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우현x김성규
김명수x이성열
이호원x장동우
이성종
뱀파이어 시티 04-3 [야동] BGM이 재생됩니다. |
이호원 x 장동우 뱀파이어 x 뱀파이어
정사 후 약을 먹인다고 해서 이전에 있었던 일을 동우가 기억해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던 제 잘못이었다. 눈을 감은 그대로 잠들어버린 동우의 뒤처리는 고스란히 호원의 몫으로 돌아왔다. 호원은 동우의 살갗에 너저분하게 달라붙은 정액들을 티슈로 닦아냈다. 팽개쳐진 정장바지를 주워들고선 누워있는 동우에게 입힌 후, 침대 끝에 걸터앉아 벌겋게 부어오른 동우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상황을 되짚어본다. 그러고 보니, 결국 호원에게는 저 혼자만 간직할 섹스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약은 제대로 넘어간 게 맞을까, 넘어가던 약이 어딘가에 멈춰서 내려가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 동우가 일어나면 물부터 챙겨 먹일 심산으로 숙직실 맞은편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온 호원이 의자를 침대 앞으로 끌고와 앉았다. 인기척에 정신이 드는 건지 그제서야 동우의 눈꺼풀이 스르르 올라갔다.
그런 동우를 보고 있자니 언제 그랬냐는 듯 호원의 입꼬리가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깼어요? 물 마셔요. 호원이 건넨 물 잔을 받아든 동우가 텁텁한 제 입안을 축였다. … 설마 나 여기서 잤어? 한껏 잠긴 목소리로 묻는 동우에게 호원은 여지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에 차고 있던 묵직한 메탈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에서 족히 한 시간은 있었어요. 자리 너무 오래 비우면 혼나니까 빨리 들어가서 일하자.”
입사할 적의 동우는 본인에게 이러한 증상이 있다는 것을 숨겼다. 회사 사람들은 동우가 그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엘리트인 것에 초점을 맞추었고 파트너인 호원도 이러한 동우의 증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온 것이다. 피냄새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는 그런 추악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기 전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리에서 도망쳐버리는.
이처럼 인간세상으로 방사된 뱀파이어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여러 불리한 상황들을 감수해야했다. 인간들과 어울려야만 의식주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런식으로 많은 뱀파이어들은 떳떳하지 못하지만 떳떳한 척 행동하고. 속으론 굉장히 불편하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기를 바라며,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어딘지 모르게 가엾어 보이지만, 그게 성공한 뱀파이어를 위한 걸음이니까.
Vampire City
사무실 구석 온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히터 바람에 사무실은 더운 열기로 가득했다. 히터를 끄겠다는 명목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한대리는 동우가 앉은 자리 쪽으로 방향을 꺾더니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와 꽤나 걱정스러운 눈치로 물었다.
“동우씨 괜찮아? 아까 호원씨가 부축하고 나가는 걸 봤는데….”
한대리의 입에서 제 이름이 불리자 호원의 눈길이 둘에게로 향했다. 붉은 립스틱으로 뒤덮어놓은 한대리의 입술이 이 회사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호원은 생각했다.
동우 또한 제 책상위에 짚어진 한대리의 손등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피를 꾸역 꾸역 흘려대던 한대리의 손가락에는 밴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입 안에 가득 고이려던 침을 한꺼번에 삼켜냈다. 갈변한 핏자국이 선명한 밴드 쪽으로 향하는 제 눈길을 애써 끌어당기던 동우가 한대리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늘 그렇듯 착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한다. 괜찮아요-
아무리 자제하고 침착하게 대응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피를 갈구하는 뱀파이어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동우씨, 내가 주고 싶은 게 있는데… 한대리가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케이스를 동우에게 내밀며 누가 볼세라 몸을 밀착시켰다. 그런 한대리의 움직임에 시간의 흐름이 약간 느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동우가 화들짝 놀라며 제 의자에 등을 바짝 붙였다. 그제서야 한대리의 손에 들린 케이스가 눈에 들어온다.
“한대리님… 이게 뭐에요?”
“동우씨 생각나서 면세점에서 산 거야. …지금 볼래?”
홀리듯 끄덕인 동우의 고개 앞에 케이스가 제 속을 드러냈다. 베이지 컬러의 남성용 손목시계였다. 케이스 안을 확인한 동우가 의아한 얼굴로 한대리를 올려다보았다.
“시계네요?”
“응, 가죽 시계야.”
“이거…설마 저 주시려는건.”
“동우씨 주는거 맞아.”
“그, 그래도 왜 갑자기 이런 선물을….”
“내가 동우씨 생일날 아무것도 못 해줬잖아, 좀 늦은 생일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줘.”
아, 그런가… 평소 악세사리를 좋아하던 동우는 한대리가 보여준 가죽 시계가 싫진 않았는지 환하게 웃어보였고 한대리 또한 만족스러운 얼굴로 구부정했던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섰다.
“출근할 때마다 차고 나와 주면 좋겠다.”
둘의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호원은 작성 중이던 서류를 덮어버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동우와 한대리 앞으로 나섰다. 탁, 동우의 손에 들린 가죽 시계를 낚아 챈 호원은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동우가 당황한 얼굴로 한대리의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호원을 채근했다.
“이호원, 지금 뭐하는 거야…! 시계 돌려 줘.”
호원은 숨을 천천히 토해내며 동우의 손목에 시계를 대어보더니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대리님.”
“… …,”
“이 시계가, 동우를 생각하면서 산 시계가 맞습니까?”
“…… 그런데요?”
한대리는 아랫입술을 꼬옥 감쳐물었다. 호원을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호원의 날카로워진 시선은 정확히 한대리 저 자신에게 꽂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호원과 동우는 뱀파이어라는 이유로 사내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커플로 소문이 자자했다. 공개적인 이 커플을 잘못 건드렸다가 사원들에게 눈칫밥을 얻어 먹는것을 한대리는 원치 않았다. 동우에게 비싼 시계를 선물해놓고도 호원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자니 한대리는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
호원의 붉은 혀가 아랫입술을 훑더니 말간 입술 사이로 숨어들어갔다. 동우와 가죽 시계를 분명히 대조시키던 호원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안목이 엉망이신 걸까요? …아니면 이 시계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 걸까요?”
“호원씨, 지금 그게 무슨…!”
“호원아.”
“그게 아니고서야 동우한테 이렇게 터무니없는 시계를 선물할 수가 있나요.”
“호원아…?”
“…….”
“동우가 출근 때 마다 정장차림으로 가죽 시계를 차야 합니까? 그것도 이런 어이없을 만큼 밝은 베이지색의….”
한대리의 시선이 메탈시계가 채워진 호원의 손목에 머물렀다. 제가 동우에게 선물해주려던 시계와 같은 브랜드의 것이었다. 알 수 없는 패배감에 한대리는 그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시계는 저희 집에도 많습니다. 한대리님.”
“…하….”
호원의 말을 끝으로 동우가 포기했다는 듯 마른세수를 하며 제 책상위에 엎어지는 시늉을 해보였다. 호원이 그런 동우의 등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어울리지도 않는 시계 선물은 그렇다 칠게요. 아주 작은 볼륨으로 울리는 호원의 목소리가 한대리의 귓전을 마구 괴롭혔다.
“대리님, 평소에도 뱀파이어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고 하셨죠? 책까지 찾아보실 정도로.”
“……그런데요?”
“저희가 인간들의 피를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하다고 회식자리에서까지 얘기를 꺼내시던데….”
“…….”
“그것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를 보여주셨습니까?”
“……아니, 호원씨… 지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엎드려 있던 동우가 그제서야 상체를 일으키더니 멍한 얼굴로 호원을 올려다보았다. 호원의 목소리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애써 화를 눌러 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커터칼에 손가락을 베이신 건 의도하신 상황이 아니셨겠죠.” “…….” “하지만,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피가 철철 흐르는 자기 살갗을 뱀파이어에게 들이밀겠습니까? 휴지로 피를 닦아내는 게 먼저 할 일이죠.” “…….” “묻고 싶은 것도 많고, 질책도 하고 싶습니다만.” “…….” “그래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한 대리님.”
한대리가 얼굴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제 손가락을 감싼 밴드를 잠시 노려보았다. 호원이 고개를 삐딱하게 들며 그런 한 대리의 시선을 쫓았다.
“그리고 이거, …곧 약혼하실 남자친구 분께 선물하시죠.”
저 지금 건방진 거 아니죠? 어느새 가죽 시계를 넣어둔 케이스는 호원으로 인해 한대리의 눈앞에 내밀어졌다. 이미 사원들은 제 업무를 보면서도 이 셋을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심상치 않게 풍겨 나오던 분위기 탓이었다. 한대리는 밀려오는 창피함에 고개를 숙였다.
호원은 소리가 거의 새어 나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웃어 보이며 덧붙였다.
“인상도 깔끔하고 키도 훤칠하시던데… 그분께 선물 해드리면 딱이겠어요.”
한대리가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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