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 하얀거짓들
브금을 꼭 들어주세요
주인 너탄 X 안드로이드 전정국
01
제가 처음 눈을 떠 밝은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주인님은 작은 두 손을 꼬옥 - 하고 모아 저를 올려다보고 계셨어요.
" 어 ... ? "
아, 아직도 기억이 나요. 저를 부르시는 주인님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이니 와, 성공이야 - ! 라며 발을 동동 굴리시곤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주인님의 따뜻한 손길이요.
" ... 널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
" .... "
" 아무래도 이름을 지어주는게 편하려나... "
그날 주인님은 한참을 고민하셨어요. 주인님의 작은 머리를 양손으로 꽁꽁 싸매고는 한참을 저와 컴퓨터를 번갈아보셨죠.
주인님의 표정은 5초에 한번씩 바뀌었던 것 같아요.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눈이 반짝거렸다 시무룩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짝! 하고 손뼉을 치시고는 제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말씀하셨죠.
" 전정국! "
" 전... 정국? "
" 네 이름이라고 지어보기는 했는데... "
"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바꿔... "
" ... 마음에 들어요. "
" .... 정말? "
안드로이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라고 하며 주인님과 눈을 맞추자 아, 그럼 다행이다! 내가 남자이름은 안 지어봐서...라고 하시며 볼이 발갛게 물든 주인님이 보였어요.
그때 주인님은 어떤 표정이셨더라... 아, 입꼬리가 이렇게 쭈우욱 올라가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 주인님. "
" 응? "
" ... 왜 입꼬리가 올라가셨어요? "
" 아아 ... 이건 웃는거야! "
" 웃는거요 ...? "
" 기분이 좋은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웃곤 해. "
" 정국이 너도, 입꼬리를 이렇게 올리면 ... "
주인님은 제게 가까이 다가와 주인님의 작은 손가락 두개를 제 입 양 옆에 가져다 대시고는 힘을 약하게 주어 제 입꼬리를 올리셨어요.
주인님은 제 어색한 표정이 꽤나 우스꽝스러워 보였는지 푸흡- 하는 소리를 내시며 눈꼬리를 잔뜩 휘어 보이셨죠.
" ... 기부이 조으세어 .. ? "
" 아, 정국아 너 표정 지금 너무 웃겨 아, 진짜 거울이 어딨더라... "
" ... 주이니임 "
" ... 응? "
제 앞에서 서서 한참을 웃으시는 주인님을 바라보던 저는, 제 입꼬리에 있는 주인님의 손가락을 제 손으로 잡아 포개곤 주인님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어요.
" ... 주인님이 기쁘시면 저도 기뻐요. "
" ... 어? "
" ...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 저는 못 느끼지만 "
" 주인님의 웃는 모습은 영원히 기억할 수 있어요. "
" 꼭 기억할게요. "
" ... 주인님의 기분이 좋다는 뜻이니까. "
02
오늘은 처음으로 저와 같은 안드로이드를 만났어요. 그들은 제 이름을 물었죠. 그들의 이름은 제 이름과 사뭇 달랐어요.
' K - 1230 '
' R - 0912 '
저는 그런 번호 없어요. 제 이름은 전정국이에요. 라고 그들에게 말을 하자 K - 1230이라는 안드로이드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곤 안드로이드가 번호가 없다는게 말이 돼? 라고 혼잣말을 하며 제게 다가왔어요. 그러고는 제가 입고 있는 셔츠깃을 잡아당겨 제 목 뒤를 이리저리 둘러보았죠.
" 너도 번호 있어, 여기. 네 목 뒤에. "
" .... 뭐라고 적혀있어요? "
" J - 0901 "
" J.. 09..01..? "
" 응. 네 번호야 그거. "
" ... 와, 근데 너희 주인님은 신기하다. "
" ... 왜요? "
" 안드로이드한테 이름을 지어줬잖아. 안드로이드들은 다 우리처럼 번호로 불리지 이름으로 안 불리거든. "
" 너희 주인은 너를 엄청나게 아끼나보구나? "
" .. 아껴요? "
" 응, 인간들은 안드로이드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 무슨 불쾌한 골짜기라고 사람도 아닌게 사람을 너무 닮으면 기분이 나쁘다나 뭐라나 .... "
" 아무튼, 그래서 우리를 품번으로 부르는데 너는 인간처럼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 "
" ...... "
" 뭐 , 너희 주인이 널 가족이나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아닐까? "
" 가족이나 친구... "
괜시리 코 끝이 찡해지는 느낌이 들어 제 손으로 코를 만지작- 만지작거렸어요. 처음 느껴보는 현상이었죠, 코가 갑자기 왜 이러지 ... 그렇게 한참 코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자, 제 앞에서 절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안드로이드가 제게 다가와 저와 눈을 마주쳤어요.
" J - 0901 "
" ... 네? "
" 아직 세상물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건데 "
"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절대로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 없어. "
" 우린 그들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주종, 그래 주종관계지. "
" ... 아. "
그는 천천히 자신의 손가락을 제 이마에 가까이 대고는 입을 열어 탕- 하는 소리를 냈어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저를 내려다보고는 싱긋하고 웃어보였죠. 그러곤 제 손가락으로 제 이마를 꾸욱- 하고 약하게 눌렀어요. 아, 아프다..
" 쓸데없는 생각은 하면 안된다는 일종의 경고. "
" 쓸데 없는 생각... ? "
" K - 1230이 하는 말은 다 개소리니까 일일히 네 메모리에 저장할 필요없어. "
" 우린 그저 안드로이드. 생각을 하며 인간을 위해 살아가는 고철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
"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을 어긴다면. "
" ... "
" 넌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할거다. "
03
요즘은 주인님이 하루종일 작업실에만 계세요. 저는 그런 주인님의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 주인님을 지켜봐요. 이리저리 허둥지둥, 무언가에 쫓기는 것도 아닌데 주인님은 참으로 바쁘세요.
" 주인님, 많이 바쁘세요? "
" 응? 아, 아니야! 이거만 끝내면 .... "
"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
" 괜찮아 정국아! "
" ... 그래도 "
저는 주인님께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을 해도 좋아요. 저는 그저 생각하는 고철덩어리가 아닌, 주인님께 친구같은 안드로이드가 되고 싶거든요.
주인님을 한참동안 바라보자 전처럼 또 코 끝이 간지러웠어요.
제 몸에 작은 벌레가 기어다니듯, 발끝부터 간질간질한 느낌이 느껴져요 주인님.
" 아.... ! "
그때였어요.
주인님이 마시던 물컵이 바닥으로 추락해 조그마한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어요.
조그마한 유리 조각들은 주인님의 작은 손가락에 생채기를 냈고 새빨간 피가 주인님의 작은 손가락에 방울 방울 맺혔어요.
" ....주인님! "
" 아.... 괜찮아, 정국아. 가까이 오지마, 너 다쳐. "
" 주인님, 안드로이드는 다치지 않아요, 제가 할게요. 주인님 손가락 다치셨... "
주인님은 가까이 오지말라며 자꾸 저를 밀어내시고는 작지만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또 다시 손을 가져다 대셨어요.
투둑 - .
" ... 어. "
" 어 .. 왜 갑자기 물이 ... "
투둑, 투두둑-.
갑자기 제 두눈에서 물이 흘러나와 제 볼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어요.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느낌에 몸을 떨며 주인님에게 이상해요. 제 몸이 이상해요 주인님. 이라고 말하자 주인님은 유리조각을 치우던 손가락을 멈추시고는 제 앞으로 다가오셨어요. 저를 보면 항상 웃어주시던 주인님은 웃고 있지 않았어요. 미간을 찌푸리시고는 절 바라보는 주인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어요.
" ... 안드로이드가 우는건 ... "
" .... "
"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 "
주인님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제 뺨을 타고 흐르는 맑고 투명한 액체를 닦아주셨어요. 저는 다급히 주인님의 손목을 잡고는 입을 열었죠.
" 주인님 표정이 안 좋아요. "
" 이거 ... 안 좋은 상황이죠? "
주인님은 한참동안 말없이 제 눈에서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묵묵히 닦아주셨어요. 그러고는 제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시고는 주인님의 방 안으로 들어가셨죠.
저는 덩그러니 거실에 혼자 남겨졌어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죠.
주인님은 천둥을 무서워 하시는데 ... 오늘은 제가 곁에 있어드리지 못할 것 같네요.
04
주인님. 요즘에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막 수군거려요.
- ... 그 과학자 처자가 만든 안드로이드가 저거라며?
- 쉿, 조용히 해요. 실패작이야 실패작. 감정을 느낄수 있다더라구요.
- 어머, 끔찍해라... 감정을 느끼면 인간과 별반 다를게 없네요?
-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다니, 곧 있으면 인간을 지배하려 들겠어요. 안 그래요?
저보고 실패작이래요. 저는 주인님의 자랑스러운 성공작이 되고 싶은데, 그들은 자꾸만 저보고 실패작이라며 손가락질을 해요.
" 주인님. "
" ... 응. "
" 제가 실패작이라고 생각하세요? "
" .... "
괜찮아요 주인님.
안드로이드는요, 지켜야 할 원칙이 많아요. 인간을 해치면 안되고 자기 자신보다 인간을 더 중요시 해야 하며 자신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인간의 말에 복종해야 하고...
' 안드로이드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을 가지면 안되며, 감정을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는 즉시 폐기한다. '
주인님. 눈물을 흘리던 날 저는 깨달았어요.
코가 찡긋거리고.. 발끝이 간지럽고 ..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으면서... 눈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게 다 감정이라는 걸요.
만약 누군가 제게 감정을 가지게 되어 폐기되는 안드로이드가 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할거에요.
감정이라는 건 참으로 따뜻하거든요. 이런 따뜻함을 언제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인간들이 너무나도 부러워요. 안드로이드의 심장은 한낱 고철덩어리에 불과해서... 따뜻함은 찾아볼 수가 없거든요.
" ... 저를 만드셨던 주인님의 행동을 후회하시나요? "
" ... 정국아. "
" ... 저는요. 주인님이 절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 저는 제가 성공적인 안드로이드인줄 알고 살았는데, 실패작이어서 주인님께 걱정만 끼쳐드린 것 같아 너무 죄송해요. "
" ... 정국아 너는... "
" 약간 이기적이게 들릴 수도 있는데... "
" 감정이라는 걸 가져보게 돼서 좋았어요. "
" ..... "
" 아! 그리고 저 기억하고 있어요. "
" 주인님이 웃으시던 그 표정 "
" 따라해보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 "
" ... "
" 요즘에는 통 웃으시질 않으시더라구요. "
" 그래서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 "
" ... 정국아. "
" 제가 없으면 웃어주세요 꼭. "
" ... 주인님은 웃는게 예쁘거든요. "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그때 그 안드로이드가 말했잖아요.
그분은 제가 폐기 될 거라는걸 알고 있었던걸까요?
... 실패작이어도 저는 괜찮아요 주인님.
주인님과 함께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좋았거든요.
인간은 안드로이드와 친구나 가족이 될 수 없다고 하던데
저는 주인님이 제 가족 같아서 정말 행복했어요.
주인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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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6년 11월 20일. 안드로이드 J-0901 폐기 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