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누군가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했던가. 그 이론을 증명시키는 대표적인 예로 김종인이 있다. 종인과 아주 어릴 적 꼬꼬마 시절부터 함께해온 백현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기가 센 첫째 누나와 둘째 누나, 논리력이 진중권 교수 못지않은 셋째 누나, 온순한 막내 누나까지. 그야 말로 누나 밭에서 자란 종인은, 한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제각각인 누나들에게 사랑을 듬뿍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 덕에 키도 훤칠하고 까망까망하고 누가 봐도 남자답게 생긴 종인의 성격은 외모와 다르게 온순하다 못해 호구에 가까워져갔고 누나들은 그런 종인을 똑 부러지게 가르치기는커녕 집착과 과보호로 종인의 사리분별력을 0으로 뚝 떨어뜨려버렸다. 정말 눈물 나는 막내사랑이 아닌가.
아무튼, 그렇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온순하기 그지없는 순두부 종인이 저와 같이 불편하단 기색을 팍팍 뿜고 있었다. 얼굴에 나 불편해요. 라고 써놓은 마냥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종인은 보기 매우 많이 드물었다. 순둥이 종인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원인은 종인의 바로 옆에서 턱을 괸 채로 부담스럽게 삼십분 동안 밥을 먹고 있는 종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찬열이렸다.
“저기, 밥 안 드세요?”
참다못한 백현이 퍽퍽한 흰 쌀밥을 거칠게 씹어 넘기며 물었다. 하지만 종인 보기에 바쁜 찬열은 백현의 목소리를 들을 리 만무했다. 자신의 말이 씹힌게 분해 더 격하게 밥을 씹던 백현은 상황이 왜 이렇게 거지같이 됐는지 한 시간 전의 자신의 선택에 자신을 원망하고 책망했다. 내가 왜! 미쳤지, 내가! 물을 들이키는 백현은 속이 시원해지긴 커녕 기름을 부운 냥 더 활활 타올랐다.
6
한 시간 전, 종인과 백현은 같은 대학교지만 서로 다른 시간표라 점심시간이 돼서야 만날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표정이 구린 종인을 보며 무슨 일 있냐고 물으려 했지만, 종인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왠 키 큰 남자에 의해 백현의 입이 꾹 막혔다.
“밥 먹으러 가자! 옆엔 친구?”
밝게 웃으며 묻는 반듯한 인상의 남자를 죽 스캔한 백현은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걸 판별하고 따라 웃으며 말했다. 네 친구 맞는데, 누구세요? 아까 전에 종인이랑 친구 된 박찬열입니다. 그 말에 백현은 호구 김종인이 벌써 친구를 사겼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저, 친구가 불편해 할테니까 밥은 나중에…. 종인이 쭈뼛거리며 말하자 백현은 강력히 부인하며 아니야, 난 괜찮아! 밥을 같이 먹어야 빨리 친해지지. 라며 한 시간 후 후회할 망언을 내뱉었다. 급격히 어두워져가는 종인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인의 등짝을 찰지게 때린 백현은 짜식, 잘했다. 라며 찬열이 묻지도 않았는데 종인의 신상을 폭풍으로 털어주었다. 물론 반 이상이 이미 찬열이 강제로 한 호구조사에 속해있었지만 찬열은 처음 듣는 다는 듯 신선한 반응과 리액션을 해주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아직도 종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찬열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리자 잔뜩 인상을 쓰며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우, 우와 최신형 스마트폰! 아직도 폴더 폰을 쓰는 종인은 잠깐 찬열의 부담감을 잊고 신기한 듯 핸드폰을 쳐다봤다. 인상을 찌푸린 찬열은 발신자를 확인하자 더더욱 인상을 썼다가 종인을 봤다. 자신의 핸드폰을 신기하게 내려다보는 종인이 귀여워서 찌푸린 미간을 자연스럽게 풀었다.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네, 얼마든지 가셔도 되요.”
순간적으로 본심이 갑툭튀한 종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종인의 귀여움에 푹 빠진 찬열은 아랑곳 않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럴 리는 없지만 찬열은 아마 종인이 쌍욕을 해도 뇌에서 자체 필터링이 되어 애교로 듣지 않을까. 상상한 백현은 팔에 소름이 돋쳤다. 완전 소오름.
“저거 뭐야.”
으응? 이미 인간다운 호칭은 버려버린 백현이 찬열이 이 곳을 벗어나자마자 다급히 물었다. 저런 거랑 어떻게 친구가 됐냐고! 몸을 종인 쪽으로 바짝 당겨오며 재촉하며 묻는 백현에게 종인은 제 1 강의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술술 불었다. 물론 전지적 종인시점으로. 종인의 말만 들으면 찬열은 별탈없는 착하고 오지랖 넓은 사람이지만 종인의 성격을 감안하고 전지적 백현시점으로 자체 필터링해 들은 백현은,
“미친놈.”
걸걸하게 욕을 뱉어줬다. 이건 아무리 들어도 찬열이 종인에게 호감이 있단 소리 아닌가. 그것도 불순한 호감! 물론 저 호구는 눈치 못했지만. 삼대 지랄견을 쏙 빼닮은 여동생이 셋이나 있는 백현은 눈치를 밥을 먹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터득해 눈치 백단을 넘어서 눈치 마스터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백현이 아니더라도 삼십분 동안 뚫어져라 종인을 보는 찬열을 보면 누구든 감을 잡지 않겠는가. 박찬열이 종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물론 김종인 저 호구 빼고.
그 시간 찬열은 준면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학교에 잘 붙어있나 확인하려 건 전화였지만 준면은 찬열에게 주객전도되어 뜬금없이 이름 모를 그녀의 예찬론을 듣고 있었다. 진짜 내 스타일이야! 완전 귀여워! 사람은 자신과 반대인 사람에게 끌린다 했던가. 찬열은 자신과 반대인 조그맣고 귀엽고 밝은 사람을 좋아했다. 대학교는 이제 막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들로 한창 풋풋할 시즌이었고, 찬열에게 있어서 대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성지가 아니라 연애의 성지가 될 터였다. 내가 왜 그걸 생각 못했지! 준면은 한동안 자신의 머리를 쥐며 자책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찬열의 그녀 예찬론 이였다. 하는 짓 하나하나 진짜 귀여워.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엽다는 말을 뱉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래그래, 집에서 마저 얘기하자. 대충 전화를 끊고 준면은 책상 위로 엎드렸다. 밖에서 여자놀음 하고 다니 길래 대학에 구겨 넣더니 이번엔 안에서…. 이젠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한숨을 쉬는 준면은 아직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찬열이 입이 닳도록 귀여움을 연발하며 예찬론을 펼친 그녀는,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는 것을.
7
다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온 찬열을 보자 언제 욕했었냐는 듯 입을 싹 씻은 백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우리 밥 다 먹었어, 먼저 갈게! 종인과 종인의 팔을 잡아끌고 빠르게 식당 밖으로 나가는 백현을 보던 찬열이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단 둘이 얘기하고 싶었는데…. 아쉬워하는 찬열은 갑자기 등에 닿는 손길에 뒤를 돌았다. 그 곳엔 종인이 서있었다. 저기 이거…
“제 밥값이요.”
찬열의 손에 오천원짜리 지폐를 두 장 쥐어준 종인은 제 할 일은 끝났다는 듯이 뒤를 돌았다. 찬열은 식당 밖으로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제 손에 쥐어진 지폐를 내려다 봤다. 그리고 곧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격렬하게 웃어댔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한참을 크게 웃던 찬열은 직원이 말릴 때까지 끅끅 거리며 웃었다. 손에 쥔 지폐 사이에 갈색 캬라멜이 섞여있었다.
진짜 귀엽다. 찬열은 하루 새에 종인에게 완전히 푹, 빠져있었다.
박찬열 쉽사빠 돋네요 ㅇ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거같아 안타깝지만 빠른 전개를 위해 는 무슨 제가 필력이 딸려서;; 땀땀;; 재밌게 쓰고 싶었는데 재미없는거같아...됴륵됴르르..쿠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