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26
1교시 종이 치자마자 난 전정국의 반으로 달려갔고 전정국의 팔목을 붙잡고 보건실로 끌고 갔다.
난 도착하자마자 전정국을 침대에 앉힌 뒤, 침대를 가릴 수 있는 커튼을 모조리 쳐버렸다.
"벗어."
"뭐?"
"위에 옷 벗으라고."
"미쳤냐 학교에서까지 이래?"
"아니!! 나 땜에 멍든 곳 약발라야지!"
내가 보건선생님께 미리 받아둔 약을 꺼내보이자
전정국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셔츠를 들어올려 허리에 있는 멍을 보여주었다.
나는 한 쪽 무릎을 꿇어 전정국의 허리에 눈을 맞춘 뒤에
두 개의 손가락으로 약을 살짝 떠서 전정국의 허리에 살살 문질렀다.
새하얀 피부에 새파란 멍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멍의 원인이 나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커져만가 괜히 눈물이 나올것같았다.
"너 지금 내 허리 만지면서 느끼고 있지?"
"야!! 내가 변태인줄만 알아?"
"변태 맞잖아."
나는 피식 웃는 전정국을 한 번 째려보고 다시 한 번 약을 떠서 전정국의 허리에 문질렀다.
그제야 얇은 허리 위에 단단한 복근, 그 와중에 부드러운 전정국의 살결이 느껴졌다.
괜히 내가 변태처럼 느껴져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얼굴 빨개지는 거 봐라. 진짜 변태라니깐?"
"아니! 너가 그렇게 말하니깐 그렇지!!
그리고 나 이제 너한테 자자고 안조를거야."
"왜?"
"깨달았어!
내가 매력이 없는게 아니라, 니가 참을 수 있을 정도로 날 사랑하는 거라고!"
내가 당당하게 웃으며 말하자
전정국이 '그걸 이제야 알았다고?' 하며 푸흐- 하고 웃어보였다.
나는 그 예쁜 웃음에 기분이 좋아져 벌떡 일어나 전정국의 허리를 끌어안았고,
전정국은 멍든 부위를 건들면 아프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날 감싸안아주었다.
보건실로 불어온 찬 바람이 하얀커텐을 살랑거리게 만든 뒤 우리 둘에게 닿았지만
꼭 끌어안은 우리 둘의 따듯함은 방해할 수 없었다.
---
그날 밤.
나와 전정국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함께 누워있다.
매일 함께 자던 방, 함께 누워있는 침대, 꼭 잡은 두 손.
단 한가지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얘들아 이렇게 다같이 누워있으니 옛날 생각나지 않니?"
우리의 침대 아래 이불을 깔고 누워있는 김석진이 있다는 것이다.
"정국아, 제수씨. 그거 알아? 내가 너희를 참 많이 좋아한단다"
"그만 쫑알거리고 그냥 자라."
"응... 알았어...."
야자가 끝나고 돌아온 10시.
당연히 돌아갔을 줄 알았던 김석진은 여전히 우리 집에 남아있었다.
딱 하루만 더 자겠다고 징징거리는 김석진을 우리는 결국 이기지 못했다.
이번에도 전정국이 작은방에서 함께 자주겠다고 했지만,
자기 때문에 우리 둘이 떨어져서 자는 게 너무 미안하다고 하더니, 우리 침대 아래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이렇게 바로 아래에 있으니 전정국과 손잡는 거 이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나는 아쉬운대로 전정국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았고,
김석진의 코고는 소리에 화를 꾹꾹 눌러참으며
딱 하루만 더 참자. 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야자가 끝난 10시.
전정국과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와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집 문을 열었다.
"제수씨!! 정국아!! 학교 잘 다녀왔냐?!"
"왜 또 안갔어?!"
"아니... 내가 너희한테 너무 고마워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정말 집안일만하고 딱 나가려고 했지!!
근데 하다보니 벌써 밤이 되어버렸지 뭐니?"
"그럼 이제 다했으면 나가면 되겠네."
"아니!! 내가 집안일을 이렇게 다 해놨는데?? 이 밤에 쫓아내겠다고?? 이거 너무 매정한거아니야?!"
"제발... 나가...."
1시간 뒤.
"얘들아, 잘자!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 둘 중에 김석진 특유의 찡찡거림을 이겨낼 사람은 없는가보다.
어릴 때도 항상 이런식이었다.
누가 들어도 억지이고, 말도 안되는데 항상 김석진의 뜻대로 일이 이루어졌다.
그 김석진의 행동들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나와 전정국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19살이 되고, 김석진은 벌써 24살인데 변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김석진이 평생 이곳에 살게되는 건 아니겠지? 라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날 밤 내 꿈에서는 백발이 된 김석진이 '제수씨 밥줘~' 하고 웃고있었고,
나는 끔찍한 악몽에 벌떡 눈을 뜨고 일어났다.
----
"안돼."
"왜 안돼?"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
"왜 안되냐고 묻잖아."
"얘들아.... 싸우디마..."
수능 D-1 수요일
수능 전날이라 야자가 없어 일찍 하교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손 잡고 알콩달콩 집에 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살벌하게 바라보고 있다.
"박지민 도시락을 왜 니가 싸?"
"지민이 부모님이 바쁘셔서 도시락을 못싸주신다잖아!"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맞아 탄소야. 그래도 다른 남자 도시락을 너가 왜싸..."
"지민이는 나한테 정말 소중한 친구잖아!
지민이한테 그동안 도움받기만했는데, 정말 중요한 날 도시락하나 싸주는 게 그렇게 안되는 일이야?"
"흠... 소중한 친구라면 도시락 정도는 괜찮은 것 같기도..."
내 말에 전정국은 뒤돌아 한숨을 하- 하고 쉬다가
무언가 말할까말까 망설이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결심한 듯 또박또박 말했다.
"너는 한 번도 내 도시락 싸준 적 없잖아"
"..."
"너가 처음싸는 도시락을 왜 박지민이 먹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뭬야 전정국ㅋㅋㅋㅋ 그런 이유였어?ㅋㅋㅋㅋ 니가 애냐?ㅋㅋㅋㅋㅋ"
전정국은 옆에서 끅끅 거리며 웃어대는 김석진을 찌릿하고 째려봤다.
유치하지만 너무 귀여운 전정국의 투정에 나도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전정국은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전정국이 여전히 너무 귀여워서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않았다.
"전정국... 언제부터 이렇게 귀여웠어...?"
"사랑하면 원래 귀여워지는 고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계속 웃는 나와 김석진에 삐진 듯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전정국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 전정국의 손깍지를 꼭 잡고 전정국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추었다.
"그럼 너랑 나랑 같이 만들자!
그럼 내가 만든 도시락이 아니라, 우리 둘이 만든 도시락이잖아."
내가 혼자 만든 도시락은 다음에 꼬오옥 너한테 선물할게."
"..."
"지민이는 내가 힘들 때 고민도 들어주고,
지민이 덕분에 내가 너 사랑한다는 것도 깨달았는걸?
도시락 싸준다고 약속했으니깐 약속지키게해줘.
다음번엔 이런 일 있으면 꼭 너한테 물어보고 약속할게!"
"휴, 내가 널 어떻게 이기냐."
애교부리듯 그러면서도 어린아이를 달래듯 전정국의 눈을 맞추며 차근차근 말하자
전정국도 그제야 기분이 풀어진 듯 살짝 미소지었다.
항상 날 지켜주려 하며 성숙한 모습이었던 전정국의 이런 어린아이같은 모습도 새롭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는 있어?"
"응! 내가 많이 많이 사놨....."
냉장고를 활짝 열었지만 냉장고는 텅텅텅 비어있었다.
한 일주일 치 식사할 재료와 도시락 재료까지 내가 분명 사다놨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냉장고가 비어버릴 수 있을까?
그 범인을 한 번에 알아차린 나와 전정국은 동시에 범인을 째려보았다.
"미...미안...."
아오... 저 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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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도시락을 싸기 위해 겨우겨우 일어나 소파에 털썩 앉았는데
언제 일어난 건지 김석진도 소파에 앉아있었다.
잠이 덜깨서 멍- 해있는 김석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참 잘생겼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버님 참 잘 생겼네요."
"나도 알아"
갑작스레 손키스를 날리는 김석진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가만히 있으면 훨씬 잘생겼을텐데'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한 뒤 어젯 밤 전정국이 사온 야채들을 씻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누군가 내 허리를 뒤에서 감싸 안아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고
이제 막 씻고 나온 듯 풍겨오는 향긋하고도 익숙한 샴푸냄새에 나는 바로 전정국임을 알아챘다.
"여보, 잘잤어요?"
잠에서 덜깬 듯 살짝 잠긴 목소리이지만
여전히 달달한 전정국의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려퍼지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대답없이 물을 끄고 뒤돌아 전정국 입술에 뽀뽀를 쪽- 해주자 전정국도 베시시 웃었다.
나는 옆에 걸어놓았던 핑크색 앞치마를 전정국의 목에 걸어 입혀주었다.
큰 덩치에 핑크색 앞치마가 어색하면서도 너무 귀여워서 나는 귀여워!! 하며 전정국의 엉덩이를 토닥여주었다.
"부끄럽게 자꾸 귀엽다고 할래?"
"김석진이 사랑하면 귀여워진다고 했잖아. 진짜인가봐. 요새 전정국 진짜 귀여워"
"너가 더 귀엽거든?"
"너가 더 귀엽거든?!"
전정국이 장난으로 초크를 걸며 괴롭히는 시늉을 했고, 나도 키득거리며 같이 장난을 쳤다.
"아아 이러다 늦겠다! 요리 시작하자"
"나는 뭐하면 돼?"
"일단 식탁에 올려논 재료들 좀 여기로 다 갖고 와줘"
"네~ 여보~"
사랑스러운 '여보'라는 전정국의 호칭에 내가 미소짓고 있을 때
뒤에서 전정국의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재료가 왜이렇게 조금밖에 없지?"
"응? 그럴리가 없...."
",,,,"
"재료 먹지마!!!!!!!!!!!!! 이 김돼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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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아, 떨지말고!! 너 열심히 해왔으니깐 잘할거야!!"
"응, 고마워!"
새벽같이 집에서 나와 수능시험장 앞에서 지민이에게 도시락을 건넸다.
추워서 입김이 솔솔 나왔지만, 지민이가 긴장을 많이 안한 듯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라"
"고맙다!"
"지민학생!!! 화이팅!!!!"
"누구...?"
"전정국사촌형... 아주버님이셔...^^"
"아... 탄소 아주버님도 감사합니다 하하"
지민이는 우리가 만든 도시락을 들고 학교 안으로 들어섰고, 우리는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다가
김석진이 너무 열정적으로 화이팅을 외치는 바람에 창피해서 재빨리 학교를 벗어났다.
"우리 짜장면 먹고 집에 들어가자!!!"
자기가 재료를 주워먹는 바람에 우리는 아침밥도 못먹고 나왔는데
싱글싱글 웃으며 짜장면을 먹고 집에 가자는 김석진에 나와 전정국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다행히 그 웃음에 또다른 의미가 숨어있다는 걸 김석진은 알아채지 못했다.
학교가 위치한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 큰 도로 앞에 도착하자
김석진은 짜장면을 먹을 생각에 싱글벙글하며 흥얼거렸다.
그 때 검은색 승용차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그 검은색 승용차에선 두 명의 덩치 큰 남자가 내렸고,
김석진의 싱글벙글하던 얼굴이 한 순간에 파랗게 변했고 바둥거리며 도망치려했지만
김석진은 덩치 큰 남자들에게 바로 붙잡히며 차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도련님, 가시죠. 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정국!!! 김탄소!!! 이 배신자들!!!"
김석진의 마지막 외침이 울려퍼진 뒤 차문이 쾅 닫히고 출발하였다.
어젯밤 고모님께 김석진이 여기있으니 잡아가라고 나와 전정국이 신고한 결과였다.
나와 전정국은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었다.
김석진아주버님 안녕히가세요!!♡
+
수능 점심시간.
지민은 탄소에게 건네받은 도시락을 펼쳤다.
야채죽과 계란말이 장조림 김치 과일 초콜렛.
누가봐도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도시락에 지민은 미소지었다.
지민이는 맛있게 밥을 먹은 뒤 도시락 맨 아래에 숨겨져 있던 쪽지들을 발견했다.
지민아 화이팅!!
너가 나한테 힘이 되어준 만큼 나도 너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어
밖에서 널 위해 계속 기도할게!
-탄소-
도시락 나랑 김탄소랑 같이 싼거다.
내가 처음만든 도시락을 너가 먹다니 영광인 줄 알아라.
그니깐 잘보고 와라.
-정국-
지민 학생!!
우리 제수씨한테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고 들었어요! 고마워요 ♥
내가 도시락에 손키스 해놓았으니, 그 손키스 기운 받고 잘봐요♥
-석진-
지민은 쪽지들을 보며 기분좋게 웃었고,
맛있는 도시락과 좋은 쪽지들 덕분에 지민이가 수능 대박난 건 안비밀!
*
♡나의 소중한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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