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박] 연애전선 맑음
written by. 맥
역시 점심 먹고 옥상에 올라와 피는 담배가 제일 달다. 허세가 아니라, 식후땡이 평소에 피는 담배보다 더 맛좋은 이유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이다. 아, 옥상도 원래 학생들은 들어오지 못하지만 나는 이 고등학교 이사장의 외손자라서 괜찮다. 그리고 열쇠는 학생 중에서 나 말고 단 한 명이 더 가지고 있다.
5층으로 구성된 고등학교의 옥상은 그다지 높지 않아 밑을 내려다보면 학생 하나하나가 나름 잘 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동그랗고 깜찍한 고동색 머리통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로 가는 중인지 짧은 다리로 총총거리며 걷는데 졸라 씹어 먹고 싶다. 귀여운 머리통부터 야금야금. 나는 입술에 걸치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매연같은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시야를 가리는 회색 연기를 손으로 휙휙 휘저어 얼른 공기에 희석시켰다.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는 저 귀여운 머리통이 나를 보게 하려고 빽 소리를 쳤다.
"박 경!!"
박경뿐만 아니라 건물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학생들이 모두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무시하고 나는 경이에게 상큼하게 손 인사를 했다. 하마터면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들고 있는 손으로 인사를 건낼 뻔해서 또 담배 폈냐고 하는 경이의 귀여운 잔소리를 들을 뻔했다. 경이는 내가 제 이름을 크게 부른 게 쪽팔렸는지 재빨리 건물 안으로 도망갔다. 꼭 다람쥐 같다. 얼마 피지 못한 담배가 좀 아까웠지만 경이를 위해서라면, 뭐 이것쯤이야. 옥상 바닥으로 담배를 떨어트리고 발로 비벼 껐다. 곧 있으면 여기로 올라오겠지? 경이는 제가 준 열쇠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지훈아!"
존나 발음 씹덕 터진다, 진짜. 하이톤에 은근히 끝이 뭉개지는 것 같기도 하고 늘어지는 것 같기도 한 말투인 게 존나 귀엽다. 하긴 내 눈에 경이의 어디가 귀엽지 않고 씹덕 터지지 않을까. 내가 박경의 씹덕후 표지훈인데. 친구들한테 경이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팔불출이라고, 이제 그만 그 선배 얘기 좀 하라고 뒤통수를 얻어맞고 했다.
경이가 화사한 미소를 얼굴 만면에 띠고 나에게 다가왔다. 빨리 와요, 형.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 저보다 2살이나 더 많다는 건 신의 실수가 아니었나 싶다. 저보다 어렸으면 이미 홀랑 다 벗겨 먹고 물고 빨고 핥고 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을 절대 티 내지 않으며 지훈은 제 옆으로 와 옥상 안전대에 살짝 몸을 기대는 경이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쳐다봤다. 경이를 보는 지훈의 시선은 언제나 그런 종류였는데 경이는 매번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너 왜 반말하고 그래, 다른 애들 다 있는데."
"어? 나 형이고 했는데. 형이 못들은 거 아니에요?"
"진짜?"
"네, 형이 못들은 거였으면서 나 일부러 혼내려고 그런 거예요? 와, 실망이다. 선배."
"어? 아니야! 내가 무슨! 진짜 아니야, 내가 당황해서 못 들었나 봐……."
당황해서 금세 얼굴 빨개지는 거 봐. 저랑 섹스할 때도 저렇게 얼굴 빨개질까. 저 얼굴이 더 들뜨고 땀에도 젖고……하 시발. 지훈은 올라간 입술이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무슨 공자냐, 내가 왜 참아야 해. 불쑥 짜증이 솟아 지훈은 본능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담뱃갑을 매만졌다. 경이는 그새 운동장 저 너머에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바람에 의해 경이의 고동색 머리카락이 나른 나른하게 춤을 춘다. 제가 봤던 어떤 여신보다 예쁘고 난리다. 지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시는 것과 같이 지훈에게 경이는 연모의 대상이자 자위할 때 생각하는 사람으로, 경이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무려 3개월 동안이나 말이다. 원체 확 끓고 확 식는 성격이라 뭐하나 끈질기게 해내는 게 없어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 숱한 욕을 먹어왔던 지훈이었기에 지훈은 경이게 제 운명이라고 느꼈다. 제가 무려 3개월 동안 한 사람을 바라보며 짝사랑 중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3개월 동안 열심히 이 방법 저 방법 써가며 구애를 했건만 둘이는 고작 아직 썸타는 관계로 밖에 진전하지 못하였다. 얼른 저 귀요미와 녹아내릴 것 같은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며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싶은데 경이 선배는 제가 떡밥을 던지면 처음엔 떡밥을 무는 척하더니 이내 휙 피해버린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 확 고백을 해버리고 싶은데 웃기게도 흔한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이 속앓이 하는 것처럼 멀어지게 될까 봐 걱정이다. 한참 막무가내로 들이댔을 때 경이 선배가 딱 한 번 나를 불러서 따끔하게 충고한 적이 있는데 그 정색한 표정은 파장이 컸다. 시발. 근데 요즘은 해탈의 지경이라 기회만 된다면 그냥 고백해버릴 거라고, 이를 아득아득 갈고 있다.
"선배."
"응?"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키가 한참이나 더 큰 저를 올려다보는 경이의 얼굴에 지훈은 잠시 머리가 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경이가 지금처럼 눈을 크게 뜨고 살짝 입을 벌린 채로 저를 올려다 볼 때면 언제나 아랫도리에 엷은 열기가 몰려오곤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그 표정만 보면 꼴린다. 지훈은 볼 안쪽 살을 살짝 씹었다.
"아, 시발 존나 하고 싶네."
"엉? 뭐를?"
찰나에 지훈은 제가 할 말에 대해 경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리 생각해보았지만 말했지 않은가, 해탈의 경지라고. 그냥 물어봐 주니 답했다. 너무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
"섹스."
"……."
지훈은 뒤통수를 툭 치면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띄어진 경이의 맑은 두 눈과, 천천히 머리끝까지 빨개지는 경이의 얼굴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역시 놀리면 재깍재깍 반응하는 게 귀여워 죽겠다니까. 지훈은 작게 큭큭대며 웃었다. 경이는 뒤늦게 지훈이 저를 놀리는 것을 알았는지 허둥대다가 울상을 지었다. 축 처진 눈꼬리를 혀로 핥고 싶다.
"너 하늘같은 선배 놀리면 안 돼, 내가 너보다 2살이나 더 많은데. 계속 만만하게 볼래?"
"선배는 항상 뭣만 하면 나이 타령 하더라. 걱정마요, 누가 선배보고 2살이나 어린 애인 홀렸다고 욕 안 해."
"뭐?"
"아휴, 도대체 언제쯤……."
지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신발코로 옥상 바닥을 쿡쿡 찍어 눌렀다. 짜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행동에 경이는 괜히 찔려 헛기침을 하고는 지훈을 따라 저도 고개를 푹 숙였다.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경이는 제 두 손을 맞잡고 꼼지락거렸다. 아니, 내가……. 웅얼거리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훈은 얼른 고개를 들어 그런 경이의 동그란 뒤통수와 잔망 터지는 손가락질을 보고 간질간질한 온몸을 긁고 싶은 것을 간신히 꾹 참고 참았다. 계속 뭐라 알 수 없는 말로 웅얼거리던 경이는 너무 조용한 분위기에 고개를 들었다. 윽, 저를 보는 지훈의 눈빛에서 설탕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홍조증이 있는 사람마냥 경이는 또다시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팩 - 옆으로 돌렸다.
"지훈아, 네가 나 많이 아끼……는 건 아는데……."
"선배 키스 한 번만 하면 안 돼요?"
"어? 어??"
"키스 한 번만. 제발."
"무, 무슨 소리야! 정신 차려, 지훈아!"
"키스하기 되게 좋은 날씨죠, 그죠? 그니까 나랑 키스 한 번만 하자, 선배."
목소리는 애원하면서도 경이의 볼을 덥석 붙잡은 손은 막무가내다. 경이는 발버둥을 치며 지훈이를 애타게 불렀지만 이성의 끈이 끊길라 말라 하는 지훈에게 경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경이의 두툼한 입술만 보였다. 입술이 거의 맞닿으려고 할 때쯤 경이는 결국 지훈이의 정강이를 냅다 쳐버렸고 지훈은 악, 이라고 하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경이에게 떨어져 나갔다. 맞은 오른쪽 정강이를 붙잡고 통통 튀어대는 지훈을 버리고 경이는 쪼르륵 옥상에서 사라졌다. 지훈이 애타게 박경 선배! 를 외쳤지만 이번엔 지훈의 목소리가 경이는 들리지 않은 듯 했다.
§
야자를 하지 않는 경이와 지훈은 항상 하교를 같이 한다. 이것도 일방적으로 지훈이 경이를 졸졸 따라다닌 결과, 말없이 생긴 약속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훈은 몇 시간 전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은 채 그저 경이와 함께 하교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져 가벼운 발걸음으로 경이의 반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반 앞에서 어떤 여자 선배와 같이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이의 모습이 저 멀리에서 포착됐다. 뭐야, 저건. 바보처럼 헤헤 웃고 있던 지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 감히 누가 내 박경 선배랑 이야기를 하는 거야. 지훈은 쿵쾅거리는 성난 발걸음으로 경이에게 빠르게 다가가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둘의 사이에 섰다. 둘의 시선이 저에게 쏠렸다. 안 그래도 동굴 목소리인 지훈은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뭐해요, 선배."
여자 선배는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내일 보자고 경이에게 인사를 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내일 보자고? 지훈은 여자 선배에게 손 인사를 하는 경이의 어깨를 제 쪽으로 돌리고 도끼눈을 만들어 경이를 노려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당장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의미가 다분히 묻어나는 짙은 눈빛이었다. 경이는 하하, 만화에서나 나올 웃음소리를 내었다.
"아니, 그게……내일 유빈이랑 영화보기로 했거든."
"네? 왜요? 선배가 왜 유빈 선배랑? 선배 여자 친구 만들었어요?"
"아니 그냥, 유빈이가 나랑 보고 싶다고 해서……."
"저 유빈이라고 하는 여자 선배가 선배 꼬시려고 하는 거잖아요."
"응? 아니야. 그냥 영화같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하긴 제가 그렇게 티를 내고 마음을 은근슬쩍 고백했어도 못 알아 처먹던 경이 선배였으니 저렇게 둔할 만도 하지. 미쳤다고 여자가 먼저 같이 영화를 보자고 할까? 지훈은 헛웃음을 지으며 잡고 있던 경이의 어깨를 놓으며 어서 집이나 가자고 했다. 그리고 먼저 앞서 걷는데 경이는 잠시 그런 지훈의 듬직한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얼른 짧은 다리를 놀려 쫓아갔다.
"지훈아, 화났어?"
"네."
"왜에……."
"선배 내 기분 풀어주고 싶죠."
"응? 응, 당연하지."
"그럼 내일 그 선배 만나지 마요."
"어?"
"그 영화 나랑 보고 내일 나랑 맛있는 것도 먹고 스티커 사진도 찍고 그래요."
"그래도 유빈이랑 먼저 약속했는데……."
"나랑 노는 게 더 재밌을 거 아니에요. 당장 그 유빈 선배에게 못 간다고 연락해요."
"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선약부터 지켜야지."
"그럼 선배 집에 혼자 가."
경이는 신발을 신다 말고 지훈을 봤다. 사탕을 먹지 못해 잔뜩 심통 난 어린애와 흡사한 표정이다. 꼭 볼에 바람이 한껏 들어가 있는 거 같아 경이는 작게 웃으며 마저 신발을 다 신었다. 선배 지금 웃어요? 내가 얼마나 심각한데. 작게 가지돋친 말에 경이는 결국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지훈의 표정은 한껏 구겨졌고 결국 지훈은 경이에게 휙, 뒤돌아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경이는 쪼르르 지훈에게 다가가 지훈에게 백허그를 했다. 그리고 지훈은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이게 뭔가 싶어 머리를 굴리다가 경이가 저에게 빽허그 한 것을 깨닫고는 오 주여, 를 속으로 외치며 그대로 굳었다.
"지훈아 화 풀어, 유빈이랑 내가 무슨 사이도 아니고."
"무슨 사이 되려고 내일 가는 거잖아요, 이 바보같은 선배야."
"너 선배한테 계속 그럴래? 진짜……암튼 지훈아, 화 풀면 안 돼?"
"안 가기로 하면 풀게요."
지훈의 허리를 여전히 붙잡은 채로 경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제가 아끼는 지훈이 이렇게 가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냥 가지 말까? 그런데 안 가기엔 유빈 이에게 미안하고……. 경이가 지금 망설이는 것을 눈치챘는지 지훈은 얼른 선수를 쳤다.
"유빈 선배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요, 그니까 내일 나랑 더 재밌게 놀아."
"너 유빈이 번호 알아?"
"그건 선배가 알려주면 되고. 응? 가지 마요, 진짜."
하고 지훈은 뒤돌아 경을 껴안았다. 그래서 둘은 서로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지훈은 제 품에 쏙 맞는 경이의 사이즈에 감탄하고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보슬보슬한 경이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었다. 노을이 지는 오후에, 둘은 교문 앞에서 그렇게 꽉 빈틈없이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저희를 너무 쳐다보기에 지훈은 교문을 향해 등을 돌려 경이를 제 덩치 안으로 숨기고 경이를 뒤로 밀어 구석지로 향했다. 엎어지려고 하던 경이의 등을 꽉 부여잡고 지훈은 웃었다. 경이가 지훈의 등을 주먹을 쥔 채 콩콩 때렸다.
"지훈이 이제 손 놔. 숨 막히고 기분 이상해……."
"기분 이상해요?"
"응. 막 뭐라 해야 하지? 온몸이 간지럽다고 해야 하나."
하면서 경이는 작게 웃었다. 떨리는 어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게 천국을 살짝 맛보는 기분이었다. 사랑에 빠진 자만이 알 수 있는 경이롭고 황홀하며 달달해 죽어버릴 것 같은 기분. 나는 언제나 선배 보면 그런 느낌이었는데. 둘은 같이 웃었다.
"선배, 남녀가 관계 맺을 때 보통 분위기에 휩쓸려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거든요?"
"응."
"그럼 우리 지금 분위기 타니까 내가 또 말하는 건데."
"응."
"우리 연애할래요? 달콤하고 조금 오글거리고 몽글몽글한 연애 하자."
"……."
"좋죠? 응? 박경. 경아."
하고 지훈은 경이를 작게 좌우로 흔들었다. 설레서 사정없이 뛰는 경이의 심장처럼 정신없이 말이다. 경이는 손에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아 지훈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두 손바닥을 더 힘주어 꽉 마주 잡았다. 그리고 정말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이제껏 지훈이 이렇게 정식으로 고백하기를 기다려왔던 건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머릿속과 심장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지훈은 속으로 모든 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나이스를 외치며 지금 안 보면 미칠 것 같은 경이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경이가 제 어깨에 머리를 묻고 고개를 들지 않으려고 해서 지훈은 작게 웃었다. 부끄러워하기는. 으악, 귀여워! 지훈은 빨갛게 달아오른 경이의 귀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경이가 더 제 품에 파고들었다. 어이구, 내 애인. 지훈은 경이의 허리를 잡고 힘을 주어 위로 들어 올리더니 무릎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 일명 공주님 안기 식으로 눈 깜짝할 새 경이를 들었다. 살 좀 쪄야겠어. 매일 음식점에서 데이트해야지.
"뭐해! 으악, 지훈아!"
"나는 매일 선배 업고 다닐 수도 있어! 선배 사랑해요, 진짜!"
구석지에서 나와 경이를 안아 든 채 빠르게 하굣길을 내려가는 지훈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크게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드디어 표지훈의 3개월 짝사랑, 막을 내리고 경이와 알콩달콩 연애로 거듭나게 생겼다.
선배 왜 이제 내 고백받아줘요? 내가 3개월 동안 그렇게 대시했을 때는 계속 튕기더니.
응? 네가 언제 나한테 대시했어? 내가 항상 선배한테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했잖아요!
그거야 네가 맨날 나 놀리는 거 좋아하니까 장난치는 줄 알았지.
……어우, 진짜 선배처럼 눈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뭐, 날 좋아하는 줄 몰랐지 나는.
선배 맞아야겠다, 내 입술로.
윽, ……그런 오글거리는 말은 어디서 배웠어.
오글거린다면서 왜 얼굴 붉혀요. 맘에 드는구나, 이 멘트.
아, 몰라……. 창피하니까 저리 가.
선배 입술로 맞자니까.
창피해서 죽을 것 같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