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 그 여름 (0805)
청춘의 결말 13
민현이를 만난 그날 이후로 평범했던 나의 일상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선배의 얼굴은 더욱 더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선배를 피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이나 보냈는지 모르겠다.
회식이 끝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선배가 집 앞에 서있었다.
한껏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 나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끝까지 이기적인 내가 너무 미웠다.
“... 일찍 다녀.”
“...”
뭐라 말을 해아 할지 모르겠다.
동창회 때 만난 남자가 전 남자친구라고 해야 할까.
그게 아니면 전 남자친구가 계속 생각나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하더라도 선배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았다.
“.. 나 다 알아.”
“...”
“네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선배는 술을 꽤나 많이 마신 듯 했다.
“그때 봤어. 네가 계속 부르던 그 사람.. 황민현.... 맞지?”
숨이 턱하고 막혔다.
선배가 다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가끔씩 술을 마시고 네 이름을 불렀나 보다.
내 무의식에도 황민현 네가 있었구나.
선배에게 너무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널 처음 만났을 때도, 한국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리고 우리가 사귀면서도..
항상 네 눈에는 슬픔이 있었어. 뭐가 널 그렇게 슬퍼했는지 알고 싶었는데... 네가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사람 맞지..?”
선배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아픔이 보여서. 그래서 더 슬펐다.
“미ㅇ..”
“미안하다는 말 할 거면 하지마... 나는 네가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 하는 게 제일 싫어.”
“...”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네 마음이 다른 사람한테 있다는 거. 가끔은 날 보면서 다른 사람 떠올렸던 거..
알면서도 그냥 무시했어. 그래도 좋았으니까.”
선배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여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배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선배...”
선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선배를 좋아했던 그 마음은 정말 진심이었어요.”
“...”
“고마워요. 힘들 때 옆에 있어줘서. 자신감 갖게 해줘서.”
“그 사람도 너 아직 좋아하는 것 같더라.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유리야.”
선배는 마지막까지도 나에게 한없이 다정했다.
선배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아니 내가 선배의 곁을 떠났다.
나는 나만 사랑했던 선배에게 끝까지 미안해야 했다.
그리고 진희의 결혼식 날, 민현이를 만났다.
식이 끝나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술.. 한 잔 하러 갈까?”
민현이가 나에게 물었다.
“...응”
그리고 난 대답했다.
사실 술을 마시러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술 없이는 민현이를 마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 민현이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
“...”
꽤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술만 마셨던 것 같다.
“언제 다시 돌아가..?”
용기 내 민현이에게 물었다.
“... 내일 바로 가야지.”
“...”
이럴 거면 왜 왔나 싶었다.
“근데 최대한 빨리 올 거야 다시.”
“...?”
무슨 말인가 싶어 민현이를 봤다.
“이제 한국 다시 돌아오려고.”
“그래도 되는 거야?”
“원래 더 빨리 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어졌어.”
나 기뻐해도 되는 거 맞겠지..?
숨길 수 없을 만큼 웃음이 났다.
“그래서 이번에 가면 다 정리하고 돌아올 거야.”
“...”
기다려달라고 해.
그렇게 해줘, 민현아.
“.. 그동안 나 기다려줄 수 있어?”
기다려달라는 말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그날 우리는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민현이가 돌아오는 날, 민현이 몰래 공항에 갔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너를 만나고 싶었다.
괜시리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보이지 않는 민현이의 모습에 걱정이 됐다.
혹시나 엇갈린 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됐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를 툭툭 치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면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네가 있었다.
벌써 스무 살이 되고도 7년이나 흘렀는데 너의 미소는 변함없이 예뻤다.
“어떻게 왔어?!”
“그냥. 너 데리러 왔지.”
그리고 양손 가득한 민현이의 짐을 차에 실었다.
아빠 차를 빌려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너 운전도 할 줄 알아?”
“당연하지. 나 돈도 벌어 이제.”
“우와... 대박이야.”
너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귀여웠다.
“어디로 가면 돼?”
“...”
민현이는 아직 집도 안 구했다고 했다.
조금은 멍청한 너의 모습도 여전했다.
“집 구할 동안만 우리집에 있어.”
“... 그래도 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와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한 게 얼마만인지.
너와 나눴던 대화들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너와 함께했던 나날들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무심히 흘러간 7년이라는 시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우리가 선택한 길이었고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나는 너였고 너는 나였다.
너와 내가 다시 마주한 그날은 그 어느 날보다 화창했다.
열여덟의 성유리로, 그리고 열여덟의 황민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세상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어설펐던 그 시절처럼 또 다시 너를 그냥 놓치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또 다시 하늘에게 맹세했다.
찬란했던 그 여름날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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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반가워요 독자님들ㅎㅎ 사실 오늘은 글 안 쓰려고 했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그리고 독자님들이 기다리실까봐 최대한 빨리 썼습니다ㅠㅠ 근데 약간 망글이 된 것 같아요... 맴이 너무 아픈 다녤과의 이별, 그리고 슬프지만 행복한 민현이와의 재회를 예쁘게 쓰고 싶었는데..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흑ㅜㅜ 그래도 최선을 다해 썼으니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과 함께 좋은 밤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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