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친구 정재현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썰 8
어느 드라마나 그렇지만 늘 시련은 있는 법이잖아. 재현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났어. 그 때 재현이 나이가 열 셋. 아버지가 많이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그래서 재현의 집이 쫄딱 망했다고 어른들은 말했지. 달동네 쪽방에서 살아야 하는 비극까지는 아니었으니, 재현은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해. 그저 그 사기꾼 참 못된 사람이다 하지.
매일 같이 놀던 사촌형이 집에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사립학교에 더는 다닐 수 없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어. 중학교 입학을 앞 둔 어느 날 우연히 부모님의 대화를 듣게 돼. 당신이 큰형님한테 돈만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큰형님이 당신 뒤통수 칠 줄은 누가 알았겠냐며 화를 내는 어머니의 말이었어. 아, 그래서 사촌 형이 더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구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추웠던 열 네 살의 어느 겨울날, 재현은 믿음과 배신에 대한 감정을 느껴. 그리고는 다짐하지. 나는 사람들을 쉽게 믿지 않겠다고, 그리고 혹시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겠다고.
중학생이 된 재현의 일상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다가오는 아이들, 차가운 말로 제겐 우스운 호의를 거절하는 재현, 그리고 얼마 후면 들려오는 자신에 대한 험담들. 쟤 원래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사촌한테 사기당해서 쫄딱 망했대. 그래서 저렇게 싸가지가 없는 거래 하는 말들은 재현에게 상처를 주지 못했어. 그나마 열려있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을 뿐이었지.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원활한’ 교우 관계를 위해 사귄 친구들은 재현에게 다 겉치레에 불과했고.
무미건조하게 중학교를 마친 재현은 전혀 낯선 동네의 낯선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아. 그곳에서 영호를 만나게 돼. 영호는 재현과는 다르게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그런 성격. 먼저 다가가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재현에게는 먼저 손 내밀고 싶어. 재현에 대한 무성한 뒷얘기들을 몰랐던 건 아니었지만 간혹 보이는 재현의 반듯하고, 다정한 모습을 영호는 본 적이 있었거든.
재현의 옆에 먼저 앉은 것을 시작으로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기도 하고, 강제로 밥도 같이 먹고, 피곤하다는 재현을 보채서 같이 공도 차지. 처음에는 귀찮게 구는 영호가 짜증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는데 겉치레에 불과한 다른 애들이랑은 다르게 재현에게 진심도 곧 잘 털어놓고, 저에게 한결같이 대해주는 영호를 보면서 내가 참 좋은 친구를 만났구나 하고 마음을 열지.
둘은 또래 남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들을 같이 했어.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에는 오락실에 가서 게임도 하고, 주말에는 당일치기 여행도 다니면서 아름다운 남고생 로망 잘 보여 주는 거지. 영호는 평일 저녁시간만 되면 하고 있던 게임이 이기고 있어도 무조건 집에 들어가. 저녁은 꼭 동생이랑 같이 먹어야 한다면서. 영호한테 동생 있는 거 아는 재현은, 중학생인데 뭘 그렇게까지 챙기나하고 궁금해서 물어보지.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안 계신 날이 더 많았는데, 그래도 집에 오면 항상 우리 여주, 하시면서 동생을 먼저 찾는 거야. 그래서 어렸을 때는 여주가 엄청 미웠어. 학교가 일찍 끝나도 친구들이랑 논다고 집에 늦게 들어가고 그랬는데 하루는 집에 들어갔더니 부엌은 이미 난리가 났고, 여주가 울고 있더라. 놀라서 봤더니 팔이며 다리며 벌겋게 부어올라서는 오빠 왜 이제 왔어 하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해.”
“......”
“근데 여주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 알아?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집에 아무도 없잖아. 내가 늦게 들어갔으니까. 텅 빈 집에서 혼자 얼마나 심심했겠어.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라면 끓여 주면 매일 저랑 놀아줄 거라고 생각했대. 귀엽지. 근데 여섯 살짜리가 라면을 끓여나 봤겠냐. 혼자 이리저리 해보다가 결국 라면 쏟아서 다친 거지. 난 그 날 처음으로 여주한테 사랑을 느꼈어. 그동안 미워했던 마음이 다 사라지더라. 그냥 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주니까. 작고 어린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가엾어서 평생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너 그러다 여주 연애한다고 하면 우는 거 아니냐, 하고 장난으로 던진 재현의 말에 “여주 남자친구는 오래도록 곁을 지켜줄 사람이면 좋겠다. 보기에 좋고 예뻐서 하는 사랑 말고 진짜 진심이 담긴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하고 웃는 영호 보면서 재현은 여주를 잘 모르지만 여주가 사랑할 사람만큼은 좋은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 상처 받은 적도 없어서 상처를 주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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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의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재현이 왜 그렇게 여주를 밀어내기만 하는지...여주를 만난 이후의 감정들도 차차 풀어갈 예정입니다! 아마 다음 편에...ㅎㅎ
[암호닉]은 계속 신청 받고 있습니다! 마감이 따로 필요할까요?ㅎㅎㅎ 제 메모장에 차곡 차곡 정리해두고 기억하고 있어요!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빨간날 마무리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