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을 걷다
w. 공 백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 04 ]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去者必返)
/
오후 2시의 햇발이 가득 들어찬 카페 안은 적당히 따뜻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햇빛이 미치지 않은 깊숙한 자리에, 마스크와 검정색 볼캡으로 자신의 외모를 숨긴 태형과 그의 동생인 태훈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둘 다 자신의 일 때문에 바빴던 터라, 오랜만에 만난 형제는 서로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주 앉은 둘 사이로 형식적인 인사치레와 서로의 근황 등이 단조롭게 오갔다. 곧 대학생이 되는 태훈은, 놀랍도록 태형과 비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쌍꺼풀이 없는 날카로운 눈매, 높은 콧날. 태형과 다른 점은 태형의 저음보다는 더 높은 목소리를 가진 것과, 태형에 비해 더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빨대로 제 음료를 휘휘 저어대던 태훈이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아, 하며 입을 열었다.
" 형, 혹시 형 회사 근처에, 작은 카페 하나 있잖아. 거기 가 본 적 있어? "
" 아니. 왜? "
" 거기서 형 여자친구 본 것 같아서. 이름이 김공백이었나? "
" … 뭐? 언제 갔는데. "
" 어제. 나 보고 나서 얼굴 엄청 창백해지던데. 깨진거야? "
장난스레 말하며 태훈이 빨대로 음료를 한 번 쪽 빨아들이고, 고개를 들어 제 형의 얼굴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마스크를 껴서 얼굴 하관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태형의 웃고 있던 눈매가 차갑게 굳어졌다. 왜 그래?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태훈이 태형에게 질문을 던졌다. 태형이 대답 대신, 앉아 있던 의자 팔걸이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의자 팔걸이를 붙잡은 두 손에 시퍼런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화기애애하던 두 사람 사이에 잠시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어딘가가 불편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태형이 팔을 뻗어 제 옆의 의자에 걸쳐놓았던 겉옷을 움켜잡았다.
" 미안, 나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마저 마시고 가. "
" … 형? "
" 먼저 간다. "
제 동생에게 한 손을 들어 건성으로 인사를 하며 태형이 벙쪄있는 태훈을 뒤로 하고 카페 문을 열고 나왔다. 4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치기엔 여전히 쌀쌀한 날씨였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옷자락을 여민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카페 문 앞에 서서, 잠시동안 휴대폰을 들여다 보던 태형이 이내 결심한 듯 발걸음을 떼었다. 카페 근처 골목길에 주차해 놓았던 제 차에 올라타며, 수없이 고민하는 그였다. 한 번 가볼까. 시동을 걸려다가도 몇 번을 멈칫하는 그였다. 그러다가 마음을 정한 듯,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듯 했으나 이내 멈춰 서서, 핸들을 붙잡은 채로 머리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
지독한 악몽을 꿨다. 꿈 속에서 너와 함께였던 나는 눈물날 정도로 행복했었다. 꿈이란 걸 알면서도, 꿈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을만큼. 여전히 네가 내 옆에 있고, 우리 둘이 함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너와 나는 마주 보고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네가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고 팔짱을 끼고 있던 내 팔을 뿌리치고 뒤돌아섰다. 명백한 뿌리침에 나는 돌아서서 가버리는 네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가지 마, 태형아 …. 네 이름을 수없이 되내며 널 붙잡는 나를, 넌 끝내 매몰차게 뿌리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무리 따라가려 애를 써도, 내 발은 바닥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 가지마 …, 가지 … 마 …, 김태형 … "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네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차갑고도, 모르는 사람을 보는 듯한 눈길. 몇 분 전과는 180도 달라진 네 눈빛이 칼날이 되어 심장을 사정없이 도려내었다. 또 다시 버려졌다는 뼈저리게 느껴지는 사실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입을 막을 새도 없이 울음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왔다. 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소리가 내 귓가에 웅웅대며 흩어졌다. 꿈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다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앓는 듯 한 울음소리는 내 입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두 손을 들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감쌌다가 손을 떼어 손바닥에 흥건하게 묻은 물기를 쳐다보았다.
" 엄마, 왜 우러? "
" … 하연아. "
" 울디마 …. 엄마 울면 하여니도 슬퍼. "
울음소리를 들었는지, 아이가 옆에 일어나 앉아서 울상인 채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깊은 새벽의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방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으로, 침대를 짚고 일어나 앉았다. 아이의 눈동자가 일어나 앉는 나를 따라온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눈을 깜박이다가 상체를 돌려 옆에 앉은, 아직은 너무나 어린 하연이를 쳐다보았다. 쌍꺼풀이 없는 큰 두 눈동자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팔을 뻗어, 아이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와 함께 했던, 아름답기만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서였다. 너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을 떠올릴 때마다, 넌 항상 그 추억 속에 있었다.
" … 울디마, 엄마 …. "
" … 하연아, 우리 …. "
어떡하면 좋을까. 반쯤 울음이 섞인 뒷말을 애써 목구멍으로 삼켜내었다. 울음을 삼켜낸 목구멍이 홧홧하게 타들어갔다. 눈물이 앞을 가려 방 안의 풍경에는 물기가 흐르고 있었다. 저를 껴안은 내 등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말없이 조그만 손을 뻗어 토닥여 왔다. 서툴고, 작은 아이의 위로에 내 마음속을 내내 막고 있던 둑이 무너져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입 밖으로 터져나오려는 흐느낌을 막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이 터졌는지 입 안에서 찝찔한 피맛이 나면서 쓰라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더욱 이로 입술을 세게 깨물 뿐이었다. 더 이상은, 아이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방 안에는, 미약한 햇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
어쩌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김태형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그들의 생각은 맞는 것이었고, 내가 명백히 틀린 것이었다. 김태형과 관련된 모든 것을 보고 들을 때마다 눈물을 보이는 것 또한 김태형을 내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리 김태형이라는 이름 석 자를 마음속에서 지워내려고 애를 써도, 지워지기는 커녕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지워도 자국이 남는 네 이름을 지워내는 것을,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널 지워내는 것을 포기했을 때,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널 여전히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널 여전히 사랑하는 내가 싫었다.
내 입장에서, 너를 바라볼 때는 그저 나와 자신의 아이로 버리고 떠난 사람에 불과했다. 지워내는 게 맞는 것이었고, 다시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난, 마음이 아픈 것을 감수해서라도 널 좋아하고 있었고, 그 때마다 매번 마음에는 크나큰 생채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감정들은, 나를 서서히 지쳐가게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넌 날 버렸는데도, 날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난 네가 돌아올 거라는 미약한 희망의 한 자락을 잡고 있었다.
내가 널 그리워하는 것처럼, 너도 날 그리워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
여느 때처럼, 하연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뚱이를 실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버스 창 밖에서는, 사람들이 한층 가벼워진 옷차림을 한 채 웃음을 지으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제법 따뜻해진 날씨였던 탓에, 내 기분도 덩달아 붕 뜨는 느낌이었다. 햇살을 환히 머금은 버스 창가에 상체를 비스듬히 기대고는, 아침에 들었던 이름 모를 피아노곡을 흥얼거렸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내내, 입술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만큼, 모처럼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카페가 있는 골목길로 들어갈 무렵, 모자를 쓴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걸어오다가 내게 부딪히고 말았다.
" 괜찮으세요? "
" 아, 네. 괜찮아요. "
" 죄송합니다. "
죄송하다는 말을 지나가듯 흘리며,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벗어났다. 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얼굴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듯 했다. 아는 사람 목소리 같은데. 남자가 워낙 낮은 목소리로, 작게 말한 탓에 누구의 목소리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이며 몇 걸음 남지 않은 조그마한 카페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며, 카페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손님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옷을 갈아입기 위해 라커룸으로 향하는 내 앞을, 왜인지 모르게 상기된 얼굴의 은아가 가로막았다.
" 언니, 아까 누가 찾던데요? "
" 어, 누가? 찾을 사람 없는데. "
" 이름은 모르겠고, 되게 잘생겼었어요! 모자 쓰고 있어서 얼굴은 자세히 못 봤는데 …. "
" … 아, 그래? "
" 저번에 오신 분이랑 되게 닮았어요. 저번에 오신 분 보다는 싸늘한 인상이었던 것 같은데. "
" … 뭐? "
잠깐 멈춰 선 내 옆에서 쉴 새 없이 은아가 조잘거리며 말을 해왔다. 뒤에 몇 마디 말을 더 했었던 것 같은데, 내 귓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저번에 왔던 사람과 닮았다는 것과, 그보다 더 싸늘한 인상이었다는 말만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은 느낌. 알 수 없는 싸늘한 느낌이 몸을 휘감았다가 지나간다. 날 찾았다던 사람은 너인 것이 분명했다. 순간적으로 아까 나와 부딪혔던 남자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내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에, 불안한 직감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멍하니 서 있는 내 귓가에, 은아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찬찬히 흩어졌다.
" 생각해보니까, 아까 누구한테 전화왔던 것 같은데. 전화한 사람이 …, 김태형이라고 불렀어요. "
보이지 않는 손은 내 목을 서서히 죄이고 있었다.
네가 날 서서히 죽이고 있다는 것을,
넌 아마 모르겠지.
/
공 백이에용 ((ෆ ͒•∘̬• ͒)◞
쓰던 게 갑자기 다 날아가버린 탓에 늦게 오게 되었습니다 ㅠㅠ
죄송해요 독자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제 마음 알 거라 믿어요 라뷰 ε=(。♡ˇд ˇ♡。)
독방에서 추천해주시는 거 간혹 보았는데 너무 감사드리고
초록글 올려주시는 것도 매번 감사드려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푸른 밤을 걷다 암호닉은 그냥 최근화에 써 주시면 됩니다.
사랑해욥 !
+) 실수로 삭제를 눌러버렸읍니다... 저를 매우 치세요...
어제 올렸던 거 약간 부분부분 수정했어요 참고해주세요
암호닉 신청하신 분들 중에서 댓글 자주 남겨주신 분만 메일링으로 텍파 보내드려요 !
공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 그리고 구독료를 .. 설정해야 할까요 ㅠㅠ 고민중입니당.
♥ 암호닉 ♥ |
꾹화 / 초록보구 / ihm / 빅닉태 / 자두파이 / 탄루살이 / 태꼬 / 백공 / 호시기호시기 / 히히 하나의 방탄 / 꾹꾹 / 월하 / 율예 / 1031 / 1104 / 짐느러미 / 땅위 / 봉석김 / 이상해씨 / 파괴몬스터 태형아 / 포뇨 / 마리 / 요로시꾹 / 망개찜니 / 멍뭉망뭉잉 / 김탱글 / 양솜이 / 침침빛 / 도라지렁이 거적대기 / 김태형 / 꾸루 / 쌀떡밀떡 / 쭈글이 / 모찌섹시 / 뀨태형부인뀨 / 핑쿠릿 / 비크 / 찡긋 / 예희 / BBD / ㄱㅎㅅ / 11000110 / 블망 / taekook / 려 / 레몬사탕 / 망개꽃 / 에떼뽀 졔 / 캠프파이어 / 목련 / 데자와카와 / 프루티 / 우유한잔 / ㅇㄱㅅㅈ / 탄둥이 / 꽃송이가 빵떠기 / 몬모니 / 바이올렛 / 문라이트 / 렬루 / 밤밤 / 거창 / 울샴푸 / 뉸기찌 / 꾸루 / 이월 / 목소리 / 슈가나라 / 양팡 / 밍밍 / 0207 / 코카콜라 / 새벽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