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실지도 모르니까! 징어=홍랑입니다!
Various Artists - Elegy Tango (경성스캔들 OST)
"언니! 징어 언니~손님들 오신다고 행수님이 준비하시래요!"
"........술 쳐먹으러 애지간히도 일찍 오네."
징어는 오랜만에 하루의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부티크에서 원피스 몇 벌 고르고, 오는 길에 한복도 몇 벌 고르고, 예쁜 노리개며 귀걸이며 모던걸과 조선여자의 경계를 넘나 들으면서. 그래서 기방으로 돌아와서도 한창 흥이 나있었는데 저 한 마디가 그 흥을 한 번에 깨버렸다.
"그래서 몇 분이나 오신다니?"
"여섯 분이시라는데 행수님이 절~대 놓치면 안되는 손님이라고 당부를 하셨어요!"
".....그놈의 할망구는 맨날 놓치지 말래."
징어가 투덜거리며 경대를 열었다. 언제나처럼 능숙하게 분을 찍어 바르고 예쁘게 연지를 바른다.
"우와....언니 오늘따라 더 예뻐요."
여인이 보아도 참 고운 얼굴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잘난 얼굴 때문에 팔자가 센 거라고 수근거렸다. 독립자금을 댄다며 난리를 치다 잡혀간 아버지 때문에 8살에 기방에 팔려왔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그 어린나이에 남자를 어찌 휘어 잡아야 하는지 온갖 음담패설을 들어야 했고, 춤이며 가야금, 거문고까지 잠을 참아가면서 혹독하게 배웠다. 죽지 못해 살던 인생이었는데, 춤을 배우면서 야망이 생겼다. 징어의 손짓에 환호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맛이 정말 짜릿했다. 그렇게 무희가 되고자 했던 징어는 그 반반한 얼굴 때문에 무희가 될 수 없었다. 그 얼굴이 아깝다며 기방에서 내보내 주지 않았다. 매일밤을 울며 매달렸다. 기생은 되고 싶지 않다고. 그럴 때마다 돌아온 건 차가운 멸시였다. 그 지독한 차가움에 베여버린 징어는 그렇게 머리를 올렸다. 이조참판이라는 늙은이와 첫날밤을 보내고 나서 이를 갈며 다짐했다. 조선 최고의 기생이 되겠다고.
그녀의 빼어난 미모와 타고난 화술로 그녀는 얼마 있지않아 조선 화류계를 평정했다. 어딜가든 그녀의 기명인 홍랑(虹琅)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렇게 그녀는 일본이 먹어버린 이 조선의 상징이 됐다.
"한복 입으실거지요?"
"응. 오늘 새로 산 거 입을래."
"세상에 이리 고운 빛깔도 있답니까? 너무 예뻐요 언니"
"빛깔만 고우면 뭐하누. 이 꼬까옷 입고 할 수 있는 짓이 웃음 파는 일 밖에 없는데."
일본이고 조선이고 상류층 최고의 남자들은 경성에만 오면 죄다 홍랑을 찾았다. 조선은행 총재부터 조선총독부 고위관리까지,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위치에 서고 나니 징어는 이 일에 신물이 났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더 높이 오를수록, 만인의 여인이 될수록 한 남자의 여인은 될 수 없다는 걸.
"어느 방이라고 하던?"
"매화방이요."
"돈 더럽게 많은 인간들인가 보네. 매화방에 홍랑이라."
내내 찡그리고 있던 징어는 매화방 문 앞에서 숨을 한 번 깊게 쉬고, 홍랑이 되었다. 어찌됐든 그녀의 직업이었다. 어찌됐든 그녀를 보기 위해 기둥뿌리를 뽑았던 금고를 열었던 돈을 낸 사람들이다. 그러니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웃음 한 번 팔아주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화란각 기생 홍랑입니다. 많이들 기다리셨지요?"
징어가 한껏 웃어 보이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같으면 '어이구 우리 홍랑이~'부터 시작해서 방 안의 남자들이 그녀의 몸짓, 표정 하나하나에 집중 했을텐데 이 방은 달랐다. 그녀의 교태어린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든것이 고요했다. 총 6명이 있었는데 기생은 징어 한 명 뿐이었다. 보통 남자들이라면 인원수에 맞게 기생을 부르고 그 위에 화룡점정으로 징어를 부르는데 이 남자들은 뭔가 이상했다.
"어찌하여 기생은 이 년 하나만 부르셨습니까? 저희 화란각에 예쁜 아이들이 많습니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요염하게 술상 앞에 앉았다. 6명 모두 젊었다. 귀티가 흐르는 것이 부잣집 도련님들 같긴 한데 이곳이 기방인 걸 잊은건지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이었다.
"도련님들께서 화란각이 처음이신듯 합니다. 이리 조용하고 무거워서야 어디 흥이 나겠습니까? 시월아 가장 예쁜 아이들로 몇몇..."
"아닙니다. 우린 당신에게만 용건이 있습니다."
"....저에게만...이라면 무슨...?"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징어는 밖에 있던 몸종 아이에게 기생들을 데려오라며 막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술상의 가운데 앉아, 징어와 마주보고 있던 남자가 그녀를 제지했다.
"....동지를 찾고 있습니다."
".....동지요?"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모든 게 이상했다. 징어는 천천히 6명을 모두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잘 생긴 얼굴이었다. 굳이 이곳에 오지 않아도 여러 여자 울릴만한. 그런 청년들이 이리 비장하게 찾아와 그녀에게 동지를 찾고 있다고 말하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어떤 동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엇이든 동지가 되기 전에는 이름을 밝히는 것이 먼저 아닙니까? 저만 이름을 드렸으니 도련님들께서도 제게 이름을 알려주시지요."
사람들을, 특히 남자들을 많이 만나면 느는 건 눈치뿐이다. 이 청년들에 대해 무엇이라도 알아 놓아야 한다고 징어가 그간 갈고 닦아온 그 예리한 촉이 말하고 있었다.
"아, 미안합니다. 동경대 2학년에 다니고 있는 김준면입니다."
징어와 마주 앉아있는 사내가 먼저 이름을 밝혔다. 이 무리의 수장인듯 했다. 하얗고 얄상한 것이 딱 봐도 보통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동경대 2학년이면 집안도 집안이지만 머리 또한 비상하다는 이야기였다.
"같이 동경대에 다니고 있는 1학년 도경수입니다."
큰 눈이 매력적인 사내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인상이라 아이같은 느낌을 주지만 짧게 자른 손톱이나 각이 잡힌 옷 매무새가 그의 단호한 성격을 보여줬다.
"박찬열입니다."
눈에 띄는 외모다. 전체적으로 흠이 없었다. 앉아있어 정확히 볼 수는 없지만 키도 커 보였다. 무엇보다 얼굴과는 쉽게 연관이 되지 않는 낮은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능글거림. 그리고 장난끼. 그의 눈에는 그런 천진난만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지금까지 소개한 모든 이가 잔뜩 굳어서 소개를 했는데 그는 아니었다. 반갑다며 징어에게 가볍게 웃는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숭실고등학교 3학년 김종인입니다."
흑표범. 징어는 그를 보고 딱 흑표범이 생각났다. 말이 없고 무언가 나른해 보이는 사내인데 중간중간 나오는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외모와 분위기였다.
"종인이와 학적이 같습니다. 오세훈입니다."
삼백안이었다. 흔치 않은 눈에, 흔치 않은 인상. 보통 삼백안을 가진 사람은 그 강한 눈빛을 얼굴이 담지 못하는데 이 남자는 아니었다. 그 눈이 이 사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모두 감당하고 있었다.
'보통내기들이 아니야.'
징어는 느낄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한 하는 그런 여리여리한 도련님들이 아니었다. 무언가 뚜렷한 목적이 있어 이곳에 온 것이지 평소 그들 성격이었다면 이런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그 목적이 홍랑, 바로 징어라 하니 소름이 돋았다.
"호호, 도련님들께서 이리 학적까지 다 밝혀주실 줄 몰랐습니다. 제가 청한 것은 단지 이름 세 자였는데..."
"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우리는 남들에게 쉽게 신원을 밝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헌데 어찌..."
"아까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동지를 찾고 있다구요. 동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를 내려놔야하지 않겠습니까."
동지라. 어떤 동지를 말하는건지 징어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요즘 유행하고 있다는 사회주의의 동지인가, 학생운동의 동지인가, 계몽운동의 동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독립군의 동지인가.
"...어떤 동지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라의 빛을 다시 돌려놓을 동지요."
빛을 다시 돌려놓는다. 한자로 광복(光復). 다시 말해 독립이었다. 술주전자를 들고 있던 징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독립운동을 하는 사내들이었다. 어린 치기에서 올라오는 패기일까? 초면인, 그것도 뒤에 일본 고위관리층의 후원을 받고 있는 징어에게 자신의 신원을 다 밝히고 독립을 위해 싸우자는 이야기는 자살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징어에게 또박또박 동지가 되자고 말하고 있었다.
"제가 어떤 분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조선 총독부, 조선은행, 나열하기가 입이 아플정도로 많은 일본 고위층과 연관되어 있으시지요."
백현이라는 남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도련님들의 이름 세 자를 그분들께 이야기했을 때의 그 후폭풍을 알고 이런 일을 벌이시는 것입니까?"
"그대가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대가 우리의 동지가 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듣는 징어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엇이 이들에게 그런 확신을 준단 말인가. 징어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온갖 수모를 겪으며 올라온 징어의 자리다. 그녀의 이름 앞에 수많은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 매달리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녀가 했던 노력이 오늘 밤 한 순간으로 모두 뒤엎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녀를 덮쳤다.
"저는 천한 기생년입니다. 그 이름이 유명하다하여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인다운 행동도 하지 않고 살아온 여인입니다. 송구스런 말씀이지만 도련님들과 달리 나라의 빛을 찾아오는 일보다는 저 스스로를 빛내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구요. 허나 이 년 또한 조선인임에는 변함이 없고 그에 대한 일말의 양심은 있으니 도련님들의 성함을 그분들께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밤도 깊었으니 댁으로 돌아가시지요. 차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징어는 말의 가시를 숨긴채 조용히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1920년 8월."
"..........."
날짜를 읊는 준면의 목소리에 징어가 문 앞에서 그대로 굳었다.
"그 때의 사건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하하 안녕하세요~대통령썰을 연재하고 있는 영애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들고 찾아왔어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장르인데 오늘 꿨던 꿈에 feel을 받아서..ㅋㅋㅋㅋㅋㅋㅋ
1930년대를 배경으로 이것저것 얘기가 펼쳐질 거에요!
중심은 엑소케이와 징어가 될 거구요! 엠멤버들도 중간중간 투입될 거에요!
라인은 비공갭니다...흐흐흐흐흐흐흐흐
저처럼 시대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기를 바라면서...
댓글도 신알신도 많이많이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