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친구 정재현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썰 4
여주 재현한테 거절당하고 며칠을 앓아.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래 기다린 탓도 있지만 마음이 아파서가 제일 큰 이유겠지. 영호는 여주가 방에서 혼자 울고, 아파하는 거 보면서 이유라도 알고 싶어. 여주는 당연히 말 못하지. 자기가 서영호 동생이라서 마음을 거절당했는데, 어떻게 그걸 말할 수 있겠어. 그냥 기숙사 들어갈 생각에 벌써 외로운 거라고 애써 둘러 대고 말지.
여주 한참 아파하고 있을 때 재현이가 영호한테 만나서 술 한잔 하자고 해. 영호는 당연히 여주 간호해야 된다고 거절하지. 재현이 여주 감기 걱정 안 한 건 아닌데 진짜 아프다니까 너무 미안한 거야. 여주 아픈 건 제 탓이 크니까, 그리고 고백 거절한 거랑은 별개로 여주는 재현이한테 소중한 사람이니까. 참 좋은 오빠다.
재현이 여주가 좋아하는 간식이랑, 영호랑 마실 맥주 사서 여주 집 찾아가. 여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웃어야 하나, 그 날 일은 없던 걸로 하는 게 좋겠지? 이런 생각하면서 집 도착했는데 여주가 진짜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웃어주더라. “오빠 왔어?”하면서. 그 날 영호 재현이 맥주도 마시고, 여주 간호도 하고. 재현이는 익숙했던 편안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껴. 그게 왜인지 자신도 정확히는 모르지. 아마 여주한테 상처를 줘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재현이 집에 가기 전에 여주 방 잠깐 들러줘야지. 여주가 아무 일도 없는 척 한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잖아. 재현이는 원래의 좋았던 사이로 돌아가길 원해. 자기 마음의 죄책감을 덜어버리려는 거지. 여주 입장에서는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일 뿐이지만. 여주야. 하고 재현이 부르는데 여주 그냥 자는 척 하지. 눈물 날 것 같았거든. 근데 여주가 자는 척 하는 거 아니까 재현이가 그냥 말 이어가.
“너는 아직 어리고, 아직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 않아서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거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가면 오빠보다 훨씬 좋은 사람 많아. 장담할게. 너한테 상처주고 싶지 않아. 아프지 마. 우리 여주 아프면 오빠들 마음도 찢어진다?”
그 말 듣는 여주 마음은 정말 찢어지는 거지. 아, 내가 오빠한테 어렵게 털어 놓은 내 감정은 오빠한테는 그냥 어린 날의 착각 정도 구나. 시간 지나면 놀림거리가 되는 그런 얕은 감정일 뿐이구나. 감정 자체가 부정당한 것 같은 마음에 소리도 못 내고 우는데 재현 나가려고 부스럭 대는 소리 들려. 여주는 지금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 감정은 재현에게 영영 잊혀지겠지 하는 생각만 들어.
“오빠. 내 마음 착각도 아니고 어린 날의 흔한 동경도 아니야. 오빠는 예전처럼 나한테 좋은 사람 해. 나도 이제 이기적으로 굴 거야. 계속 좋아할 거라는 뜻이야.”
이 말을 끝으로 둘은 만날 일이 없어. 재현은 자신을 향한 여주의 마음이 마냥 가볍지 만은 않다는 거 알게 되고, 여주에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여주가 고등학교 기숙사로 들어가는 날도 바쁘다고 가지 않아. 여주는 재현이가 왜 자기를 피하는지 아는데 그래도 서운해. 재현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뭐 어쩌겠어.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여주가 재현이랑 볼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연락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재현 영호가 중학생 여주 공부 도와줬던 거 기억나? 여주도 외고 입학할 만큼 똑똑한 학생이지만 이과 머리는 조금 부족했지. 영호랑 재현은 이과였으니까 공부하다가 안 풀리는 문제 있으면 핑계 삼아서 재현한테 전화도 하고, 카톡도 하고 그랬어. 여주 힘들다고 한숨 쉬면 기프티콘도 보내주고 좋은 글귀도 보내주면서 여전히 살뜰히 챙겨.
얼굴 안 본 지도 오래 됐고, 전화하거나 해도 예전만큼 설레지 않으니까 여주도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진짜인가 봐 하면서 허탈하게 웃고, 재현이는 그거 듣고 “거 봐, 내 말이 맞지?”한다. 여주 조금 씁쓸해도 예전만큼 슬프지도 않고 견딜만 해. 그래서 정말 괜찮은 거구나 하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시간 보내고 있을 때, 그러니까 여주가 18살이 됐을 때 재현 영호가 군대에 가. 영호한테 영장 나왔을 때도 슬프긴 했는데 재현이도 군대 간다고 하니까 진짜 슬픈 거지. 세 살 차이가 뭐라고 나이 차이 크게 실감하고. 펑펑 울면서 나는 재현이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억눌렀던 거구나. 내 진심이 주인에게 닿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아서, 스스로 무뎌진 척 했구나. 결국 버려질 것 같은 이 감정이 참 가엾구나 생각해.
말 안 했지만 여주 상당히 매력 있어. 친오빠 영호만 떠올려도 느낌 오잖아. 그래서 인기 많은데 여전히 재현이 좋기도 하고, 괜히 어장 친다는 말 듣기 싫어서 철벽치고 다니지. 웬만해선 여주한테 한 번 까이고 두 번 들이대는 사람 없었는데 2학년 3반 나재민은 좀 특이해. 여주 볼 때마다 끼부려. 그런 재민이 보면서 여주는 나도 재현이한테 저렇게 해야겠다 생각하고, 사실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성격 좋고, 성적 좋은 재민이를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여주는 재민이한테 끼부리기 배우는 재미로 학교 다녀. 여주 재민은 둘 도 없는 친구 되는 거야. 거의 서영호 정재현 급으로.
재민이는 끼부리고, 여주는 철벽 치는 썰은 다음에 풀고, 우리 여주 빨리 성인 만들어주자. 시간 또 빠르게 흘러서 여주 수능도 다 끝나고, 재현이, 영호 둘 다 제대했는데 여주는 아직 재현이 못 만났어. 재현이 제대하자마자 여행 갔거든. 아무튼 드디어 여주 졸업식 날이 됐어. 영호 아침부터 부지런 떨면서 꽃다발 사고, 여주 선물 챙기고 부모님 못 오시니까 학교 찾아가서 여주 사진 찍어주면서 눈물 훔치지. 진짜 사랑스럽다.
여주는 영호가 와줘서 너무 고맙고, 또 반가웠지만 내심 재현이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어. 그래서 영호 혼자 강당 들어와서 실망한 건 비밀. 여주 영호랑 사진 찍고, 나재민이랑 의미 없는 장난치고 있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한 포장지 내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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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는 몰랐는데 막상 올리려고 보니까 분량조절이 안 되는 느낌이네요ㅠㅠㅠ
글 재밌다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재현이가 어떤 마음으로 여주 찾아갔을까요?ㅎㅎㅎㅎㅎ
감상평이든, 재현 여주의 심리든 느낀 점 마구마구 써주세요!!
그리고 다들 일요일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