자. 다 하자. 못한거, 못해준거 너무너무 많았잖아. 꼭 다 하자. 지금이 너의 끝이 아니잖아. 너도 알잖아. 내가 꼭 보여줄게. 지켜줄게. 나의 말, 나의 언어 순영아.


현관을 박차고,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뛰어나갔다.

어딘지도 모르는, 그러나 나와 함께 숨을 쉬고 그 밑에 피가 도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노래와 꽃을 좋아하는, 낯설지 않게 피부가 따뜻하기 때문에 기어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나의 세계, 나의 순영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곳으로.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작가님 무슨 일이에요 대체?! 3일 내내 업로드라니 행복해죽겠네 ㅠㅠ 저 작가님 때문에 이제 팬지랑 제비꽃이랑 백합 보면 우는 병이 생겼습니다... 책임지세요ㅠㅠ 저 꽃들
못봐요 이제.. 하루빨리 석순이들이 재회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승관이는 치료만 해주고 다시 떠난건가요..? 부디 승관이만은 안끌려갔으면 좋겠어요ㅠㅠㅠ 하지만 작가양반 예상이 안되는 사람이지... 응 맞아.... 그래서 찬이랑 한솔이는 언제 사귀나요? 아니 언제 아는건가요? 너네만 몰라 ㅠㅁㅠ 오늘도 잘 봤어요 작가님 최고♥

6년 전
다앙근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독자님들 도대체 어디 가서 이런 센스들 배워오시나여? Where? 나 우리 독자님들 없는 인생 상상 X.. 초딩처럼 글 올려놓고 새로고침 1초에 5만번씩 하면서 독자님들 기다리기 넘 최고야.. 응.. 우리 독자님들 세계 제패해.. 석순 다 가져.. 서쿠가 드디어 각 to the 성을 했어요 순영이를 차즈러 가요 우리 서쿠 ㅠㅠㅠㅠㅠㅠㅠㅠ 승가니 아니었음 임마 너 살지도 못했엄마 순영이 없다고 그걸 그렇게 냅다 손목을 긋는 새끼가 어딨엄마 ㅠㅠㅠㅠㅠㅠㅠㅠ 이서쿠 진짜 좀 맞아야 하는거 같아요 순영이가 걱정이 되면 찾으러 가야지 임마 그걸 또 포기하고 죽을라고 덤비고 있어 ㅠㅠㅠㅠㅠㅠ 지금 작가는 어떻게 하면 13명을 석순으로 모이게 할까 걱정하느라 안그래도 탈색하고 염색하고 머릿결 난리난거 다 빠지구욘.. 스고이네.. 솔찬 사실 연애하는건데 자기들만 모름 뽀뽀하고 키스하고 질투하고 난리났는데 승철이도 알고 동네 의사 명호도 아는거 너네만 모른대요 이 바보 잔치들.. 솔이는 이찬 너라고..★ 이 한마디를 못해서 질질 짜고 이찬 이 눈치없는 놈은 지가 예민해졌는지 질투를 하는지도 몰라요 ㅠㅠㅠㅠㅠㅠㅠ 얘넨 상크미들로 쓰고 싶었는데 자꾸 석순 옮아간다...? 오늘도 재미지게 읽어주신 독자님들 워아이니 아이시떼루 쥬뗌므 알러뷰궐 하구요 마지막 깨알같은 추가 염전은 제비꽃이랑 백합 꽃말 좀 보시래요.. 독자님 최고.. 세상 최고..
6년 전
독자2
아휴 정말 작가님 배운 변태시네.... 이게 뭐야 정말루ㅠㅠㅠㅠ 소름 돋아서 춥잖아요 책임져..!
6년 전
다앙근
어휴.. 열심히 써제낄 수 밖에 없겠네여.. 제가 책임질 수 있는 길은 그뿐 꺄륵 독자님 헬로워드 끝까지 나 버리면 안된다..? ♥︎♥︎♥︎♥︎♥︎
6년 전
독자3
안버려요 안버려요 ㅠㅠㅠ 완결 나도 외전도 쓰고 스핀오프도 쓰고 에필로그도 쓰고 다 쓸때까지 안놔줄거예요ㅠㅠㅠ
6년 전
다앙근
3에게
뀨륵꺄륵 이렇게 제 글 예뻐해주시는 독자님이 계시다니 와타시는 럭키갸-루☆★랄까 후훟 이런 드림월드를 이렇게 오래 방치해뒀다니 반성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할게요 어흑 ㅜ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5 1억05.01 21:30
온앤오프 [온앤오프/김효진] 푸르지 않은 청춘 012 퓨후05.05 00:01
몬스타엑스[댕햄] 우리의 겨울인지 03 세라05.15 08:52
      
      
세븐틴 [세븐틴/권순영] 남자 댄스부 단장 권순영 X 여자 댄스부 단장 너봉 A44 one's youth 08.11 01:20
세븐틴 [세븐틴/순영] 외과의사 권순영X레지던트 너봉_012 바른걸음 08.07 00:25
세븐틴 [세븐틴/전원우] 봄의 환상 제11장 ; 우리11 스타티스 08.06 03:40
세븐틴 [세븐틴] 욕쟁이 남사친들과의 근본없는 대화 1881881881881881881881881881881..60 소세지빵 08.06 00:54
세븐틴 [세븐틴/순영] 외과의사 권순영X레지던트 너봉_0013 바른걸음 08.05 01:17
세븐틴 [세븐틴/권순영/윤정한] 사내연애금지 029 블루밍 08.02 18:28
세븐틴 [세븐틴/김민규] 시비킹 양애취 김민규 X 전투력 만렙 너봉 1721 one's youth 08.01 20:40
세븐틴 [세븐틴/권순영] 같은 반 덕후가 너 따라다니는 썰 023 힜뽀 08.01 13:29
세븐틴 [세븐틴/전원우] 봄의 환상 제10장 ; 무너진 탑, 그리고 순영이9 스타티스 08.01 03:25
세븐틴 [세븐틴/권순영/윤정한] 사내연애금지 0111 블루밍 07.31 14:33
세븐틴 [세븐틴/권순영/윤정한] 사내연애금지13 블루밍 07.31 02:24
세븐틴 [세븐틴/도겸] 코치님 이석민X격투기 선수 너봉_0010 포카콜라 07.30 21:45
세븐틴 [세븐틴/전원우] 와 이 말머리 너무 오랜만이다68 원우의개 07.29 21:15
세븐틴 [세븐틴/권순영] 인기 아이돌 멤버 권순영 X 신입 메이크업 아티스트 너봉 _ 17 블루밍 07.29 00:09
세븐틴 [세븐틴/김민규] 시비킹 양애취 김민규 X 전투력 만렙 너봉 1623 one's youth 07.28 21:13
세븐틴 [세븐틴/전원우] 봄의 환상 제9장 ; 아직은9 스타티스 07.28 02:41
세븐틴 [세븐틴/권순영] 너와 나, 지금 이대로1 블루밍 07.28 02:27
세븐틴 [세븐틴/이석민] 원수 같은 남사친이랑 쌈 마이웨이 TALK! 33 오렌지라임 07.26 14:52
세븐틴 [세븐틴/권순영] 같은 반 덕후가 너 따라다니는 썰 012 힜뽀 07.25 11:27
세븐틴 [세븐틴/이석민] 첫사랑 모먼트 DK (1) 셉먼트 07.25 00:04
세븐틴 [세븐틴] 개노답 열세명과의 KAKAO TALK12 식탁보 07.20 00:57
세븐틴 [세븐틴/이석민] 원수 같은 남사친이랑 쌈 마이웨이 TALK! 25 오렌지라임 07.20 00:35
세븐틴 [세븐틴] 개노답 열세명과의 KAKAO TALK9 식탁보 07.19 04:50
세븐틴 [세븐틴/전원우] 도서관 사서 전원우 01 W.새내기 07.19 03:25
세븐틴 [세븐틴/이석민] 원수 같은 남사친이랑 쌈 마이웨이 TALK! 16 오렌지라임 07.19 00:48
세븐틴 [세븐틴/이석민] 원수 같은 남사친이랑 쌈 마이웨이 TALK!11 오렌지라임 07.18 01:10
세븐틴 [세븐틴/전원우] 봄의 환상 제8장 ; 급할수록 돌아가라10 스타티스 07.16 04:52
전체 인기글 l 안내
5/16 3:50 ~ 5/16 3:52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단편/조각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